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35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35화>
가장 신에 가까운 인간(1)
일행들은 내 뒤를 조심스럽게 쫓아왔다.
보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이안과 용안을 지닌 메르사야의 경우엔 어렴풋이나마 계단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는지, 거리낌 없이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다들 거, 겁도 없네요.”
오직 키세아만 덜덜 떨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탓에 그녀의 얼굴은 세상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너도 무서운 게 있긴 하구나?”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전 원래 겁 많아요!”
얼마나 무서운지 목소리의 톤이 평소보다 높아져 있었다.
겁이 많다라……. 뭐, 평소 모습만 보자면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긴 하지.
검만 쥐면 달라지지만.
“떨어지면 내가 잡아 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런 키세아를 보며 메르사야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한껏 오만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만 해도 나에게 하듯 다른 이들에게도 존대하던 메르사야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말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와 아닌 자를 구분하는 것 같네.]‘영악하긴 하다니까.’
어쨌든 이안이나 키세아는 홀로 메르사야를 감당하긴 어려운 면이 있으니, 녀석이 기고만장해진 것도 당연하다.
“시, 시끄러워요. 나도…… 꺅!”
“거기 조심해, 계단이 다른 곳보다 폭이 좁더라.”
“그, 그런 건 빨리 말해 주세요!”
덜덜 떠는 키세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여전히 절벽은 까마득하게만 보였지만, 내 눈에는 다른 길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통로로 빠질 수 있겠군.’
투명한 계단이 어느 순간 끊겨 있었지만, 그 왼편에는 작은 틈이 엿보였다.
“이 틈 사이로 들어가야 하니 괜히 발을 헛디디지 마라.”
그렇게 말한 후, 절벽의 틈으로 들어가자 어두컴컴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덕분에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또렷한 마력의 잔향이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의 것과는 다른, 신성력을 머금은 마력.
[……뭐야, 이거?]그란세시아도 그걸 느꼈는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인간이 이런 마력을 가지는 게 가능해?]‘너도 마력과 신성력을 같이 운용하면서 뭘.’
[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나는 어디까지나 일정 경지에 올라가며 하나가 된 거야.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존재의 힘은 결코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니야.]‘그런 것도 알 수 있는 거냐.’
[당연하지. 거기다 나랑은 분명 뭔가 달라. 인간은…… 절대 이런 마력을 가질 수 없어.]나는 그런 그란세시아의 말에 내심 감탄했다.
시놉시스를 본 것도 아니면서 이토록 예리하게 상대의 정체를 짚어 내다니.
내심 감탄하던 그때, 통로의 저편에서 새하얀 빛이 살짝 깜박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막 틈새에 들어와 한숨을 돌리고 있던 키세아를 내 품으로 잡아당겼다.
“꺅?!”
키세아가 작게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작은 빛이 방금 그녀가 있던 장소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내가 당기지 않았다면, 저 하얀 빛은 키세아의 어깨에 명중했을 게 분명했다.
“뭐, 뭐예요?!”
“뭐긴 뭐야. 방금 공격 못 봤어?”
“공격?”
얼굴을 붉히며 내 가슴을 밀쳐내던 키세아는 방금 공격이 있었다는 말에 당황한 눈치였다.
“전혀 몰랐어요. 공격이라니…….”
그렇게 말한 키세아의 눈은 붉은색으로 달아올랐다.
당황도 잠시, 자신이 공격받은 걸 깨달으니 분노가 치솟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제가 이 중에 가장 만만히 보였던 모양이네요.”
“아니, 그건 아닐 거다.”
“……?”
“네가 익힌 기술의 특성상 상대가 예민하게 반응한 모양이야.”
키세아의 검술은 강한 살기를 머금고 있다. 지금처럼 딱히 검을 잡고 휘두르지 않아도 미약한 위화감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상대는 그런 키세아의 살기를 눈치채고 바로 공격을 가한 거겠지.
저벅.
나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어둠 속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조용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미 시놉시스로 읽었음에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빛나잖아?”
말 그대로 이곳으로 걸어오는 남자는 빛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빛이 어두운 통로를 은은하게 밝혔다.
어디로 봐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이곳을 찾아왔다는 건 결코 평범한 자들은 아닐 터.”
그는 느릿한 어조로 우리에게 물었다.
그 말에는 특별한 살기도 없었으며, 온화한 기색만이 담겨 있었다.
다만 키세아를 볼 때만 눈을 찡그릴 뿐이었다.
“기척으로 보아 살업을 생으로 삼는 암살자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달랐던 모양이군.”
“암살자라니요. 저는 검사입니다.”
“그렇군. 내가 실수한 것 같구나.”
그는 키세아의 날카로운 말에 선선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도리어 그런 그의 태도에 키세아가 내심 당황한 눈치였다.
“먼저 공격할 정도로 의심했으면서 그게 끝인가요?”
“의심한 건 나의 잘못이지. 만약 그대의 곁에 있는 자를 먼저 보았다면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키세아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를 보았다.
정확히는 내 오른손에 끼워진 시모사의 눈을.
“이곳은 대화하기 적합하지 않군. 안으로 따라오도록.”
긴 백발에 청안, 그리고 새하얀 피부에서 빛을 은은하게 흘리는 남자는 태연히 등을 돌리며 걸어갔다.
이쪽이 따라오는지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사라지자, 멍하니 서 있던 키세아가 입을 열었다.
