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3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31화>
제국을 향하여(1)
“탈루아 왕국의 미래가 밝다는 걸 대륙 모두에게 알리게.”
제국 건국제가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며칠.
우리는 레오가르트 국왕의 축사를 받으며 탈루아 왕국을 떠났다.
당연히 나는 모네와 같은 마차였으며, 주변에는 건국제에 참여하는 다른 이들의 마차가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도련님.”
마차 안에서 조용히 있는 게 따분했는지 모네가 말을 걸었다.
“제국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대략 일주일 정도 걸릴 거다.”
“생각보다 금방이네요? 거리를 생각하면 거의 한 달은 넘게 걸리리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마탑의 마법진을 경유해서 바로 제국의 수도로 날아갈 테니까.”
“아!”
아스크탈린 제국은 탈루아 왕국과 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육로로 이어져 있으니 마차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긴 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 위험 부담도 있어 보통은 마탑의 마법진을 사용하여 단번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때 리야 아스크탈린이 걸어온 거리는 보통이 아니네.’
도보로 라크메스 산맥까지 도달했던 황녀의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용의 재해쯤 되면 체력도 보통의 인간과는 궤를 달리하는 모양이다.
“그럼 일주일은 사실상 마탑까지 가는 거리인 거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렇군요…….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뭐하시는 거예요?”
모네는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정확히는 내 손 위에 있는 붉은 덩어리를 응시했다.
“젤리 같은 건가요? 말랑말랑해 보이는데.”
“이거? 뭐, 비슷하긴 하지.”
“신기해라.”
모네는 내 손에서 이리저리 모양을 바뀌는 붉은 덩어리가 신기한 것 같았다.
‘이거 내 피인데.’
말해 주면 분명 놀라겠지.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엔 설명이 궁했다. 단순한 마법이라기도 뭣하고, 혈 마법은 애초에 마족만 익힐 수 있는 마법이니까.
[혹시나 실수해서 터트리지 마. 아마 이 마음 약한 하녀라면 단번에 기절할걸?]‘나도 알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혈 마법의 수련이었다.
혈 마법은 응용이 무궁무진하여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지만, 결국 자신의 피를 형태를 바꾸어 사용한다는 것은 공통된다.
그러니 자신의 피를 사용해 마력으로 이런저런 형태로 변화시켜 보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수련법이었다.
‘크기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반복된 연습 끝에 지금은 자그마한 단검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리 연습해도 불가능했다. 인간이 지닌 육체적 한계 탓이었다.
피를 조금만 흘려도 금방 한계를 맞이하는 인간의 몸으로 혈 마법을 다루어 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방법을 강구한 거잖아?’
나는 모네가 창밖으로 시선을 팔고 있는 사이, 미량의 피를 방울방울 공중에 띄운 후 작은 바늘 크기의 형태로 만들어 냈다.
[전부터 느꼈는데, 너 마력을 상당히 섬세하게 다루네?]‘섬세하게 다룬다니?’
[작은 마력으로 고도의 운용을 어렵지 않게 하고 있어. 보유 마력량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지.]그런가?
그다지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 와닿진 않는 말이었다.
아무튼 이 형태, 혈비(血匕)라면 최소한의 피로도 혈 마법을 쓸 만하게 활용하는 게 가능했다.
나는 이어서 허공중에 혈비를 감쌀 만한 크기의 작은 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얇은 관 안에 혈비를 집어넣었다.
은성검 후반부 제1초식 신성.
순간적으로 마력을 분사하여 폭발적인 추진력을 얻은 그 초식의 묘리를 바탕으로 하여, 혈비를 빠르게 쏘아 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다음에…….’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혈비에 천천히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다음 그 마력을 응집시키고, 내부의 마력을 빠르게 순환시켰다.
‘어? 이번에는 될 것 같은데?’
전에는 이쯤에서 형태가 무너져 내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대로 마력이 관 안에서 나선으로 회전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그거 방향 돌려!]갑작스런 그란세시아의 외침에 나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위로 들어올렸다.
팡!
그다지 크지는 않은 소리였지만, 순간적으로 무언가가 폭발하는 것 같은 파열음이 들렸다.
“무, 무슨 일이에요? 방금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요?”
밀폐된 마차 안이었기에 모네 역시 들은 것 같았다.
“그래? 난 못 들었는데?”
“방금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여기서 터질 게 뭐가 있어?”
“그건 그렇지만…….”
모네는 영 이상하다는 눈으로 마차 안을 이리저리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들킨 뻔했네. 설마 갑자기 터질 줄이야.’
거의 성공 직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쉬웠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란세시아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냥 터지기만 했다고 생각해? 너 지금 큰일 날 뻔했거든?]‘큰일이 나다니?’
[위를 봐.]나는 시선을 위로 돌렸다가 딱딱하게 굳었다.
마차의 천장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딱 바늘 크기 정도의 구멍이.
그란세시아는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는 날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이제야 쏘아 내는 건 성공했네.]‘진짜네.’
나는 멍하니 구멍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탑 도착까지 며칠 남았더라?’
왕국에서 출발한지 반나절이 지났지만, 적어도 앞으로 6일은 넘게 남아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이거나 연습해야겠다.’
