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52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52화>
운수 좋은 날(2)
고요한 어둠 속에서 계속 걸었다.
참 기이하게도 발을 앞으로 내디뎌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건 오직 내 숨소리뿐.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곁에 있었던 동료들의 기척조차도.
‘과연…….’
나는 그 어둠 속을 꿰뚫어 보며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던졌다. 이 무미건조한 세상 속에서 딱 하나 보이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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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샤드의 최심부>
인도검 라갈이 봉인되어 있는 빈샤드의 최심부에 존재하는 방어적 기능.
또한 인도검이 만들어 낸 ‘시련’이기도 하다.
최심부에 들어온 자는 환상에 갇히게 되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와 싸워 승리해야만 빠져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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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이 공간의 ‘설정’이었다.
그리고 몽환의 재해였던 시오르에 이어, 검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두 번째 재해라고 할 수 있었다.
‘시놉시스에서는 검의 시련을 돌파한 파비안은…… 이라고 언급해서 뭔가 했는데 이걸 말하는 거였나.’
어쩐지 빈샤드를 공략함과 동시에 라갈을 얻더라니.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라면 넌 누구라고 생각해?]‘글쎄…….’
딱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존재라고 해도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으니까.
‘그럼 너는?’
[나.]‘거기선 주신 알타이르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으음. 뭐, 알타이르도 껄끄럽지. 하지만 두려운 건 아니야. 가장 무서운 건 나야.]그 말에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드레이슬러가에서 보았던 그란세시아의 과거.
‘네가 신의 재해라고 했던 게 걸리냐?’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리고 뭔가 납득되기도 해.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아무래도 그란세시아는 뭔가 짐작 가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조금이지만 추측되는 게 있었다.
[근데 왜 아무것도 안 나타나지? 정말 넌 무서운 게 없어서 나타나지 않는 건가?]‘설마 그럴 리는…….’
거기까지 말하던 순간, 어둠 속에서 파장이 일어났다.
어두운 세계가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어 가며, ‘풍경’을 이루어 가기 시작했다.
“이건…….”
이내 모습을 드러낸 풍경은 내게 아주 익숙한 장소였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영토, 반하르트가의 영지였다.
그 풍경 속에는 오래전부터 보아 온 사람들도 있었고, 최근에 정을 쌓은 이들도 있었다.
모네, 도리스, 수많은 하인과 영지민들.
그리고 리야와 마리아를 비롯해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와 인연을 쌓은 이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나타난 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자였다.
“하. 그렇군.”
나와 인연을 쌓아 온 사람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존재.
나보다는 조금 옅은 흑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잘생긴 외모의 남성.
분명 처음 보는 자인데.
어쩐지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파비안.”
내 조용한 중얼거림에 그가 시선을 돌렸다.
동료였던 수많은 이들이 나를 경계하며 물러섰고, 파비안은 조용히 나를 향해 검을 들었다.
[……파비안이라고? 저게?]‘아마도. 저 녀석이 들고 있는 검을 봐.’
[검? 아!]그제야 그란세시아는 파비안이 들고 있는 검을 보고는 경악했다.
녀석이 들고 있는 무기는 다름 아닌 제노바였으니까.
본래 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파비안만이 다룰 수 있던 검.
[근데 네가 모르는 자인데, 어떻게 외모가 특정된 거지?]‘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 역시 놈을 향해 검을 들었다.
똑같은 검이 서로를 향해 겨누어졌으며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녀석의 설정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하지만 인물의 설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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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의 환영>
‘검의 소리가 들려’의 주인공인 파비안의 환영.
클레이 반하르트가 두려워하는 상황과 현상을 나타내는 존재로서 현신했다.
미궁의 재해 빈샤드는 가장 적이 바라지 않는 존재와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불러올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이 세상에 존재했던 존재만이 가능하다.
설령 그것이 지금은 사라진 존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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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이지?’
아리송한 설명이었다.
우선 저 환영을 만든 게 빈샤드인 건 분명했다.
그리고 내 기억과 상관없이 실존했던 인물 중 내가 두려워하는 존재를 세상에 나타내는 것도 알겠다.
