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53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53화>
시작되는 것들(1)
반복적으로 진동하는 제노바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뭣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경계검의 힘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클레이, 무슨 일이죠?”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리야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리야 역시 본능적으로 이변을 깨달은 게 분명했다.
‘무언가가 있다.’
나는 붕괴되는 던전 안에서, 방금 우리가 지나온 입구를 응시했다.
그란세시아가 말했던 것처럼 점차 짙은 마기가 우리를 향해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그것을 인지한 마리아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클레이, 마족입니다! 서둘러 빠져나가야…….”
“경계검을 사용할 수 없어.”
“예?”
“검을 사용할 수 없는 이상, 메르사야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던전이 붕괴되면 그것을 인지한 메르사야가 날아올 것이다. 그러면 부서지는 던전 속에서 빠져나가면 되겠지만…….
‘저놈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 없겠지.’
다행히 내가 싸웠던 건 환상 속이었던지라 체력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다만 문제는 다수의 마족을 상대하기엔 이쪽의 전력이 상당히 미달이라는 점이다.
“겨우 따라잡았군.”
입구로 들어온 마족들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가장 앞에 서 있던 마족이 이죽였다.
그의 곁에는 백색의 옷을 입은 이단심문관 셋이 서 있었는데, 딱 봐도 그들의 정신은 온전치 않은 것 같았다.
‘후작위의 마족, 데클라인.’
나는 대장으로 추측되는 마족의 설정을 읽으며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란세시아가 경고했던 것처럼 여태 나타난 마족 중 가장 강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길 수 있을까? 거기다 다른 마족들의 수도…….’
데클라인의 뒤에 서 있는 마족들은 하급이 많았지만, 중급과 상급의 마족들도 끼어 있었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리야, 혹시 나머지를 부탁할 수 있을까?”
“노력해 볼게요.”
이번만큼은 리야도 확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마족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저쪽도 상당히 지친 것 같으니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무리하게 쫓아온 탓에 태연한 척해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야.]‘그래?’
[물론 잡졸들만. 저 데클라인이라는 놈은 멀쩡하니 조심하는 게 좋아. 그런데…….]거기까지 말한 그란세시아는 이상하다는 듯 말을 흐렸다.
[저 중에는 내가 느꼈던 이질적인 감각이 없어.]‘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렇네.’
검의 진동은 여전하다.
다만 마족들의 설정을 훑어보아도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아무래도 내가 착각했던 것 같아.]‘착각했다고? 그럼 잘못 느꼈다는 이야기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내 말은 내가 느꼈던 마기가 저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느껴진 거라는 거지.]다른 곳이라니?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워낙 마기가 강력해서 가까이에 있다고 착각했어. 아무래도 지금 다른 녀석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그 마족이 천하철검을 가지고 있다는 거네.’
[그럴 거야. 근데…… 이 정도로 강한 마기를 지닌 마족은 처음인데.]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란세시아가 ‘강하다’고 칭할 정도의 마기와 천하칠검을 지닌 마족.
이를 통해 떠오르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모든 마족을 통솔하는 마계의 왕.
마왕 자드, 놈이 분명했다.
‘맙소사! 그러면 저놈들이 문제가 아니잖아?’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이곳으로 오고 있는 마왕과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설마 경계검의 힘을 쓸 수 없는 게 마왕 탓인가?’
마왕 정도 된다면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 직접 움직인 거지?
내가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있는 건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고민에 빠진 내 얼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데클라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내 힘을 알아차린 모양이군. 그래, 나는 마족 서열 8위에…….”
“후작 데클라인이라는 거지?”
“그래, 나는 ‘흑강(黑鋼)의 후작’이라 불리는…… 네놈이 그것을 어찌 아는 거냐?!”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데클라인은 크게 경악하며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설마, 그것도 검의 주인으로서 가진 능력인가? 그런 힘은 마왕님에게 전혀 듣지 못했는데!”
“됐고, 덤빌 거면 어서 덤벼라. 시간이 없는 건 이쪽도 매한가지라서 말이야.”
반쯤 도발을 섞어 말하자 데클라인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검의 주인으로서의 힘을 경계한 듯 바로 덤벼들진 않았다.
‘다행히 다른 검의 능력은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녀석이 나를 경계하는 동안 몰래 델토드를 활성화시켰다. 다행히 경계검을 제외한 다른 검의 힘은 멀쩡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거기다 저놈들은 마왕이 오는 걸 모르는 게 분명해.’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
만약 저 녀석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나를 저토록 경계할 리 없었다.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끌려고 했겠지.
아니, 애초에 서둘러 나를 쫓아올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마왕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쪽이 오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가마.”
마왕이 오고 있는 이상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는 델토드를 활성화시킨 그대로 천쇄의 무구를 발동시켰다.
전신에 붉은 각인이 퍼져 나가며, 막대한 열량이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저건……?!”
갑작스럽게 변화한 내 모습에 무언가를 눈치챈 듯 이단신문관들의 입이 열렸다.
콰콰콰콰!
그와 동시에 나는 대지를 박차며 세 명의 이단심문관들을 노렸다.
저들 중 한 명이라도 교황, 혹은 알타이르에게 연결되어 있다면 내가 천쇄의 무구를 익혔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다.
적어도 ‘놈’과 싸우기 전까지는 천쇄의 무구를 숨길 필요가 있었다.
“크아아악!”
백색의 불길에 휩싸인 검이 세 명의 이단심문관들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이놈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순간 당황했던 데클라인의 전신이 흑색으로 물들며 검은 가시가 사방에서 솟아났다.
“리야!”
“맡겨 주세요!”
