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86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86화>
마지막 조각(3)
우선 내가 이 세계를 만만하게 봤다는 건 깨달았다. 생각보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찰칵, 찰칵.
길을 걷는 내내 이상한 도구로 우리를 가리키는 이들이 보였다.
가끔은 그 도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이게 몇 번이 반복되니 거슬리는 감이 있었다.
“……자꾸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요.”
리야 역시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당장 다가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을 테지만 지금은 쉽사리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사소한 행동이 무척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으니까.
“저건 스마트폰이라는 건데, 저런 식으로 사용하면 사진을 찍는 거래요.”
“사진?”
“현재 상황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거라던가요? 저도 잘은…….”
모네가 재빨리 설명했지만, 리야의 궁금증만 부추길 뿐이었다.
‘현재 상황을 기록한다라.’
이 세게에는 마법이 없음에도 마법만큼 신기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저들에겐 오히려 우리가 신기하겠지.
처음부터 느끼긴 했지만, 우리의 복장은 너무 튀었다. 몇 걸음만 걸어가도 죄다 시선을 독차지할 정도이니 오죽하겠는가.
“아직 멀었어?”
“분명 여기서 가라는데…….”
반지의 빛은 지하로 들어가는 통로로 향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땅이 미세하게 울리며 먼 곳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땅속에서 지나다니는 느낌이었다.
‘안에 드래곤이라도 사는 건가?’
그런 마음으로 계속 들어가자 이상한 장치들이 통로를 막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장치에 손을 대자, 작은 소리와 함께 장치가 움직였다.
‘그냥 손을 대고 들어가면 되는 건가?’
그런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려고 하자, 모네가 뒤늦게 내 옷을 잡아당겼다.
“도, 도련님!”
“응?”
“여긴 지하철이라는 곳인데 함부로 들어가면 안 돼요!”
“지하철? 여기를 통해 가라고 하는데?”
“확실히 이 세계의 이동 수단인긴 한데……. 저희는 이용할 방법이 없다고 했어요. 이걸로 가면 바로 경찰서행이라고…….”
아니, 또 경찰서야?
무슨 뭐만 하면 경찰서라는 곳으로 끌려가는 거냐고.
“그런데 모네.”
“네.”
“이미 메르사야는 들어간 것 같은데.”
물론 그냥 들어간 건 아니고, 주변에는 박살 난 장치들이 놓여 있었다.
“……그냥 툭 쳤을 뿐인데요.”
메르사야는 아무 생각 없이 장치 사이의 통로로 들어간 모양이다.
장치에 달린 쇠봉이 진입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녀석은 대수롭지 그것을 손으로 툭 쳤다.
“꺄아악!”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용의 주먹에 얻어맞은 장치는 말 그대로 산산이 부서지며 몇 미터를 날아갔다.
“야, 이 멍청한 도마뱀이! 너 미쳤어?!”
다행히 그 장비를 급히 그란세시아가 뛰어가 받아 냈으니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인명 피해가 났을지도 몰랐다.
“뭐, 뭐야? 개찰구 박살 났는데?”
“방금 저 여자애가 손으로 치니까 산산이 부서져서…….”
“날아간 건 어떻게 됐는데?”
“그건 저 여자가 받아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딱 봐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저기요! 잠시만요! 비켜 주세요!”
더불어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건 좋지 않다.
“경, 경찰서…….”
모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모르는 것투성이였지만, 하나는 알겠다.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난다는 것.
“튀자.”
나는 모네의 손을 잡아끌며 방금 들어왔던 지하 통로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나머지는 알아서 뒤쫓아 오겠지.
이대로 있다간 모네가 루티아에게 들었던 그대로 경찰서라는 곳에 끌려갈 게 뻔했다.
* * *
상당한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인도검의 힘으로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워낙 우리를 보는 눈이 많았기에 혹시나 쫓아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신체 능력이 그리 뛰어나진 않구나.’
처음에는 도망치는 우리를 쫓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우리가 건물을 뛰어넘으며 도망치니 금방 떨어져 나갔다.
그때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눈이었어.’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인간만이 있는 세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젠 더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여기인가요? 그 지인이라는 분은 상당한 부자인 모양이네요. 이런 큰 건물에서 생활하다니.”
리야가 커다란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은 우리 세계에선 어지간한 ‘탑’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거대했다.
하기야 이 세계의 건물들은 죄다 탑만큼 거대하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건 아파트라는 거예요. 여긴 한 사람의 개인 저택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장소라고 했어요.”
“아, 집단 거주 구역 같은 느낌인가요? 이렇게 거대한 건물이면 그럴 수 있겠네요.”
“네, 그리고 들어가려면 여기 입구에 ‘비밀번호’라는 걸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다던데.”
“비밀번호라니…… 대체 마법도 없이 이런 걸 어떻게 만든 거죠?”
리야는 ‘아파트’라는 건물의 입구에 있는 장치를 유심히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모든 건물에 이런 게 설치되어 있다면 보안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마법 없이 사용할 수 없는 장치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근데 이거 어떻게 열어?”
장치를 신기하다는 듯 보고 있던 리야에게 그란세시아가 말을 툭 내뱉었다.
“그러게.”
“그냥 부수고 들어가면 되지 않나요?”
“메르사야, 넌 그냥 가만히 있어라.”
“……네.”
