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63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63화>
각오(2)
“서둘러라!”
순식간에 움직이는 신성력을 느낀 필라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천사들이 지상으로 대부분 빠져나간 지금이 아래로 지하로 내려갈 기회였다.
“이쪽입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나올 겁니다.”
길은 대부분 미셸이 안내했고, 간혹 필라가 의견을 내며 이동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회색낙원에는 천사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고, 일반 사제나 성기사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구…… 커억!”
메르사야를 발견한 성기사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로 꼬꾸라졌다. 그야말로 번개 같은 주먹에 제대로 저항조차 못한 것이다.
“메르사야, 너 주먹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키세아는 그런 이채가 깃든 눈으로 반짝였다.
메르사야가 클레이에게 권법을 사사받고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메르사야는 본디 드래곤인지라 권법을 익힌다고 해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용이 다루는 힘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마법과 용언이었으니까.
그런데 메르사야의 실력은 말 그대로 일취월장하여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음후후후, 그렇다. 이제 내 주먹은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하다!”
자신만만하게 주먹을 치켜드는 메르사야였지만, 이번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반적인 신성력과 달리, 용의 투기가 담긴 주먹은 그야말로 강맹했다.
“이쪽이다.”
키세아와 메르사야의 활약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에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 키세아는 모든 종류의 검을 다채롭게 다루었고, 그중에는 은밀하게 상대를 요격할 수 있는 비도(飛刀)도 존재했다.
쉬익! 쉭!
작은 바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성기사나 사제들이 쓰러졌고, 미셸은 그 모습을 약간 씁쓸한 눈으로 보았다.
“한때 동료였던 이들이기에 마음이 썩 좋지는 않군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이들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재해와 같은 존재들이니까.”
재해.
미셸은 순간 클레이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필라는 단순히 묘사하고자 꺼낸 말이었겠지만, 클레이가 이야기했던 ‘재해’와 크게 다르진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제부터군.”
“천사로군요.”
“당장 느껴지는 건 세 명 정도다.”
그렇게 말한 필라는 천사들의 대략적인 위치를 일행에게 알려 주었다.
완벽에 가까운 감지 능력에 메르사야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인 그녀이기에 지금 필라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 수 있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다른 천사들에게 들키기 전에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거지?”
“단순한 이유다. 일반적인 천사들보단 내가 강하기 때문이지.”
“그, 그렇구나.”
뻔뻔할 정도로 단호한 대답에 메르사야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전설적인 이단심문관이라고 했던가.
확실히 그의 힘은 일반적인 천사보다 한참 우위에 있었다.
“그럼 세 명이니 각각 한 명씩 맡아 쓰러트리면 될까요?”
키세아는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천사와 싸워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 모양이다.
“굳이 그렇게 패배의 위험을 안고 싸울 필요가 있나. 그냥 하나씩 처리하는 게 훨씬 빠르고 편하다.”
“……칫.”
물론 필라는 그런 키세아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필라라면 몰라도 메르사야나 키세아가 홀로 천사를 상대한다면, 이긴다고 해도 결코 조용히 쓰러트리긴 어려울 것이다.
“미셸, 성녀님의 유해는 어디쯤에 있는 것 같나?”
“성녀님의 유해는…….”
미셸은 정신을 집중하며 성녀의 유해의 위치를 탐지했다.
아텔가의 일족이자, 성녀 순례를 하며 오랜 시간 성녀의 유해와 함께한 미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확실히 느껴지진 않습니다만,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서두르지.”
여기서 천사들이 더 몰려오면 난감해진다.
한시라도 빨리 그란세시아의 유해가 있는 장소에 도달해야만 했다.
* * *
천사들이 나를 찾아다니는 동안, 나는 경계검의 힘을 이용해 교황이 있다는 성황궁(聖皇宮)에 도달했다.
이대로 쭉 교황이 있는 장소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역시 성황궁에는 익숙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가끔 이런 걸 보면 경계검도 만능은 아니란 말이지.’
물론 공간에 간섭하는 결계를 친다고 해서 경계검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위치를 들키는 데다 함부로 경계의 틈으로 들어갔다간 자칫 위험한 일이 벌어질 확률도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성황궁의 내부를 돌아보며 내심 감탄했다.
새하얀 벽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쭉 이어져 있었다.
‘……신화를 표현한 건가?’
주신 알타이르가 다른 신들을 이끌고 지상에 내려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 신들의 주위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었으며, 인간들은 그런 신을 숭배했다.
‘천하칠검과 얽힌 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군.’
대충 봐도 대부분 알타이르가 인간들에게 무엇을 베풀었고, 무엇을 했는지 나타내는 그림들이었다.
[하여간 거짓말을 해도.]그란세시아는 신랄하게 말하며 그림들을 비웃었다.
이미 신성력의 정체에 대해 들었던 나 역시 그런 그녀의 심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보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벽화가 아니었다. 교황의 위치를 서둘러 찾아야만 했다.
나는 성황궁의 내부를 둘러보며 하나하나 설정을 훑었다.
‘저쪽이군.’
아마 대부분의 천사들은 갑자기 사라진 ‘레이’를 밖에서 바쁘게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길진 않겠지.
그러니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
“후우우.”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통찰안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 나는 나의 감각을 최대한 활성화시키며 천천히 주변의 공간을 감지했다.
본래는 통찰안을 사용하기 전 익혀야 되는 힘.
유식(唯識)을 극한까지 갈고 닦았을 때에야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눈을 감고 있음에도 이 낯선 공간이 세세히 파악됐다.
마치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지도 속에서 방금 설정으로 본 장소로 향하는 최적의 루트를 찾았다.