섬세한 마력운 용이 필요한 기술인 터라 마력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도 도움이 됐다.
그렇게 나는 마탑에 도착하는 6일이라는 시간 동안 새로운 기술을 보다 완벽하게 익히는 데 집중했다.
* * *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도록 하겠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탑이니 힘내도록.”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지난 6일간, 우리는 틈틈이 휴식 시간을 가질 때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일행들은 안색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중간에 몬스터라도 마주쳤다면 한결 나았을 텐데.’
리비나 백작을 포함한 다른 일행들도 전부 기사이다 보니, 몸을 움직이지 못해 좀이 쑤시는 듯했다.
“도련님, 6일간 몬스터를 한 번도 마주치지 않다니 운이 좋네요.”
내 바로 옆에는 싱글싱글 웃으며 앉아 있는 모네가 있었다.
그동안 모네가 운이 좋다는 걸 함께 카드 게임을 할 때 빼곤 느낄 일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느꼈다.
‘어쩐지 모네랑 함께 움직이면 몬스터가 안 나타나더라.’
아무리 그래도 6일간 단 한 번도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다니.
특히 마탑으로 향하는 길목에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기로 유명한 힉슨 숲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젠장! 그 많은 몬스터들이 대체로 어디로 간 거야!”
“6일간 싸울 일이 없으니 정말 죽을 맛이군요.”
나야 덕분에 6일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전념할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것도 없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흠, 장작이 부족하군.”
그때, 리비나 백작이 야영을 준비하던 이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침 옆을 지나다 그 말을 들은 플로리아 허셀이 리비나 백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백작님, 괜찮다면 제가 장작을 주워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 허셀 경. 굳이 그럴 필요 없네. 어차피 다른 기사들도 많으니…….”
“다른 기사들은 이곳까지 오며 저희를 호위하느라 바빴으니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숲을 돌며 몸을 풀고 싶기도 하고요.”
“흠, 그렇다면 알겠네. 근처에 몬스터도 없는 것 같으니 괜찮겠지.”
우리들은 나라를 대표하여 제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보니, 왕실에서 특별히 우리를 호위할 기사들과 병사를 붙여 주었다.
리비나 백작의 말처럼 장작을 주워오는 정도의 일은 굳이 플로리아가 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녀의 의사를 존중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가 생길지 모르니…… 반하르트 백작, 혹시 함께 가 줄 수 있겠나?”
“예,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바람도 쐬고 싶었으니 굳이 거절할 필요 없는 부탁이었다.
“갑작스럽게 잡일을 시켜 미안하네. 아무리 몬스터가 없다지만 야밤의 숲은 위험하니 말일세. 그렇다고 여럿을 함께 보내면 허셀 경이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할 수 있으니…… 되도록 실력 있는 자가 함께 갔으면 하는 군.”
“엄연히 저보다 허셀 경의 성취가 높습니다만…….”
“검술의 성취가 실력의 전부는 아니지. 특히 자네의 실력은 젤빈으로부터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말일세.”
부드럽게 말하는 리비나 백작의 모습은 ‘붉은 사자’라는 이명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습이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리비나 백작이 꾸민 모습이라는 걸.
설정에 적혀 있는 바로는 리비나 백작의 본성은 ‘폭군’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과격한 성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굳이 붉은 사자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가볍게 답한 나는 곧바로 플로리아에게 다가갔다.
장작을 들고 오기 위해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던 그녀는 뒤늦게 나를 보았는지 경계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무슨 일이시죠?”
“리비나 백작님이 허셀 경과 함께 장작을 구해 오라 하시더군.”
“네?”
그 되물음에는 많은 감정이 함축되어 있었다.
장작을 가지러 가는 자신을 돕기 위해 왜 지원을 보낸 건지.
그리고 왜 하필 내가 온 건지.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후, 알겠습니다.”
플로리아는 마지못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여전히 내 실력을 미심쩍어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자신의 검술에 자부심이 강하다 보니, 내 실력이 한순간에 급성장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는 듯했다.
껄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나와 플로리아는 장작을 구하기 위해 이동했다.
야영지 근처에는 쓸 만한 나무가 없었기에 결국 조금 먼 장소까지 밖에 갈 수 없었다.
“……전쟁에서 중급 마족의 목을 베었다고 들었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플로리아였다.
“중급 마족을 쓰러뜨리려면 소드 마스터 수준의 실력을 지녀야 한다고 알려져 있죠.”
“보통 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백작님은 무슨 수로 중급 마족의 목을 베었던 겁니까?”
플로리아의 의문은 타당했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해 모든 이들이 품고 있는 의문이기도 했다.
내 경지는 소드 익스퍼트 하급.
상식적으로 내가 중급 마족을 이겼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변명하는 게 좋을까.’
이럴 때 내가 자주 애용하는 변명은 미셸에게 축복받은 검을 사용했다는 거다.
내가 그때 사용했던 검은 우연히 전장에서 주운 검이니 여러모로 구멍이 많은 변명이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대체로 납득하곤 했다.
‘좋아, 그거로 가자.’
대충 결론을 내린 그때였다.
숲의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이며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