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7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77화>
마왕의 거래(3)
‘마왕을 쓰러트리고, 신마저 꺾은 인간.’
그것이 원작의 파비안이다.
나는 완결까지의 시놉시스는 보지 못했지만, 세트람에서 보았던 시놉시스에 암시된 말만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파비안이 마지막, 열 번째 재해라는 것을.
‘재해가 꼭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존재를 뜻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재해와 맞닥뜨리며, 재해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이거였다.
세상을 멸망시킬 ‘가능성’을 지녔다고 사람들이 ‘인식’한 존재, 그것이 재해라고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주신이라 불리던 알타이르를 죽인 파비안이 두려울 수밖에 없겠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를 멸한 자.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파비안 또한 세계를 멸망시킬 힘을 지녔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평범한 인간들은 그에게서 희망보단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심하네.’
극흑의 탑에 들어선 순간 눈앞에 나타난 하나의 시놉시스.
그것에는 나의 예상을 넘어서는 끔찍한 진실이 담겨져 있었다.
“파비안…… 그래, 그런 이름이었나.”
자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그런 녀석의 말에 도리어 나는 의아해졌다.
“너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본 건 미래의 형상이지, 이름까지는 알지 못한다.”
자드는 미래를 예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원작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도 그가 본 어떤 미래 때문일 것이다.
“네가 나와 거래를 청한 건 파비안 때문인가?”
“정답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하나의 미래를 보았지.”
그때 자드는 지상을 침공할 계획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하나 지상을 침공하는 건 마족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세계의 법칙이 마족들을 얽매고 있었으니까.
주신 알타이르는 그런 자드의 고뇌를 알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지상을 침공할 수 있게 도움을 줄 테니 몇 가지 부탁을 들어 달라고.
“처음 놈이 부탁했던 건 천하칠검의 주인이 곧 나타날 테니, 녀석을 죽여 달라는 거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천하칠검을 모두 모은 자는 ‘신들의 세계’로 향할 수 있다고 전해져 내려왔다. 알타이르는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그가 두려웠을 것이다.
자드는 지상을 침공하기 위해 알타이르의 도움을 받을지 깊이 고민해야만 했다.
만약 지상을 침공해 승리하더라도, 알타이르의 주박을 과연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보았지.”
멀지 않은 미래.
홀로 세상을 멸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가 ‘또 다른’ 천하칠검을 쥔 채 다른 세계에서 건너오는 모습을.
“그자의 목적은 단 하나다. 이 세계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것.”
천계도, 마계도, 그리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지상도.
모조리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지워 버리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또 다른 천하칠검을 가지고 다른 세계에서 건너왔다고? 그게 도대체 무슨…….”
거기까지 말하던 나는 말을 멈췄다. 녀석의 허리춤에 매여 있는 두 자루의 검이 보였으니까.
‘시간검 벨루스…….’
시간조차 멈출 수 있는 검.
그것을 본 순간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걸 느꼈다.
자드는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때였다. 알타이르의 제안이 달라진 것이 말이야.”
“제안이 달라졌다고?”
“그래, 이후에는 천하칠검을 찾으라 말하더군. 전부 찾을 필요는 없고, 그것들이 하나로 모이지만 않도록…… 말이야.”
그러나 이를 받아들일 이유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젠 지상을 침공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모든 것을 멸하려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지상의 자원을 탐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니 말하더군. 자신의 편이 된다면 마계만큼은 남겨 주겠다고 말이야.”
그 순간 자드는 깨달았다.
알타이르 또한 ‘그’를 알고 있다고, 그 둘이 손을 잡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거부할 수는 없었다.
자드는 우선 알타이르의 말을 따르는 척하며 천하칠검을 찾았다.
“봉인검과 시간검, 이 두 검의 능력이라면 그가 이 세계에 넘어오는 걸 방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시간검 벨루스.
봉인검 씰핀.
자드는 이 두 자루만큼은 반드시 손에 넣고자 했다.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두 가지 능력이라면 파비안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 무의미했지. 그자의 힘은 겨우 그 정도로 막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고뇌하던 찰나, 네가 나타난 거다.”
새로운 검의 주인.
파비안과 마찬가지로 천하칠검에게 선택된 자.
“……하지만 지금의 너는 무리다.”
나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그 이야기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천하칠검의 힘을 잃었으니까.
신혈과 성천무구를 비롯하여 파비안에겐 없는 수많은 능력을 손에 넣었지만, 천하칠검 없이는 그 힘을 백분 활용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설령 되찾는다고 해도 그를 이길 수 없겠지만.”
자드의 자조 섞인 웃음에 미간이 좁혀졌다.
확실히 마지막 시놉시스의 내용대로라면, 파비안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천하칠검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들,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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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개요 : 자신의 모든 걸 앗아 간 세상을 원망하며, 파비안은 지상을 멸했다.
나아가 천계의 존재들을 멸했으며, 마지막으로 마계마저 멸망시켰다.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을 지워버렸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파비안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이런 가혹한 운명을 부여한 자는 누구인가.
신? 아니다. 놈은 ‘진짜’ 신이 아니다.
알타이르는 자신에게 그런 운명을 부여할 수 없었다.
그 또한 자신에게 죽은 일개 말에 불과했을 뿐이니까.
그때, 파비안은 떠올렸다.
천하칠검을 모두 모은다면, 신들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파비안은 마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검을 치켜들었다.
자신을 진짜 ‘신’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달라고 말이다.
그 바람에 천하칠검은 답했다.
직후, 멸망한 세계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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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흑의 탑에 도달한 순간 나타난 마지막 시놉시스.
