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05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205화>
한 세계의 끝(3)
모네는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구독자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몇 만이었던 숫자가 이제는 억을 넘어섰다.
이렇게 많은 실시간 구독자 수는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이게 대사건이라고 해도…… 가능한 일인가?’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꽤나 오래 굴러먹은 심기영은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건지 알았다.
이걸 정말 단순히 운이 좋아 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TV의 뉴스는 지금 모네가 찍고 있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며 현재 상황을 전달한다.
국내 뉴스만이 아닌, 전 세계의 모든 방송사가 현재 심기영의 채널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아마 듀튜브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둘의 싸움이 격렬하게 이루어질수록 시청자들의 반응도 커졌다.
검이 한 번 휘둘러지면 거대한 건물이 반토막으로 갈라졌고, 발을 내디디면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몇 번 검을 마주쳤을 뿐인데 그들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모조리 무너져 폐허가 되어 있었다.
만약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키지 않았다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영상을 통해, 그리고 심기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하자 클레이를 응원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들도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태가 그들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공포감을 키웠다.
지금은 대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사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자신들도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난 사람들이 조금씩 클레이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소망이 뭉치며 커졌고, 시칭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양은 불어났다.
모여든 인간의 기원은, 클레이가 손에 쥔 제노바에 전달되어 거대한 힘이 되었다.
그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끼고 있는 건 파비안이었다.
“왜, 나를 막는 거냐.”
분했다.
아마 그가 들으면 우스운 말이겠지만 파비안은 단 한 번도 클레이를 이긴 적이 없었다.
그의 도움으로 검술을 배웠고, 직접 겨뤄 본 적도 있었다.
이제 막 검을 배우기 시작했던 파비안은 처음에 클레이에게 몇 번이나 된통 깨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파비안을 클레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추월했지만, 클레이는 더 이상 파비안과 검을 겨루지 않았다.
그는 질 것 같은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파비안은 억지로 클레이와 대련한다고 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는 묘한 믿음을 주변에게 주었으니까.
파비안에게 클레이는 마치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으면서! 대체 왜!”
클레이는 파비안의 몇 안 되는 이해자였고, 가족이었다.
형제라고 불러도 좋다. 파비안은 클레이를 자신의 형과 같이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가 죽었을 때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계는 나를 버렸다. 나는 고작 활자 위에서 춤을 추던 인형이었단 말이다!”
“알아.”
울분을 토하는 파비안을 향해 클레이는 조용히 물었다.
둘의 검과 주먹이 허공에서 교차하며 부딪쳤다.
“다 봤으니까.”
이 세계에 와서 ‘원작’을 처음부터 다 읽었다.
파비안의 생애는 녀석의 말처럼 끝내 비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게 내가 너를 막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지.”
클레이 역시 파비안에게 공감하는 바는 있었다.
결국 그 역시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며, 한 번은 죽기까지 했던 것 같으니까.
만약 파비안이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거기서 끝이었을 거다.
그런 점에서 파비안은 클레이에게 있어 은인인지도 모른다.
“클레이 반하르트!”
녀석이 절규하듯 클레이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거미줄처럼 금이 간 제노바를 움켜쥐고 연속해서 검을 휘두른다.
동시에 녀석의 몸에서 발해진 은색의 검기가 클레이의 몸에 하나둘 짙은 상처를 남겼다.
그 공격 속에 담긴 녀석의 증오와 분노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의 의지에 반응하여 파비안의 제노바는 한층 더 단단해진다.
세계의 기원이 모여든 클레이의 제노바에 연신 두들겨 얻어맞음에도 굳건히 버틴다.
‘이대로라면……!’
위험했다.
이대로라면 파비안의 검이 부서지기보다 클레이의 무릎이 꺾이는 게 빠를 듯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영원히 파비안을 쓰러트릴 수 없을 터.
‘절대, 그럴 순 없지!’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버티며 주먹을 휘둘렀다.
