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1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11화>
영웅의 시험(2)
‘두 명이서 한 조라고?’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주변의 불편한 분위기로 보아 아무래도 제대로 들은 것 같았다.
‘이거, 고를 수 있는 거겠지?’
현재 남아 있는 사람들을 재빠르게 훑었다.
4명이 떨어지고, 남은 자는 여덟 명.
그리고 남은 자들을 보자면…….
‘적어도 두 녀석은 피해야 되는데.’
이단심문관과 테오.
이 둘과 얽히게 된다면 상당히 피곤해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덟 명 중 두 명이니 결코 작지 않은 확률이었다.
‘에이, 설마. 그래도 선택권을 주겠지?’
나는 마빈을 조용히 응시했다.
우리의 반응을 살피던 그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각 조는 간단한 추첨을 통해 정하겠다.”
이럼 곤란한데…….
도박 요소로 팀원이 정해진다면 변수가 생길 확률이 컸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호명할 테니, 앞으로 한 명씩 나오도록.”
나는 추첨이라고 하기에 뭔가 칠웅회합에 걸맞은 장치나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윽고 문이 열리며 들어온 건 커다란 상자였다. 그것도 상당히 손재주가 없는 이가 만들었는지 상당히 엉성했다.
“참고로 이 상자는 그대들이 시험을 보는 동안 레스티아가 만들었다.”
“마빈!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조용한 마빈의 말에 상자를 들고 들어오던 레스티아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역시 칠영웅이라도 못하는 건 있는 모양이다.
“먼저 이안 실베스트. 앞으로 나오도록.”
방금 말했던 것처럼 마빈은 한 명씩 호명했다.
앞으로 불린 자들은 상자에 손을 넣고, 작은 종이를 하나씩 손에 쥐고 꺼냈다.
‘보아하니 저 종이에 적힌 걸로 파트너를 정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안이 들고 돌아오는 종이를 유심히 보았다.
종이를 유심히 바라보자 갑자기 설정이 떠올랐다. 설정에 적힌 내용은 ‘3’이라는 숫자였다.
‘이거다!’
이거라면 원하던 파트너를 정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상자에서 종이를 꺼내 돌아온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물론 설정을 볼 수 있다고 해도 도박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내가 언제 불리느냐에 따라 뽑을 수 있는 종이는 한정되니까.
만약 마지막에 불리기라도 한다면 내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클레이 반하르트, 앞으로 나오도록.”
다행이라고 할까?
마빈이 나를 호명한 건 다섯 번째였다.
나는 상자로 다가가 현재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종이를 살폈다.
‘하필 이안은 이미 다른 녀석과 팀이 되어 있군.’
안면도 있고 실력도 있는 녀석이니 되도록 이안과 할 생각이었지만 상당히 난감해졌다.
그렇다고 현재 파트너가 정해지지 않은 나머지는 상당히 애매했다.
라스칼로 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 그는 종이를 뽑지 않았다.
그를 기대하고 파트너가 정해지지 않은 종이를 뽑기엔 남은 자 중에 하필 테오가 있었다.
남은 세 명 중 테오만 피하면 된다지만, 3분의 1이라는 확률을 노리기엔 도박성이 너무 짙었다.
‘그렇다면…….’
나는 미리 설정을 통해 봐 두었던 상자 안의 종이 위치를 떠올리며 손을 뻗었다.
“망설임이 없군.”
생각해 둔 종이를 꺼내자 마빈이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내가 종이의 위치를 안다는 걸 알아차린 건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칠영웅들의 기상천외한 능력을 보았던 터라 찔끔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빈은 그저 나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볼 뿐이었다.
“누가 파트너가 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건가?”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심 안도하며 재빨리 말을 지어냈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망설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요.”
“훌륭해.”
마빈은 감탄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변명이라고는 생각지도 않는지 그는 단숨에 납득했다.
자리에 돌아와 앉자, 키세아가 살며시 다가왔다.
“혹시 몇 번 뽑으셨어요?”
