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85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85화>
마지막 조각(2)
파비안이 신들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시간은 열흘.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우리가 없는 시간 동안 이 세계는 연합군을 비롯한 인류의 전력, 그리고 마계에서 보내진 마족의 최정예 부대로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만약 녀석이 순식간에 이 세계를 멸망시키고자 마음먹었다면 이렇게 잠잠할 리가 없지. 녀석이 아직 이 세계에 미련이 남은 이상, 시간은 우리의 편이야.”
물론 유예가 있을 뿐이지 녀석이 멸망을 멈춘다는 건 아니다. 이미 한번 세계를 멸망시켰던 놈이 이제 와서 그만둘 리가 없었다.
단지, 약간의 망설임이 있을 뿐.
‘그리고 그 망설임은 우리에게 있어서 기회야.’
아마 우리가 사라진 사실을 열흘이나 숨기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알타이르와 라르기오스가 신들의 세계로 향할 때, 파비안 또한 따라붙을 확률이 컸다.
그때가 이 세계의 명운을 건 분수령이 될 테지.
“도, 도련님! 저도 준비 끝났어요!”
마지막으로 계획을 점검하고 있자, 뒤늦게 모네가 나타났다.
모네는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공부하고 있었는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체 루티아에게 무슨 교육을 그렇게 받은 거야?”
“저쪽 세계의 지식이라고 해야 되려나요……. 이해가 안 되는 물건이나 용어에 대해 많이 교육받았어요.”
예지몽을 통해 이미 신들의 세계를 엿본 루티아이니 모네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입해 줬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게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스러웠다.
“그럼 이제 바로 가는 거야? 따로 챙겨 갈 건 없어?”
“혹시 필요할지 모를 물건들은 리야가 아공간에 넣어 두었으니 괜찮아.”
“그래? 기대되네!”
곧 신들의 세계에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란세시아는 어쩐지 들뜬 기색이었다.
리야 역시 표정은 차분했지만, 호기심이 깃든 기색이 엿보였다.
이곳에서 긴장하고 있는 건 메르사야와 모네뿐이었다.
특히 메르사야의 경우엔 아직도 왜 자신이 신들의 세계에 가야 하는지 이해 못한 눈치였다.
“크, 클레이 님, 저도 꼭 가야 되나요……. 이곳에 남아 영지를 지키는 편이…….”
“그건 다른 칠영웅이나 테오에게 맡겨 두었으니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럴 수가…….”
키세아와 테오에게 이미 영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반 실베스트 또한 되도록 반하르트가는 걱정 말라고 했으니, 메르사야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히잉.”
“야, 그래도 신들의 세계에 갈 수 있는 귀중한 기회잖아.”
알타이르와 라르기오스는 아주 가고 싶어서 난리법석인데 말이야.
“거기 가면 그 둘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건 그렇지.”
싸우게 될지 모르는 게 아니라 싸울 거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튼 슬슬 가야겠군.”
나는 일행을 쭉 훑어보았다.
이제 신들의 세계로 갈 인원이 전부 이곳에 모여 있었다.
나, 모네, 그란세시아, 그리고 리야와 메르사야.
이렇게 다섯이 이제부터 신들의 세계에 가게 된다.
“어째 여자들만 잔뜩 데려가는 기분이 드는군요.”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마리아 떨떠름하게 말했다.
나도 차마 그 말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딱히 노린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다.
‘심지어…….’
나는 묘한 시선을 주고받는 그란세시아와 리야를 보았다.
사실 리야가 일방적으로 그란세시아를 견제하고 그란세시아는 조금 불편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별일 없겠지?’
적어도 신들의 세계에서는 별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 이후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자.
“후우.”
나는 천천히 제노바를 뽑아 들었다.
현재 우리가 있는 장소는 바로 요정의 숲이었다.
혹시 문이 열릴 때 특별한 여파가 생길지 모르니 최대한 숨길 수 있는 장소에 온 것이다.
「천하칠검의 진정한 힘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당연히 우리의 곁에는 베아트리스도 있었다.
