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4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24화>
마(魔)를 가르는 검(2)
순수한 힘이나 실력으로는 중급 마족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몸을 웅크리고 때를 기다렸다. 놈을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순간이 올 때까지.
‘신혈은 놈들에게 있어 맹독.’
설정을 통해 확인한 신혈의 능력은 단순히 질병이나 독에 면역이 되는 걸로 끝이 아니었다.
만약 상대가 마(魔)에 속한 이라면 그 존재를 멸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나는 혈 마법을 익혀 알고 있었다.
놈이 손에 쥐고 있는 피의 검은 마법을 해제하게 될 시, 다시 몸 안으로 회수된다는 사실을.
그럼 검에 묻었던 내 피는 놈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갈 테지.
더불어 내 살이 찢기며 튄 피 또한 놈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커억! 크으으윽! 제, 젠장! 왜 마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냐!”
놈은 비명처럼 외치며 팔을 뻗었다.
그 손에 모이던 마력이 흩어지며 그 행동은 단순한 허우적거림으로 끝났다.
덕분에 생겨난 빈틈을 향해 나는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아앙!
“컥!”
마치 망치로 후려친 것 같은 소리가 울리며 베일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놈은 비틀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반지는, 대체 뭐냐……. 거기다 그 주먹은 대체…….”
녀석은 시모사의 눈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
반지를 낀 주먹으로 한 번 후려칠 때마다 놈의 피부는 녹아내렸고, 방어구는 문드러졌다.
뿐만 아니라 내가 휘두르는 주먹은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성천무극(聖天武極)」
그란세시아의 성명절기이자, 기본이 되는 권법.
나는 지금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은 고작 한 걸음 발을 내딛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말이야.]그란세시아는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중급 마족 따위를 쓰러뜨리는 데는 충분하지.]거만한 말씨였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천무극은 내가 지금까지 익혔던 어떤 기술보다도 상위에 존재했다.
개연성을 달성하기엔 시간도 부족했고, 난이도도 높은 터라 내가 익힌 건 고작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콰앙! 콰아앙!
놈의 얼굴을, 복부를 가슴을 주먹으로 후려갈기자 놈의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신혈에 중독되고, 연신 머리를 두들겨 맞은 베일은 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단 한 걸음, 거기서 시작된 마력과 힘의 유동은 주먹에 끝에 도달했을 때 믿을 수 없는 위력을 발휘했다.
“내가, 진다고? 이 베일 가베르가?”
베일이 비틀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놈은 현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고작 인간에게? 그것도 마력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쓰레기에게?”
말끔하게 입고 있던 옷은 넝마가 되었고, 얼굴과 몸의 피부는 녹아 흉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베일은 아직 죽지 않았다. 신혈에 중독되고 선천무극의 묘리를 담은 주먹으로 연신 두들겨 맞았음에도 죽지 않았다.
중급 마족, 그것도 뱀파이어의 생명력은 가공할 정도로 질겼다.
“까불지, 마라.”
으득!
놈은 내 주먹에 맞고 쓰러지는 동시에 몸을 데굴데굴 굴러 후속 공격을 피했다.
재빨리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놈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흙을 한 움큼 움켜쥐고 내 눈을 향해 집어 던졌다.
“윽!”
설마 마족이 이런 식으로 공격해 올 줄은 몰랐던 터라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놈이 굴러서 향한 곳이 어딘지 깨닫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놈은 아까 녀석이 죽인 기사의 시체로 향해 있었다.
“젠장!”
나는 황급히 달려가 발로 놈을 그대로 차올렸다.
그러자 기사의 시체에 몸을 파묻고 있던 녀석의 몸이 꺾이며 튕겨져 날아갔다.
“크, 크크, 쿨럭!”
몇 미터를 나뒹군 놈의 입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바로, 죽은 기사의 시체에서 피를 흡혈한 흔적이었다.
“아직, 부족해…….”
녹았던 피부가 일부 재생한 게 보였다.
마력도 일부나마 다시 운용할 수 있게 됐는지, 베일은 그림자를 타고 순식간에 밖으로 빠져나갔다.
[저놈 도망치는데? 어디로 가는 거지?]‘도망치는 게 아니야.’
놈은 잠시 물러났을 뿐이다.
