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3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73화>
편법(2)
“검의 주인을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마왕 자드의 생각을 알기 힘들었던 바나세우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꽤 긴 시간 동안 마왕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여전히 알기 힘들었다.
“말하지 않았나. 거래 상대로 적합한지 본다고.”
“그 뜻은…….”
“우선 이 곳에 온전히 도달할 수 있는지 볼 것이다.”
마왕 자드가 있는 장소는 마계의 최심부, 판데모니엄.
그리고 그 판데모니엄의 중심에 있는 이 ‘메마른 자의 성’이다.
“녀석이 이곳에 오기 위해선 다른 마족들의 눈을 피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겠지요. 다만 그의 곁에는 드래곤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어린 용이 하나 있더군. 물론, 그 드래곤을 막기 위한 결계도 설치해 뒀지.”
대체 언제 그런 일을 한 건지 알기 힘들었지만, 마왕이라면 어려운 것도 아닐 것이다.
바나세우스는 마왕이 준비한 ‘시련’이 그것만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이동 경로는 한정되니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더불어 놈을 맞이하기 위해 백작위에 있는 마족 열둘과 후작 셋을 보내 뒀지.”
“백작…… 열둘과 후작을 셋이나? 너, 너무 과하신 것 아니십니까?!”
“검의 주인이라면 응당 그 정도는 돌파해야 하지 않겠나.”
바나세우스는 검의 주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인간에 불과한 자가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런데 무려 백작위의 마족 열둘에, 후작 위 마족 셋을 보내다니.
‘사실 거래하실 생각 같은 건 없으셨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백작위의 마족이 열둘이라면 당장 인간 세계의 나를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숫자였으니까.
거기다 후작위의 마족들은 말 그대로 격이 달랐다.
마계의 최고 전력에 속하는 강자들을 고작 인간 하나의 실력을 보겠다고 보낸 것이다.
‘끝났군.’
바나세우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검의 주인이 강하다고 한들 마계의 최고 전력을 뚫고 이곳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 일반적이라면 불가능할 테지.’
하지만 자드는 검의 주인이 지닌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신과 손을 잡는 쪽으로 생각했던 자신이 도박을 생각해 볼 정도로.
‘과연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텐가?’
자드는 검의 주인이 어떤 방식으로 마계의 최고 전력을 상대할지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마왕의 기대와 달리, 정작 검의 주인은 상황을 어찌 타파할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 * *
“흥, 검의 주인이라니.”
멜버른 게르벨리아는 마왕으로부터 내려온 명령에 짧게 혀를 찼다.
검의 주인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멜버른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신검의 선택을 받았다고 한들 고작 인간에 불과했으니까.
‘어차피 마왕님도 적당히 상대하기만 해도 좋다고 말했으니.’
멜버른도 백작위의 마족이긴 했지만, 그가 부여받은 역할을 그저 결계를 관리하며 검의 주인이 외부로 빠져나갈 때 보고하는 게 전부였다.
‘그냥 내가 잡아 버려?’
마왕의 말로는 현재 검의 주인은 게르벨리아의 영지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다른 놈들이 검의 주인을 쓰러트리기 전에 자신이 선수 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변경의 영지를 지배할 수는 없는 일이니.”
게르벨리아는 마계에서도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만, 멜버른은 이 영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판데모니엄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에 있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피력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 성과를 내고 게르벨리아의 영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 달라고 해 볼까?’
검의 주인은 천하칠검을 무려 다섯 자루나 들고 있으니 그를 잡아 넘긴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왕 자드는 마계에서도 유례없는 성군이었으니까.
‘좋아, 그게 좋겠어.’
다른 백작위의 마족과 달리 가벼운 명령만을 받은 멜버른은 이미 상당한 불만에 차 있었다.
마치 자신이 다른 백작들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필리오! 필리오 어디 있느냐!”
생각을 마친 멜버른은 곧바로 자신의 집사인 필리오를 불렀다.
바로 병사들을 이끌고 검의 주인을 잡기 위해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응?”
그런데 어째서인지 필리오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성실한 집사인 필리오는 멜버른의 지랄 맞은 성미를 알기에 언제나 멀지 않은 거리에서 대기하며 이름을 외치면 즉각 달려왔다.
“하! 이거 내가 요즘 너무 많이 풀어 준 모양이군.”
멜버른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간 일을 빠릿빠릿 처리하여 이뻐해 줬더니 바로 이 꼴이다.
오랜만에 필리오에게 간단한 처벌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의 문을 열자 넓은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빈민들이 가득 찬 영지민들과 달리, 멜버른의 저택은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 화려한 복도를 흡족하게 바라보던 멜버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간단히 말해서 너무 조용했다.
자신의 외침을 들은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건 고사하고, 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멜버른의 저택에 수많은 사용인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명백히 이상한 광경이었다.
“필리오! 데볼린!”
연신 가솔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멜버른은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이놈들이 지금 대체 뭐하고……!”
“뭐하긴 너를 위해 힘내서 싸우고 있었지.”
“……?”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흑발의 남성이 서 있었다.
그것도 인간, 멜버른이 알기로 현재 마계에 있을 만한 인간이라면 단 한 명뿐이었다.
“거, 검의 주인?! 네놈이 왜 이곳에 있는 거냐!”
“왜 왔겠어. 널 만나러 왔지.”
클레이는 손을 가볍게 풀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족을 상대할 때는 비교적 검보다는 주먹이 편했다. 특히 죽이지 않고 적당히 두들겨 패야 할 상황에선.
‘미친 건가?’
멜버른은 그런 클레이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동료도 없고 혼자 온 모양이었다.
백작위의 마족인 자신에게 혼자 오다니.
“크, 크크크! 어리석은 놈이로구나! 그래! 오히려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시간을 절약했구나!”