돌아다니는 족족 부수고 다닌다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걱정 마세요. 이건 제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오, 이것도 루티아가 알려 줬어?”
“아뇨, 그냥 제가 누르면 된다고 하던데요.”
모네는 숫자가 적혀 있는 금속판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러다 긴장된 얼굴로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저기요, 그렇게 계속 입구 막고 계실 거면 저 좀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뒤에서 나타난 한 여성이 짜증이 담긴 어조로 모네에게 말했다.
모네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비켰고, 여성은 엄청난 속도로 금속판을 꾹꾹 누르더니 문을 열고 가 버렸다. 말끝에 웬 미친놈들이 별꼴이야, 라는 말을 덧붙이며.
“……들어가죠.”
시무룩한 모네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버지’의 집으로 추정되는 장소에는 입구에 한 번 더 비밀번호를 누르는 장치가 있었으나, 다행히 그건 모네의 행운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아마 루티아는 입구 또한 그런 방식으로 통과하리라 생각한 거겠지.
새삼스럽지만 모네의 행운이 얼마나 만능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자 낯선 장소임에도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다른 가족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혼자 사는 집이었던 모양인지 상당히 어지럽혀져 있었다.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었던 것 같네요.”
리야가 주변의 물건들의 상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먼지가 많이 쌓여 있지 않은 걸 보니, 그래도 최근까지 관리는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없어.”
나는 아버지의 방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계속해서 뒤졌으나 원하던 걸 찾지 못해 눈을 찌푸렸다.
적당히 바닥에 앉아 있던 그란세시아는 그런 내 모습에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뭘 찾는데?”
“소설책.”
“아, 우리의 세계의 원전이 되었다는 그거?”
“맞아. 분명 아버지의 집이라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이 몇 권 책장에 꽂혀 있었지만 ‘검의 소리가 들려’라는 소설은 보이지 않았다.
“책이 아닌 거 아냐?”
“하지만 소설인데?”
“소설이라고 꼭 책으로 보는 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란세시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살던 세계와는 너무나 다르니 소설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책 말고도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클레이. 세계의 원전이 된 소설이라는 건 무슨 뜻이죠?”
“아, 그건…….”
생각해 보니 우리의 세계가 아버지가 쓴 소설이라는 걸 아는 건 그란세시아뿐이었다.
혹시나 큰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어 함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말해 주는 게 좋겠지.’
우리는 지금 ‘소설 밖’으로 나온 시점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차분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리야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그렇군요. 그래서 이 장소가 바로 그 ‘작가’, 즉 클레이의 아버지가 있었던 장소군요?”
“맞아.”
“클레이는 그 소설의 원전을 찾아 수정하려고 한 거고.”
리야는 곧바로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 말대로 내가 이 세계에 오려고 한 이유는 원작의 설정, 그중에서도 파비안의 설정을 뒤바꾸기 위함이었다.
지금 우리가 지닌 힘으로 파비안을 이길 수 없으니, 반대로 파비안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렇지. 하지만 소설책이 없어서야…….”
“아뇨, 저는 소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응?”
“소설의 내용을 수정한다고 바로 파비안의 설정이 바뀔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리야는 상당히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녀의 시선은 내 손가락에 끼워진 제노바에 향해 있었다.
“만약 바로 수정된다면 좋겠지요. 근데 전 어쩐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차분한 리야의 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솔직히 나도 생각하던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소설책의 내용을 수정한다고 파비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생길까?
혹시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한 건 아닐까?
나는 그 부분을 계속 고민했으나,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곧 알타이르와 라르기오스도 이 세계에 온다.’
놈들이 이곳에 당도하여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파비안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우우우웅.
모두가 쉽게 열지 못하고 침묵에 잠겨 있던 그때, 기이한 소음이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움직이며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까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키며 사용했던 도구가 있었다.
스마트폰.
아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이거 갑자기 울리는데요?”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리야와 그란세시아는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며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모네, 이거 사용할 수 있어?”
“아, 네! 배웠어요!”
“그럼 부탁할게.”
모네에게 스마트폰을 넘기자, 그녀는 비장한 얼굴로 스마트폰에 손가락을 올리고 몇 번 꾹꾹 눌렀다.
그러자 큼지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작가님!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세요! 외전 주기로 한 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아세요?!」
“힉!”
갑자기 소리가 터져 나오자 깜짝 놀란 모네가 스마트폰을 떨어트렸다.
다행히 식탁 위로 떨어트린 터라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엎어진 스마트폰에선 계속해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 방금 무슨 소리죠, 작가님?」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아마 모네의 목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들어 모네에게 내밀며 속삭였다.
“여동생이라고 해, 여동생.”
“네?”
“여동생이고 아버지…… 아니, 오빠는 지금 집에 없다고 말하면 될 거야.”
아버지의 나이가 이곳에서 몇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보단 오빠라고 하는 편이 의심받을 확률이 적었다.
“오, 오빠는 지금 어디가 가셔서요…….”
「헉! 시, 실례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담당 편집자입니다.」
워낙 고운 모네의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 까칠했던 남성의 목소리가 단번에 부드러워졌다.
“우선 그 사람에게 최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봐 줘. 예를 들면…….”
나는 모네에게 재차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 건 분명하니, 이 기회에 최대한 많은 걸 들어 둬야 했다.
무엇보다…… 방금 남자가 한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외전!’
바로 그것이, 내가 그토록 찾던 마지막 조각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