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4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41화>
마지막 천하칠검(1)
작은 소란이 있었던 이후 우리가 향한 곳은 드레이슬러가의 거대한 연무장이었다.
수련을 하던 병사와 기사들은 갑작스런 마빈의 등장에 얼어붙었다.
“가, 가주님이 어쩐 일로 이곳에…….”
“혹시 오늘 가주님의 가르침이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러기엔 혼자가 아니신 것 같은데?”
주변의 술렁거림은 점점 커졌고, 반쯤 질질 끌려오는 케이든이 등장했을 때는 소란이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마빈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우리는 신경 쓸 필요 없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신경을 안 쓸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클레이 님, 클레이 님. 근데 저는 왜 여기 온 건가요?”
메르사야는 이 상황 자체가 무척이나 낯설었는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마침 너도 주먹 쓰는 거 좀 좋아하니까 배워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저기, 제가 드래곤인 걸 잊으신 건 아니죠?”
떨떠름한 메르사야의 모습에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녀석을 보았다.
그러자 메르사야가 새된 비명을 흘리며 몸을 움츠렸다.
“아, 아니, 뭐라 하는 건 아닌데요…….”
“나도 뭐라 하는 거 아니다. 뭘 쫄아?”
“보통 그런 시선을 보낼 땐 이상한 걸 시키셔서…….”
[아주 잘 아네.]최근 계속 나랑 엮여 같이 다닌 탓인지 확실히 감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딱히 나를 위해서 메르사야를 데리고 온 건 아니었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 기회에 너도 마빈에게 권법을 배워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치만 전…….”
“마법이나 용언이 있다고? 근데 너 용언은 몰라도 마법은 잘 못 쓰잖아.”
“……!”
내 말에 메르사야가 몸을 움찔 떨며 보았다.
설마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모를 리가 있나.
애초에 메르사야와 싸울 때부터 느꼈었다. 이 녀석은 다른 드래곤에 비해 마법이 능숙하지 못하다고.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메르사야가 마법을 잘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멍청해서.’
정말 단순하고도 심플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메르사야는 마법을 정교하게 사용할 정도로 똑똑하지 못했던 거다.
[……근데 용이 멍청할 수가 있나?]‘뭐든 이변이란 생기는 법이니까.’
지상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은 누구보다 현명하며 지성체 중에 가장 우월한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용의 심장을 통해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수급받는 터라 태어날 때부터 그 어떤 종족보다 마법에 천부적인 자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 드래곤들 가운데 메르사야는 돌연변이에 가까운 존재였다.
‘인간으로 치면 크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지능이지만, 드래곤들 사이에선 아니겠지.’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결코 능숙하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 마법사의 성취를 넘어서지 못하는 메르사야는 다른 드래곤들에게 크게 무시받았고, 끝내 어머니에게 절연당해 버려졌다.
본래 드래곤들 사이에 가족애는 그다지 깊지 않지만 절연까지 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그란세시아가 설명해 줬다.
‘그러니 다른 용들보다 유희에 집착했던 거겠지.’
인간들 사이에선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쉽게 분노하며 무시받는 걸 참지 못하는 저런 양아치와 같은 성정이 되어 버린 거다.
또한 강자에게 쉽게 굴복하며 움츠리는 것도 전부 그런 이유다.
하지만 지식이 부족하다고 다른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메르사야의 용심(龍心)은 다른 드래곤들의 것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떨어지지 않았으며, 폴리모프를 한 육신을 움직이는 데 센스가 있고 뛰어났다.
[드래곤의 모습일 때도 다른 드래곤보단 힘이나 민첩성이 훨씬 뛰어났으니, 그 영향이리라 생각해.]그란세시아도 그렇게 말했을 정도니 육체적인 재능은 분명히 있다는 거다.
나는 이번 마빈과의 수련에서 그런 메르사야의 재능을 개화시켜 볼 생각이었다.
‘용이 인간의 무술을 익힌다.’
전례 없는 일인지라 조금 흥분되기도 했다.
당사자인 메르사야는 좀 떨떠름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너 그래도 강해지고 싶잖아.”
“그건…….”
“용이 꼭 마법으로만 강해질 필요 있냐? 마법을 못 써도 몸이 충분히 강한데. 나는 드래곤이 굳이 마법에만 집착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하는 소리세요?”
“진심이다. 기껏 몸도 튼튼한데 마법만 쓰긴 아쉽잖아.”
