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97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97화>
주인공(1)
파비안.
‘검의 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내게 있어선 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인물이다.
본래라면 나의 시종이 되어 살았을 것이며, 형제처럼 자랐을 테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원작과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으니까.
죽었어야 할 운명을 바꿨으며, 본래라면 파비안이 해결했을 일들을 해결했다.
‘파비안은 결코 바라지 않았을 테지만.’
분명 파비안은 우리의 세계가 일찌감치 멸망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주인공이 사라진 세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고, 결국 파비안은 손수 우리의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돌아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 되나, 파비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탑의 정상.
모든 건물들이 마치 작은 성냥갑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파비안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과 인간.
가상과 현실.
결코 마주칠 일 없는 존재들이 이 아래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파비안은 천천히 내게 등을 돌리며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군.”
“검의 공명이 얼른 가라고 말해 주는데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어?”
내가 살짝 빈정거리며 말하자 파비안은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녀석의 눈동자에 나의 얼굴이 비쳤다.
“솔직히 나는 네가 먼저 다른 일들을 해결한 후에 이곳으로 오리라 생각했다.”
감정의 고저도 느껴지지 않는 일정한 톤으로, 녀석은 나를 향해 읊조렸다.
“하지만 바로 이곳에 왔다는 건, 나를 이길 수 있다는 판단했기 때문일 테지.”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인데?”
“아주 잘 알고말고. 적어도 네가 나를 알고 있는 것보단 더욱 자세히 알고 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녀석은 ‘원작’의 나를 보았으며, 이곳에서 소설로 재차 보았다.
반면 나는 녀석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된 게 전부다.
‘이건…… 나쁘지 않은데?’
나를 자세히 알고 있다는 건 불리한 요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웅웅웅!
녀석의 검과 나의 검이 공명하는 게 느껴졌다.
본래라면 단 한 자루만이 존재할 완벽한 천하칠검이 지금 이곳에 두 자루가 존재했다.
“클레이 반하르트, 너는 이곳에서 원작에 간섭에 나를 쓰러트리려 했을 테지. 하지만 헛수고다. 이미 완결이 나 버린 소설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건가?”
“그건 모르는 일이지.”
“혹시 외전을 생각하는 건가? 그 또한 헛수고야. 세계에 간섭되기 위해선 독자들이 우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나를 죽이는 내용을 쓴다고 해도, 개연성조차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독자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지.”
파비안은 그렇게 말하며 제노바를 빼 들었다.
녀석의 검은 나의 것과 조금의 차이도 없이 똑같았다.
‘파비안을 죽이는 내용이라…….’
그런 외전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다른 세계로 넘어가 절망한 파비안이 자살을 한다든가.
하지만 나는 이내 포기했다. 그러고 싶지도,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외전은 단 한 번뿐인 기회다. 이걸 망치면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글쎄…….”
나 역시 웃으며 검을 빼 들었다.
순식간에 달라진 나의 기세에 파비안의 얼굴이 일변했다.
“……하지만 놀라워. 너는 검의 재능이 크지 않았지. 대체 무슨 수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된 거지?”
“뭐든 방법이 있는 법이다. 너는 재능이 넘치니 방법을 궁리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만.”
천쇄의 무구를 사용한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하며 천쇄의 무구는 한층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이제 완전해진 성천무극을 운용하자…… 나의 시계(視界)는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만약 네가 아직 ‘주인공’이었다면 솔직히 좀 까다로웠을 거야. 하지만 이제 넌 주인공이 아니잖아?”
본래의 세계를 벗어나 이곳에 도달한 지금.
녀석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러니 공평하게 싸울 수 있다는 뜻인가?”
“아니.”
나는 녀석을 향해 씩 웃었다.
“여태 네 적들이 겪었던 주인공 보정이라는 걸…… 이제부터 너에게 알려 주마.”
* * *
“사, 살려 줘!”
심기영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폭발과 폭음에 벌벌 떨었다.
하루아침에 세계가 망해 버린 느낌이다.
‘이, 이러다 한국 망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듀튜브로 확인해 보니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난리인 것 같았다.
하늘에서 무수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것 같은 드래곤들이 포효하고 있었다.
「호오, 메르사야잖아?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자동차 한 대를 짓뭉개며 자신의 앞에 내려섰다.
“어, 어어어.”
「나약한 인간과 같이 있군. 너의 식량이냐?」
그 드래곤은 메르사야를 비웃으며 낮게 웃었다.
‘결국 이게 이렇게 되네.’
이전이었다면 크게 위축되었을 메르사야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여전히 좀 무서운 감이 있긴 했지만, 자신은 클레이가 부탁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나를 굳이 도와주러 오지 않는 걸 보면 괜찮다는 뜻일 거야.’
라르기오스와 대치한 리야가 힐끗 이쪽을 향해 시선을 보낸 게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는 건 ‘이 정도’는 충분히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 터.
그 용의 재해의 판단이니 확실하겠지.
「왜 말이 없어? 어떻게 이 세계에 넘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라르기오스 님이 아신다면 분명 경을 칠…… 꽥!」
시끄럽게 떠들던 드래곤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순식간에 뛰어오른 메르사야의 주먹이 드래곤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다.
이전에는 단순한 막주먹이었다면, 지금의 메르사야는 엄연히 성천무극을 익힌 상태였다.
원래부터 드래곤 중에서도 육신의 능력만큼은 강력했던 메르사야의 주먹이니 드래곤은 예상치 못한 한 방에 그대로 실신해 버렸다.
