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2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72화>
편법(1)
나는 마계의 대지를 걸어가며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추위라면 대지에 눈이 쌓여 있고, 나무에는 마른 가지만이 엿보여야 정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날씨를 제외하고는 나무와 땅은 푸르름을 자랑했다.
눈이 쌓여 있는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겉보기만 그럴 뿐,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제대로 먹을 건 자라지 않고, 금방 시들어 버리지.”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루티아는 근처 나무에 있는 열매를 따서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베어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놀랄 정도로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부 이런 겁니까?”
“모두 이런 건 아니야. 하지만 대부분 그래. 그나마 괜찮은 것들은 고위 마족들이 독점하니 하위 마족들은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어.”
중급 이상의 마족이라면 그럭저럭 살 수 있었지만, 하급이나 최하급 같은 말단에 속한 마족들은 매번 이런 열매와 같은 것만 먹어야 된다는 소리이지.
“그래도 지금은 좀 나아졌다나. 내가 나오기 전의 마계…… 즉, 전의 마왕님이 지배하던 마계는 그 차이가 더욱 컸지. 그나마 현 마왕님은 그런 걸 개선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아.”
자드는 전대 마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전형적인 마계의 왕이었다.
하지만 설정을 보았던 나는 안다.
녀석은 누구보다 마계를 아끼며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다.
‘문제는 그 답이 지상을 침략한다는 거였지만.’
마족의 입장에선 지상은 너무나 풍요롭다.
하지만 마계의 통로를 만들 수 있는 건 제한되고, 지상을 침략하게 되면 신들이 개입한다.
신들은 인간을 통해 신성력을 얻으니, 마족의 개입으로 인간들에게 피해가 가면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계는 지상으로 쉽사리 진출하지 못한 채 긴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왕은 그럼 저희와 같이 힘을 합쳐 알타이르를 쓰러트리고자 하는 건가요?”
루티아의 말을 가만히 듣던 메르사야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몰라. 아직까진 뭐든 추측일 뿐이니. 하지만 분명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
녀석은 내게 말했다.
내가 거래 상대로 적합한지 보겠다고.
세트람을 막아 낸 후, 마계에 와서 자신을 증명하라고 말이다.
“그러니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네?”
메르사야는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는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허리춤의 검을 꽉 틀어쥘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마왕이라면 얌전히 자신이 있는 장소까지 두진 않을 테니까.
“이쪽으로 가면 작은 마을이 나와,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야.”
루티아의 안내에 따라 숲을 가로지르자,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마을입니까?”
“일반적으로 마계에서 마을이라고 한다면 이렇다고 생각하면 돼.”
말이 마을이지 난민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어설프게 지은 오두막들과 반쯤 해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마족들.
“뭔가 제가 생각하던 마계와 많이 다르군요.”
“그야 지상으로 넘어가는 마족들은 이런 이들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전투적으로 육성된 엘리트들이니. 설령 같은 하급 마족이라도 큰 차이가 있지.”
루티아의 말처럼 대외적으로 알려진 마족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른 광경에 나도, 메르사야도, 그리고 서헨즈도 말을 이었다.
특히 서헨즈는 상당히 충격이 큰 것 같았다.
“루티아, 너도 설마 이런 곳에 살았던 거냐?”
“뭐, 저도 어렸을 때는 이런 곳에 살았었죠. 하지만 운 좋게도 고위 서큐버스의 눈에 띄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루티아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먼눈을 했다.
이후에는 거의 귀족급 대우를 받으며 풍요롭게 지냈던 모양이다.
“예지몽을 각성하고 멋대로 도망쳐 나오긴 했지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당시 루티아가 무슨 생각으로 지상으로 도망쳤는지는 나로선 알기 힘들었다.
“아무튼 사위, 그러니 조심해. 폴리모프를 사용해 뒀으니 진짜 정체는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틈을 보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메르사야의 폴리모프를 통해 마족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마기를 지니진 않았지만, 루티아가 말하길 강한 마족일수록 마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속아 넘길 수 있다던가.
