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4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4화>
기습 작전(2)
“모두 저것을 피해 움직여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족의 모습에 황급히 게일 공작이 소리쳤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인 테드릭을 기습이었다지만 단 한 방에 쓰러트린 괴물이다. 일반 기사들이나 병사들로선 도망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촤촤촥!
“으아아악!”
마족의 그림자가 움직이며 근처에 있던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도살했다.
카가강!
“크윽! 어디서 이런 괴물 놈이!”
테드릭이 주변의 기사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을 부러진 검에 마력을 담아 휘둘러 막아 냈다.
큰 상처를 입은 탓에 싸우는 건 무리였고, 최대한 다른 기사와 병사들을 보호하며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고작이었다.
“하하하! 역시 칼리오 경이요! 그 압도적인 힘을…… 켁?!”
“닥쳐라! 무능한 것.”
단숨에 역전된 상황에 큰소리로 웃던 알딘은 칼리오라 불린 마족에게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런 그의 공격에 놀란 듯 벌벌 떠는 게 보였다.
‘젠장, 이런 내용은 보지 못했는데?’
시놉시스에 언급된 내용에선 오직 황녀뿐이었다.
거기에 마족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당연하구나.’
생각해 보면 원작에서 탈루아 왕국군이 황녀와 마주친 건 카인젤 왕국군과 조우하기 전이다.
혹은 황녀가 먼저 카인젤 왕국군을 쓸어버린 이후거나.
‘마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당연해.’
탈루아 왕국군과 카인젤 왕국군이 마주친 시점에서, 이미 원작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다.
“바, 반하르트 경! 마족입니다!”
마족의 등장에 미셸은 거의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성녀의 후예니 뭐니 떠들어 대지만, 결국 그는 민간인이었다. 인외의 존재를 보고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
유리했던 상황이 마족 칼리오의 등장으로 단번에 뒤집혔다.
이번 전쟁에 참여한 기사 중 가장 강한 자라고 할 수 있는 테드릭이 큰 부상을 입었고, 그는 다른 기사들을 피신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족을 견제할 사람이 현재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족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휘관인 게일 공작부터 죽일 생각인 거겠지.
당연히 기사들은 게일 공작과 함께 빠르게 물러서고 있었지만, 칼리오의 움직임은 그보다 빨랐다.
‘야, 저거 어떻게 생각해.’
그다지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침착하게 상황을 관조할 수 있었다. 현재 내 약지에는 전설로 불리는 성녀의 유품이 끼워져 있었으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여태 조용히 있던 그란세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호오, 마족이라니. 이거 오랜만에 보네.]혹시 대답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란세시아는 가볍게 답했다.
‘우선 저걸 해결할 수 있는지 아닌지 말해.’
[넌 참 특이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다니.]‘빨리. 서둘러 답하지 않으면 내 목숨이 위험해질걸?’
[이놈이 진짜…….]내가 죽게 되면 반지도 파괴된다.
결국 그란세시아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후우. 저건 그렇게 강한 마족이 아니야. 아마 하급?]‘대처 방법은?’
[난 그냥 때려죽여서 모르겠는데.]‘뭐?’
신성 마법이나 마족의 약점과 같은 것이 나오리라 생각했지만, 그란세시아의 말은 한참 예상외였다.
[뭘 착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난 몽크 출신이야.]‘몽크?’
[수도승이라고 말하면 편하려나. 알타이르 교단에서 무예를 익히는 사제들을 말해. 주로 주먹을 사용하는 것이 특기지.]‘아니, 너 성녀라며?’
[그건 내가 신체(神體)를 얻은 이후 교단이 멋대로 붙인 호칭이고.]‘그럼 신성 마법 같은 건 못 쓰는 거냐? 아군의 지원 같은 건?’
[아군을 위협하는 적을 배제하는 거야말로 가장 완벽한 지원인 법.]그란세시아의 마지막 말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뭐, 걱정하지 마. 시모사의 눈으로 지지기만 해도 저 정도 녀석은 상대할 수 있어.]‘그걸 먼저 말했으면 얼마나 좋아.’
칼리오는 점차 빠르게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시뻘겋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막아라!”
