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21화>
흐름을 타다(2)
철컹! 철컹!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병사와 그들을 이끄는 기사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한껏 서려 있었다.
“오늘, 이 길었던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탈루아의 용사들이여, 돌격하라!”
“와아아아!”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적진이 있는 고지에 도달하게 된다.
테드릭은 투구를 깊게 눌러쓰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역시 놈들은 우리를 최대한 중앙까지 끌어들이려 하는구나.’
카인젤 왕국군은 전선을 점차 뒤로 물리며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게일 공작의 예상대로 적들은 비밀 통로를 통해 후방을 점하고, 사방의 산개했던 부대를 밀집시켜 좌우를 포위하려는 작전인 듯했다.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우세하긴 하나, 정말 그들의 작전대로 사방을 포위당한다면 위험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게일 공작은 적들의 뜻대로 움직여 주었다. 믿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하르트 경.’
그리고 테드릭도 그러한 믿음을 품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대다수의 이들은 어째서 클레이 반하르트에게 그러한 중책을 맡겼는지 의문을 표했지만, 테드릭은 게일 공작의 판단을 지지했다.
‘그라면 분명 해낼 거다.’
테드릭은 그동안 클레이와 검을 겨루면서 그에게 남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까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났다.
다시 한번 굉장한 일을 해낼 것이라고.
* * *
“대장님, 보고드립니다. 적들이 현재 능선을 넘어 중앙의 고지에 거의 접근했다고 합니다.”
“크크크, 멍청한 놈들. 드디어 걸렸구나.”
부하의 보고에 카인젤 왕국 별동대의 지휘관인 포웨트 백작은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멍청한 알딘 놈.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다니.’
알딘 후작이 지난 작전에서 좌천당한 덕에 별동대의 지휘관이 될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활약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포웨트 백작으로선 이 작전을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켜야만 했다.
알딘 후작과 같은 전철을 밟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 모두 빨리 움직여라! 서둘러 본진 놈들을 처리하고, 녀석들의 뒤를 찌르는 거다!”
“오오! 카인젤 왕국에 영광을!”
좁고 어두운 길을 지나 비밀 통로 밖으로 나온 포웨트 백작은 깎아지른 절벽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번 작전에서 어려운 일이라곤 절벽을 오른 것뿐이었다.
별동대에 포함된 기사는 하나하나가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른 실력자들. 포웨트 백작 자신도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기사였다.
본대가 빠진 탈루아 왕국군의 본진을 휘젓는 건 너무나 간단한 임무였다.
그들은 망설일 것도 없이 빠르게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고,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아 절벽 끝에 오를 것으로 보였다.
쿠르릉!
“으아악!”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돌무더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낙석에 정통으로 맞은 기사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설령 소드 익스퍼트에 이른 기사라 할지라도 이 정도 높이에서 추락하고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멍청한 놈! 기사란 놈이 낙석 정도도 피하지 못하는 거냐!”
“대, 대장님! 위를 보십시오!”
목에 핏대를 세워 소리치던 포웨트 백작은 다른 기사의 말에 황급히 위를 올려보았다.
그 순간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낙석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미친!”
혹시 산사태라도 난 건가 싶을 정도다.
포웨트 백작은 한 손으로 절벽을 꽉 붙잡은 후,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쾅쾅!
과연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답게 그는 성공적으로 낙석들을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다른 기사들은 하나둘 낙석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다.
하필 절벽을 타기 위해 가벼운 경장을 입은 터라 작은 돌에 얻어맞아도 치명상으로 돌아왔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이 타이밍에 산사태라고?
그럴 리가 있나. 방금 떨어진 낙석들은 필시 자신들을 노린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젠장! 모두 떨어지는 낙석을 조심…….”
치이이익!
“끄아악!”
떨어지는 건 돌무더기만이 아니었다.
끓는 기름이 절벽을 타고 쏟아져 기사들을 떨어트렸다.
‘젠장, 이런 젠장!’
이런 곳에서 죽을까 보냐.
작전이고 뭐고 우선 이곳에서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포웨트 백작은 지시를 내리는 것도 잊은 채 전력을 다해 절벽을 올랐다.
등을 돌려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절벽을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헉, 헉헉.”
낙석과 끓는 기름 사이를 뚫고 올라온 포웨트 백작은 절벽을 오른 것만으로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안녕하신가, 포웨트 백작?”
겨우겨우 발을 땅 위로 내딛고는 숨을 고르던 그때, 그의 귓가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 남자가 보였다.
흑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서늘한 눈빛의 남성.
그의 갑옷에 새겨진 문장은 탈루아 왕국의 그것이었다.
‘놈은 나를 알고 있다. 잠깐, 그렇다면 설마?’
거친 숨을 내쉬며, 포웨트 백작은 한 가지 생각이 미쳤다.
상대는 마치 자신이 오리라 예상한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작전이 유출된 건가?! 어떤 놈이 감히……!”
포웨트 백작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남은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비밀 통로가 발각된 것은 놀라우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전의 지휘관인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작전의 유출 외에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일단은 여길 벗어나야 한다!’
작전은 실패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었다.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은 그에게 없었다.
‘잠깐,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정신을 번득 차린 그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실력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여서 단숨에 길을 뚫는다면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자신 외에 절벽을 올라오는 이는 없었다.
그제야 포웨트 백작은 깨달았다.
살아남은 이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자, 포웨트 백작. 당신에게 기회를 주지.”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다가와 포웨트 백작의 심장에 검을 겨눴다.
“얌전히 투항하겠나? 아니면 이대로 동료들을 만나러 가겠나?”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포웨트 백작에겐 어떤 악마의 속삭임보다도 두렵게 느껴졌다.
