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2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22화>
흐름을 타다(3)
“젠장, 신세가 이게 뭐야?”
어두컴컴한 비밀 통로 안, 타오르는 횃불에 시야를 의지하던 한 기사가 중얼거렸다.
지금쯤 적진에 침투했을 별동대 공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배알이 꼬였기 때문이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최소한 눈먼 화살은 안 맞지 않겠나?”
“크큭.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떠드는 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개미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지루함을 버티기 힘든 탓이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이곳에 적이 나타나리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공허한 동굴 사이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쉬이익! 푸욱!
“커억!”
그때였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화살이 한 기사의 목에 틀어박혔다.
“저, 적이다! 다들 빨리……!”
“경계를 설거면 제대로 섰어야지.”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재빨리 소리쳤지만,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목이 꿰뚫려 말을 끝맺지 못했다.
뒤이어 다른 기사들의 목도 차례차례 꿰뚫렸다.
“으아아악!”
전투는 싱거울 정도로 간단했다.
긴장을 푼 채 무장을 해제하고 있던 기사들은 발악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부상자는 없겠지?”
“예, 물론입니다.”
클레이는 검의 피를 털어 내며 숨을 고르는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역시 소드 익스퍼트 이상의 기사들이라 그런지, 그들은 특별히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제 역할을 다했다.
‘특히 젤빈, 이놈 진짜 괴물이잖아?’
젤빈이 홀로 쓰러트린 기사들의 숫자는 무려 열둘 중 셋이었다.
리비나 가문의 단천패검은 과연 그 위명에 걸맞게 패도적이며 빈틈이 없었다.
‘경지는 바이안보다 떨어지지만…….’
당장의 실력으로는 뒤처질지 몰라도, 재능은 바이안보다 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튼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기사가 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정보대로라면 입구에는 두 명의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한 명은 내가 처리할 테니, 다른 한 명은 리암이 활로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리암이라 불린 기사는 클레이의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그들은 이전과 달리 클레이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클레이는 포웨트 백작을 사로잡았을 때를 비롯해, 방금 전 전투까지 가장 앞장서서 움직였다.
그런 모습들은 그가 말만 앞서는 인물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실력을 증명해 보였는데 계속해서 트집을 잡을 만큼 어리석은 이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 그럼 다시 서둘러 이동한다! 본대가 벌써 적진에 당도했을지도 모르니 서두르자!”
“알겠습니다!”
* * *
라크메스 고지.
능선의 꼭대기에 위치한 장소에 있는 카인젤 왕국군의 군영이 어렴풋이 보이자, 탈루아 왕국의 기사들은 뒤로 물러서는 카인젤 왕국군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적의 본진이 보인다! 모두 방심하지 말고 천천히 전진하라!”
테드릭은 힘차게 소리치며 앞에서 덤벼드는 병사를 베어 냈다.
벌써 전투가 시작된 지 여섯 시간이 넘은 탓에 조금씩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방심하면 안 된다. 공작 각하의 말에 따르면 녀석들은 아직 제대로 공격을 시작한 것도 아니야.’
이제야 고지에 도달했다.
놈들이 원하던 장소까지 올라왔으니 이제 놈들도 본격적으로 공격해 올 터였다.
“하하하! 그 위명이 쟁쟁한 테드릭 이튼도 다 됐구나! 멍청하게 무덤까지 군사를 끌고 올라오다니!”
카인젤 왕국군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와 동시에 숨어 있던 카인젤 왕국의 병사들이 좌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쏴라!”
콰콰콰콰쾅!
적 지휘관의 외침에 카인젤 왕국군의 진영에서 세찬 비와 같이 화살과 마법이 쏟아졌다.
“방패를 올려 적의 화살을 방어하고 진형을 유지하라! 마법사들은 적의 마법을 방어하도록!”
이미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기에 대처는 어렵지 않았다. 탈루아 왕국군은 갑작스런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방어진을 구축했다.
그들은 방패와 장벽에 가해지는 충격을 버티며 거북이처럼 천천히 전진했다. 수적으로는 우세하긴 했으나 지형적 불리함 탓에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멍청한 놈들! 이젠 빠져나가려 해도 늦었다!”
카인젤 왕국군의 지휘관의 도발이 울려 퍼졌지만 테드릭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조용히 눈을 빛냈다.
‘여기까지도 예상대로다.’
모든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클레이가 작전을 성공해 주기만 한다면, 그가 적진을 휘저어 줄 때까지 잠시 버티기만 한다면 적은 알아서 무너져 내리리라.
지금은 그저 조용히, 때를 기다릴 때였다.
* * *
‘대체 저놈은 뭐야?’
필립은 앞서 뛰어가는 클레이를 보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클레이가 소드 유저임에도 소드 익스퍼트를 상회하는 실력을 지녔다는 건 알겠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두 눈으로 보았으니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데?’
비밀 통로를 빠져나온 일행은 현재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빽빽한 나무들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상황.
그러나 클레이는 마치 훤히 보이는 듯 망설임 없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 나갔다.
이뿐이라면 그다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동쪽 100미터, 정찰별이 다가오고 있으니 회피해서 움직인다.”
“이쪽이 경계가 허술하군. 따라오도록.”
적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아차리고 한 차례에 교전도 없이 움직이다니.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했다.
이런 클레이에게 놀라지 않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오직 젤빈만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태연하게 클레이의 뒤를 쫓았다.