“놈이 공작 각하에게 가게 두어선 안 된다!”
그런 칼리오를 막기 위해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황급히 덤벼들었지만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칼리오의 손이 한 번 휘둘러질 때면 병사들이 우수수 날아가 쓰러졌고, 검기가 담긴 검을 휘두르는 기사들은 바닥에서 치솟은 그림자의 칼날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게일 공작과 그 호위가 얼마 도망치기도 전에 녀석은 이미 지척에 접근했다.
“단번에 끝내 주마.”
그것은 마치 죽음의 선고와 같았다.
칼리오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싶은 순간, 녀석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닛?!”
게일 공작과 호위 기사들은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춘 칼리오를 황급히 찾았다.
하지만 녀석의 기척은 거짓말처럼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 역시 긴장된 눈으로 차분히 주변을 훑었다.
어디냐,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냐.
[그러고 보니 마족 중에 그림자 일족은 주변의 그림자를 타고서 이동할 수 있을걸?]촤아악!
와! 정말 빨리도 말해 주네!
긴장감 없는 그란세시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게일 공작의 그림자에서 칼리오가 튀어나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게일 공작도,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도 반응하지 못했다.
움직인 건 그란세시아의 말에 반응한 내 오른손뿐이었다.
탁!
시모사의 눈을 낀 내 손이 놈의 몸에 닿았다.
정확히는 녀석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끄아아아악!”
고작 그것뿐이었지만 반응은 극적이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칼리오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 호위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놈의 몸에 상처가 만들어졌다.
“크, 크으으으으! 이, 벌레 같은 놈들이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제대로 공격 한 번 못 해 보고 칼리오는 그림자를 타고 이동해, 상당히 먼 곳으로 이동했다.
놈의 몸에는 자잘한 자상이 생겼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도리어 잠깐 스치듯 지나간 시모사의 눈에 닿은 어깨가 부글부글 끓으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위력 죽이네?’
[그야 시모사의 눈은 내 신성력을 뭉쳐 만든 결정체이니 당연하지.]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였지만 이번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전설적인 성녀의 힘은 실로 전설적이었다.
“……마족이 어째서 카인젤 왕국의 편에 있는가?”
숨을 헐떡이는 칼리오를 향해 게일 공작이 차분하게 물었다.
“건방진 놈. 내가 그것을 답해 줄 거라 생각하나?”
칼리오는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몸을 굽혔다.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동자는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비록 방금 전에는 방심했지만, 두 번은 없을 거다.”
녀석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잠시 옆에 서 있는 미셸에게도 닿았지만, 그건 잠시일 뿐이었다.
“설마 그 정도의 성물을 가진 자가 있을 줄이야. 네놈부터 죽여 주지.”
놈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가시와 같은 게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검은 마력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를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게 하급 마족이라니.’
일반적으로 상위종으로 취급받는 마족이니 강하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의 힘을 지닌 마족이 하급이라면 중급, 나아가 상급 이상의 마족은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그럼 이제 저걸 어쩐…… 엉?’
문득 내 시야에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현재 칼리오에게 시선이 쏠려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여태 ‘저것’을 염두하고 행동해 왔으니까.
“내가 받은 고통을 당장 수십 배로 갚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떠들던 칼리오는 얼굴을 굳히며 자신의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다른 이들 또한 칼리오에게 향했던 시선이 그 뒤로 향했고, 그제야 깨달았다.
사박, 사박.
차가운 눈을 맨발로 밟으며 다가오는 재해를.
* * *
‘저건 뭐지?’
그것을 본 칼리오가 가장 먼저 가진 감정은 의문이었다.
하얀 눈을 밟으며 비틀비틀 걸어오는 ‘저건’ 대체 무엇인가.
인간?
아니다. 인간이라기엔 이상했다.
우선 양쪽 관자놀이에 짧은 뿔이 자라 있었고, 노출된 피부에는 새하얀 비늘이 언뜻언뜻 보였다. 뿔과 비늘이 있는 존재가 인간일 리 없었다.
‘그럼 용인?’
흔히 리자드맨이라 불리는 종족.
용과 닮은 비늘과 머리를 지녔으며 강인한 신체 능력을 가진 종족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저것은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얼굴이었다.