한계에 도달한 몸이 비명을 지르며 입가에서 붉은 피가 연신 흘러나왔다.
시야가 점차 뿌옇게 뭉개지며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파비안의 흐름뿐이었다.
사방이 붕괴되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 없었다.
클레이는 오직 자신에게 몰아치는 격류를 막아 내기에 바빴다.
‘파비안은 우리 세계의 기술 대부분을 알고 있다.’
이렇게까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음에도 클레이가 쉽사리 파비안을 압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클레이가 그러하듯 파비안은 너무나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파비안은 자신과 싸웠던 상대들의 기술을 대부분 알고 있었고, 이해했다. 그렇기에 클레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간단히 대처했다.
일륜지천검도 결국 그 근간은 단월신검이었으며, 성천무극의 경우엔 그란세시아의 몸을 차지한 원작의 알타이르가 사용했다.
알타이르에게 있어 유일한 약점은 강력한 권능에 비해 나약한 육신.
그것을 보완하고, 재해로서의 힘을 완벽히 사용하기 위해 그란세시아의 몸을 차지했다.
덕분에 그란세시아 본인이 사용하는 성천무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기억을 통해 알타이르도 어느 정도는 성천무극을 사용했고…… 거기에 재해의 힘까지 함께 사용했다.
파비안은 그런 알타이르를 꺾었다.
‘괴물 같은 놈.’
클레이로선 정말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알타이르가 어설프게 성천무극을 사용한 탓에, 좀처럼 극성에 이른 성천무극을 펼쳐도 파비안은 손쉽게 대처했다.
‘생각해야해.’
파비안이 모를 만한 기술.
하지만 세계의 모든 인류를 멸망시킨 파비안이 모를 기술이…….
‘있다.’
마침 딱 하나 있었다.
“……그건!”
녀석의 검을 쳐 낸 후, 클레이는 크게 뒤로 물러섰다.
천천히 자세를 잡는 그의 모습에 파비안의 눈이 살짝 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은 이를 뿌득 갈며 눈을 부릅떴다.
“이제 와서 데올릭가의 검술 따위를 사용해 뭘 어쩌겠다는 거냐?!”
데올릭가의 검술.
파비안의 적 중 하나였던 바이안 데올릭이 사용하던 검술이니 녀석이 모를 리가 없었다.
심지어 바이안은 파비안과 꽤나 오랫동안 싸웠던 숙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원작의 바이안이 사용하던 검술일 뿐.’
파비안은 모른다.
데올릭가의 검술 대부분이 유실되어 일부분만이 남아있다는 걸.
‘자, 그럼 해 보자.’
쿠우웅!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백색으로 물들었던 클레이의 육신이 은색의 잔광이 뿜어져 나오며, 번개처럼 빛의 파동의 튄다.
크게 떠진 눈동자에는 은빛의 태가 둘러지며 이내 시린 은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짓을!”
파비안은 그런 클레이를 마주보며 자신 역시 자세를 잡았다.
어째서 클레이가 갑자기 데올릭가의 검술인 은성검을 사용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승부를 보려는 것만은 알았다.
‘뭘 하려는 거지?’
자포자기한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이 아는 클레이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은성검 따위로 뭘 하겠다는 말인가.
‘잘됐어. 만약 단순히 허를 찌르기 위해 은성검을 사용한 거라면…… 정면에서 깨부숴 주마.’
초조했던 건 파비안도 마찬가지였다.
클레이의 체력이 다하는 것보다 먼저 제노바의 검이 부서진다면 자신의 패배였으니까.
차라리 이 한 번의 일격으로 쓰러트릴 수 있다면 그보다 나을 수 없었다.
‘단월신검, 네 번째 절기.’
달을 포식하는 검, 월식(月蝕).
네 가지 절기 중에서도 단연 강력한 초식이다.
사실상 단월신검의 오의라고 불리는 기술.
‘은성검은 방어적인 검술.’