“……어?”
쿠쿠쿵!
육중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드래곤의 모습에 정작 때린 메르사야도 깜짝 놀랐다.
‘나, 엄청 세졌네?!’
클레이가 말하길,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상대가 방심할 때 기습을 하라 말했다.
메르사야는 그것을 충실히 지켰고, 그 결과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마, 맙소사! 저 거대한 용을 하, 한 방에 쓰러트린 건가요?”
심기영은 호다닥 메르사야의 옆에 달라붙어 말했다.
방금 광경을 보니, 아무래도 이 작은 소녀의 곁에 붙어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마치 자신을 구원자처럼 바라보는 심기영의 눈과 자신의 앞에 고꾸라져 기절해 버린 드래곤을 번갈아 보던 메르사야는 단번에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좋아, 가자! 이 메르사야님이 다 지켜 줄게!”
“믿습니다!”
클레이의 부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위험한 적들은 리야나 그란세시아, 그리고 클레이가 맡은 상태이니 이곳에서 자신을 괴롭힐 존재는 없었다.
드래곤들? 얼마든지 덤비라 이거야.
메르사야는 단번에 오만해졌고, 우습게도 그런 그녀의 판단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참, 카메라 켰어? 이거 다 촬영해야 해. 저기하고…….”
메르사야는 손가락을 들어 라르기오스와 싸우기 시작한 리야를 가리켰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클레이가 싸운다면 티가 날 텐데…….
서걱!
그 순간,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리며 거대한 건물의 일부가 베어져 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그 건물은 땅에 닿기 직전, 클레이가 경계의 틈으로 보내 버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저기로 가자!”
팔을 잡고 이끄는 메르사야의 힘에 심기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 * *
용언과 용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다른 드래곤들은 둘의 싸움을 먼 곳에서 지켜보며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몸에는 이전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마력과 용언은 고사하고, 하늘을 날 수도 없었던 그때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녀석의 말이 맞았다. 저 인룡(人龍)은 자신들의 재해였다.
「라르기오스 님이 지시진 않겠지?」
「설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고 있자고.」
드래곤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며 각 주요 도시를 습격했다.
미처 대비를 못했던 도시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타난 이세계의 인물들 덕에 크게 재미를 보진 못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엔 피해가 건물을 제외하곤 전무했다.
‘알타이르,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냐. 이대로 가다간…….’
라르기오스는 여섯 장의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법은 그때마다 리야의 공격에 가볍게 막혔다.
인간의 마법이, 용의 마법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파비안은? 놈은 또 누구와 싸우고 있는 거지? 잘못됐다. 분명 뭔가 잘못되고 있다.’
“어머나,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으신가 보네요?”
하늘을 날고 있던 바로 자신의 옆에서 리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포트!’
순간적으로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공간 좌표로 이동해 접근한 것이다.
리야의 손끝에서 자색의 마법진이 여덟 겹으로 겹쳐지며 붉은 빛을 발했다.
콰아아아아!
하늘 전체가 붉게 물들며 뜨거운 열기가 퍼져 나갔다.
열기의 파도에 마침 전함에서 쏟아져 내려오던 몬스터의 일부가 휩쓸려 그대로 먼지로 변해 버렸다.
“칫.”
하지만 리야는 짧게 혀를 차며 인근의 건물 위로 이동했다.
뜨거운 열기에 뿌연 수증기가 일어났지만, 라르기오스의 몸에는 작은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괴물은 괴물.’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리야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스스로 용의 재해를 자칭한 괴물이 결코 약할 리가 없었다.
「곤란하군. 그래, 정말로 곤란해졌어. 이대로는 좋지 않아.」
라르기오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대한 날개를 쫙 펼쳤다,
그러자 서울의 상공이 단번에 어두워졌고, 근처에 날아다니던 전함들이 일제히 라르기오스를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리야의 고운 아미가 찡그려졌다.
여태 라르기오스는 알타이르나 파비안의 명에 따라 최대한 행동을 자제했다.
하지만 현재 그 둘로부터 연락이 닿지 않으니, 직접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하는 수 없군. 이 이상 시간을 끌어 봐야 좋지 않을 터.」
쿠쿵, 쿠구구쿵!
천둥처럼 공간이 울리며 라르기오스의 날개가 발광(發光)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마력이 모여들며 오색찬란한 빛이 서울, 아니 한국 전체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황녀 전하!”
가장 먼저 소일라 프란이 그 이변을 눈치채고 리야를 향해 이동해 왔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하늘의 라르기오스를 응시했다.
“많은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제가 조금이나마…….”
“괜찮아요. 소일라는 하던 일을 계속하시는 게 나아요. 안 그럼 적들의 습격을 견제할 수 없습니다.”
소일라 프란은 가장 광범위한 이동 능력을 가진 마법사다.
세계의 맞은편까지 수백의 군대를 데리고 이동할 수 있는 그녀가 사라진다면, 신들의 군대에 맞서는 데 큰 문제가 발생할 게 분명했다.
적들의 전함은 공간을 이동하며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저는 용의 재해입니다. 이 정도는 전혀 문제도 아니에요.”
조금 짜증이 치밀었지만, 두려운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신 이 근방에 인간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줄 수 있나요?”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 10분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만.”
“그럼 부탁할게요.”
10분.
리야는 자신의 금제조차 뿌리치며 마력을 흡수하는 라르기오스를 보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모든 힘을 해방하고자 하는 용의 심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