또한 오랜만에 보는 요정들이 주변에서 신기한 낯으로 우리를 관찰했다.
다만 전과 달리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드래곤인 메르사야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무얼, 이 정도는 전혀 문제없다. 오히려 영광이지. 세계의 명운을 건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말이야.」
싱긋 웃으며 이야기하는 베아트리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손에 쥔 제노바에 정신을 집중했다.
모든 천하칠검의 힘이 모여들며 하나씩 개방되기 시작했다.
‘인도검, 라갈.’
인도검 라갈의 힘이 개방되었을 때, 거대한 우주가 보였다. 동시에 수많은 미래와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신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인도하는 검.
인도검 라갈이 억겁에 가까운 숫자의 세계 속에서 길을 밝혔다.
또렷이 보이는 은색의 흐름이 연결되어 갔다.
“문이 열려 있는 시간은 길지 않을 거야. 열리면 바로 뛰어들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왕 자드에게 건네받은 두 자루의 검, 시간검 벨루스와 봉인검 씰핀의 힘이 개방됐다.
그 순간, 눈부신 빛이 제노바의 검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쿠우웅!
은색의 광채가 지상으로 떨어지며 몇 번이고 제노바에 격돌한다.
설정을 추가할 때나 보이던 빛의 격류는 몇 번이고 떨어지며 제노바에 모여들고 응축되었다.
그것을, 나는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콰아아아아!
경계검 솔라리스를 활용해 공간을 가른 적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이하게도 제노바에서 뿜어져 나온 은색의 빛이 갈라진 공간 너머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 은색의 흐름을 쫓아 들어가!”
나는 가장 먼저 모네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모네는 저 흐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 도련님?”
“괜찮아. 긴장하지 마.”
천천히, 갈라진 공간의 틈으로 발을 내디뎠다.
모네는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를 이 어두운 공간에 발을 뻗는 걸 주저했지만, 이내 나를 따라 천천히 들어왔다.
우리는 제노바와 연결된 은색의 빛을 쫓아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빠아앙!
기괴한 경적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부에 따사로운 햇살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하지만 조금 퀴퀴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였다.
“여긴…….”
눈을 뜨자 익숙한 파란 하늘이 보였다.
태양도 하나였으며, 파란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은 우리의 세계와 같았다.
“허.”
하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달랐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탑, 아니 잿빛의 건물 옥상 위에 있었다.
“세상에나.”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리야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옥상 아래로 보이는 건물들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있는 건물의 높이는 상당히 높았다. 괜히 탑으로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탑과도 같은 건물들이 무수히…… 그래, 정말 무수히 지어져 있다는 게 문제였다.
“와…….”
모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이 세계, 아마 ‘신들의 세계’로 추측되는 곳을 돌아보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건물들.
저것들이 대체 무슨 건축 기술로 만들어진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건물 아래로 보이는 길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제국 수도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 색깔이 다른 길에서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마차와 비슷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서 들었던 이상한 소음은 저 마차에서 들려온 소리인 듯했다.
“도, 도련님, 저건 자동차예요.”
“……자동차?”
“네. 루티아에게 들은 교육에 있었어요. 신들의 세계에서 주로 사용되는 운송 수단이라고…….”
자동차라, 딱 이름에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내려가나요? 그냥 뛰어내리면 되나요?”
메르사야도 주변 광경에 놀란 건 매한가지였지만, 우선 이곳을 벗어나 조금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조금 풍경을 봤을 뿐인데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러면 안 돼요! 신님…… 아니, 루티아는 이 세계의 인간들이라고도 했어요. 이곳에는 마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특별한 힘을 가진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 짓을 하면 분명 눈에 띌 거예요. 뭐더라…… 인, 인터넷이라는 곳에 올라가서 성가셔진다고 했어요.”
“그게 뭐야?”
다급히 만류하는 모네의 말을 메르사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 세계에 대해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신들의 세계에 대해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애초에 아버지부터가 ‘신’이라기엔 전혀 전능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진짜 전능한 신들의 세계였다면 애초에 파비안이 그런 짓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다른 세계의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줄곧 생각했다.
‘마력은 있는 것 같은데…….’
