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5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25화>
개선식(1)
클레이가 마족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탈루아 왕국의 본진, 게일 공작의 막사에서는 차분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과연, 그래서 반하르트 경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로군.”
“예.”
모네와 함께 막사에 머무르는 동안 게일 공작은 그간 궁금했던 몇 가지를 모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칼른 백작에 대해서는 소문이 자자했었지.”
칼른 반하르트 백작이 미쳐 버린 이후 반하르트 백작가가 몰락했다는 사실은 왕국 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였다.
게일 공작 또한 원하지 않아도 귀에 들려왔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칼른 반하르트가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몇 차례 진행하려 했으나 번번이 가로막혀 실패했다는 것을.
“……이상하군.”
“네?”
“소문을 듣고 의아한 마음은 있긴 했지만,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다니 더더욱 이상하게만 느껴지네. 분명 그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긴 하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본다면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가 시도하려 했던 일들 중 일부는 기적처럼 큰 성공을 이루어 냈지. 과연 아무도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을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흠.”
게일 공작은 엄지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아직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니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개입이 있던 건지도 모르겠군.’
당시 백작이 일을 벌이려고 했을 때 접촉했던 이들에 대해 알아봐야만 할 것 같았다.
정말 가능성이 없는 사업이라고 판단해서 투자를 포기한 것인지 말이다.
“근데 공작님, 정말 도련님에겐 별일 없으실까요?”
“반하르트 경은 유능한 인물이니 걱정할 것 없네.”
“……도련님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은 어떻게든 해내시니까요.”
우울한 어조로 말하는 모네의 모습에 게일은 재차 클레이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다.
‘어떻게든 해낸다라…….’
확실히 어떻게든 했다.
자신의 독살을 막고, 바이안을 잡았을 때도.
정체불명의 괴물을 막은 것도.
만신창이가 되어 어떻게든 했다.
그리고 그런 행보는 과거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어린 나이부터 백작가를 홀로 지탱하다니.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군.’
칼른 반하르트의 광증에 대한 소문이 돈 건 10년 정도 전이다.
즉, 클레이가 백작가를 지탱하기 시작한 건 10대 초중반의 나이부터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록 가문의 권세가 몰락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나마 끝날 수 있었던 것도 엄청난 일이다. 반하르트 백작가의 영지를 노리는 이들이 한둘은 아니었을 테니까.
가신들이 하나둘 백작가를 떠나긴 했어도 영지민의 평가는 상당히 높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영지민을 돌봄에는 부족함이 없었다는 의미다.
게일 공작은거기까지 읽은 뒤 보고서를 책상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모네 양.”
“예, 각하.”
긴장한 얼굴로 대답하는 모네를 향해 게일 공작은 쓰게 웃었다.
“자네는 아마 반하르트 경이 내 눈에 들지 않기를 바랄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내 곁에 있다면 필시 위험한 일이 뒤따를 테니까.”
암살 건도 그렇고, 습격 작전 때도 그렇다.
그리고 이번 별동대도 사실상 게일 공작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유능한 인물이 쉬는 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이 하녀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리라.
“자네는 설령 힘들고 가난하더라도 자네의 주인이 안전하길 더 소망하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자네의 바람은 들어줄 수 없을 거 같군.”
게일 공작은 이번 일로 깨달았다.
클레이 반하르트는 고작 몰락한 백작가의 자제로서 끝날 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먼저 사과하마.”
별동대 건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별동대의 대장으로서 그가 세울 수 있는 가장 큰 공은 적군의 총사령관인 볼프란 왕자를 사로잡는 것이다.
하지만 게일은 클레이가 고작 거기서 끝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생각처럼 클레이가 그 이상의 성과를 낸다면…….
“나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 생각이네.”
곧 있을 아스크탈린 제국의 건국제.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두 모이는 그 자리에 그를 참여시킬 생각이었다.
* * *
고요한 정적이 전장에 내려앉았다.
탈루아 왕국군과 카일젤 왕국군은 싸우던 걸 멈추고 어느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미 이 전쟁에 승패가 정해졌음을.
그리고 그 승패가 한 명의 기사에 의해 결정됐다는 걸 말이다.
“방금 마족이었지? 그것도 평범한 마족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며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을 흡혈하던 괴물이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조차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 것으로 볼 때 최소 중급의 마족.
그런 마족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린 것이다.
“반하르트 경……?”
특히 직접 손속을 섞었던 테드릭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았다.
검기(劍氣)를 실은 검으로도 피부 가죽을 한 장 벗겨 내는 것도 힘든 상대다.
그런데 방금 클레이의 검은 그러한 마족의 근육과 뼈를 단번에 절단해 낸 것이다.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어.’
테드릭은 클레이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이제 곧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때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다니!
‘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크윽!”
그러한 생각을 이어 나가던 그때, 클레이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테트릭은 황급히 다가가 클레이를 부축했다. 그의 몸은 지나치게 차가워져 있었다.
“반하르트 경, 괜찮은가!”
그의 물음에 클레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틀비틀 움직여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두어 번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분명 서 있는 것조차 곤욕일 터다.
