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0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201화>
주인공(5)
“막아!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천재지변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손으론 어찌할 수 없는 미증유의 재앙을 지칭하는 것.
일반적으로 신과 천사들은 인간들에게 있어 천재지변과 비슷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크으으윽!”
데카르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자신의 모든 전력을 모아 손에 백색의 검을 만들었다.
수천 년간 쌓아 온 전쟁의 신으로서의 권능.
자연스럽게 투로를 읽고, 상대의 약점을 읽어 내는 권능이 발현된다.
“죽어라!”
그란세시아가 어디로 공격할지 읽은 데카르는 온 힘을 다해 검을 내질렀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검의 파동은 이 거대한 전함을 뒤흔들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신의 기함이 파괴될까 봐 스스로 자제했지만, 이제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
하지만 그의 검이 그란세시아의 몸에 닿는 것보다 그녀의 주먹이 데카르의 머리를 강타하는 게 빨랐다.
쾅쾅쾅!
그란세시아의 주먹을 얻어맞은 데카르의 몸이 붕 뜨며, 오리하르콘으로 이루어진 벽을 몇 개나 부수며 쓰러졌다.
안면이 반쯤 함몰된 데카르는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전쟁의 신의 최후라기엔 너무나 처참한 모습에 몇몇 신들은 몸을 움찔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분명 알타이르에게 도달할 게 분명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알타이르는 그들을 어찌할 것 인가.
‘다른 전함을 지휘했어야 했나.’
전능한 힘을 지닌 알타이르의 곁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판단했지만, 아무래도 큰 오판이었던 것 같다.
신들은 이를 악물며 쉬이 덤벼들지 못하는 천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얼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저 인간 계집을 죽여라!! 죽이지 못한다면 어떻게든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어!”
노한 신들의 외침에 천사들은 부들거리는 팔을 진정시키며 무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그란세시아를 덮치려던 순간.
“굳이 먼저 덤빌 필요 없어. 내가 갈 거니까.”
가장 앞에 있던 천사의 턱을 그란세시아의 발이 후려차자, 천사의 몸이 붕 떠오르며 천장에 박혔다.
“으아아아!”
천사의 위엄 따위는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일제히 덤벼드는 천사들.
그란세시아는 그런 천사들을 관조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쾅! 쾅! 쾅!
툭툭 끊어지는 충격파가 들리며 덤벼들던 천사의 육신이 벽에 틀어박혔다.
한 명, 두 명, 세 명.
주먹에 맞아 지면에 박히고, 오른발로 턱을 후려갈겨 천장에 박아 버리고, 맨손으로 천사의 무기를 꺾으며, 빙그르르 몸을 회전시켜 팔을 접어 버렸다.
“이, 이런……!”
“신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면 도망치면 안 되지.”
“……!”
신들은 황급히 저마다의 권능을 뿜어냈다.
바람의 신이 일으키는 돌풍은 가까이서 인간이 맞았다간 원자 단위로 분해될 정도의 힘을 지녔지만, 그란세시아는 그것을 정면에서 돌파했다.
“피안(彼岸).”
바람을 찢어발기며 백열하는 그란세시아의 주먹이 바람의 신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눈을 부릅뜨며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신의 유해를 그란세시아는 달려들던 천사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약간, 피곤하긴 하네.’
그란세시아는 옅은 한숨을 쉬며 자신을 포위한 신들의 군대를 응시했다.
어쨌든 신을 자칭할 만한 힘은 지녔다. 하나하나가 인간에겐 재해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죽어도 나를 못 막아.”
그란세시아는 씩 웃었다.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단 두 명뿐이었다.
‘원작’의 주인공인 파비안과 새로운 ‘주인공’이 되려는 클레이 반하르트.
오직 그 둘만이 그녀를 막을 수 있었다.
* * *
하늘과 대지에서 몬스터와 용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마치 지구가 아닌 우리의 세계와 같은 광경이다.
만약 미리 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테지.
“너는 이 세계가 이렇게 되길 바란 거냐?”
녀석의 검붉은 검기와 나의 하얀 검기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성천무극과 천쇄의 무구를 사용하여, 나의 검기에는 신성력마저 담겨 있었다.
“우리의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쪽 세계까지 뒤집어 놔야 했냐고.”
파비안이 우리 세계에 대해 큰 원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안다. 원작을 읽었기에 파비안이 얼마나 큰 비탄을 겪었는지 알고 있었다.