나는 다른 마족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정면을 향해 덤벼드는 놈을 향해 제노바를 에피온의 힘으로 건틀릿으로 변화시켰다.
뒤이어 백색의 열기가 남아 있는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며 데클라인의 가슴을 두드렸다.
“크으윽?! 무슨……!”
나는 단번에 주르륵 밀려나며 당황한 녀석을 향해 쉼없이 공격을 가했다.
다른 마족들과 최대한 떨어트려 리야가 상대하게 쉽게 만들기 위함이다.
“이 권법은 설마, 그럴 리가! 성천무극의 계승자는 레이라는 놈이었을 텐데?!”
“그 이야기가 벌써 귀에 들어갔냐?”
역시 후작위의 마족답게 성천무극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지만.
“이게 대체 어찌 된…….”
“여유 있구나, 너.”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박아 지상에 내리꽂았다.
콰콰쾅!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던전의 붕괴를 한층 가속시켰다.
“크아아아!”
그러나 ‘흑강(黑鋼)’이라는 이명을 가진 놈답게 맷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연달아 ‘천군’의 묘리를 담은 주먹을 연달아 꽂았지만, 제대로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그래, 어차피 네놈은 죽일 생각이었으니 네놈이 무엇을 익혔든 상관없는 일이지. 이곳에서 네놈을 처리하고 검을 회수하겠다!”
“어차피 검을 회수해도 사용할 수 없을 텐데?”
“그건 마왕님이 해결하실 일이지!”
놈의 팔뚝에서 솟구친 새까만 가시가 굵어지며 마치 길쭉한 쇠말뚝처럼 변했다.
나는 이번엔 건틀릿을 검으로 변화시켜 그것을 튕겨 냈다.
‘적검.’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단번에 칼날을 붉게 물들였고, 그 위로 백색의 불꽃이 덮어졌다.
카가가강!
“큭!”
제노바를 놈의 어깨를 향해 내리꽂았지만, 검은 피부를 꿰뚫지 못하고 튕겨졌다.
“쥐새끼 같은 놈!”
놈은 분노한 얼굴로 내게 거세게 덤벼들었다.
‘저 검은 피부는 신혈이나 성천무극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가?!’
놈이 휘청이는 나를 향해 접근하며 말뚝을 내질렀다.
가까스로 허리를 숙여 피할 수 있었지만, 그 틈을 노려 공격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주먹으로 싸우기엔 놈의 몸에 자라난 가시가 너무 많아.’
괜히 후작위의 마족이 아니었다.
거기다 녀석의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여서, 제대로 한 방 얻어맞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속도는 내가 빠르지만…….’
나로선 점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공격은 먹히지 않고, 이대로 있다간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갈 뿐이었으니.
‘침착하자. 충분히 할 수 있어.’
드레이슬러가에서,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한 단계 발전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분명 할 수 있다.
‘저것을 부술 수 있는 기술이 뭐가 있지?’
아마 ‘피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려면 준비가 필요했다.
‘다른 걸 찾아야 해.’
머릿속으로 여태 익힌 기술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도수명검, 은성검, 단월신검, 일륜지천검, 그리고 성천무극.
그것들을 익힌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기술을 만들기도 했었다.
머릿속에 열거된 수많은 초식들.
나는 그중 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기술을 하나 찾아냈다.
‘은성검 제5초식.’
이제 와서 무슨 은성검이냐 싶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것이었다.
이제는 내게 가장 익숙한 기술이나 마찬가지이며, 단발성 절기라고 할 수 있는 은성검에 기반을 잡는다.
그중 제5초식.
은성검을 자주 애용했던 나조차 딱히 사용할 일이 없었던 기술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건 미완성의 검술이기 때문이다.
초견무적이라 불렸던 데올릭가의 가주는 4초식의 절기를 만들었으나, 마지막 5초식은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오직 실전성을 추구한 네 개의 절기와 달리 다섯 번째에는 그가 꿈꾸던 이상을 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가 이룬 무학으로는 이상적인 5초식은 불가능했고, 끝내 미완으로 남았다.
‘이거라면…….’
설정을 읽는다.
머릿속에 검로가 그려지며 5초식의 흐름이 읽힌다.
만약 이것을 완성할 수 있다면, 충분히 놈의 피부를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이 검술은 미완성이었고, 이것을 사용하기 위한 마력 운용이 중간쯤에 뚝 끊겨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완하고자 했다.
‘단월신검, 일륜지천검.’
은성검은 별을 닮은 검술이다.
그리고 단월신검은 달을, 그리고 일륜지천검은 태양을 닮고자 했던 검술이다.
셋의 공통점은 닿지 못하는 이상을 좇고자 했다는 것.
머릿속을 떠도는 기술들이 조합되며 새로운 흐름을 그렸다.
완벽한가?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용할 수는 있었다.
“은성검 제5초식.”
검이 떨린다. 동공이 은색으로 물들며, 천쇄의 무구에서 발하는 붉은빛에 은색의 불빛이 튄다.
“은하(銀河).”
녀석의 말뚝이 내 가슴팍을 향해 내질러진 순간, 나 역시 놈의 말뚝을 향해 검을 찔렀다.
신성의 그것처럼 분사된 은색의 잔광이 백색의 열기로 타오르며 가속한다.
은색의 빛무리는 달빛처럼 칼날을 물들이며 곡선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곡선은 나선으로 회전하며 연속된 타원형으로 변해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을 중심으로 에워싼 백색의 고리가 회전하며 정면의 말뚝과 격돌했고──.
콰가가가가각!
그것을 말 그대로 갈아 버렸다.
“……?!”
데클라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며 급히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때는 이미, 은색의 나선이 녀석의 몸을 집어삼킨 이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