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82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82화>
182. 신들의 세계(2)
그란세시아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뭐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파비안이 나타났다.
그것까진 그래, 이해할 수 있었다.
클레이의 곁에 있었던 그란세시아이니 혹시나 모를, 이 상황을 염두에 둔 적도 있었으니까.
‘시간검 벨루스.’
거기다 그란세시아는 자신이 천하칠검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시간이 지난다면 뭔가 대처법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니 파비안이 나타난 시점에서 이건 좀 큰일인데? 라고 생각했다. 문을 닫고 버티며 파비안을 상대하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였으니까.
‘거기다, 경지도 상당해.’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끝자락을 밟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무(武)의 영역에선 자신이 우위를 점한다는 거다.
물론, 천하칠검을 녀석이 가진 시점에서 그런 사소한 차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 * *
“이건 놀라운데?”
파비안은 자신의 앞에 늘어선 존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문을 막고 있는 그란세시아를 향해 칼을 뽑던 순간, 공간을 가르며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레스티아.’
일반적인 화살이라면 파비안은 굳이 쳐 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궁의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째서 이들이 여기 있는 거지?’
본래의 이야기대로라면, 아니 알타이르의 말대로였으면 현재 칠영웅들은 제국에 모여 있어야만 했다.
‘드래곤들의 습격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건가?’
태고룡 라르기오스가 이끄는 용의 군세.
라르기오스와는 싸운 적 없었지만, 얼마나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았다.
그리고 반 실베스트가 아니라면 태고룡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반 실베스트.”
자신의 동료였던 이안의 아버지이자 자신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었던 인물 중 하나.
청색이 감도는 은발의 사내는 두 자루의 검을 양손에 쥔 채 웃었다.
“귀여운 황녀님의 부탁인지라.”
“황녀? 제국에 황녀가 있을 리가…….”
그 순간 파비안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리야 아스크탈린.’
용의 재해이자 자신이 겨우겨우 쓰러트렸던 적수.
당시 파비안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정말 죽을 뻔한 상대였다.
만약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리고 제국의 생존자들을 통해 그 순간 리야가 인간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당시의 자신으로선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 달라졌군.’
하긴 당연한가.
이곳에 온 시점부터 파비안은 이 세계가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망했어야 할 세계가 멸망하지 않았다.
본래라면 알타이르의 제물이 되었을 신체(神體)가 살아 있었다.
‘거기다…….’
마치 자신이 오기를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칠영웅들이 모여 있다니.
“그란세시아 님.”
“으, 으응?”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반 실베스트의 말에, 그란세시아는 어물쩍 대답했다.
칠영웅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서 파비안과 맞서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지켜진다는 상황도 낯설고, 그다지 친근하지 않은 이들이 줄지어 있으니 그란세시아는 무척 이 상황이 어색했다.
“그란세시아 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
“저희, 도망쳐야 할 것 같습니다.”
반 실베스트의 말에 파비안이 피식 웃었다.
“도망? 그런 걸 내가 허락할 것 같나?”
“허락이라…….”
반면 반 실베스트는 모호하게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단숨에 공격하려는 듯 심호흡을 한 뒤, 파비안의 뒤쪽으로 눈짓했다.
쉬이익!
파비안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날아들며 그의 목을 노렸다.
“뒤에 누가 접근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검의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파비안은 자신의 뒤에서 덤벼든 이의 검을 가볍게 튕겨 내었다.
나름 소드 마스터에 이른 강자인 것 같았지만, 그의 경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아앙!
“윽!”
가볍게 휘두른 파비안의 검에 밀려난 습격자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어?’
그 소리를 들은 파비안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키세아.”
자신을 습격한 자, 생각해 보면 방금 날아든 검기는 파비안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매번 자신에게 덤벼들던 여성의 검기와 닮아 있었으니까.
‘아니, 닮은 게 아니야. 같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파비안의 앞에 있는 여성은 바로 ‘키세아’였으니까.
“언제 만났다고 이름을 불러?”
반면 키세아는 저릿한 손목을 움켜쥐며 파비안을 노려보았다. 눈빛엔 자신의 기습을 간단히 막아 낸 파비안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검에 대한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한 그녀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파비안에게도 무척 익숙했다.
첫 만남부터 그녀가 자신을 쫓아온 건, 바로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으니까.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키세아의 눈동자에 파비안은 순간 아무런 말도 못했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당황’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지금이다!”
‘아차.’
반 실베스트의 외침이 들림과 동시에, 일대 전체를 밝히는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이런.’
키세아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탓에, 빛이 그대로 파비안의 망막을 때렸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실명했을지도 모를 광량이었지만, 파비안은 두어 번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시력을 되찾았다.
‘설마 그 반이 도주를 택할 줄이야.’
현 칠영웅 중 최강이라 불리는 반 실베스트는 그만큼 자존심이 강했고, 불퇴(不退)의 기사였다.
‘시간검을 사용한다고 해도…… 늦었나.’
빛이 폭발한 상태이기에 시간을 멈춰도, 폭발한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다 시간을 멈춘다면 흐름을 읽을 수 없다.’
시간을 멈추게 되면 당연히 정지된 존재들의 몸에선 흐름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오직 육안으로 상대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 빛을 폭발시킨 것이다.
“…….”
파비안은 잠시 사라진 그들을 쫓을까, 생각했지만 이내 제노바를 검집에 넣었다.