두근. 두근.
저것을 가까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방금 전까지 분노로 쿵쾅거리던 심장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뛰고 있었다.
‘설마,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건가?’
사박, 사박. 탁.
그것은 천천히 칼리오를 향해 걸어오다가 우뚝 멈췄다.
그리곤 자신이 지나갈 길을 떡하니 막고 있는 칼리오를 응시했다.
“──.”
인간인지 괴물인지 모를 존재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그 작은 달싹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칼리오는 본능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늦었어.’
클레이는 ‘저것’의 입이 벌려지는 순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챘다.
강력한 능력을 지닌 상위종 중에서도 정점으로 꼽히는 용족.
그들은 무엇보다 강력한 신체를 지니고 가공할 마력을 타고나지만, 그런 것들은 용족의 진정한 힘이 아니다.
그들의 가장 강한 능력은 세상의 규율을 자신들의 언어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간에는 그것을 이렇게 부른다.
용언(龍言)이라고.
“크억!”
콰아아!
족히 수 미터는 떨어져 있던 칼리오의 몸이 여성을 향해 휙 당겨지며 날아갔다.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이 칼리오의 목은 여성의 손에 잡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에 칼리오의 동공이 흔들렸다.
‘빠져나가야 한다!’
처음에는 그림자 속으로 숨어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림자로 변할 수 없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칼리오는 황급히 마력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모여든 마력을 손에 집중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목을 틀어쥔 가느다란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
길게 자란 새까만 손톱에는 마력이 뭉쳐 기사들의 소드 오러와 같은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카가가각!
하지만 손톱은 여성의 손목에 뒤덮인 비늘을 뚫지 못하고 튕겨졌다.
작은 상처를 냈지만 그뿐, 여성의 손을 뿌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죽어! 죽어라, 죽어라! 이 괴물아!”
콰아아아아!
그림자가 전갈의 꼬리처럼 낭창하게 휘어지며 여성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지만 여성은 미동도 없었다.
그저 다시 한번 입술을 달싹일 뿐이었다.
우뚝!
그러자 말뚝처럼 떨어지던 그림자가 허공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여성이 뭐라고 말한 건지 칼리오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멈춰, 라고?’
고작 그것만으로 자신의 그림자가 멈췄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은 칼리오가 알기로 단 하나 뿐이었다.
용의 힘인 용언.
그것을 이 인간인지 뭔지 모를 존재가 사용하고 있었다.
‘불가능하다.’
어찌 용이 아닌 존재가 용언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여성의 금안와 칼리오의 적안이 마주쳤다.
그제야 칼리오는 눈앞의 존재에게 이성(理性)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부서져.”
칼리오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중얼거림.
그것이 칼리오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망치로 단단한 무언가를 후려친 것 같은 굉음이 울리며 칼리오의 몸이 터졌다.
그래, 마치 폭죽처럼.
방금 전까지 절대자의 위치에 있던 존재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마족의 푸른 피가 비처럼 쏟아지며 새하얀 눈밭을 물들였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방금 벌어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넋을 잃어버린 것이다.
‘……용언은 사람을 터트릴 수도 있는 건가?’
[아니, 마족 놈이 있던 공간을 진동시켜 타격을 입힌 거야. 용의 마력이니 하급 마족의 힘 정도로는 견딜 수 없었을 테지.]그란세시아는 제법 놀랐다는 듯이 설명했다. 마족이 나타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래서, 너는 저것과 싸울 생각이라는 거지?]그래, 그랬을 텐데…….
실제로 보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칼리오의 목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천천히 내리는 ‘저것’의 모습이.
“하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웃음이 나왔다.
그건 두려워서인가?
아니다. 내가 웃은 건, 몸이 떨린 건 전혀 다른 이유였다.
‘완벽해.’
나는 용의 재해의 능력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야만 했다.
리야 아스크탈린 황녀의 힘, 그리고 용의 힘.
어느 쪽에 치우쳐져 있느냐에 따라 상대할 수단과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건 후자였다.
용의 본능에 짓눌려 움직이는 괴물.
그건 내가 생각하던 가장 이상적인 구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