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30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30화>
왕국의 대표(2)
수도 시오텐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그동안 모은 정보를 정리했다.
‘수도에서 얻은 정보 중 제일 쓸 만한 건 광의 재해뿐인가?’
레오가르트 왕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었던 재해.
혹시 수도 시오텐을 덮쳤던 재해인가 싶어 수도 곳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시놉시스에 특별히 뜬 내용은 없었다.
즉, 광의 재해가 발생한 건 다른 장소라는 의미였다.
‘확실한 건 이번 건국제에서 광의 재해가 발생하진 않는다는 거야.’
레오가르트 왕은 이번 제국 건국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사정이 있는 듯했다.
아무튼 광의 재해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는 그가 건국제에 참여를 하지 않으니, 최소한 그곳에서 재해가 발생하진 않으리라.
본래라면 마음 푹 놓고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하아.”
[뭘 그리 고민하고 있어? 그냥 마음 편히 생각하면 되잖아.]“상대가 제국의 황녀인데 참 편하게도 생각할 수 있겠다.”
[무려 아스크탈린 제국의 황녀잖아. 얻어 낼 수 있는 게 많지 않겠어?]단순히 생각하면 그란세시아의 말이 맞다.
그동안 게일 공작의 호감을 얻으려 온갖 고생을 했던 나다.
그런데 무려 제국의 황녀인 리야 아스크탈린이 알아서 호감을 보내 주고 있으니 분명 더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도움을 얻는다면 가문을 부흥시키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반대로 잃는 게 더 클 수도 있어.”
[황녀가 너한테 호감을 갖는데 잃는 게 있다고?]“만약 황녀가 나를 자신의 밑에 두려고 하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아…… 그런 거구나?]그란세시아는 나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무언가 깨달았는지 감탄사를 토했다.
“이제 알겠냐? 만약 황녀가 나를 강제로 제국에 두기라도 하려고 하면, 더 이상 파비안의 행적을 쫓을 수 없게 된다고.”
파비안의 행적을 쫓는 일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파비안을 쫓는 건 미래의 정보를 통해 개인의 이득을 취하려는 것도 있지만, 재해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재해를 막아 내지 못하다면 세계는 멸망할 테니까.
[과연, 이해했어. 하지만 그거라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내가 본 그 도마뱀 계집아이라면……. 뭐, 가 보면 대충 너도 알게 될 거야. 적어도 네게 손해 보는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해.]묘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녀석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으니까.
아스크탈린 제국의 황녀, 리야 아스크탈린.
그 견실했던 황녀의 진짜 성격이 어떠한지 말이다.
* * *
카인젤 왕국.
그리고 그곳에서 왕족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심처.
그곳에는 오래전 창세신이 남겼다는 유적이 남아 있었다.
“뭐야, 이거 가짜잖아?”
오로지 왕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지만, 현재 그곳에는 카인젤 왕국의 국왕 디미트리를 비롯하여 두 명의 마족이 함께 있었다.
“가, 가짜라니!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카인젤 왕국이 지켜 온 장소요! 그곳에 있는 검이 가짜일 리가…….”
“하, 이거 수지타산 안 맞네.”
노여움에 가득 차 소리치는 디미트리 국왕을 무시하며 두 마족은 짜증이 치민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 누구누구 죽었지?”
“하급 마족 하나와 베일이 죽었습니다.”
“베일이? 아아, 그래. 전쟁터에서 죽었다고 했던가?”
“예.”
“자신의 힘을 과신하다 그렇게 된 거겠지. 막 중급이 된 마족들이 흔히 하는 실수야.”
그 둘의 대화에 디미트리는 고래고래 소리치던 걸 멈추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베일 공을 저렇게 무시할 정도면 저 두 마족은 어느 정도라는 거지?’
중급 마족만 해도 소드 마스터급의 힘을 가진 존재다.
물론 베일은 그 정도의 중급 마족은 아니었지만, 디미트리에게는 그게 그거였다.
“검이 남아 있다는 유적이 이제 몇 개 남았냐?”
“아직 수십 개도 더 남아 있습니다.”
“이미 하나 찾은 놈도 있는데, 하…….”
