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62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62화>
각오(1)
땅이 갈라지긴 했지만 바로 천사들은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간을 보는 건가.’
혹은 가볍게 움직이기엔 너무 무거우신 몸들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고작 인간의 일에 나서고 싶지 않다거나, 체면이 상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야 고맙다만.’
당장 지금은 내 쪽을 주시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니까.
“저, 저놈이 성황궁(聖皇宮)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라!”
성기사의 외침에 일리샤드의 시민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대체 저놈은 뭐지?”
“이단심문관과 성기사들을 저렇게 간단히 날려 버리다니…….”
역시 한 나라의 수도답게 인구가 상당했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이단이다!”
“성황궁으로 가려는 속셈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사방에 울려 퍼지는 외침을 보아, 단순히 구경을 위해 몰려드는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조심해. 아무래도 기색이 이상하니까.]‘그런 거 같네.’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잘 보이진 않는 흰색 빛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교황의 능력은 알타이르의 신성력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먹히는 거 아니었어?’
[분명 그럴 텐데…….]나는 통찰안을 통해 몰려드는 시민들을 유심히 보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은 들었지만, 이전에 이단심문관처럼 무언가와 연결된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한 건지도 몰라.]‘사람들의 믿음?’
[신을 향한 믿음, 그 기원을 증폭시켜 조종하는 거야.]‘그 이야기는…….’
그란세시아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장 앞에서 달려드는 시민들의 모습이 그런 내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이단을 죽여라!”
“다른 이단심문관과 성기사들이 올 때까지 길을 막아!”
저마다 농기구나 식칼과 같은 무기를 쥐고 덤벼드는 모습에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몽환의 재해 때, 몽유병으로 조종당하던 시민들과 비슷했지만 그것과 이건 명백히 달랐다.
그건 조종이었다면, 이건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광신도.’
사람들의 믿음을 광적으로 증폭시켜 광신도로 변모시킨다. 이전에 보았던 이단심문관에게 작용했던 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말이 돼?’
교황 비올레트도 결국은 인간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
앞에서 덤벼드는 시민을 발로 차 날려 버리며 묻자, 그란세시아가 차분히 설명했다.
[아마 알타이르에게서 무언가 힘을 전해 받았거나, 또는 재해인 세트람의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르지.]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 부분은 교황의 설정을 확인해보면 보다 확실해지겠지.
“즉, 우선 여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거군.”
나는 사납게 웃으며 강하게 땅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덤벼들던 사람들이 일제히 날아갔다.
그 틈에 모여드는 성기사와 이단심문관들이 눈에 띄었다.
‘그란세시아.’
[응.]‘기억하고 있지?’
[물론.]이곳에 오기 전 나눴던 대화.
그란세시아는 그것을 떠올렸는지 가볍게 답했다.
조금의 의심도 없는 그 대답에 오히려 긴장됐다.
‘정말로 괜찮겠어?’
[위험한 도박이라고 생각하긴 해.]‘그럼…….’
[하지만 네가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인 건 한두 번이 아니잖아?]유쾌하게 말하는 그란세시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언제나 무모한 짓을 저질러 왔다.
물론 그 무모함에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필라 가네스트와 메르사야가 어제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이건 상황을 확실히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였다.
‘다들 잘하고 있겠지?’
나는 점점 몰려드는 이단심문관과 성기사들, 그리고 일리샤드의 시민들을 응시했다.
역시 조금 걱정되긴 했다.
그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저마다 색이 강해 잘 조율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미셸이 잘 중제해 줄 거야.]‘그러길 바라야겠네.’
당장 나도 그다지 여유는 없었다.
‘교황 비올레트.’
놈을 쓰러트리는 게 바로 나의 역할이었으니까.
* * *
“정말 위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모양인데요?”
“그럼 서둘러 움직여야겠군.”
키세아의 말에 필라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어두운 통로를 나아갔다.
현재 그들이 있는 장소는 회색낙원으로 통하는 지하 통로였다.
“저희와 클레이 님의 역할을 바꾸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메르사야의 말에 키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경계검인가 하는 검이라면 훨씬 수월하게 잠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건 힘들다. 이 장소는 천사들이 공간 좌표를 어긋나게 만들고 있어. 만약 공간에 간섭하는 짓을 했다간 바로 누군가 잠입했다는 걸 들킬 거다.”
키세아의 말에 필라가 답하자, 미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마법으로 침입하는 걸 막기 위해서 만들어 둔 결계죠. 클레이 경이 지닌 검의 힘이 대단한 건 맞습니다만, 만능은 아닙니다.”
“아쉽네요…….”
그렇게 답하는 키세아였지만 내심 상기된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키세아의 반응에 조금 의아한 눈치였지만, 메르사야는 그녀가 왜 그런 얼굴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쯧쯧, 천사와 싸워 보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참 이상한 인간이야.’
자신이 아는 키세아라는 인간은 정말 강해지는 것에 사족을 못 썼다. 드래곤에 이어 천사를 쓰러트리고자 하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자다.
분명 클레이가 천사를 쓰러트렸다는 이야기에 호승심이 일어난 거겠지.
‘내가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걸까?’
메르사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드래곤 로드에 이어 신에게도 반기를 들다니.
어리석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신은 도저히 그들의 편에 설 수 없었다.
“근데 언제까지 이렇게 조심히 움직여야 해요?”
“이곳을 지키는 최소한의 숫자만 남고 대부분 지상으로 올라갔을 때면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겠지.”