“비밀.”
“치사해!”
그래도 계속 함께 다닌 탓인지 키세아는 제법 내게 친한 척 말을 걸었다.
가끔 껄끄러운 면도 있긴 하지만, 이런 건 썩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이제 모두 뽑았으니…… 번호에 맞는 사람끼리 나란히 앉도록.”
그 말에 참가자들의 눈이 희번득 빛났다.
“아, 하필이면…….”
“하필? 이 수인족 새끼가!”
번호를 확인한 이들 중에선 벌써부터 불화가 일어나는 곳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테오가 그랬다.
‘라스칼과 이단심문관이 한 팀인가.’
이안은 다행히 무난한 상대와 파트너가 되었다.
“와! 클레이 씨, 저희 같은 조네요!”
“그러게. 우리 꽤 인연이 깊나 봐.”
“맞아요! 전 처음부터 그럴 거 같았어요!”
그리고 키세아는 나와 한 조였다.
그녀는 내가 같은 조가 됐다는 걸 알게 되자 환하게 웃었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그녀로선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한 조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근데 껄끄럽다면서 굳이 왜 같은 편을 한 거야?]‘껄끄러운 거야 껄끄러운 거고, 히로인이니 나쁜 녀석은 아닐 거 아냐.’
[……나쁜 녀석이 아닌가? 조금 도덕성이 의심되던데.]‘다른 자들도 서로 습격하고 있는 판이니 꼭 그런 건 아니지.’
오히려 영리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약간 섬뜩한 부분은 있지만, 키세아가 택한 방식은 대부분 효율적이었다.
‘뭣보다 얘를 파트너로 정하면 이번 시험은 날로 먹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라스칼 정도만 조심한다면 크게 장애가 되는 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럼 다음 시험은 내일이니, 그때까지 파트너와의 친목을 다지길 바란다.”
마빈은 그렇게 말한 뒤에 레스티아와 함께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묘한 어색함이 주변을 감쌌다.
‘이건 쉽게 통과할 수 있겠어.’
사실 첫 번째 시련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걸 보면, 의외로 영웅의 시험이라는 건 간단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조원 선정이 끝난 이후, 몇몇 이들은 식당으로 가 공복을 해소했다.
그중엔 나와 키세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남은 마법사는 한 명이네.”
“그러게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이안과 함께 식사를 하는 마법사가 보였다.
그는 심히 어색한 얼굴이었다. 그 이유는 마법사의 파트너가 바로 이안이었기 때문이다.
나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함께 식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이안의 말이 워낙 단답이라 감정을 읽기 힘든 것 같았다.
‘솔직히 이번에 떨어질 거 같긴 한데.’
실력은 7클래스로 준수한 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가장 만만했다.
이안 역시 뛰어난 실력이지만 라스칼이나 키세아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있었다.
[이안 쟤도 괴물인데 말이야. 근데 원래 쟤가 파비안의 라이벌 격인 녀석 아니었나?]‘히로인은 제외했을 수도 있지.’
물론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클레이 경.”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이곳에서는 작위를 언급하지 않았기에 퍽 친근한 호칭처럼 느껴졌다.
물론 난 친근하게 반응할 수가 없었다.
“세트람의 성기사님이 저에겐 무슨 볼일이신지…….”
말을 건 상대가 줄곧 나를 감시하던 이단심문관이었으니까.
“하하, 경계심이 깊으시군요. 저는 클레이 경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말이죠. 아! 참고로 제 이름은 제르타입니다.”
제르타.
그것이 녀석의 이름이었다.
풀네임은 제르타 아케른. 세트람 왕국의 이단심문관 서열 2위에 위치한 남자.
실력은 소드 마스터 상급이며, 강력한 신성 마법으로 무장한 강자였다.
이미 몇 번이나 확인한 설정이지만, 막상 그가 말을 걸자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었다.
“아, 예. 제르타 경.”
“흐음, 저를 무척이나 경계하시는군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녀석의 말에 그란세시아가 재깍 반응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조심해.]‘알고 있어.’