하지만 그 방어는 월식의 앞에선 하찮다.
신검이라 불리는 검술과 고작 왕국에서 손꼽히는 검술에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콰아아앙!
선공은 파비안이었다.
땅을 박차자 산산조각 난 아스팔트 도로가 재차 크게 뒤집혔고, 파비안의 신형은 단번에 클레이를 향해 쏘아졌다.
‘아니?!’
하지만 달려든 건 파비안만이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클레이도 파비안을 향해 탄환처럼 날아들었다.
‘은성검에, 저런 검술이 있었나?’
순간 당황했지만, 파비안은 이내 침착하게 팔을 움직였다.
설령 은성검에 조금 변주를 주었다고 해도 월식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펼쳐졌을 때의 이야기지!”
“……!”
빨랐다. 너무 빨랐다.
월식이 발동하려는 순간, 이미 클레이의 주먹은 월식이 펼쳐지기 직전인 제노바에 닿아 있었다.
‘초견무적.’
은성검의 후반부는 그리 불리며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오직 설정상으로만 존재하여, 파비안이 결코 알 수 없는 검술.
은성검 후반부 제5초식.
은하(銀河).
클레이의 주먹이 폭발적으로 가속하며 제노바의 칼날에 때려 박힌다.
은색의 빛줄기가 퍼져나가며 클레이의 전신이 가속했고, 신성의 묘리를 사용해 한층 마력을 폭발시켰다.
“으, 아아아아!”
모든 힘을 쥐어짜 주먹을 뻗는다.
오직 상대의 빈틈을 노리기에 최적화된 암살검.
은성검의 진가가 발휘되며 잔뜩 금이 간 제노바를 밀어낸다.
쩌적.
처음에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쩌저적!!
하지만 조금씩.
쩌저저적!!!
제노바의 균열이 점차 커져 가기 시작했다.
월식이 사용되기 직전, 불균형하게 들어간 마력만으론 은하(銀河)를 이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클레이의 제노바에는 세계의 기원과 소망이 깃들어 있기에, 정면에서 충돌한다면 파비안의 제노바가 견뎌 낼 턱이 없었다.
콰차아아앙!
유리가 깨져 나가듯 파비안의 제노바가 깨어졌다.
그것을 파비안은 멍한 눈으로 보았다.
‘부서졌다고?’
제노바가 파괴된다는 건 단순히 쥐고 있던 검이 부러진 것과 다르다.
자신의 의지가 꺾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악물어.”
검이 부서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파비안은 그제야 주먹을 움켜쥔 클레이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
자신이 졌다는 걸.
콰아아앙!
폭음이 울리며 파비안의 신형이 튕겨져 날아갔다.
몇 개의 건물을 부수며 벽에 처박혔다.
“……후우.”
클레이는 천천히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벽에 처박힌 파비안을 확인하기 위해 나아갔다.
녀석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
이가 서너 개가 부러진 채 기절한 파비안을 응시하던 클레이는 건틀릿을 검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쥐고 파비안에게 내리찍으려던 순간.
콰아아아앙!
“윽!”
하늘에서 거친 풍랑이 몰아쳤다.
시선을 위로 올리자, 먼 하늘 너머에 작은 태양이 떠 있는 게 보였다.
“하하…….”
어처구니가 없네.
클레이는 하늘을 보며 그런 감상을 담았다.
설마 정말로 태양을 만들어 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 됐나.”
파비안의 목에 대었던 검을 천천히 치웠다.
딱히 연민이 생긴 건 아니다.
‘클레이’로서는 이곳에서 파비안의 숨통을 끊는 게 맞았다.
하지만…….
‘하필 외전을 해피엔딩으로 적어서.’
작가로서는 입장이 다르다.
파비안은 불쌍한 놈이었고, 이 사태는 결국 알타이르에 의해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녀석의 처벌에 대해선 차차 생각을 해 봐야겠지.
“그럼…….”
클레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빛줄기를 보았다.