대기 중에는 분명히 마력이 보이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곳에 마법의 흔적이 없다는 건, 이 세계의 존재들은 마력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며 사용할 수 있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뜻이었다.
“!#@$!%^#$ !!”
그때, 뒤에서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특이한 복장을 입은 남자가 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특이한 복장을 입은 건 우리일 테지.’
이 세계의 복식에 대해선 전혀 모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네라면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옷을 만드는 건 상당히 수고스러운 일이니 미처 준비하지 못했겠지.
“메르사야, 혹시 통역 마법 가능해?”
“물론이죠.”
메르사야는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뻗었다.
옅은 녹광이 손가락 끝에 맺힌다고 생각한 순간, 시끄럽게 떠드는 남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통역되기 시작했다.
“여긴 어떻게 올라왔어?! 외국인이라 한국말로 말해도 못 알아듣나?”
……뭐, 이렇게 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다.
그래도 리야와 그란세시아를 힐끗힐끗 보며 얼굴을 붉히는 걸 보면 이 세계의 미의 관점도 우리 쪽과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실례합니다. 저희가 길을 잃어서요.”
“오, 한국말을 할 수 있었구만? 잘 보니 혼혈인가?”
“아, 예. 비슷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재차 그란세시아와 리야를 보았다. 아무래도 미인이 앞에 있으니 비교적 누그러진 태도를 취하는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길을 잃으면 옥상까지 오나? 그리고 복장은…… 뭐, 영화 촬영?”
영화 촬영이 뭐지.
순간 그의 말을 이해 못해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있자, 모네가 급히 끼어들었다.
“비슷해요! 여기가 풍경을 찍기가 좋아 보여서 잠시 올라왔을 뿐이에요!”
“아? 그래? 흠흠, 그럼 어쩔 수 없지. 함부로 옥상에 올라오면 안 된다. 내가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지, 이거 참.”
모네 역시 상당히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남성은 헤벌쭉 웃으며 바로 납득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재차 옥상에는 함부로 올라가면 안 되며 정 올라가고 싶다면 미리 이야기해 달라고 말했다.
덕분에 우리는 별다른 문제없이 건물의 아래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라는 정체불명의 물건을 타고서.
“후우, 위험했어요……. 거기서 대답을 잘못하면 바로 경찰서에 간다고 루티아가 그랬거든요.”
“경찰서?”
“우리 세계의 경비대 같은 곳이에요.”
음, 확실히 갈 만하군.
정말 루티아의 예지몽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많았을 것 같았다.
아마 모네가 줄곧 교육 받은 건 이런 ‘미래’들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법을 익혔던 모양이다.
거기에 더불어 이 세계의 지식까지 외웠을 테니 피곤해한 것도 당연했다.
“저 사람들 뭐야?”
“복장이 이상한데? 무슨 연극이나 영화 홍보라도 나온 거 아닐까?”
“하긴 다들 배우인 거 같지? 외모가 와…… 말이 안 나오네. 비율 봐.”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거리로 나오니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점점 커졌다.
그에 따라 그란세시아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 속이 메슥거려.”
그란세시아는 이 세계 자체가 영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부담스러웠던 거겠지.
“복장이 너무 튀는 것 같네요. 서둘러 자리를 피해야겠어요.”
리야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자란 뿔을 검지로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저쪽 세계에서는 워낙 다양한 아인족이 있으니 머리에 뿔이 있어도 그럭저럭 납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오로지 인간만이 거리에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머리에 뿔을 달고 있는 리야나 메르사야의 모습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리야의 말처럼 복식도 문제겠지.’
다행히 그것들은 전부 메르사야의 ‘폴리모프’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였다.
“바로 장소를 이동하는 게 좋겠어.”
“네,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디로요?”
“그건 처음부터 정해 뒀지.”
나는 반지 모양으로 변화시킨 제노바를 리야에게 보였다.
반지에서는 아까 보았던 은색의 빛이 흘러나오며 어딘가를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주변의 인간들은 그 은색의 흐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지인이 여기 살았거든.”
사실 지인이라기보단 아버지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