방금 보았던 키세아의 모습, ‘살아 있는’ 연인의 모습에 싸울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설마 이런 상황을 알고 유도한 건가?’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자신과 키세아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다시 만나 보면 알 테지.’
쿠쿠쿠쿠쿵!
빛이 사그라짐과 동시에 천계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문의 앞을 막고 있던 그란세시아의 모습은 없었다.
자신을 막고 있던 칠영웅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도망쳐 버린 그들에게 파비안은 특별히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곧 만나게 될 테니까.
* * *
우리는 판데모니엄 인근에서 대기하던 메르사야의 등에 탑승하여 서둘러 영지로 귀환했다.
다만 서헨즈의 경우, 한동안 마계의 상황을 확인하며 연락책이 되기 위해 남았다.
“도련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달려 나온 건 모네였다. 그녀는 상당히 피곤한 안색이었지만,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무사하셨네요! 정말 걱정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영지를 습격한 몬스터들이 일부 있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던 걸로 알아요.”
메르사야로 날아오며 나는 계속 주변의 풍경을 살폈다.
대규모로 이동하는 몬스터들의 행동은 확연히 이질적이었다.
‘뭣보다…….’
하늘이 너무 밝았다.
파란색이 아닌 백색의 길이 거미줄처럼 퍼져 세상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것이 시작된 장소가 어딘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 세트람에 있는 천계의 문일 테지.
“마리아와 리야는?”
“리야는 제국에 있고, 마리아는 저택에서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침착하게 대답하는 모네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나는, 문득 모네가 리야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젠 존칭을 뗄 정도로 친해진 거야?’
아무리 그래도 황족이 그런 걸 허락할 리가…… 있겠군.
생각해 보니 리야는 처음부터 내게 반말을 해 달라고 했었지.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리아에게 이동하려고 하자, 등 뒤에 모네와 루티아가 따라붙었다.
“루티아.”
“응?”
“정말 확실한 거죠?”
“그럼 사위. 충분히 해낼 수 있어.”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티아가 보았던 미래에 대해선 이곳까지 오며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걸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훌륭한 견본이 있었으니까.
“클레이, 기다렸습니다.”
내 책상에 앉아 있던 마리아는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이미 들으셨겠지요?”
“그래.”
“준비라면 이미 다 해 두었습니다.”
“그동안 영지에서 나 몰래 벌이던 일들이 이것 때문이었군.”
피식 웃으며 묻자, 마리아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란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너무나 간단히 달라질 때가 있죠. 그러니 만약을 대비했을 뿐입니다.”
안다. 만약 내가 모든 걸 알고 있었다면 마왕과 싸울 때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섭섭한 건 섭섭한 거였다.
나도 좀 알려 주지.
“만약 ‘신들의 세계’로 간다면 함께 갈 자는…….”
“우리 중에서는 누구일 거 같아?”
“셋 중에?”
“응.”
루티아의 말에 세 명을 훑었다.
마리아, 모네, 루티아.
이중에서 내가 데리고 갈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이었다.
“모네, 맞겠지?”
“정답이야, 사위.”
이건 루티아가 많은 힌트를 주기도 했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모네가 적절했다.
“저, 정말 제가 가는 건가요.”
“무슨 소리야. 그래서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잖아.”
모네는 조금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전투력은 전무한 모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신들의 세계라.’
루티아는 미래의 내가 신들의 세계로 향했다고 말했다. 물론 예지몽인지라 내가 그곳에 간 이유나, 무엇을 목적으로 움직이는지는 모른다.
다만 거기에서 내가 곤란해했던 것이나, 예지몽에 나왔던 인물들을 바탕으로 대비했다고 한다.
그란세시아 관련해서도 예지몽을 통해 보았기에 미리 칠영웅과 키세아를 일리샤드에 보내 뒀다던가.
‘내가 왜 신들의 세계에 갔을까?’
그걸 알지 못하는 한, 함부로 신의 세계에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루티아에게 물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파비안이야.’
그다음은 주신 알타이르와 태고룡 라르기오스.
이 세 초월자를 상대할 방법이 미래에 있다는 건가?
“그리고 클레이.”
“응.”
“드래곤들이 몬스터를 이끌고 제국의 국경을 습격했었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어떻게 막은 거야? 난 칠영웅들과 연계해서 막으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칠영웅들은 그란세시아를 구하기 위해 전부 일리샤드에 있었다.
아무리 리야가 대단한 마법사라고 해도, 그리고 기드온이 아직 제국에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드래곤들과 라르기오스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용의 재해가 나타났으니까요.”
“라르기오스가 오는 건 당연한…….”
“아뇨, ‘진짜’ 용의 재해 말입니다.”
“……!”
진짜 용의 재해.
그것이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설마, 리야가 용의 재해가 된 거야?”
“예.”
덤덤히 답하는 마리아의 말에, 나는 바로 등을 돌렸다.
“제국에 다녀올게.”
방에 있는 이들의 답을 들을 틈도 없이, 나는 바로 달려 나갔다. 리야가 무사하다면 무사한 대로, 잘못됐다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녀를 봐야만 했다.
‘진짜 넌 이런 무모한 일도 간단히 실행해 버리는구나.’
다시 재해가 될 생각을 하다니.
나로선 절대 하지 않을 일이다.
상상도 못했다.
그녀가 다시 재해가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는.
“메르사야!”
“네, 넵!?”
나는 제발 별일 없기를 바라며, 쉬고 있던 메르사야를 불렀다.
단번에 울상이 되어 버리는 메르사야의 모습에 조금 미안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제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것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