당장 무모하게 싸워 봐야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잠깐, 그럼 설마…… 저놈이 노리는 건.]‘그래, 몸을 회복하려는 거겠지.’
베일이 현재 향하는 곳은, 바로 코앞에 있는 전쟁터였다.
시체가 넘치는 그곳에 간다면 놈은 단번에 몸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 낸 상황인데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젤빈! 놈은 내가 쫓을 테니, 넌 왕자를 데리고 빠져나가라!”
마족을 쫓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신히 붙잡은 왕자를 어떻게든 우리 진영까지 끌고 가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그 사실을 이해한 젤빈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중급 마족이나 되는 놈이 꽁무니를 빼며 도망갈 줄이야.’
나는 서둘러 놈을 쫓기 시작했지만,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는 베일을 따라잡기란 역부족이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흔들렸다.
‘젠장, 나도 저런 기술만 있었어도…….’
[그 유성이라는 초식을 쓰면 쫓을 수 있지 않겠어?]‘뭐? 유성을 쓰면 따라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 뒤에 어떻게 놈을 상대하라고?’
은성검 후반부, 제3초식 유성.
순간적인 도약으로 단숨에 적과의 거리를 좁혀 꿰뚫는 그 기술이라면, 놈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거리를 따라잡으려면, 적당히 조절해서 쓰는 게 아닌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는 놈을 따라잡는다고 해도 내 체력이 바닥나 있을 터. 거리를 좁혀도 그 이후 놈을 쓰러뜨릴 수 없다면, 오히려 상황만 악화시킬 게 뻔했다.
[무슨 소리야? 그 기술에서 도약만 응용하면 되잖아. 이제야 왜 여태 사용하지 않았나 알겠네.]도약만 응용한다고?
은성검의 설정을 머릿속으로 뒤적여 봤지만 그러한 내용은 없었다.
[설정에 매몰되지 마.]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란세시아가 말했다.
[설정이라는 건 분명 너에게 남들보다 많은 걸 알게 해 주고 있어.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한 사람이 규정지은 내용에 불과하잖아?]그제야 비로소 그란세시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너무 설정에 집착했어.’
확실히 설정 능력은 아버지가 작품에 설정한 모든 것을 알려 준다.
하지만 그것은 ‘설정’된 것에 한해서이지, 그게 ‘전부’임을 뜻하진 않는다.
설정은 바꿀 수 있다.
이미 나는 그걸 몇 번이나 시도했고, 성공했다.
악역을 엑스트라로 만들었던 것처럼, 은성검의 설정을 개량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나는 곧바로 지금까지 내가 익힌 것들을 머릿속에 나열해 보았다.
반하르트가의 도수명검에 포함된 보법과 은성검 전반부에 포함된 보법, 그리고 은성검 후반부 유성을 사용할 때 펼치는 보법.
마지막으로 성천무극의 한 걸음까지.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각기 정해진 설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 틀에서 벗어나 생각해 보는 거다.
‘어떻게든 써먹을 수는 있을 거 같은데, 문제는…….’
각각의 요소를 뒤섞는다면,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기술은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을 사용할 능력이 내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때, 그란세시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집중해.]그 순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변하며 어떠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모사의 눈이 지닌 능력, 통찰안이 발동된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기 시작한 흐름을 따라 천친히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발끝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마력이, 이내 전신을 순환하며 퍼져 나갔다.
‘……이게 마력을 다룬다는 건가?’
소드 유저가 된 이후, 나는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나는 마력을 다루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지금에서야 진정한 의미로 마력을 다룬다는 게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땅을 박차자, 신형이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나아갔다.
순간적인 속도는 분명 유성을 사용할 때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지속성이라는 한계점을 극복한 ‘나만의’ 보법을 사용해 낸 것이다.
[처음치고는 썩 괜찮네. 그 기술의 이름은 정했어?]‘이름?’
통찰안을 통해 내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이 보였다.
길이 보이며, 여태 연결되지 않았던 내 안의 흐름이 급격히 안정되는 게 느껴졌다.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마력량이 늘어나며, 몸 안에 내재된 그릇의 크기가 한층 넓어졌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유성보(遊星步).’
