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7화>
용의 재해(3)
이제 막 15살을 넘긴 무렵이었을 것이다.
제국의 신년제를 맞이하여 탈루아 왕국의 귀족들은 아스크탈린 제국을 방문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문의 대표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반하르트 가는 이미 몰락해 가는 중이었기에, 나는 다른 귀족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뭐야, 이놈들은?’
다만 연회장에서 홀로 동떨어져 있는 내 모습이 제국의 귀족 제자들에겐 오히려 흥미를 끈 듯했다.
무리를 지어 내게 다가온 귀족 자제들은 별 시답잖은 것들을 트집 잡으며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가문의 일로 생각이 복잡한데 성가시게 구는 제국 귀족 자제들 때문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문제는 이걸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패권국인 아스크탈린 제국의 귀족과 마찰을 일으켜 봐야 손해를 보는 건 이쪽이었으니까.
뭣보다 내게는 편이 없었다. 몰락이 예정된 백작가의 자제를 돕기 위해 누가 나서려 하겠는가?
바로 그때, 내게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리야 아스크탈린이었다.
“비키세요.”
마치 누구의 앞을 막느냐는 고압적인 음성이었다.
다른 길도 많았을 텐데, 그녀는 나를 비웃던 귀족들의 앞에 섰다.
황녀는 당황하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내 가슴팍을 흘깃 본 뒤에 입을 열었다.
“반하르트 경, 여긴 사람이 많네요. 이동하도록 하죠.”
마치 약속이 잡혀 있던 사람처럼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고 이동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내심 감탄했다.
그녀는 내 가슴팍에 그려진 가문의 문장을 잠깐 본 것만으로 어느 왕국, 그리고 어느 가문의 귀족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적당히 사람이 없는 곳까지 이동한 그녀는 내게 은은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국을 싫어하지는 말아 줘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웃음이 공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것이 나와 그녀의 첫 만남이었다.
* * *
“아아아아악!”
부러진 뿔의 파편이 나뒹군다.
길게 쭉 찢어진 파충류의 동공이 내게 향하며, 반짝이는 금안에 내 얼굴이 비쳤다.
용의 본능에 눌려 가라앉아 있던 인간의 이성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란세시아의 말에 따르면 이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뿔이 꺾인 영향으로 용의 본능이 사라진 찰나, 정신이 돌아온 그녀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뭐라고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귀의 이명이 들려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녀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나는 비틀거리는 그녀를 커다란 나무에 밀어붙였다.
‘시간이 없어.’
황녀가 다시 용의 본능에 이성을 빼앗기는 것만이 아니다. 나도 당장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무리한 마력 운용과 그란세시아의 눈을 빌린 영향인지 다리는 후들거리고, 시야는 뿌옇게 변했다.
나무에 밀어붙여져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어떤 말을 하기 위해 벌려지는 그녀의 입술을 향해, 나는 그대로 엄지를 쑤셔 넣었다.
콱!
“……!”
“윽!”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황녀의 입이 닫히며 내 엄지를 꽉 깨물었다.
꽤 강하게 물렸는지 깨물린 상처에 피가 흘러내렸다.
“침착하게 삼켜.”
황녀를 향한 존대고 뭐고, 나는 어질어질한 정신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정체 모를 남성이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행히도 내 말을 잘 따랐다. 조심스럽게 내 엄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삼켰다.
효과는 눈에 띄게 나타났다.
머리에 자란 뿔은 그대로였지만, 몸에 자란 비늘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넘치던 흉포한 용의 기운이 눈이 녹듯 사그라지고 있었다.
이걸로 저주는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다.
그란세시아의 말에 따르면 발현된 용의 인자 때문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아야 할 테지만, 이번처럼 용의 본능에 먹힐 일은 없을 거라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기연이나 마찬가지겠지.
오히려 용의 재해로 각성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손에 넣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내 눈에는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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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 아스크탈린>
나이 : 19세
성별 : 여성
작중 역할 : 아스크탈린 제국의 제1황녀(엑스트라)
능력 : 용언(龍言), 용안(龍眼), ……, ……, 마법(6서클)
특이 사항 : 신혈의 힘으로 용화의 저주를 극복하고 용의 힘을 손에 넣은 전무후무한 존재.
아직 용의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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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는 일곱 번째 재해이자, 용의 재해라 불리던 괴물이 아니다.
그녀는 이제 엑스트라였다.
바이안과 같은 결말이었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이걸로…….”
빚은 갚았다.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그녀의 어깨에 체중을 실으며 넘어졌다.
깜짝 놀란 그녀가 쓰러지는 나를 안아 드는 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 버틴 게 오히려 용할 정도였으니까.
‘미셸이 데리러 오겠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한 사제를 떠올린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 *
“…….”
제국의 황녀, 리야 아스크탈린은 멍하니 자신의 무릎 위에 정신을 잃은 이를 보았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아마 몇 년 전에 있었던 제국의 신년제였던가.
그때, 그곳에서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뿐이었다.
스쳐 지나갔다고 말해도 좋을 인연.
설마 그 작디작은 인연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반하르트 경.”
이름은 모른다. 오직 그의 가문만을 알았다.
그의 성만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리야는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바짝 얼어 있는 한 명의 사제가 있었다.
“……누구?”
“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입니까! 바, 반하르트 경을 돌려주십시오!”
나름 용맹하게 소리치는 미셸의 모습에 리야는 픽 웃었다.
“이제는 괜찮아요.”
“뭐, 뭐요?”
“저는 이제 인간이니까요.”
