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78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78화>
마지막 재해(1)
알칸드라의 평지를 수호하는 흑의 요새.
그 위에는 요새를 지키는 제국의 철벽, 베르딜 공작이 서 있었다.
그의 아래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평소 흑의 요새를 지키던 병사나 기사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각국에서 보내진 유명한 기사, 병사들도 있었다.
이 흑의 요새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결성된 연합군인 것이다.
‘이종족들도…….’
베르딜 공작은 마치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분명 그럴 터였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이종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싸운 전투는 없었다.
심지어 이 전투의 적은 신과 드래곤.
신화 속의 괴물들과 싸워 이 세계의 명운을 건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베르딜 공작.”
이 병사를 지휘하는 건 자신과 바로 제국의 황녀인 리야 아스크탈린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늘 그렇듯 고요하고 평온했다.
마치 이제부터 벌어질 일을 모르는 것처럼.
‘그럴 리가 있나.’
그가 아는 황녀는 누구보다 영특한 자다.
모든 연합군들을 단번에 불러 모은 것으로 모자라, 이종족들도 한 번에 규합했다.
작은 분란 없이 빠르게 연합군을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황녀의 수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검주와…… 티몬스 상단의 재녀가 도움을 줬다고는 하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베르딜 공작은 제국의 황녀인 리야의 공이 가장 크게만 보였다.
“베르딜 공작?”
“예, 예!”
“정신 차리세요. 이제 곧…… 올 테니까요.”
곧 온다는 리야의 말에 베르딜 공작은 화들짝 놀라며 알칸드라 평원너머 높은 산맥을 응시했다.
기나긴 필라시온 산맥을 넘고 있는 존재들이 곧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나타나는 드래곤의 무리를.
“오, 신이시여.”
누가 먼저 그런 말을 꺼냈는지는 모른다.
연합군의 병사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이게 소용이 있을까……?”
수많은 종족들이 모인 연합군.
각국의 정예 병사와 기사.
인간의 틀을 벗어난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
그런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지만,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마, 맙소사. 이건 미쳤어!”
드래곤의 숫자는 일백이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워낙 거대한 덩치를 가진 탓에 파란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뿐인가?
드래곤의 주위에는 상위 몬스터인 와이번들이 드글드글하게 따라붙어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이겨?”
처음으로 대륙이 하나로 뭉쳤다는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각국의 정예를 보며 느꼈던 든든함도 일순간에 사라졌다.
단 한 번도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흑의 장벽?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리석구나.」
마치 하늘이 울리는 것 같았다.
세찬 바람이 불며 하늘 위의 구름이 밀려났다.
그것은 단지 여섯 장의 날개가 펄럭이며 만들어 낸 자연 현상이었다.
‘태고룡인가.’
리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수많은 용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타나는 존재를 응시했다.
“화, 황녀 전하, 저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베르딜 공작은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리야는 그런 베르딜이 제법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입을 열 수 있다니, 과연 긴 시간 동안 흑의 요새를 지켜 온 맹장다웠다.
“태고룡 라르기오스, 간단히 말하자면 용들의 왕과도 같은 존재랍니다.”
“용, 용들에게 왕이 있었습니까?”
“그렇다고 하네요.”
리야는 성벽의 위에 서서 잠자코 라르기오스를 바라보았다.
그 몸은 하나의 거대한 산과 같았으며, 날개를 한번 움직일 때마다 돌풍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재해.
용의 재해라고 한다면 딱 들어맞는 형상이었다.
「아니, 차라리 잘됐구나. 이참에 말해 두는 것도 좋을 테지.」
라르기오스는 자신이 이끄는 용들과 함께 하늘 위에서 지상의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드래곤의 입장에선 날지 못하는 인간들이란 개미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일곱 번째 재해, 용의 재해다.」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에 요새의 병사들의 술렁였다.
‘재해’라는 명칭은 이제 너무나 유명했으니까.
「이대로 짓밟는 건 간단하지만, 특별히 그대들에게 기회를 주지. 만약 저항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웅혼한 용언에 담긴 목소리에 병사들의 마음은 점차 꺾여 가기 시작했다.
「그대들을 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들의 세계에 발을 디딜 권한을 주겠다.」
「라르기오스 님, 너무 관대하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한낱 인간들이 신들의 세계에…….」
라르기오스의 말에 다른 드래곤들이 황급히 반박했지만, 라르기오스는 고개를 저었다.
「알타이르의 뜻이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하찮게 보아선 안 된다. 살생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놀고 있네요.”
그런 라르기오스의 말을 누군가 끊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은 모두의 귀에 파고들었다.
그 작은 중얼거림에 ‘용언’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누가 라르기오스 님에게 그런 망발을……!」
“어머, 저랍니다.”
리야는 성벽의 위에서 양팔을 펼치며 자신을 보라는 듯이 크게 휘저었다.
“헉!”
그 모습에 곁에 있던 베르딜 공작은 화들짝 놀라며 호다닥 도망쳤다. 수많은 드래곤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란 건 베르딜 공작만이 아니었다. 요새에 모여 있던 연합군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성벽 위에 서 있는 제국의 황녀를 응시했다.
“정말 웃겨서……. 누가 누구에게 저항을 포기하고 따르라는 건지.”