뭣보다 루티아 중급 이상, 상급에 턱걸이하는 힘을 지닌 상당히 강한 마족이었다.
몽마이기에 전투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우리에게 적당히 받드는 연기를 한다면 고위 마족인 척 연기하기 쉬웠다.
“…….”
루티아의 말처럼 다른 마족들은 말없이 우리를 멀찍이 바라볼 뿐 다가오지 않았다.
도리어 우리와 시선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하기 일쑤였다.
“여기 방을 구했어.”
우리가 덩그러니 마족의 마을에 서서 기다리고 있자, 루티아가 어느새 작은 방을 구했다며 돌아왔다.
정말 루티아가 없었으면 이 마계의 땅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집주인은 어디 간 거죠?”
“글쎄? 식량을 잔뜩 줬으니 다른 마족의 집에서 함께 먹으려는 게 아닐까?”
역시 빈곤한 자들에게는 식량만 한 것이 없는 건가.
이런 부분은 인간과 크게 다른 것 없었다.
우리는 허름한 목재 건물에 들어와 적당히 짐을 풀었다.
마계에 온 지 이제 이틀째였지만, 한번 노숙을 한 것만으로 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잠을 잘 때도 마력을 이용해 계속 체온을 유지시켜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정말 성녀 그란세시아가 부활한 거냐?”
방에 들어오자마자 서헨즈는 그것부터 내게 물었다.
워낙 급하게 온 터라 세트람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적으로밖에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 그러니 서둘러야만 합니다.”
“놀랍네…….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성녀가 살아나다니.”
서헨즈는 감격스럽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전설이나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던 존재가 살아난 거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나도 실감이 잘 안 나고.’
너무 급박하게 움직였던 터라 제대로 대화도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계속 함께 있었던 탓인지 어색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그때 느꼈던 미묘한 감정에 대해 되새기던 나는, 문득 낯선 기척을 느꼈다.
“쉿.”
루티아와 서헨즈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빛을 보낸 후, 옆에 놓아 뒀던 검을 손에 들었다.
루티아 역시 그런 내 모습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자신의 단검을 양손에 쥐었다.
“많이도 왔네. 이거 고위 마족을 흉내 내면 이런 일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냐?”
서헨즈도 집을 둘러싼 마족들의 기척을 느꼈는지 혀를 내둘렀다.
강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숫자가 상당했다.
“이상하네……. 함부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일 리가 없는데.”
루티아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눈치였다.
마족의 생리에 대해 잘 아는 그녀이니 더더욱 이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아마 뒤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응? 누가?”
“아주 높으신 분일 확률이 높죠.”
오히려 나는 좀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계세요.”
콰쾅!
벽이 부서지며 칼날같이 길쭉한 손톱이 허공을 갈랐다.
머리를 젖혀 벽을 뚫고 들어온 손톱을 피한 후, 검을 휘둘러 그 손톱을 잘라 냈다.
그리곤 무릎을 사용해 덤벼든 마족의 머리를 올려쳤다.
“크엑!”
삐쩍 마른 마족은 허공을 붕 날아가며 널브러졌고, 그와 동시에 낡은 집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마족들이 덤벼오기 시작했다.
‘죽이는 건 간단하지만…….’
이전이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의 나는 마왕과의 거래를 위해 이곳에 온 거였다.
쓸데없이 마족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숫자는…… 열둘.’
눈을 감고 흐름을 느낀다. 마치 이 주변을 모두 내 세력권에 둔다는 마음으로.
그 반경을 조금씩 늘려 일대에 존재하는 마족의 기척을 모두 읽었다.
말 그대로 통찰(洞察).
쾅쾅쾅쾅쾅!
“크악!”
검집에서 검을 뽑지 않은 채 마치 둔기처럼 그것을 휘두른다.