드래곤은 그다지 몸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천성이 게으르며, 긴 세월 속에 살아가는 터라 육신의 활동을 최소화한다.
그 탓에 강인한 육신을 지녔으면서도 활용할 방법을 모른다.
……라고 그란세시아가 말했다.
그란세시아 가라사데, 용은 굼뜨고 몸이 튼튼해서 제법 때리는 맛이 있었다던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까짓거 한번 해 보죠!”
어차피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인지했는지, 메르사야는 좀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나름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자 메르사야는 이제 됐고.’
나는 이제야 겨우 마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빈은 그제야 정돈된 상황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된 것 같군.”
“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제 먼저…….”
“한번 싸워 보도록 하지.”
“그렇군요. 한번 싸워 보도록…… 네?”
먼저 적당히 몸을 풀고 성천무극에 대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던 마빈은 다짜고짜 그런 말을 꺼냈다.
“우선 클레이, 너의 성취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다른 건 그다음이다.”
마빈은 그렇게 말하며 여태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그제야 지금 이 근처에 나와 메르사야를 빼면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와 함께 왔던 케이든 역시 질질 끌려 외각에 있을 뿐이다.
[역시 말보단 행동이지!]그란세시아는 그런 마빈의 태도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둘만 통하는 뭔가 있는 거겠지.
“……알겠습니다. 그게 편하다고 하시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다른 칠영웅과 제대로 싸워 본 건 처음이나 마찬가지라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기대도 되었다.
현 칠영웅 중 두 번째로 강하다는 마빈 드레이슬러는 과연 얼마나 강할 것인가.
나는 메르사야에게 눈짓해 외각으로 보낸 뒤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평소라면 검을 뽑았겠지만, 이번에 이곳에 온 건 어디까지나 성천무극에 대한 성취를 올리기 위함이었으니까.
“훌륭해. 전보다 훨씬 능숙해졌군, 클레이.”
“최근 여러 일이 있었거든요.”
권사인 ‘레이’를 연기하며 주먹만 쓴 탓에 성취를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그 속도가 검을 익히는 속도보다 확연히 빨랐다는 점은 좀 슬펐지만, 나쁠 건 없었다.
“지금…… 마빈 님과 저 자가 주먹으로 대련하려는 건가?”
“분명 클레이 반하르트는 검을 쓴다고 들었는데……. 이명부터가 검주(劍主)잖아?”
적막해진 가운데 작은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예민한 내 귀에는 그들의 말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검주? 검의 주인에서 따온 이명인가.’
전에 무적철권이나 이런 것들에 비하면 훨씬 그럴싸한 이명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번에는 검과 관련된 만큼 더더욱 그랬다.
“선공을 양보하마.”
성천무극과 무척이나 닮은 기본 자세를 취한 마빈에겐 조금의 틈도 없었다.
그 자세만 보더라도 마빈이 나보다 월등한 경지에 도달한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성천무극을 사용한 경우는 상성상 유리한 상대이거나 결정타를 가할 때뿐이었다.
확인해 보지 못한 성천무극의 한계, 그리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내심 흥분됐다.
“후우우.”
심호흡을 하며 마력을 움직인다.
첫발을 떼며 단숨에 마빈을 향해 돌진했다.
이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직 내 눈에는 마빈만이 또렷이 보였다.
강하게 발을 내디디며 천군(天君)을 사용해 주먹을 내지른다.
천군은 기본적으로 발경의 묘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도는 일반적인 발경보다 압도적으로 빠르며 공격 범위도 넓다.
선공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엔 이것만 한 게 없었다.
“훌륭해.”
마빈은 감탄하며 천군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흘려 내듯 받아 내었다.
그 가벼운 반응에 얼굴을 굳히는 순간, 머리 위에서 마빈의 수도가 번개처럼 떨어졌다.
유식을 항시 발동 중이었기에 공격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방금 마빈이 그러했던 것처럼 깔끔하지는 않지만, 팔목을 사용해 미끄러트리듯 수도의 방향을 틀어 냈다.
성천무극의 형은 어떤 무기로도 펼칠 수 있지만, 역시 가장 뛰어난 효율을 발휘하는 건 인간의 몸으로 펼칠 때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몸이 연달아 가해지는 마빈의 공격을 훌륭하게 막아 내고 비껴 냈다.
‘역시 좀 달라.’