「이 계집이! 우리의 피를 조금 이었을 뿐인 돌연변이 따위가 잘도 지껄이는구나!」
라르기오스의 곁에 있던 젊은 드래곤이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요새로 날아들어 쑥대밭으로 만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라르기오스는 그런 드래곤의 행동을 막았다.
오히려 철없는 아이를 보는 듯한 눈으로 리야를 타일렀다.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 이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게로구나. 네가 가진 권력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가 가진 용언도, 마법도 우리에겐 미풍과도 같을 뿐이다.」
라르기오스는 제국의 황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용의 피를 타고난 태생부터 강한 인종.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지, 드래곤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라르기오스의 말에 리야는 빙그레 웃었다.
“후후,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떠드는 분이 하실 말은 아니네요.”
「……뭐라?」
남의 것이라니.
라르기오스는 순간 저 작은 인간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인간의 것을 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리야는 무엇이 그리 웃긴지 작게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일곱 번째 재해, 용의 재해라……. 그래요, 용의 재해. 정말…… 누가 진짜 용의 재해인지도 모르면서.”
용언으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라르기오스는 정확히 그것을 읽었고, 다른 드래곤들은 묘한 분위기에 시끄럽게 떠들던 입을 다물었다.
단순히 리야의 말에 의문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떠돌던 마력이 일제히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감히.”
리야는 허리춤에서 매달려 있던 장식을 잡았다.
클레이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
부러진 흑색의 뿔을.
“누가, 용의 재해라고요?”
그것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려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뿔이 부러져 남은 흔적이 있는 곳으로.
드득, 드드득!
손에 쥔 용의 뿔이 떨리고 있다는 걸 리야는 느꼈다.
이전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이건 자살행위였으니까.
‘클레이가 쓴 소설에 나오는 나라면…….’
클레이의 소설에서는 하나의 불행한 소녀가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나라에 버림받고, 어떻게든 사람을 피해 혼자 목숨을 끊으려던 소녀.
하지만 그녀는 너무 강했다.
무엇을 해도 죽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재해가 되었다.
검의 주인이 그녀를 죽일 때까지 수많은 이들을 죽인 학살자가 되었다.
수많은 왕국을, 자신이 사랑하는 제국을.
모조리 멸망시키고 이성을 잃은 용이 되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리야는 그 불쌍한 여자가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만약 클레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소설의 소녀와 같은 꼴이 되었을 테지.
그래서 클레이는 이 뿔을 부러트린 것이다.
다시는 재해와 같은 것이 되지 않도록.
리야도 되도록 그 말을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의 오만한 드래곤들을 바라본다.
우습게도 용의 재해를 사칭한 거대한 용을 본다.
‘지금의 나라면…….’
리야는 태어났을 때부터 모든 게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행복을 몰랐다.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았다.
어떤 걸 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건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상한 존재라는 것도 알았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 주었음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저 공허했다.
‘그래서 독이 든 잔도 마셨었지.’
그래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보낸 독이 든 잔도 망설이지 않고 마셨다.
이후의 일은…… 예상외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클레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공허하지 않아.’
자신은 분명 용의 재해가 되었을 때 이성을 잃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니, 달라졌다.
드드드득!
용의 뿔이 부러진 부분에서 불꽃이 튀었다.
부러졌던 천천히 붙기 시작하며, 리야의 눈이 점차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 광경에 라르기오스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용의 재해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기존의 재해가 사라지면 그에 가장 걸맞은 존재가 새로운 재해가 될 수 있다고, 알타이르 또한 ‘원작’에서 그렇게 신재(神災)가 되었다고 말했으니까.
그렇다면…….
눈앞의 ‘저건’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뿔을 붙잡고 있던 리야의 손이 떨어졌다.
부러졌던 그녀의 뿔은 이제 완전히 붙어 있었다.
인간의 눈동자였던 그녀의 눈은 도마뱀의 그것처럼 길게 찢어져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방금 전까지의 존대도 사라지며, 그녀의 입에는 오만한 미소가 걸렸다.
노출된 피부에서 검은 비늘이 솟아나며 마치 갑옷처럼 그녀의 몸에 둘러졌다.
“너희들의 재해다.”
‘용의’ 재해, 리야 아스크탈린.
그녀는 인간을 향한 재해가 아닌, 오직 용을 멸하기 위한 존재로서 다시금 인간을 내려놓았다.
「듣고 있자니 감히 못하는 말이 없구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드래곤들이 저마다 마력을 움직이며 마법과 용언을 사용하고자 했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묘한 불안감을 잊고 저 건방진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라르기오스도 이번만큼은 말리지 않았다.
「어?」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력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나 숨 쉬듯이 마력을 사용하던 드래곤에게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법칙을 움직이는 용언에도 마력은 답하지 않았다.
마력이 마치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있었다.
드래곤들은 저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작은 인간 여자를 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 때문인지 바람에 흔들리듯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이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자, 잠깐.」
드래곤들이 난생처음 ‘공포’라는 감정을 인지하는 순간.
「오만한 용들이여.」
리야의 손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돌처럼 굳어 있던 마력과 세계의 법칙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락하라.」
일백의 용이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마치 유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