탕!
바닥을 박차며 단번에 머릿속에 그린 길을 따라 달렸다.
당연히 그 길은 텅 비어 있지 않았다.
성기사도 있었고, 사제도 있었다. 심지어 이단심문관도 존재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성황궁에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은 사실상 교황 비올레트의 눈. 누구 하나를 쓰러트려도 바로 녀석이 눈치챌 게 분명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놈이 알아차리더라도 대비하기 전에 교황이 있는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 * *
‘놈이다.’
클레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 성황궁에 있는 모든 이들은 교황 비올레트의 눈이나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성기사들이 쓰러져 나가자 비올레트는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수많은 천사들의 시선을 피해 성황궁으로 들어왔단 말인가.
성천무극에 그런 신출귀몰한 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었다.
“놈은 지금 2층의 중앙 복도를 달리고 있다! 막아라!”
“서, 성하?”
“무엇을 하는 게냐! 당장 놈을 잡으란 말이다!”
얼빠진 얼굴로 대답하는 성기사들에게 비올레트는 다급하게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천사들을 믿은 탓에 성황궁에 존재하는 이단심문관은 몇 되지 않았다. 혹시 의식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회색낙원을 지키라 명했기 때문이다.
‘괜찮다. 아직은 괜찮아.’
계획은 문제없었다.
의식은 계속 진행되는 중이었으며, 세트람의 통제에도 문제는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이냐.”
갑자기 치밀어 오른 초조감에 비올레트는 열이 들끓었다.
이토록 갑작스럽게 문제가 벌어지다니.
전부 그 레이라는 놈 때문이다. 비올레트는 침착하게 성기사와 이단심문관들을 모아 레이가 오는 길목으로 보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놈의 힘은 천사가 아니고서야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전설로만 들었던 그란세시아의 재림과 같은 광경이었다.
‘천사들은…….’
하필 천사에게는 다른 이들처럼 의식을 전달할 수 없었다. 그러니 소란을 눈치채고 이곳에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큭.”
이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되도록 전쟁 때까지 아껴 두고 싶었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자칫해서 계획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했다간…….
콰아아앙!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비올레트는 드디어 놈이 근처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이미 근방에 있는 모든 성기사와 사제들이 쓰러진 탓에 녀석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쩌저적! 콰콰쾅!
이윽고, 교황의 알현실의 거대한 문이 부서졌다.
“성하!”
비올레트의 곁에 있던 캐딜런 추기경이 황급히 신성 마법을 사용해 보호막을 치자, 문이 부서지며 날아온 파편이 부딪쳐 떨어졌다.
“이놈!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느냐!”
현재 이 알현실에는 비올레트를 제외하고도 다섯의 추기경이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대단한 실력을 지닌 대사제였지만, 전투 능력은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그들이 클레이를 막아선다는 건 불가능했다.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군, 비올레트.”
문을 부수며 들어온 클레이는 당당히 말했다.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추기경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설마 이렇게 네놈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그래? 난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세트람이 재해가 아니었어도, 결국 이렇게 놈과 대치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비올레트는 대륙에 전쟁을 일으키려한 장본인이었으니까.
‘역시.’
클레이는 교황 비올레트의 설정을 가장 먼저 살폈다.
대부분 예상한 그대로의 내용이었다.
복종의 재해, 세트람을 움직이는 두뇌.
원작에서는 대전쟁을 일으키려 하나, 파비안에게 저지당해 죽었다.
그나마 원작에서는 그란세시아의 육신에 알타이르를 강신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조차 실패할 거다.’
클레이는 힐끗 창밖을 보았다.
아직 신호는 오지 않은 상태였다.
“과연 성천무극의 후예군. 대단해. 이곳까지 홀로 돌파하다니.”
“그쪽이 천사의 힘만 믿고 제대로 실속을 채우지 못했으니까.”
“……대범한 놈이로구나. 너는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않았지.”
굳이 더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클레이는 발을 박차며 단번에 비올레트와의 거리를 좁혔다.
주변의 추기경들이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보다 클레이의 주먹이 빨랐다.
쩌엉!
그러나 그 주먹이 비올레트의 코앞까지 접근한 순간, 잿빛 강기가 날아와 클레이의 주먹을 후려쳤다.
그리곤 살짝 균형을 잃은 클레이를 향해 누군가가 날아와 그대로 몸을 들이받았다.
쿠우웅!
순식간에 붕 날아가 나가떨어지는 클레이의 모습에 비올레트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크게 웃었다.
“하하하! 멍청하구나. 내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이곳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비올레트의 앞에는 전신에 붉은 각인을 한, 잿빛 머리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신성왕국 세트람, 이단심문관들의 정점.
“세이건 가네스트.”
그때, 붕 날아갔던 클레이가 멀쩡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비올레트는 방금 클레이가 한 말을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네놈이 어떻게 세이건을 알고 있는 거지?”
“뭐, 이쪽도 비슷한 걸 익혔으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설마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비올레트에게 클레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 신성력이 퍼져 나가며 붉은색의 선명한 각인이 나타났다.
“그, 그건?! 마, 말도 안 된다! 그건 우리도 이제야 겨우 완성한…….”
“아니, 나는 너희 것과 좀 달라.”
세이건의 몸에도 붉은색 각인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클레이의 몸에 새겨진 것과는 좀 달랐다.
클레이의 것은 좀 더 복잡하고 선명했으며, 백색의 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내 쪽이 훨씬 대단하거든.”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는 세이건을 향해 클레이는 씩 웃었다.
원작의 파비안이 천쇄의 무구를 익힌 건 본래 저놈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