* * *
“우리 친절하신 포웨트 백작의 말에 따르면, 이 비밀 통로는 적의 본진까지 연결되어 있다.”
포웨트 백작을 포로로 사로잡으며 몇 가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목숨이 아까웠는지, 놈은 특별한 심문을 할 것도 없이 술술 정보를 풀었다.
비밀 통로의 내부가 어떤지, 그리고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등등 알짜배기 정보를 예상외로 손쉽게 얻은 터라 나는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멀리까지 연결되어 있단 말입니까?”
젤빈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적의 본진은 라크메스 능선의 허리라고 할 수 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카인젤 왕국의 국경과도 상당히 인접해 있는 장소로, 여기서부터 그 거리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었다.
인위적으로 이런 통로를 만든 마족의 힘에는 정말 감탄이 흘러나왔다.
‘중급 마족의 힘이 이 정도면 상급은 어느 정도야?’
포웨트 백작의 말에 따르면 현재, 적진에 남아 있는 마족은 중급.
다행히 다른 마족은 없는 것 같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다.
“마족이 더 남아 있었다니…….”
적을 막아 내고 한껏 들떠 있던 기사들은 마치 냉수를 뒤집어쓴 얼굴이었다.
아르투하 산맥에서 있었던 전투,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인 테드릭 이튼이 하급 마족에게 기습이었다지만 단 한 방에 쓰러졌다는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포웨트 백작의 입에서 중급 마족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중급 마족을 쓰러트리려면 소드 마스터 수준의 실력자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군요.”
그 젤빈조차도 중급 마족을 상대하는 건 걱정되는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겁에 질린 채로는 될 일도 안 되는 법.
나는 강한 어조로 기사들을 독려했다.
“모두 마족은 걱정하지 말고 작전에 집중해라.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란세시아의 말대로라면 중급 마족까지도 상대할 만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야. 이번엔 확실한 거지?’
나는 살며시 그란세시아에게 물었다.
저번 용의 재해 때 한 번 데인 게 있어서 약간 의심이 되었다.
[그때는 아마라고 덧붙였잖아! 이번에는 확실해. 넌 마족에게는 극상성이나 마찬가지이니 중급까지는 어찌어찌 이길 수 있을 거야.]어찌어찌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아주 약간 불안했지만 한 번은 더 믿어 주기로 했다.
내가 묘한 불안감을 다스리고 있을 때, 젤빈은 내가 한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는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과연! 대장님은 아르투아 산맥에서 마족을 압도하신 적이 있으셨죠?”
“그, 그랬지.”
그게 그렇게 보였었나?
뭐, 아예 잘못된 말은 아니지. 당시 게일 공작을 공격하려던 마족을 물러서게 만들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을 할 수는 없었다.
기습이라지만 하급 마족이 테드릭을 일격에 쓰러뜨릴 정도로 강하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놈들을 처음부터 이용하지 않았던 거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카인젤 왕국이 처음부터 마족의 힘을 이용했더라면, 전쟁은 단숨에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한 내 의문에 그란세시아가 끌끌 웃으며 답했다.
[마족은 인간을 위해 그리 쉽게 나서 줄 족속이 아니야. 왜 카인젤 왕국을 돕는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자신이 이득이 될 때만 움직여. 만약 ‘전쟁의 승리’가 놈들이 바라는 것이었다면 이미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거야. 현재 놈들은 대충 형식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느낌이 강해.]‘즉, 마족은 전쟁의 승패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건가?’
[그럴 확률이 높지. 아무튼 카인젤 왕국과 마족들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것만은 확실해.]모종의 거래라…….
뭐, 무슨 이유에서든 마족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 않는다면 고마운 일이었다.
‘이제 정말 코앞이다.’
이번 작전을 성공시켜 전쟁을 끝마치는 것으로 나의 목적은 달성이다.
게일 공작은 반드시 나의 공을 기억해 주고, 앞으로 큰 도움이 되어 주리라.
[그런데 너, 그 하녀는 왜 공작의 곁으로 보낸 거야? 그것도 무슨 작전이야?]그란세시아가 문득 떠올랐다는 것처럼 물었다.
게일 공작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후방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런 게일 공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모네를 보내 둔 상태였다.
“아니? 특별한 작전은 없는데?”
[그럼 걔를 왜 공작한테 보네?]“행운의 토템.”
왕국의 희망이라는 게일 공작 곁에 모네가 있다면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을 뿐이다.
[……너 나중에 이상한 부두술 같은 거에 심취하지 마라.]그란세시아가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 * *
조르르륵.
“공작 각하, 차 한잔 드시겠어요?”
“음. 고맙군.”
게일 공작은 모네가 내민 따뜻한 찻잔을 받은 뒤, 차의 향을 맡으며 감탄했다.
“향이 몹시 좋구나.”
“저희 고향의 자랑거리입니다. 각하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게일 공작은 살며시 미소 짓는 모네의 모습에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도대체 왜 자신의 하녀를 내게…….’
모네는 현재 클레이의 권유로 게일 공작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뜬금없는 제안에 황당하기도 했지만, 게일 공작은 이내 이것도 무슨 의중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그동안 그가 지켜본 클레이는 실없는 행동을 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혹시 이 하녀가 만약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자신을 보호해 줄 실력자인가?
‘음, 그 확률이 제일 높겠군.’
하녀로 위장하고 있다면 적도 방심할 터.
게일 공작은 자신의 추측이 제법 그럴싸하다고 느꼈다.
“자네, 혹시 검을 좀 쓸 줄 아나?”
“부엌칼이라면…….”
“그렇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다.
“…….”
“…….”
어색한 침묵 속에서 게일 공작은 후에 클레이에게 이유를 꼭 묻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