거의 동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덤벼들던 마족들의 몸이 일제히 지상에 내리꽂혔다.
그란세시아가 천사들을 땅에 때려 박을 때 사용했던 주먹을 흉내 낸 공격이었다.
“와우……. 그냥 실력이 늘어난 정도가 아니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서헨즈의 작은 감탄을 흘리며 물었지만, 나는 먼저 마족들의 상태를 살폈다.
열둘에 이르는 마족이 땅에 처박혀 끙끙거렸지만 죽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시켰지?”
나는 놈들의 설정을 훑어본 후, 가장 직위가 높은 마족에게 물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다 코앞까지 다가온 내 모습에 자지러졌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도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명령? 어떤 명령이지?”
“그, 그게 마을로 들어오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공격하라고 했습니다.”
“명령이 내려온 건 언제냐.”
“오, 오늘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이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날카로운 어조로 마족에게 경고했다.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신 같은 마족을 건드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급하게 외치는 모습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인간인 건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라 지시한 모양이다.
“누가 너희에게 명령했나.”
“그, 그게 멜버른 님입니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불 줄은 몰랐기에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슬쩍 루티아를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마족들은 본래 이런 성향을 가진 것 같았다.
‘근데 멜버른이 누구지?’
딱 들어 보니 상당히 유명한 이름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물어보자니 이 마족들에게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멜버른 게르벨리아라면 잔혹한 성정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마족입니다. 이런 하급 마족들로선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일 겁니다.”
그런 내 생각을 알아차린 듯 루티아가 연기를 하며 설명했다.
게르벨리아라는 성을 쓰는 걸로 보아, 이 땅을 지배하는 영주인 모양이다.
“알겠다. 목숨은 살려 주지. 하지만 두 번은 없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나는 열둘의 마족을 내쫓은 후, 태평하게 상황을 관전하던 일행들에게 돌아왔다.
서헨즈는 아무래도 그들을 살려 보낸 내 판단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왜 굳이 살려 보내? 보아하니 언제든 뒤통수칠 수 있는 기질이 있는 놈들이던데.”
“마왕과 거래를 하러 가는 상황에서 그 백성을 함부로 죽일 필요는 없죠.”
반면 루티아는 하급 마족들을 죽이지 않은 내게 내심 감동한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그런 루티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더불어 쓸 만한 정보도 줬으니까요.”
“쓸 만한 정보?”
“명령이 내려온 게 오늘 아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마계에 온 건 바로 어제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아침에 그런 명령이 내려오다니.
“우연인가?”
“우연일 리가 있겠습니까? 마왕은 이미 우리가 마계에 온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것도 오자마자 알아차렸겠죠.”
“……뭐라고? 대체 어떻게?”
나는 경악하는 서헨즈에게 손에 쥐고 있는 제노바를 내밀었다.
“천하칠검은 다른 천하칠검에 반응합니다. 마왕 자드는 천하칠검 중 두 자루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모를 리 없을 테죠.”
뭐, 지금의 나는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다. 통찰안이 사라지며 검의 능력을 단 하나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더더욱 통찰안을 빠르게 되찾아야 할 이유가 늘어 버렸다.
“아무튼 계획을 일부 변경해야겠군요. 이대로라면 좀 귀찮아질 부분이 많으니까요.”
본래는 마족으로 위장한 채 다른 마족들과 섞여 결계를 지나갈 생각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아예 입구를 통제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어쩌게?”
조심스럽게 묻는 루티아에게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러자 어째서인지 내 옆에 서 있던 메르사야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왜 그래?”
“아, 아뇨. 그런 미소를 지으실 때는 대부분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셔서…….”
뭔가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분이다.
참 이상하네. 난 그냥 웃었을 뿐인데.
“이번엔 별거 아냐. 그냥 빙 돌아가는 것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을 뿐이지.”
쉽게 이동할 수 없다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자의 신분을 빌리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