“그 하나가 현재 찾은 전부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관의 말에 붉은 머리칼을 지닌 근육질의 마족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직 시간은 상당히 남아 있으니…….’
아직까지는 느긋하게 움직여도 되리라.
그래, ‘그때’가 올 때까지는.
* * *
아스크탈린 건국제가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
나는 레오가르트 국왕의 명에 따라 다시 왕실로 불려 가게 되었다.
건국제에 가기 전, 선발된 인원끼리 한번 교류를 할 필요가 있다던가.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반하르트 백작님.”
시녀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장소는 호화로운 접견실이었다. 왕국의 귀빈들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인지라 내심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출세하긴 했구나.’
이번 건국제의 천선 경합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면, 더 이상 반하르트가를 무시할 수 있는 없으리라.
“어서 오게, 반하르트 백작. 이쪽에 앉으면 되네.”
접견실 안으로 발을 들이자, 가장 먼저 장신의 남성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와 마주하자 순간적으로 굳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리비나 백작님.”
“나야말로 반갑네. 젤빈을 통해 자네에 대해선 많이 전해 들었네.”
그의 가슴에 장식된 붉은 사자 문장.
그 문장을 내걸 수 있는 인물은 탈루아 왕국 내의 단 한 사람뿐이었다.
리비나 가문의 붉은 사자, ‘알드레드 리비나’.
탈루아 왕국 유일의 소드 마스터이자, 최강의 기사.
‘그리고 대륙 칠영웅(七英雄)의 일원.’
과연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답게 알드레드 리비나의 설정은 가히 대단했다.
그는 여러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단천패검의 성취가 무려 11성이었다.
12성이 대성이었으니, 그는 단천패검의 끝에 거의 도달해 있는 셈이었다.
[대륙 칠영웅이 뭐야?]‘뭐? 그것도 몰라?’
[나 때는 그런 게 없었는걸.]그란세시아의 목소리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녀석은 성녀라는 이명답지 않게 강자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았다.
대체 왜 ‘성녀’라는 고상한 호칭으로 불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건 나중에 말해 줄게. 지금은 그런 걸 설명할 때가 아니니까.’
[알았어.]아쉽다는 기색을 내비치는 그란세시아를 뒤로하며, 나는 리비나 백작이 안내했던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먼저 도착해 있던 이들의 시선이 내게 날아와 꽂혔다.
개중에는 나를 반기는 젤빈도 있었지만, 나머지 둘은 영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우선 제국 연무회의 대표로 뽑힌 것을 축하하지. 이렇게 다섯이 우리 왕국을 대표하여 시합에 나설 거네.”
약간의 시간이 흘러 다른 한 명이 더 도착하자, 리비나 백작은 원탁에 앉은 우리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서로 초면인 이들도 있을 테니 간단히 통성명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군.”
그렇게 말한 리비나 백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자신의 아들, 젤빈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젤빈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젤빈 리비나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대표자들 중에 가장 어린 건 젤빈이었다.
그러나 어리다고 해서 그를 무시하는 이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왕국 제일의 기사인 알드레드 리비나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아, 엄청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없었으니까.
“에릭 페드로입니다. 왕국의 미래를 짊어질 영웅들과 이렇게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알렉스 셰인이라고 한다.”
“플로리아 허셀입니다. 아무래도 조금 긴장되는군요.”
전부 한 번쯤은 들어 본 이름들이었다.
에릭 페드로는 전쟁에서 많은 공로를 세우며 그 공적을 인정받아 남작위까지 받은 인물이었으며, 알렉스 셰인은 셰인 공작가의 차남으로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기재로 유명했다.
마지막으로 플로리아 허셀은 허셀 자작가의 장녀로, 이곳에 자리한 이들 중 유일한 여성으로, 온갖 검술 대회를 휩쓴 전적이 있었다.
“클레이 반하르트입니다.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히 자신을 소개했다.
아까도 느꼈지만 젤빈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상당히 묘했다.
‘이거 상당히 눈치를 주는데?’
대충 이유는 알 만했다. 지금의 내 자리는 본래 바이안 데올릭이 들어올 자리였으니까.
게다가 나는 지금껏 존재감도 없다가 느닷없이 이번 전쟁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들 입장에선 내 실력이 미심쩍은 게 당연했다.