괜히 이단심문관이 아니다.
녀석은 분명 내게서 무언가를 캐내려 하고 있었다.
“그냥 제가 좀 낯을 가릴 뿐입니다.”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타인과 쉽게 말을 섞지 않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죠.”
실제로 나는 이곳에 온 후, 먼저 말을 건 상대는 특별히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번. 대부분은 키세아와 어울린 게 다였다.
“흐음, 알겠습니다. 아무튼 늘 뵙고 싶었습니다. 전쟁에서 마족을 퇴치한 영웅이며, 신검의 주인이라는 위명이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다 과장된 것들입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신검에 얽힌 소설도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더군요.”
신검에 얽힌 소설은 내가 집필한 걸 말하는 게 분명했다.
파비안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소설 말이다.
나는 제르타에게 태연히 물었다.
“혹시 읽어 보셨습니까?”
“예? 아, 읽어는 봤습니다만…… 그냥 어줍잖은 망상이더군요. 신검이야 뭐 그렇다 쳐도 재해? 참 황당할 뿐입니다. 만약 재해가 있다면 주신 알타이르 님이 신탁을 내리셨겠지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래, 예상했던 반응이긴 한데.
‘뭐? 어줍잖은 망상?’
막상 눈앞에서 내가 쓴 소설이 부정당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나도 몰랐는데 좀 애정이 있었나 보다.’
웃음기 담긴 그란세시아의 말에 나는 분을 삭였다.
“클레이 경도 재해라는 헛것을 쓰러트렸다고 하시던데,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마치 그는 내가 그 말에 동조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그렇다고 하고 싶었지만, 당장 녀석을 내게 보낸 자가 어떤 의도를 가진지 모르니 고개를 저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재해라는 말을 먼저 퍼트린 건 클레이 경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위대한 제국의 폐하께서 하신 말이라 전 그렇다 하였을 뿐입니다.”
알타이르 교단의 총본산이 위치해 있는 세트람 왕국.
세트람 왕국은 교단의 힘을 빌어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전 대륙에 상당한 영향을 지닌 국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대륙의 패권국인 아스크탈린 제국과 비할 수는 없는 법.
지금으로서는 제국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을 터였다.
예상대로 내가 제국 황제를 언급하자, 제르타의 기색이 약간이나마 달라진 게 느껴졌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일어나 보도록 하죠.”
“아, 클레이 경. 혹시 미셸 사제와 친하시지 않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던 나는 그 말에 우뚝 멈췄다.
“저를 치료해 주신 은인이니까요.”
“최근 미셸 사제가 지속적인 탄원으로 아텔가의 저택에 유폐되었다고 합니다. 성녀의 유해와 얽힌 일 같던데…… 혹시 짚이는 게 있으십니까?”
이번엔 나도 순간 반응할 뻔했다.
하지만 이젠 익숙해진 표정 관리로 태연히 답했다.
“아뇨, 전 전혀 모르겠습니다.”
일말의 동요도 없이 말하자, 제르타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런 놈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키세아도 뭔가를 느낀 듯 조용히 내 뒤에 따라붙었다.
‘성녀의 유해와 얽힌 일이라고?’
거기다 미셸이 유폐되었다.
이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감히 아텔가를 건드리다니! 교황의 권력이 이제 거기까지 커졌다는 이야기야?]‘세트람의 교황은 사실상 살아 있는 신처럼 취급받으니까.’
[살아 있는 신? 교황이? 하!]그란세시아 역시 분개하며 말을 토했다.
자신의 후손이 불합리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니 그럴 수밖에.
‘세트람이라…….’
전에 그란세시아가 교단에는 되도록 알리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란세시아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지만, 지금 이단심문관이나 미셸의 일을 보면 그 선택은 분명 옳았다.
‘그나저나 내가 상당히 만만했던 모양이네.’
제르타의 말과 태도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왔다.
만약 걸리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배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말과 행동.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기대되는군.’
적어도 당장은 놈을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당장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