“저거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니, 사람이긴 해요? 느낌이 뭔가 다른데…….”
“네 말대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역시 ‘인간’에 예민한 키세아답게 저 남자에게서 바로 이질감을 느낀 것 같았다.
이안은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지만, 메르사야는 살짝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마 녀석도 뭔가를 느낀 거겠지.
“아무튼 가자고. 여기에 있을 수는 없잖아.”
내가 이곳에 온 건 저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자가 지닌 어떤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 * *
“나의 이름은 필라 가네스트다.”
어두운 통로를 쭉 걸어가자 꽤나 널찍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 보였고, 사람이 충분히 살 만한 주거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걸 보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필라 가네스트? 설마 그럴 리가…….”
그 이름을 들은 이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당연히 키세아는 그런 이안을 다그쳐 물었다.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이미 100년도 전의 사람이다. 세트람의 이단심문관을 맡았던 인물이지. 현 이단심문관 체계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라 역사서에도 나온다. 공부도 안 했나?”
“……그런 걸 산에서만 산 제가 어떻게 알아요.”
드물게 날카로운 이안의 지적에 키세아가 불퉁한 얼굴로 답했다.
“근데 100년 전 인물이면 어떻게 살아 있죠?”
“그러니 내가 놀란 거다. 분명 역사서에는 전투 중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안의 시선에도 필라는 담담히 찻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자신에게 시선이 몰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눈을 감고 느긋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이 열린 건 대략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오히려 묻고 싶은 건 나다.”
그는 푸른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유리처럼 투명한 눈동자는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특이한 형상을 띠고 있었다.
특히 십자 모양으로 깎여진 동공은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시사해 주었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는 묻지 않으마. 하지만 이건 답해 줬으면 하는군.”
“그게 무엇입니까?”
“어떻게 시모사의 눈을 가지고 있는 거지?”
역시 그거였나.
처음에 시모사의 눈에 시선을 주었을 때부터 그런 질문이 오지 않을까 했다.
“시모사의 눈은 아텔가의 신물. 후계자나 가주가 보관하는 게 철칙일 터. 외부인인 그대가 어째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 주었으면 하는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계신 겁니까?”
“나는 데이빗 아텔과 친구였다. 그에게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지.”
[데이빗 아텔은 100년 전 아텔가를 이끌었던 아이야. 꽤 똘똘한 아이였지.]필라의 말에 그란세시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시놉시스를 통해 그가 아텔가와도 인연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의 인물과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조금 깁니다만…….”
그가 이런 질문을 하리라는 건 이미 짐작하던 바였다.
그리고 대답할 말도 이미 준비해 뒀기에 능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과연.”
“그리하여 재해를 막기 위해 저는 미셸 사제님에게 시모사의 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반지에 선택받은 자가 생길 줄이야. 데이빗은 누구의 말에도 응답하지 않는다고 했었거늘.”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아마 머릿속으로 지금 상황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무슨 뜻이지?”
“이 반지의 인도를 따라왔습니다.”
“반지의 인도?”
제대로 능력이 밝혀지지 않은 위대한 신물이란 정말로 좋은 변명거리였다.
“예, 시모사의 눈은 간혹 제게 미래에 대한 예지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자면, 앞으로의 싸움에 필요한 힘을 가르쳐 주죠.”
“예지라……. 그 이야기는 내가 그 싸움에 필요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건가?”
그는 당황하지 않고 마치 나를 떠보듯 말했다.
“네, 정확히는 당신이 익히고 있는 기술입니다.”
“내가 익히고 있는 기술?”
“예. 천사의 혼혈이자, 전대 이단심문관의 대장이었던 당신만의 고유 기술 말이죠.”
천사의 혼혈이라는 말에 그의 몸이 굳었다. 그건 현재 세트람에도 남아 있지 않은 극비 정보였으니까.
“천쇄(天殺)의 무구.”
그건 신의 힘을 사용하는 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에게 부여된 업(業)이었다.
* * *
어느 산맥의 기슭.
누구의 발도 닿지 않는 대륙의 끝자락에 존재하는 오래된 심처.
그곳에는 감히 인간의 시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용이 있었다.
최초의 용이자, 모든 드래곤들의 왕이라 불리는 자.
같은 드래곤이라도 감히 발을 디딜 수 없는 장소에 새하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잠든 것처럼 숨을 고르던 용의 눈이 떠진 건, 그 새가 자신의 바로 앞에 내려앉은 때였다.
「알타이르, 또 무슨 일이냐.」
용은 놀랍게도 하얀 새에게 말을 걸었다.
그 새는 자신보다 아득히 거대한 용을 태연히 올려다보며 무어라 입을 열었다.
「용의 재해…… 그래, 그런 게 있다고 했었지. 하나 그건 분명 내가 아니었을 텐데?」
그 말에 또다시 하얀 새는 부리를 움직이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흠, 좋다. 어차피 지루하고 긴 삶에 있어 작은 파문이 일어나는 건 즐거운 일이지. 재해라…… 그 또한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겠구나.」
억겁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용에게 ‘재해’라던가 하는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이 신은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간혹 어울려 주는 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참 그렇지. 알타이르여.」
적당히 하얀 새의 말에 대답하던 용은 이전에 그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자’가 이 세계에 오는 건 언제인가?」
잔잔한 용의 말에 아름답게 지저귀던 하얀 새의 부리가 살며시 다물어졌다.
워낙 작았기에 새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지만 용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하얀 새가 살며시 웃고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