이제 곧이라고 생각했던 벽을 방금 넘어섰다는 사실을.
“저, 저게 뭐야!”
“살려 줘!”
순식간에 풍경이 스쳐 지나가며 양국의 본대가 전투 중인 장소까지 도달했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사이로 이질적인 게 눈에 띄었다.
베일은 그림자를 타고 쉴 새 없이 이동하며 병사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능력으로 사방을 휩쓰는 마족의 등장에 전장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기사들은 병사들을 보호하고 최대한 뒤로 물러나라! 놈은 내가 맡겠다!”
그나마 테트릭이 나서서 베일의 움직임을 억제해 준 덕에 피해는 최소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베일이 흡혈을 계속하며 몸을 회복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막아 내기란 힘들어 보였다.
“크크크크! 모조리 죽여 나의 양분으로 삼아 주마!”
시모사의 눈에 적중당해 녹아내렸던 피부도, 만신창이가 되었던 몸도 회복되고 있었다.
그나마 신혈의 영향은 남아 있었지만, 그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불투명했다.
놈은 또 다른 먹이를 찾기 위해 주변을 훑다가 나를 발견했는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큭!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하지만 이제 곧이다. 마력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바로 네놈을 쳐 죽여 주마!”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됐음에도 놈은 나를 상대하는 게 꺼려졌는지, 바로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어디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검 한 자루를 손에 쥐었다.
‘어떤 게 놈의 흐름인 거냐.’
전장에는 수많은 흐름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그곳에 딱 하나 이질적인 흐름이 있었지만, 수많은 흐름이 섞여 보기 힘들었다.
‘집중하자.’
수많은 흐름을 어지럽히는 단 하나의 변질자를 잡는다.
전장에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흐름들을 하나하나씩 지워 나갔다.
그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 끝에 이내 오로지 단 하나만이 또렷하게 보였다.
검붉은 색깔의 빛이었다.
나는 유성보를 사용하여 그 빛을 따라 달렸다.
“젠장!”
한 병사를 습격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던 베일은 곧장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으려 했다.
또다시 시간을 소모한다면 놈은 결국 몸을 완벽히 회복할 터.
여기서 반드시 끝을 봐야만 했다.
나는 쥐고 있던 검을 역수로 쥐고, 칼날의 방향을 등 뒤로 향했다.
‘은성검 후반부, 제1초식 신성(新星).’
전신을 휘돌던 마력이 검신으로 모여들더니, 이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순간적으로 방출되는 마력을 추진력으로 삼아, 내 몸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쏘아졌다.
“──질긴 놈이!”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베일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주변의 시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녀석의 팔에 뭉쳤다.
이제 놈의 마력은 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이다.
제대로 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흔들거렸지만, 인간을 참살하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찢어발겨 주마!”
베일은 정면으로 달려드는 나를 향해 모든 힘을 쥐어짜, 붉은 피로 이루어진 거대한 오른팔을 휘둘렀다.
[클레이!]그란세시아의 외침이 비명처럼 들렸다.
일촉즉발의 순간.
하지만 내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무채색의 세계 속에서 보이는 녀석의 흔들리는 흐름을 보며,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사아아아!
그 순간, 검신이 붉은빛으로 물들며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혈 마법 ‘피의 검’.
마족 칼리오의 설정을 통해 이 능력을 손에 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의 마력량으로는 사용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러나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지금이라면.
‘거기다 검에 피를 덮어씌우는 정도라면……!’
한 자루를 통째로 만드는 게 아닌, 이미 있는 검 위에 피로 도료를 바르듯 덮어씌우는 거라면 지금의 나라도 충분히 가능했다.
“어떻게 네놈이 혈 마법을?!”
경악하는 베일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대답 대신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신혈로 덮인 적색의 검을.
카가가각!
적색의 검은 거대한 피의 손을 두부처럼 가르며 전진했다.
피의 갑주로 덮인 녀석의 손을, 이어 놈의 팔뚝과 팔목을 반으로 가르며 단숨에 녀석의 목전에 도달했다.
크게 치켜떠진 베일의 눈동자에는 오직 적색의 검만이 비치고 있었다.
“안 돼──!”
서걱!
짧은 단말마와 함께 베일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동시에, 시끄럽던 전장이 단숨에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