문제는 가장 마지막 문장이었다.
‘설령 지금은 사라진 존재라도?’
그냥 생각하면 파비안이 죽었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게는 그 뉘앙스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잘됐어.”
내 중얼거림에 파비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두려워하는 존재라.
그래, 나는 확실히 파비안이 두렵다.
녀석이 주인공으로서 누려야 했던 것 중 상당수는 내가 차지했고, 혹시나 녀석이 다시 돌아오면 빼앗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내 곁에 있던 이들이 녀석의 곁에 있는 모습이 아마 그러한 내 심상을 형상화한 거겠지.
“운이 좋아. 그래도 너랑은 한번 싸워 보고 싶었거든.”
설령 가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녀석이 가진 힘과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솔직히 궁금했다.
‘환영이니 완전한 파비안과는 같다고 할 수 없겠지만…….’
재해가 구현한 파비안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델토드.”
육신이 한계까지 활성화되며 시야가 맑아진다.
동시에 녀석도 똑같은 힘을 사용했는지 기세가 달라졌다.
여기까진 같겠지. 하지만 이제부턴 다를 거다.
──천쇄의 무구.
콰아아아아!
전신에서 열기가 일어나며 등을 중심으로 전신에 각인이 번졌다.
“……!”
방금 전보다 배는 강해진 내 모습에 파비안은 잠시 눈을 크게 떴으나, 진지한 얼굴로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카아앙!
격렬한 격돌음이 울리며 서로의 검이 튕겨졌다.
‘응?’
단 한 번의 격돌이었으나 파비안은 크게 밀려났고, 나는 제법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파비안이 약하거나, 내가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 그렇지.’
결국 환영은 환영일 뿐이었다.
결국 모습을 재현했을 뿐, 파비안의 능력까지 재현한 건 아니었다.
[그게 아니야. 저 녀석이 약한 건 네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지.]‘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환상이니 모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맞아. 하지만 거기에 네 마음속의 공포보다 그것을 이겨 내는 힘이 더 크기 때문에 놈은 힘을 쓰지 못하는 거야.]아무래도 눈앞의 환상은 상대가 두려워하면 두려워할수록 그 힘이 더더욱 강해지는 구조인 것 같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한가.’
만약 손쓸 수도 없이 강한 자를 두려워하는 이라면, 그것이 나타난 순간 바로 죽는다.
사실상 즉사기나 마찬가지.
그러니 기본적인 힘은 자신에게 맞춰지며, 두려움을 가질수록 그 힘이 커져 이겨 내기 힘들어지는 구조일 것이다.
“아쉽군.”
진심으로 아쉬웠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쪽이 운이 좋은 거겠지. 사실상 시련을 거저 넘을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파비안을 두려워했지만, 그 이상으로 녀석을 쓰러트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가장 두려워함에도, 가장 이기고 싶은 녀석이 놈이었기 때문이다.
“파비안.”
내가 제노바를 쥐고 수직으로 치켜들자, 파비안 역시 거울처럼 나를 따라했다.
잠시 서로를 응시하던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덤벼들었다.
“잘 가라.”
환상 속이기 때문인지 제노바가 빛을 발하며 파비안을 갈랐다.
동시에 이 거짓된 세계마저 가르며──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 * *
“후.”
눈을 뜨자 푸른 보석과 같은 광석으로 들어찬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빛이 아른거리는 광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저 빛들은 전부 던전에 흘러드는 마력의 빛이었다.
즉, 말하자면 지금 내가 있는 장소는 던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머지는…… 괜찮은 것 같군.”
하나같이 통로에 들어온 순간, 제자리에 굳어져 있었다.
모네의 경우엔 도리스에게 혼이 나고 있는지 ‘아빠, 죄송해요! 죄송해요!’라고 연신 외치고 있었고, 리야나 마리아의 경우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운이 좋아도 쉽게 벗어날 수는 없는 건가.’
아니면 이제 내가 던전의 핵을 파괴하면 자연스럽게 깨어나게 될 테니 행운이 작용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저게 핵인가 보네.]이 거대 미궁 빈샤드를 구성하는 핵.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이 꽂혀 있는 장소 바로 위에 있었다.