분명, 나였어도 비슷했을 거다.
세상을 저주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세계에 복수를 하려 했겠지.
“…….”
파비안은 나와 검을 마주친 채 꾹 입을 닫고 있었다.
낯선 녀석의 얼굴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친숙하게만 느껴졌다.
원작에서 녀석과 내가 형제와도 같은 사이였기 때문일까.
“왜 그랬어야만 했지?”
녀석은 말없이 검을 휘둘렀다.
검신 데미안에게 배운 단월신검. 나의 일륜지천검과는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검술이 허공에서 몇 번이고 격돌했다.
달과 태양이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허공에서 몇 번이고 부딪치며 자웅을 겨뤘다.
“아버지를…… 아니, 작가를 죽일 거였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다. 왜 세계의 시간을 되돌린 거냐? 아버지에게 자신이 겪었던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기 위해서? 무엇을 해도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을 알려 주기 위해? 아니면…….”
서걱!
파비안의 검격에 거대한 빌딩이 대각선으로 잘려 나갔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를 밟으며 우리는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자신이 이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임을 후회하게 만들 생각이었나? 그런 글을, 소설을 썼다는 걸 후회하게 하고 싶었던 거냐?!”
자신에게 더러운 운명을 안겨 준 작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왜 이런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방법을 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복수를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더욱 괴롭게 만들 방법은 있었으니까.
“……나도 처음부터 그를 죽이고자 했던 건 아니다.”
굳게 닫혀 있던 파비안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애초에 나는, 우리의 세계가 소설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이곳이 신들의 세계라 생각하며 살았지. 그렇게 3년을,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세계에 적응하며 살았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천하칠검의 힘을 이용해 어떻게든 생활할 수 있었다.
멸망해 버린 자신의 세계를 떠올리며 괴롭지만 조금씩 이 세계에서 살아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정말로 우연이었지. 이 세계의 ‘소설’을 보게 된 건 말이야.”
우연히 보게 된 인터넷 소설.
그리고 웹툰화까지 된 ‘파비안의 생애’.
“……그래서 알타이르와 협력한 건가? 자신의 삶이 일개 소설이었다는 것에 분노해서?”
“너는 몰라, 클레이.”
파비안의 눈동자에는 깊은 분노와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여태 살아오며 했던 모든 선택이, 결국 한 인간이 쓴 활자의 위였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살았던 나의 삶에 대한 대가는 오직 조롱뿐이었어.”
자신의 삶이 이 세계에선 조롱당하고 온갖 멸시를 받았다.
자신의 절망은 고작 그 정도뿐이었다.
“이래도 안 되나? 나의 삶을 조롱한 신들에게…… 나는 이 정도도 해서는 안 되는 건가?”
“그건…….”
나는 차마 그런 파비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녀석의 말에 깃든 절망은 단순히 몇 마디 말로 헤아릴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화풀이잖아.”
“그래, 화풀이다. 그들이 내 소설을 보며 가감 없이 감정을 쏟아 냈던 것처럼. 나 또한 똑같이 할 뿐이야.”
뜨겁게 달아오르는 열기와 차가운 냉기가 얽히자 뿌연 수증기가 안개처럼 치솟았다.
녀석의 등 뒤에 수백의 검형이 나타났으며, 내 등 뒤에도 수백의 검형이 나타나 허공에서 부딪쳤다.
미처 다 막지 못한 검형은 서로의 경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벨루스.’
그리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시간을 가속시키며, 또는 느리게 만들며 서로의 목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큭!’
나는 녀석과 검을 한번 마주칠 때마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받았다.
검을 다루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순수한 검술도 놈은 나를 앞서 있었다.
성천무극을 익히며 단번에 그란세시아의 심득을 무수히 습득했건만, 그걸로도 파비안을 따라잡기 부족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녀석과 정면에서 싸움다운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건, 천쇄의 무구를 비롯한 여러 기술의 차이 덕분이었다.
나는 녀석과 검을 주고받으며 재차 물었다.
“그래서 화풀이로, 우리 세계의 시간을 되돌리고 작가를 보낸 거냐? 자신이 겪었던 삶을 그대로 겪게 만들기 위해서?”
후에 게일 공작에게 보고받은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삶은 기이했다.
마치 누가 방해한 것처럼 될 일도 안 되고, 어처구니없게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그때는 단지 아버지의 인덕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게일 공작만이 아니라, 비슷한 조사를 했던 리야와 제이드도 했던 말이니 확실했다.