마치 유성처럼 떨어지는 한 명의 인간.
우선 그녀를 맞이하러 가야 할 것 같았다.
* * *
“으음, 응?”
그란세시아가 눈을 떴을 때는 하늘의 위였다.
‘아, 맞아. 나는 일륜지천검을 사용해서…….’
작은 태양을 만들어 알타이르와 함께 신의 기함을 불살라 버렸다.
아마 작은 먼지조차 남지 않고 원자 단위로 분해됐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도 아래로 떨어진 거구나.’
예상보다 강력한 위력에 그란세시아도 정신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펼친 기술이니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단순히 충격만으로 잠시 기절해 버린 것이다.
‘근데 떨어지는 것치고는 뭔가 이상한데.’
뭔가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것 같은…….
‘누군가에게 안겨 있다고?!’
화들짝 놀란 그란세시아가 살짝 발버둥 치며 흐리게 뜨고 있던 눈을 크게 뜨자…….
“좀 얌전히 안겨있는 게 어떠신가요?”
뚱한 표정의 리야가 자신을 안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거대한 여러 장의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너…… 언제부터 날 수 있게 된 거야?”
“당연히 오늘부터랍니다.”
그렇게 말한 리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란세시아를 노려보았다.
묘하게 서늘한 그녀의 시선에 그란세시아는 몸을 움찔 떨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상태인지라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대체 누굴 생각하고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몸부림친 건지 정말로 궁금하네요.”
“아, 아니…….”
그란세시아는 뭐라 변명할 거리를 생각했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끙끙거리는 그란세시아를 바라보던 리야는 이내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오늘은 넘어가 드리지요. 겨우 일이 마무리되고 있는데 굳이 피곤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차분한 리야의 말에 그란세시아는 하늘 위에서 서울을 둘러보았다.
알타이르와 라르기오스가 쓰러져서인지, 신의 군대는 점차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미 항복한 이들도 보였고, 드래곤들은 이미 리야에게 굴복하여 저항하는 천사와 신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끝난 거야?”
“네. 그런 거 같네요.”
솔직히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수백 년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사태가 드디어 마무리 지어진 것이니까.
동시에 그건 소설의 ‘완결’을 뜻했다.
‘클레이는…….’
모든 게 끝났다는 건 클레이가 파비안을 쓰러트리는 것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점차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그란세시아는 가장 먼저 클레이를 쫓았다.
‘와.’
그리고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클레이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그의 옆에는 꽁꽁 결박되어 있는 파비안이 있었다.
이제 천하칠검을 잃어버렸으니, 사실상 ‘주인공인 파비안’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이겼구나.’
괜히 자신이 이긴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란세시아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려는 클레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려다…… 리야의 주먹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무, 무슨 짓이야!”
“어머나, 음탕한 눈으로 클레이를 보지 말아 주실래요?”
“음, 음탕…… 뭐?”
당황한 그란세시아를 리야는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함께 싸운 전우에게 보내기엔 너무나 차가운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 서늘한 시선은 오래가지 않았다.
리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넘어가도록 할게요. 클레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클레이가? 뭐라고 했는데?”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는 그란세시아에게 리야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비밀이랍니다.”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그란세시아의 얼굴을 즐기며 리야는 클레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사실 클레이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리야는 그란세시아를 놀리고 싶었을 뿐이다.
‘앞으로가…… 조금 기대되기도 하네요.’
사실 리야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이제 모든 일이 마무리 지어졌으니 슬슬 클레이도 자신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볼 터.
그때 가장 큰 적수는 단연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그란세시아였다.
“각오하세요.”
“뭐? 무, 무슨 뜻이야? 갑자기?”
리야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그란세시아로선 파르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싱긋 웃고 있는 리야와 긴장한 그란세시아.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대략 상황을 짐작한 클레이.
그렇게 소소한 일상의 모습으로.
하나의 사건, 그리고 길었던 이야기가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