파비안은 모든 걸 멸망시키고, 최종적으로 마계에 도달했다.
그리고 극흑의 탑 위에서 천하칠검을 사용했다.
신의 세계에 가기 위해서.
‘그것이…… 마왕 자드가 본 파비안일 테지.’
세상을 멸하고 신의 세계로 건너갔던 파비안.
놈이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 이 세계에 귀환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구나.’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어째서 아버지가 낙마했는지.
왜 그런 아버지의 몸에 ‘작가’가 들어왔는지.
미래를 아는 아버지가 했던 일이 왜 전부 실패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 세계의 파비안이 죽어야만 했는지.
‘파비안, 너였어.’
도대체 파비안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진실을 알려면…….
‘놈과 만나 보는 수밖에.’
하지만 지금 녀석을 만나게 되면 나는 죽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선 파비안을 막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클레이 반하르트.”
고민에 빠져 있는 내게 자드는 말했다.
“지금의 너는 거래 상대로 적합하지 않다는 걸 너 자신도 알 테지.”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드는 천천히 허리춤의 시간검 벨루스를 뽑아 치켜들었다.
“만약 너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고요하게 흘러나오는 마기.
그 안에 감춰진 끔찍할 만큼 강력한 힘의 편린에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나를 죽여라.”
“……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하자, 자드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이 두 자루의 검은 현재 나에게 귀속되어 있지. 너처럼 검의 선택을 받은 건 아니지만 힘을 빌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해제하기 위해선 오직 자신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녀석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거냐.”
“…….”
녀석은 답하지 않았다.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만약 네가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내가 너를 죽일 수밖에 없겠지. 네가 가진 나머지 다섯 자루의 검을 얻어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이다.”
나는 자드의 의도를 읽기 힘들었다.
어째서 그가 이토록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 확실한 건, 녀석의 살의는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좋다, 이거야.’
녀석과의 싸움은 예상했다.
어차피 앞으로 파비안과 싸우기 위해선, 현재 내 앞에 남아 있는 벽을 넘어서야 했으니까.
마왕 자드, 그리고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벽을.
* * *
신들의 세계란, 생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곳엔 드래곤도, 몬스터도, 이종족도 없으며 오직 같은 모습을 한 존재들만이 살았다.
인간.
오직 그들만이 그 세계에 존재했다.
신은 없었다.
그에 자신이 찾은 세계는 그저 또 하나의 세계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하나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때가, 됐군.”
한 번 걸어온 길을 되짚어 걷는다.
어둠 속에 보이는 빛을 따라 끝없이 걷는다.
자신이 지워 버린 세계.
시간을 되돌려 만들어 낸 자신의 과거.
아니, 어쩌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세계.
‘어째서 멸망하지 않았는가.’
이 세계의 ‘나’는 죽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세계를 구해야 할 존재가 사라졌음에도 왜 이 세계는 남아 있는가.
그 이유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파비안은 자신에게 끔찍한 운명을 부여한 ‘신’이 끝없이 고통을 받다 죽기를 바랐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무력하게 죽게 만들었다.
주인공이 사라진 세계 속에서 끝없이 절망하며, 누구도 믿지 못한 채 죽도록.
‘누가.’
대체 누가, 멸망했을 세상을 이어 간 것일까.
세계를 멸망시킬 재해를 대체 누가 막았단 말인가.
‘나’는 죽었다.
그럼 천하칠검을 다룰 수 있는 존재도 없으며, 재해를 막을 자도 없었어야 했다.
그런데 왜?
“……클레이 반하르트.”
그 이유를 알고자 알타이르에게 접촉했고, 의외의 인물을 알 수 있었다.
클레이 반하르트.
본디 자신이 모시던 반하르트가의 도련님.
카인젤 왕국의 전쟁에서 무력하게 죽었던 그가 살아남아 검의 주인이 되었다.
‘확실히 그는 영특한 자였지.’
모네도 그를 믿고 따랐으며, 그가 죽었을 때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울었다.
물론 자신도 클레이를 좋아했다.
그는 차별 없이 자신을 대했으며, 검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자 어떻게든 선생을 구해 자신에게 붙여 줬을 정도니까.
만약 클레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금방 죽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역겨운 사실을 몰라도 됐을 텐데 말이야.
그는 실소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빛 속에 몸을 던졌다.
저벅.
방금 전과 달리 흙바닥을 밟는 느낌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이전에 자신이 멸망시켰던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또 멸망해 버렸나.”
신성왕국 세트람의 수도, 일리샤드.
이유는 달랐지만 이번에도 이곳은 쑥대밭이 되어 멸망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수많은 시체가 쌓인 이 끔찍한 장소에 거대한 문이 치솟아 있다는 점이었다.
“그 알타이르가 도와 달라고 징징거리기에 무슨 일인가 했는데…….”
본래라면 없었을 천계의 문.
그 문 앞에는 그에겐 익숙한 자가 서 있었다.
‘알타이르의 몸.’
강신의 주체가 되었던 신체(神體).
그것이 살아나 문을 눌러서 막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저런 게 가능한 건가?
오직 순수한 무력으로 천계의 힘을 막아서다니.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누구야?”
가까이 접근하니 문을 막고 있던 여성이 자신을 경계하며 물었다.
확실히 강한 존재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투기는 자신을 웃돌 정도였다.
무려 자신을 말이다.
그녀의 질문에 그는 친절히 답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파비안.”
그녀는 강했지만 쓰러트리고자 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주인공이 가지는 불합리함.
그는 여전히 그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