맥동하는 거대하고 푸른 보석.
던전 전체에 마력을 공급하고 순환시켜야 하는 핵인 만큼 크기도 범상치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핵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늦게 오면 검을 얻기 힘들었겠는걸.”
만약 핵이 더 커졌다면 인도검 라갈을 짓눌렀을 것이며, 라갈은 땅속에 파묻혀 점차 찾기 힘들어졌을 게 분명했다.
핵을 향해 가까이 접근하자, 진한 마력이 느껴졌고 푸른 장벽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파직!
‘핵을 파괴해야 검에 접근할 수 있겠군.’
핵을 보호하는 마력이 가까이에 있는 라갈까지 보호하고 있었다.
나는 제노바를 뽑아 단번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이 정도로는 안 돼.’
이 거대한 던전을 유지하는 핵이니 일반적인 오러 블레이드 정도로는 절대로 파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제노바에서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수 미터가 넘게 솟아났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마력에 점차 크기를 불려 가던 오러 블레이드는 이윽고 백색의 불꽃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륜지천검.”
기본적으로 일륜지천검의 초식은 단월신검의 그것과 거의 같다.
‘이젠 낙월이 아니라 낙일(落日)이라 불러야겠군.’
백색으로 작렬하는 불꽃의 검이 움직이며 방벽을 향해 쇄도했다.
불꽃은 사방에 들어찬 마력을 단번에 불태웠고, 수직으로 그어진 검기는 방벽을 반으로 갈랐다.
아니, 방벽을 넘어 핵까지 반으로 갈랐다.
콰아아아아!
“……오?”
불꽃이 단번에 핵을 반으로 가르며 불사르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는 위력이 천양지차였기 때문이다.
“천쇄의 무구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의 위력이라고?”
[너의 경지가 한층 높아졌으니 당연하잖아? 거기다 성천무극의 숙련도가 더욱 올라갔으니 영향을 받는 것도 당연하지.]생각할수록 성천무극은 사기였다.
이것의 숙련도가 오르면 오를수록, 다른 기술들의 숙련도도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누가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따질 수준이었다.
드드드드드!
하지만 일륜지천검의 힘에 감탄할 틈도 없이, 빈샤드의 최심부가 부서지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핵이 파괴되며 던전을 유지하던 힘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도, 도련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하아, 머리가 아프네요.”
“……으으.”
핵이 부서지자 환상에 빠져 있던 세 명도 깨어났다.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갑자기 환상이 깨어진 탓에 약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래도 이제 다 끝났네. 저 검만 뽑으면…….]그렇게 이야기하던 그란세시아는 말끝이 흐려졌다.
“왜 그래?”
[……빨리 검을 뽑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족들이 접근하고 있어.]“뭐, 던전이 붕괴되면 경계검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인도검 라갈을 뽑아 손에 쥐었다.
바로 제노바로 파괴하여 흡수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했다.
제노바의 힘을 사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그란세시아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마족들은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으니까.
[녀석들이 가까워져서 알아차린 건데…… 뭔가 이상해.]“이상하다니? 저번에 말한 알타이르의 힘을 빌렸다는 거?”
[아니, 그게 아니야. 마족들 틈에 뭔가 이질적인 게 있어.]어쩐지 그란세시아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어려 있었다.
그란세시아가 긴장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게 먼저였다.
“다들 어서 이쪽으로 와! 검의 힘으로 바로 이곳을 벗어날…….”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일행들을 불러모아 경계검의 힘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공간의 틈을 통해 이동한다면 마족이라도 쉽게 뿌리칠 수 있을 테니까.
“어?”
그러나 어째서인지 경계검이 발동하지 않았다.
오색으로 빛나는 순간, 빛이 점차 사그라지며 흩어졌다.
‘뭐지?’
마치 무언가에 억눌린 것처럼 검의 힘에 무언가가 저항하고 있었다.
검의 힘은 발동되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제노바가 갑자기 진동하며 울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 진동은…….”
한번 경험해 본 현상이었다.
바로 몽환의 재해인 시오르와 싸울 때.
근처에 다른 천하칠검이 있을 때 제노바는 이렇게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