‘아마 승전 연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겠지.’
게다가 코앞에 리비나 백작이 있는데 대놓고 시비를 걸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리라.
다만 이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가 문제였다.
‘뭐 기껏해야 칼부림이 나는 정도겠지.’
나는 태연히 하품하며 턱을 괴었다. 어제 늦게까지 모네와 트럼프를 하고 잔 탓에 상당히 피곤했다.
‘설마 한 번도 못 이길 줄이야.’
이래서 운이 좋은 사람과는 같이 게임을 하면 안 되는 거다.
* * *
아스크탈린 제국의 황궁, ‘흑룡의 궁’.
제국의 위명에 걸맞은 화려함을 자랑하는 흑룡의 궁은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자, 동시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수많은 마법과 삼엄한 경비로 지켜지고 있는 흑룡의 궁은 어떤 침입자도 허용하는 난공불락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제국 수도의 성벽은 무너트려도 흑룡의 궁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그러나 지금.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 불리는 그곳이 붉은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궁을 지키던 수많은 기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고, 화려한 의복을 입은 두 사람은 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필사적으로 황좌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설마 이 정도로 거하게 일을 벌일 줄은 몰랐구나.”
아스크탈린 제국의 황제, 기드온 아스크탈린은 황좌에 앉아 그 광경을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바닥을 기는 이가 자신의 아내인 황후이며, 자식인 황태자임에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곳에 쓰러져 있는 이들 중 누구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자리에서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폐하, 저는 이미 황후의 어리석은 짓을 한 번 용서하였나이다. 그러니 이런 작은 일탈은 가벼이 넘어가 주시지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긴 백금발과 금색의 눈동자.
그리고 달과 같은 하얀 피부.
마치 한 폭의 명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다른 이질적인 것이 존재했다. 바로 관자놀이에 자라 있는 두 개의 길쭉한 뿔이었다.
두 개의 뿔 중 하나는 반쯤 뚝 꺾여 있었고, 그 부러진 뿔은 그녀의 허리춤에 장식이 되어 걸려 있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기드온은 황족 내에서도 리야 아스크탈린을 끔찍이 여겼다.
그러나 황족의 규율에 따라 그녀를 제국에서 추방시킬 수밖에 없었다. 언제 이지를 잃고 날뛸지 모르는 그녀를 제국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용화의 저주를 극복하고 제국으로 돌아왔다. 이미 용화가 시작되었음에도 이지를 잃지 않고 이성을 유지해 낸 것이다.
어떻게 저주를 극복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드온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건 따로 있었다.
‘많이 변했구나.’
리야 아스크탈린은 황제가 보는 눈앞에서 황후와 황태자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음에도 태연하기만 했다.
확실히 황후가 이전에 그녀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온화한 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드온이 기억하는 그녀는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무언가 계기가 있었던 건 분명하겠지.’
그게 사건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기드온은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부드럽게 휘어진 그의 눈은 리야 아스크탈린이 그러하듯 용의 눈을 닮아 있었다.
“아, 그렇지. 이번에 네가 한 사람을 건국제에 초대했다고 들었다.”
“예, 폐하.”
“혹시 이름을 알려 줄 수 있겠느냐? 내 성대하게 환영하지. 분명 오늘 나를 찾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실제로 리야가 이곳에 찾아온 건 황후와 황태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 두 명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일이 벌이던 건 하루 이틀도 아니었으니까.
이번 일은 그저 작은 경고에 불과했다.
“클레이 반하르트입니다.”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는 리야의 목소리에 기드온은 고개를 끄덕였고, 황후는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한 기색을 엿보이는 황후의 태도에 리야는 싱긋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황후 마마.”
“뭐, 뭐냐! 이 괴물아!”
리야는 겨우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소리치는 황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허 허리를 숙였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부드러운 눈매였지만, 그 동공은 파충류의 그것처럼 길게 찢어져 있었다.
“건드리면 이번엔 정말로 죽어요?”
“……!”
부드러운 말씨였지만, 황후는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이며 입을 닫았다. 저것만큼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클레이 반하르트.
그가 바로 황녀의 역린(逆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