“맞아. 알타이르를 통해 그의 삶에 불운을 깃들였지. 덕분에 너의 세계의 나는 죽었지만…… 후회는 없다.”
“과연, 목표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너 자신도 포함되어 있던 건가.”
“…….”
“어차피 살아 봐야 지금 너와 같은 꼴이 될 뿐이었으니, 그냥 죽도록 만든 거였어. 차가운 겨울 바닥에서 쓸쓸하게 말이야.”
그제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지금의 네 존재가 지워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말이야. 참으로 성대한 자살 계획이구만. 실패했지만 말이야.”
“덕분에 지금과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었지.”
“벌였다? 말이 이상한데. 넌 그저 자포자기했을 뿐이잖아. 어차피 다른 세계의 존재를 인식한 알타이르라면 천하칠검이 없어도 어떻게든 이 세계에 넘어올 방법을 찾았을 거다.”
당장 검의 주인은 나지만, 내가 영원히 사는 건 아니다. 아무리 신체(神體)를 얻어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분명 한계는 있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지. 너는 네가 살아있을 때…… 알타이르가 넘어오길 바랐어.”
“그건…….”
“아니라고? 근데 왜 우리에 대해 말하지 않은 거지? 알타이르와 다르게 너는 우리가 여기에 먼저 넘어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알고 있었지.”
녀석은 입을 꾹 닫았다.
다시 말이 없어진 녀석에게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파비안, 나는 너를 안다. 네가 나를 아는 것처럼 나 역시 너를 알고 있지. 너는 지독할 정도로 미련한 놈이야. 작은 희망만 생겨도 포기하지 않아.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면 그런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다.”
파비안이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그것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그만…… 그 입을 닥쳐라!”
여태 표정 변화가 없던 파비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콰아아앙!
놈의 몸에서 폭음이 울리며 지금까지보다 몇 배의 속도로 시간이 가속했다.
그 속도는 내가 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의 몇 배.
“크으으윽!”
그것을 가까스로 막아 내는 데 성공했지만, 어마어마한 속도가 더해진 녀석의 참격에 내 몸은 몇 개의 건물을 꿰뚫은 뒤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단 한 번의 참격으로 갈비뼈 몇 개는 나간 것 같았다.
‘드럽게 세네.’
예상은 했지만 파비안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
분명 그란세시아보다도 강할 거다.
단순히 ‘무(武)’의 영역에선 그란세시아가 위일지라도 천하칠검의 힘에 저항할 수 없을 테니까.
“너는 언제나 그랬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해. 마치 뭐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녀석은 입가에 흐른 피를 닦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하지만 결국 어땠지? 재해에 휩쓸려 간단히 죽어 버렸다. 나와 모네를 두고.”
파비안의 입에서 언급된 모네라는 이름에 나는 슬쩍 기감을 넓혀 모네의 흐름을 찾았다.
다행히 모네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리야의 싸움이 끝났으니 이제 모네는 나를 촬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너도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어. 분명 여러 가지 방법으로 힘을 키웠을지라도, 너는…… 고작 엑스트라에 불과해.”
엑스트라라.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그래, 나는 엑스트라였지. 본래라면 리야의 첫 등장에 희생되는 고작 그 정도의 존재였다.
“그래, 그랬지.”
“……뭐?”
녀석은 내 말에 담긴 묘한 뉘앙스를 느낀 듯 눈을 찡그렸다.
역시 파비안은 똑똑한 놈이다.
이 한마디에 내 의도를 일부나마 읽어 낼 수 있다니.
“하지만 그건…… 우리 세계의 이야기잖아?”
천천히.
나는 검을 움켜쥐고 몸을 일으켰다.
단 한 번의 일격에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몸.
그러나 우습게도 지금 이것이 내게 있어 만전의 상태였다.
“여기선 다르지.”
모네가 지금 나를 촬영하고 있다면 분명 가능하다.
기적에 가까운 행운을 가진 모네라면……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웅웅웅웅!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내 손에 쥐어진 제노바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찬란한 금색으로 물들며 백색의 검기마저 집어삼켰다.
“그 빛은……? 대체 왜 제노바가……!”
“파비안.”
나는 당황한 녀석에게 고통을 참으며 웃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크게 심장이 뛴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익힌 ‘설정’.
리비나 백작가의 혈통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자의 심장」이 발휘된다.
그 능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때 신체 능력을 3배로 활성화시켜 주는 것.
“내가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