차분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미셸은 떨리던 마음이 가라앉는 게 느꼈다.
정말로 방금 전까지 날 뛰던 괴물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다.
‘반하르트 경이 무언가 기적을 일으킨 게 분명해.’
미셸은 보았다.
저 무시무시한 여자를 향해 뛰어들던 용맹한 클레이의 모습을.
그리고 그를 향해 떨어지던 은색의 빛을!
‘반하르트 경이야말로 신의 대리자야!’
성녀의 유물을 사용하고, 신의 계시를 받는 자다.
그런 그라면 기적을 일으켜 사악한 괴물을 구제하는 것도 가능할 터다.
‘……근데 어디서 본 얼굴인데?’
비록 뿔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얼굴에 자란 비늘이 사라진 탓에 아름다운 용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셸은 그 얼굴을 어디서 보았던 것 같았다.
“사제님.”
고요한 목소리에 미셸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녀를 보았다.
“이분의 이름을 혹시 아시는지요.”
‘헉!’
은은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미셸은 소름이 쫙 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크, 클레이 반하르트 경입니다.”
“클레이…… 클레이 경이군요.”
반복해서 클레이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미셸은 뭐라 말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리야는 클레이를 오른손을 꼼꼼히 살폈다.
이미 상처는 그녀의 치료 마법으로 대충 치료한 상태였기에 특별한 상처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
그녀가 강하게 깨물었던 엄지에는 작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잠시간 응시하던 그녀는 클레이의 손등에 검지를 대고 움직였다.
치지지직!
이윽고 검은 용을 닮은 문양이 클레이의 손등에 그려졌다.
그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리야는 멀뚱히 서 있는 사제를 불렀다.
“사제님, 이제 모시고 가세요.”
“네, 네?”
“아까 넘겨 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확실히 그랬다.
미셸은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리야의 무릎 위에 정신을 잃은 클레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러다 문득 클레이의 몸에 큰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하르트 경을 치료하신 겁니까?”
“네. 치료 마법을 쓸 줄 알거든요.”
“……대단하시군요.”
멀리서 전투를 지켜본 미셸은 알고 있었다.
클레이의 상처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것을 신성력도 아닌 단순한 치료 마법을 사용해 이 정도까지 치료했다는 건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힘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입을 여는 것만으로 카인젤 왕국군을 쓸어버리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만약 마법까지 사용했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물론, 신성력으로 더 치유해야할 테지만요.”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면 바로…….”
“단, 하나만 주의해 주세요.”
“예?”
또 뭐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리야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제야 미셸은 아까 자신이 두려움을 느꼈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 여자, 입은 웃는 주제에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엄지의 흉터는 지우지 말아 주세요. 더불어 손등의 문신도.”
“문신은 몰라도…… 흉터는 지우는 게 낫지 않습니까?”
“남겨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잘했어요.”
뭘 잘했다는 걸까.
궁금했지만 미셸은 입으로만 웃는 이 수상한 여성에게서 어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치료 잘 부탁드리고요.”
그녀는 여전히 눈 위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미셸은 그런 그녀를 힐끗힐끗 보며 클레이를 안고 산을 내려갔다.
리야는 그런 둘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 후 특별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음.”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혈에 의해 용화의 저주가 사라지긴 했지만, 이성을 잃고 몸을 굴린 탓에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뿔은…….”
리야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러진 자신의 뿔 반쪽을 들었다.
머리 위를 만져 보니 한쪽 뿔은 멀쩡했지만, 다른 한쪽은 깔끔하게 부러져 있었다.
그 상처가 묘하게 사랑스러웠다.
“…….”
재차 클레이와 미셸이 사라진 방향을 돌아본 리야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돌아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제국이 있는 방향으로.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또 병상 위였다.
미셸이 제대로 나를 데리고 귀환한 모양이다.
‘……끝났다.’
그제야 일이 마무리되었음이 느껴졌다.
이제 일곱 번째 재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에 얻은 능력들을 생각하면 좀 고생하기는 했어도 썩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이제 독살을 당하거나 병으로 죽을 일은 없지 않은가?
[근데 너 잘못 걸린 것 같다.]‘뭐?’
잘못 걸린 것 같다니 대체 무슨 말이지?
[너 혹시 용에 대해서 알아?]‘내가 알 리가 있나.’
용은 유희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퍼질러 자는 족속이다.
평범한 인간은 평생 만날 일이 없는 게 정상이다.
[용은 말이야. 아주 탐욕스러워. 자신의 것이라 정한 건 절대로 남에게 주려고 하지 않지.]‘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네 손등을 봐.]손등?
나는 그란세시아의 말에 부들거리는 오른팔을 들어 손등을 보았다.
손등에는 아주 멋들어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제국 황가의 문장이다.
[너 찍혔어.]‘……말도 안 돼.’
나는 제국 황가의 문장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제야 그란세시아가 뭘 말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체 왜?’
황녀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막말로 나와 황녀는 대화다운 대화도 한 번 나눠 본적이 없었다.
‘……영특한 황녀라면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지금은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 능력을 높이 사서 신하로 들이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아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쪽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대충 앞뒤가 맞았다.
용화의 저주는 아스크탈린 황족을 괴롭히던 끔찍한 저주다. 그것을 치료했으니 황녀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인재로 보였을 거다.
‘자세한 건 후에 황녀를 만나게 되면 알게 되겠지.’
과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후에 그녀와 재회하게 되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녀는 나처럼 단순한 엑스트라로 끝날 존재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