젊은 인간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실제로 녀석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도 대단치 않았다.
흔히 인간들이 부르는 소드 마스터 정도의 힘.
이 정도라면 멜버른은 손쉽게 놈을 쓰러트릴 수…….
퍼억!
“꽥?!”
미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멜버른의 몸이 붕 날아가며 벽을 부수고 처박혔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방금 클레이의 공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녀석이 가진 힘으론 결단코 불가능한 속도였다.
“헉!”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고 고개를 올리자,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클레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육신에 퍼진 붉은 각인에선 막대한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걱정 마라. 신성력을 담아서 때릴 생각은 없으니까.”
클레이는 그런 백작위의 마족을 응시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네가 죽으면 안 되거든.”
“……!”
서늘하게 웃는 그의 미소에 멜버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 * *
“아, 멜버른 님. 지금 어디 가십니까?”
“흠. 마왕님께 보고드릴 것이 있어 판데모니움에 다녀와야겠구나.”
게르벨리아의 결계를 지키던 마족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멜버른의 모습에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이 아는 멜버른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판데모니움…… 말씀이십니까?”
“게르벨리아의 영주인 내가 판데모니움에 가면 안 되기라도 하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끄게 마왕님의 명령이 내려온 지 하루 만에 영지를 비우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는 마족에게 멜버른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라면 너의 무엄한 행동에 벌을 줄 것이나,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기분이 좋다니?
마족은 의아한 눈으로 멜버른을 응시하다가, 그가 뒤쪽으로 손짓하자 그제야 멜버른에 뒤에 서 있던 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명은 인간인 것 같은데…….’
유심히 그들을 보고 있자, 멜버른이 혀를 차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마계에 침입한 건방진 놈들이지. 마왕님이 명령한 검의 주인의 동료들이다.”
“아, 이자들이! 멜버른 님께서 잡으신 겁니까?”
“그럼 누가 이 자들을 잡았겠나. 하지만 정작 검의 주인을 놓쳐 버린 게 아쉽군.”
“그,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료만 잡은 게 어디입니까!”
마족은 연신 감탄하며 멜버른의 뒤에 구속된 이들을 보았다.
검의 주인의 동료들을 사로잡았다면, 멜버른이 판데모니움으로 가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그가 아는 멜버른은 공을 세우고 가만히 있을 마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 하나와 마족? 배신자가 끼어 있었나? 그리고…….’
결계를 지키는 마족은 멜버른이 사로잡은 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기, 하나는 드래곤인 것 같습니다만…….”
“드래곤이 왜.”
“아, 아닙니다. 멜버른 님 정도면 드래곤도 사로잡으실 수 있으시죠!”
멜버른의 성격이 더러운 걸 잘 아는 마족은 황급히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백작위의 마족 정도면 드래곤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멜버른은 백작위에 있는 마족 중에선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
드래곤을 저렇게 사로잡을 수준의 실력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사이 실력이라도 늘어나신 건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마족은 넘어가기로 했다.
보란 듯이 사로잡혀 있는데 의문을 가지는 것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막아서 죄송합니다! 그럼 바로 결계를 열겠습니다!”
“그래, 나 역시 영지를 오래 비울 생각은 없으니 수고하도록.”
“옙!”
결계를 지키는 마족들은 멜버른과 그의 병사들이 마계에 침입한 이방인들을 끌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중에선 누구도 멜버른의 행동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크허헝!
마물이 끄는 거대한 운송 마차가 멜버른과 그가 사로잡은 검의 주인의 동료들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멜버른은 혹시나 놈들이 도망치면 안 된다는 명목으로 병사 하나와 함께 운송 마차에 함께 탔다.
“오늘따라 멜버른님이 부지런하신데?”
“하지만 저자들을 구속하려면 역시 멜버른 님 정도가 아니면 힘들겠지. 저 드래곤이 날뛴다고 생각해 보게.”
“하긴 그렇군.”
마차를 호위하는 다른 마족들은 그런 멜버른의 모습에 약간 의문을 품었지만,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차가 흔들리며 판데모니움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아주 좋아. 잘했어.”
“예, 옙.”
마차가 게르벨리아의 영지를 벗어나자, 함께 마차에 탄 마족 병사가 씩 웃으며 멜버른의 어깨를 두드렸다.
평소의 멜버른이라면 건방진 놈이라고 소리치며 마족병사의 손을 비틀었을 테지만, 그는 순종적인 강아지처럼 헤프게 웃을 뿐이었다.
“……설마 이런 편법을 쓸 줄이야.”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서헨즈가 혀를 찼다.
“덕분에 편하게 갈 수 있을 텐데요, 뭘.”
마족 병사, 아니 폴리모프를 사용해 병사의 모습으로 위장했던 나는 씩 웃으며 재차 멜버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혹시 허튼짓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무, 물론입니다.”
멜버른은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부르르 떨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뎄다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저, 정말 말을 따르면 몸속에서 꺼내 주시는 거죠?”
“그럼. 검의 주인은 그런 걸로 거짓말 안 한다.”
현재 멜버른의 몸속에는 상당량의 신혈이 구슬의 형태로 들어가 있었다.
몸에 신혈이 들어갔음에도 녀석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신혈을 내 마력으로 껍질처럼 덮어 씌웠기 때문이다.
둥근 구슬의 형태로 이루어진 마력 덩어리 안에 신혈을 가득 채워 넣고 멜버른의 입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물론 허튼짓을 하면…… 알지?”
“아, 알고말고요.”
신혈을 둘러싼 마력장을 해제해 버리면 놈의 몸에 들어간 신혈이 녀석의 몸에 퍼질 거다.
그럼 어떻게 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정말 이젠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다.”
루티아는 그런 나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