그럼에도 클레이는 약한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오른팔을 높이 들었다.
마족의 목을 베었던 붉은 검을 하늘로 향하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아.”
그는 이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스스로 그 사실을 외칠 힘조차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제야 테드릭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이겼다.”
클레이를 대신하여 온 힘을 다해 이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테드릭 이튼의 역할이었다.
“우리가 이겼다! 우리, 탈루아 왕국군의 승리다!”
비록 최후의 외침은 자신의 것이었지만, 이 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알 것이다.
이 전쟁의 주역이 누구였는지.
클레이 반하르트라는 몰락한 백작가의 후계자가, 이 전쟁을 종결시켰다는 것을.
“우리의 승리다!”
고요한 전장에 울려 퍼지는 한 기사의 외침과 함께.
그렇게 하나의 작은 전쟁은 끝이 났다.
* * *
전쟁의 종결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탈루아 왕국은 카인젤 왕국이 농성하던 라크메스 능선을 받아 낼 수 있었고, 막대한 보상을 뜯어냈다.
카인젤 왕국에선 미약한 저항을 하려 했으나, 마족과 결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륙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더불어 주신 알타이르의 신전에서 조사가 들어갔으니 사실상 카인젤 왕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아마 왕국의 수도로 가는 게 아닐까. 개선식이 있다고 했으니.’
나는 반쯤 침대로 개조된 마차에 누워 그란세시아와 대화했다.
미셸 덕분에 몸의 외상은 대부분 회복됐지만, 피를 너무 흘린 탓에 아직도 몸을 제대로 가누진 못하고 있었다.
‘역시 모네를 게일 공작과 두길 잘했어. 운이 좋았잖아.’
[……그거 정말로 효과가 있다고 믿는 거야?]‘여태 모네를 믿어 일이 안 풀린 적은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잖아.]이 녀석은 성녀라는 녀석이 참 믿음이 부족하군.
뭐, 사실 나도 반쯤 장난이긴 했다.
하지만 모네의 행운에 대해선 후에 확실히 확인해 두긴 해야겠지.
‘후에 어떤 식으로 발동되는지만 알면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니까.’
혹시 개연성을 이용해 내가 얻을 수 있나 싶었지만, 어처구니없는 조건뿐이라 포기했다.
이걸 얻으려면 족히 몇 년의 시간을 쏟아야 되고, 그조차 운이 따라야 얻을 수 있었다.
“도련님! 제대로 눈감고 주무세요. 아직 몸도 전부 회복되지 않으셨으면서.”
그때, 마차에 함께 타고 있던 모네로부터 잔소리가 돌아왔다.
내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만해도 반쯤 실신했던 녀석이지만, 내가 회복되기 무섭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내 인생에 모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잔소리를 한 건 처음이었다.
[공에 눈이 멀어 목숨을 내놓지 마라, 랬던가? 틀린 말은 아니네. 너 그러다 죽는다.]‘……무서운 소리하지 마라. 나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한 거야.’
[마족에게 달려들었을 때는 나도 식겁했어. 너 죽으면 나도 큰일이거든?]확실히 그 점에 대해선 변명하기 힘들었다. 피의 칼날을 사용했을 때 소모된 피가 조금만 더 많았어도 위험했을 테니까.
‘그보다 마차 안에만 있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네.’
승리를 선언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인상을 군중에게 확실히 박아 넣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몰락한 반하르트 백작가의 명예를 되찾고, 여러 가지 치하의 말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태 조용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략 며칠간 얌전히 마차에 누워 이동했다.
[너 왕따 당하는 거 아냐?]‘에이, 설마. 내가 얼마나 공을 세웠는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조금 불안했다.
설마 나 그냥 쓰고 버린 패가 된 건 아니지?
이렇게 눈에 띄었는데 그냥 조용히 넘어갈 생각인가?
“도착했습니다!”
그때, 마부의 외침이 들렸다.
동시에 마치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엥?”
나는 당황해서 몸을 움츠렸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바로 고급스런 복장을 입은 하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옷을 벗어 주십시오!”
“어, 어어?”
대체 뭔 일인가 싶어 모네를 보자, 모네는 모네대로 당황했는지 허둥지둥 다른 하녀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도, 도련님의 준비는 제가 돕겠습니다! 무, 무슨 일인지 알려 주세요.”
“곧 국왕 전하의 알현이 있을 겁니다! 당신이 제대로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구, 국왕 전하요?!”
설마 이 하녀들, 아니 하녀들이 아니라 시녀들이었나?
“허허허.”
반쯤 시녀들에게 끌려 나오듯 마차 밖으로 나오자, 게일 공작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공작 각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언제 준비해 뒀는지 거대한 천막이 눈에 띄었다.
게일 공작은 턱을 엄지로 쓸며 씩 웃었다.
“자네는 개선식에서 군의 대표로서 전하께 인사를 올릴 예정이네.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자네를 위해 내 조금 힘을 썼지.”
“분명 전하의 알현은 총사령관인 각하께서 하시는 것이…….”
“당연히 자네의 옆에 나도 서 있을 테니 걱정 말게.”
태연한 게일 공작의 대답에 무어라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