최소한의 숫자.
하지만 그 숫자도 결코 적지 않다는 걸 이곳에 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콰콰콰쾅!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지상을 향해 솟구쳤다.
그 신성력이 수많은 천사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한 증거라는 걸 모르는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지하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이 단번에 옅어졌다.
“크, 클레이 경,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그 사람, 이번에 정말 괜찮으려나…….”
뒤늦게 반응한 미셸과 키세아의 말에 메르사야는 크게 공감했다. 다만 필라만큼은 변함없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쪽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솔직히 전 그것도 좀 이해가 안 되네요.”
키세아는 어제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도리어 우리가 먼저 ‘의식’을 시작하자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죠?”
* * *
신성왕국 세트람의 수도 일리샤드.
개국 이후 수천 년간 단 한 번도 외세의 침략을 허락하지 않았던 도시.
세트람은 아스크탈린 제국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우수한 기사들과 사제들을 보유한 대륙의 패권국 중 하나다.
“말도 안 돼.”
그렇기에 시민들은 더더욱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인간이 이 정도로 일리샤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마, 막아!”
클레이가 강하게 발을 구르며 앞으로 달렸다.
수많은 성기사들이 그를 막아섰지만, 단순히 그와 부딪치는 것만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주먹에 얻어맞으면 미스릴로 만들어진 판금 방어구가 우그러지며 나뒹굴었다.
그 강력한 이단심문관들조차 그의 주먹 두 대를 버티지 못했다.
「멈춰라.」
그때, 하늘에서 백색의 광체가 떨어지며 새하얀 날개를 단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 천사다!”
“천사님, 저 이단놈을 벌해 주십시오!”
천사가 나타나자 이단이라 부르짖으며 클레이에게 덤벼들던 시민들은 무릎을 꿇고 천사를 찬양하기 바빴다.
물론 클레이의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직 교황이 있는 거대한 순백의 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건방진 인간이로군.」
천사는 그런 클레이의 모습에 눈을 찡그리며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날카로운 두 자루의 검이 잡혔다.
파아아아!
순백의 칼날에 맺힌 경건한 빛에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하며 기도하기 바빴다.
이제 저 건방진 이단이 쓰러지리라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달려가던 이단의 몸에 붉은 빛무리가 생기며 백색의 화염이 치솟기 전까지.
콰콰콰콰콰쾅!
두 자루의 검을 쥐고 유성처럼 날아간 천사와 적백(赤白)의 불꽃으로 화(化)한 남자의 몸이 격돌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땅이 갈라지고, 뿌연 연기가 솟구치며 주변 건물의 유리창이 일제히 깨져 나갔다.
“이, 이게 대체…….”
일개 인간과 천사의 충돌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저마다 시민들은 경악하며 뿌연 연기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
그리고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참상에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단이라 부르짖으며 덤벼들던 이단심문관과 성기사들도 침묵했다.
두 개의 검이 부러지고, 새하얀 천사의 날개는 흙먼지에 더럽혀져 꺾여 있었다.
마치 짓밟힌 개미처럼 쓰러져 있는 천사.
클레이는 천사의 머리를 뭉갠 주먹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
그는 움찔거리는 천사에게서 시선을 떼고, 자신을 가로막고 서 있는 인간들을 보았다.
워낙 충격적인 광경인지라 ‘광신’의 힘이 순간적으로 옅어졌고, 덕분에 사람들은 쉽사리 그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마음과 정신은 저 이단자를 죽이라 외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놈!」
순식간에 당해 버린 천사의 모습에, 새로운 천사 셋이 나타나며 덤벼들었다.
방금 일격에 쓰러진 천사의 모습을 봐서인지, 그들의 눈에는 옅은 긴장이 엿보였다.
‘이 정도면 됐나.’
클레이는 차분히 주변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을 관측했다.
‘좋아, 그럼 이제…….’
대략적인 수를 가늠한 클레이는 자신의 머리를 노리며 휘둘러진 순백의 창을 피한 후, 뒤에서 덤벼들던 천사를 발로 차 날려 버렸다.
「크으윽?! 이, 이건?」
클레이의 발에 얻어맞은 천사의 팔에 쩌적 금이 가며 천쇄의 무구의 힘이 파고들었다.
처음 느끼는 끔찍한 고통에 한 천사가 무력화된 사이, 클레이는 오른손을 위로 올린 뒤 지상을 향해 낙하시켰다.
콰콰콰쾅!
「큭?!」
일대 전체를 뒤덮는 강렬한 충격파에 천사들의 몸이 크게 밀려났다.
자칫했다면 그대로 뭉개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정말로 성천무극이다.’
교황에게 이야기 듣긴 했지만, 이 남자는 정말로 성녀 그란세시아의 기술인 성천무극을 사용했다.
「성천무극의 전승자다. 반드시 저 인간을 죽여야 한다!」
성천무극의 전승자라는 말에 갈라진 지면 아래에서 새로운 천사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 숫자는 무려 열한 명.
이 정도의 숫자라면 설령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이른 초인이라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
「어?」
지면을 강타한 충격으로 치솟았던 흙먼지가 가라앉자, 어째서인지 클레이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어, 어디로 사라진 거냐?」
그냥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인기척이 감쪽같이 지워졌다.
성천무극에 이런 기술도 있었던 건가?
「쫓, 쫓아라!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천사들은 멀리 도망치진 못했으리라 생각하며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클레이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공간의 틈에서 유유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