[야, 야. 입꼬리 올라간다. 표정 관리 안 해?]‘흠, 흠흠흠.’
뜨거운 시선이 쏟아지니 그 사실을 클레이도 모를 수가 없었다.
평생 이런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없던 그인 터라 입꼬리가 간질거렸다.
[내 능력 가지고 생색내기는. 날 만난 걸 운 좋게 생각해!]그란세시아가 톡톡 쏘아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클레이를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능력 활용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이건 이놈의 재능인 건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잘 다루어 내는 건 별개에 문제다. 실제로 가진 바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상당히 흔하다.
하지만 클레이는 습득한 능력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어떤 능력이든 자신에게 맞춰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용해 냈다.
‘……어찌 보면 운이 좋은 건 나도 마찬가질지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시모사의 눈을 얻은 것이 클레이인 게 행운이라고 여겨졌다.
그라면 자신의 혼이 ‘왜’ 시모사의 눈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아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그란세시아는 나름 최선을 다해 클레이를 돕기로 했다.
[마족의 기운이 느껴져! 위치는 남동쪽 3킬로미터!]‘고맙다!’
클레이는 나무에 몸을 숨기며 이제 시야에 들어온 적진을 살폈다.
예상대로 카인젤 왕국군의 군영에 남아 있는 병사와 기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측이 가장 적의 수가 적다. 시선을 돌린 후 그쪽으로 단번에 진입한다. 리암!”
“네!”
나의 외침에 리암이 불이 붙은 화살을 군영 천막에 쏘았다.
쐐애액! 화르륵!
“부, 불이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갑자기 불길이 치솟자 단번에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돌입한다!”
클레이는 재빨리 눈에 띄지 않는 길을 통해 움직였다.
‘아마 마족은 아마 카인젤군의 총사령관 곁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번 카인젤군의 총사령관은 무려 왕자였다.
제3왕자 볼프란.
나름 왕의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자이니 상당한 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마족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왕자를 지키고 있을 테지.
“젤빈, 내가 말한 대로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젤빈은 늘 그랬듯 내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클레이는 그런 녀석을 신기하다는 듯 응시했다.
“내 작전이 위험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 건가?”
“대장님은 영웅이니까요. 범인인 저로선 알지 못하는 깊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웅이라는 말을 눈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젤빈의 모습에 클레이는 웃을 수 없었다.
‘영웅이라.’
예전이라면 생각도 하지 못할 명칭이었다.
몰락한 백작가의 자제이며, 한낱 소드 유저인 자신이 듣기엔 과분한 명칭이었으니까.
하지만 우습게도, 지금은 그 말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 * *
“적은 현재 발이 붙들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작전대로군. 포웨트 백작으로부터 보고는 아직 오지 않았나?”
“예. 아직 소식은 없습니다.”
“하긴, 거리가 있으니 그럴 만도 하군.”
볼프란은 화려한 의자에 앉아 턱을 주억거렸다.
탈루아군이 코앞까지 접근해 있음에도 그는 지극히 여유로웠다.
지금 놈들은 포위되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바보같이 방어만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어떻게든 돌파해 볼 생각인 듯했지만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다.
시간을 끌수록 유리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결국 포기하고 후퇴할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군.’
바로 그때, 적의 본진을 급습했던 이들이 후미에서 기습을 가하리라.
그 순간 당황한 녀석들을 섬멸하면 전쟁은 끝이었다.
반면 베일은 영 싱겁다는 얼굴이었다.
“시시하군요.”
“하하, 다 베일 공 덕이네. 비밀 통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있지도 못했을 테지.”
본래대로라면 아르투하 산맥에서 기습 작전이 실패한 순간, 패배를 시인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족이라는 존재가 전쟁의 향방을 뒤집어 놓았다.
“이래서야 피 맛을 보려면 상당히 시간이…….”
거기까지 말한 베일이 갑자기 입을 다물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쉬이익!
천막을 꿰뚫으며 날카로운 화살이 볼프란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허어억!”
천막을 꿰뚫고 날아온 화살에 볼프란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고 할까, 그 화살은 베일의 손에 붙잡혀 볼프란의 코앞에 멈춰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밖은 대체 무얼하고 있는 거냐!”
볼프란은 식은땀을 흘리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에 베일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손을 위로 들었다.
“그거야 이미 다른 기사들은…….”
촤아아악!
그의 팔에서 붉은 핏방울이 새어 나오며 마치 칼날과 같이 사방으로 퍼졌다.
피의 칼날은 방금 전까지 그들이 있던 천막이 산산이 찢겨지며 흩어졌다.
“이, 이게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방금 전까지 볼프란에게 전황을 보고하던 기사는 갑작스런 베일의 행동에 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베일은 태평한 모습으로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왕자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뭐, 우선 자신의 몸부터 지켜야 할 것 같지만 말입니다.”
“그게 무슨…… 컥!”
그 기사가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그의 가슴을 꿰뚫고 붉은 검기가 실린 검이 비쭉 튀어나왔다.
그 뒤에 서 있는 건 흑발과 적발을 지닌 두 명의 기사였다.
그들은 마족을 경계하며 볼프란을 지그시 응시했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볼프란의 눈빛이 불안정하게 뒤흔들렸다.
사방에 군사가 깔려있건만 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흑발의 기사, 클레이 반하르트는 씨익 웃으며 그 의문에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친절하게 뚫어 주신 길로 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