마빈의 움직임은 성천무극과 닮아 있으면서도 달랐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공방이 오갈수록 그 차이가 더더욱 두드려졌다.
‘대단해.’
성천무극의 일부에서 시작됐다는 드레이슬러가의 권법은 독자적인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결코 다른 무술의 아류가 아니었다.
주먹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고.
상대의 시선을 좇으며 몇 번이고 부딪쳤다.
정신을 차렸을 땐 호흡이 가빠지고, 전신에 땀이 비처럼 흐르고 있었다.
“헉, 허억.”
숨을 헐떡이며 물러서자 마빈 역시 굳이 쫓지 않고 손을 내렸다.
마빈 또한 지친 기색이 보였지만, 나보다는 확연히 멀쩡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후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하면 당장 쓰러질 것 같았다.
마빈은 그런 내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대련에서 느낀 점은 잠시 쉬었다가 이야기하겠다.”
“알겠습니다.”
당장은 지쳐서 제대로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힘들었다.
나는 지친 숨을 내쉬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엉?’
그제야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묘한 분위기에 괜스레 어깨가 올라간 메르사야가 턱을 치켜들고 내게 다가왔다.
“흥. 하찮은 인간 놈들이 클레이 님의 권법을 보고 넋을 잃은 모양이에요. 옆에서 말하는 걸 들었는데, 클레이 님이 설마 권법으로 저 인간과 이 정도로 치열하게 싸울 수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에요!”
“……그래?”
“네. ‘젊은 나이에 칠영웅이 되어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이 기회에 가주님이 혼쭐을 내 줘야겠어!’라는 말도 있었는데…… 흐흐흐. 저 떡 벌어진 입들 보이시죠?”
나보다 더 의기양양해진 메르사야는 다른 인간들을 비웃으며 나의 충신이 되어 내 옆에 바짝 붙었다. 호랑이의 위세를 등에 업은 여우라는 게 딱 걸맞은 모습이었다.
“근데 너도 한번 싸워 봐야 할걸?”
“네?”
“마빈에게 권법을 배우기로 한 건 나뿐만이 아니잖아.”
“……제가 저 인간이랑요?”
“어.”
아마 마빈은 메르사야의 실력도 알아야 하니 직접 싸워 보고자 할 것이다.
“열심히 해야 할 거야. 조금 힘 조절을 하는 거 같긴 한데, 많이 기대는 하지 마.”
“…….”
메르사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연무장에 가녀린 소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몸이 성한 곳이 없네.”
마빈과의 수련은 해가 질 때서야 겨우 끝났다.
수련이 끝났을 무렵에는 메르사야는 반쯤 실신한 상태였고, 나 역시 반쯤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쉬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곳에 머무는 한정된 시간 동안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어 가야만 했으니까.
“내가 어제 어디까지 살폈더라?”
수련이 끝나고 남은 시간에는 이 ‘별의 역사’가 모여 있는 구역에서 책장을 살폈다. 혹여 내가 모르는 설정이나 정보 중에 필요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재해와 천하칠검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건 꽤 되지만 쓸 만한 건 없군.’
이미 설정을 통해 해당 내용이 표시된 책들을 위주로 살펴보았지만 대체로 내가 아는 내용뿐이었다.
자세히 설명된 건 없었고, 대부분 재해가 오게 되면 세상은 멸망하며 검의 주인이 천하칠검을 사용해 막으리라는 것뿐이다.
‘이것도 비슷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선별해 두었던 책을 별생각 없이 펼쳤다.
처음에는 그것도 이미 아는 정보를 풀어 쓰거나 역사서를 기록한 자의 추측만이 적혀 있었다.
천하칠검을 만든 신은 누구이며, 어째서 재해라는 걸 예견한 것인가.
그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어?”
그런데 거기에 하나 신경 쓰이는 구절이 있었다.
바로 천하칠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미 천하칠검의 내용에 대해선 이전에 반 실베스트로부터 얻은 책자에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현존하는 천하칠검의 설명과 능력.
하지만 거기에는 딱 하나 중요한 점이 누락되어 있었다.
바로 천하칠검의 위치.
“이건…….”
바로 이 책자에는 천하칠검 중 단 한 자루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고작 한 자루뿐이지만, 그 한 자루는 첫 번째 검인 제노바만큼이나 중요한 검이었다.
천하칠검의 마지막 검이자, 끝의 검.
인도검(引導劍) 라갈의 위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