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47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47화>
남겨진 것들(2)
“나들이요?”
모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유심히 보았다.
“혹시 이번에도 절 이상한 곳에 데려가시려는 건 아니겠죠?”
아무래도 제국에서 있었던 일이 상당히 서러웠던 모양인지 모네의 경계는 상당했다.
나는 그런 모네에게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 이번에 가는 곳은 키튼 숲이니까.”
“요정의 숲 말인가요?”
“그래.”
키튼 숲은 반하르트령에서 상당히 유명한 장소였다.
마물도 나오지 않고, 요정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관광지마저 형성되어 있었다.
“키튼 숲은 요정들이 상냥하게 사람들을 보살펴서 길을 안내해 준다는 소문이 있었죠. 한번쯤 가 보고 싶었는데…… 좋아요!”
어렸을 적부터 동화를 좋아했던 모네는 아니나 다를까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럼 이번 주말에 갈 테니까 느긋하게 준비해.”
“네!”
꾸벅 허리를 숙인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모네를 바라보고 있자, 시모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쯔쯔, 저 순진한 아이를 어찌해야 하나. 맨날 이런 사기꾼에게 속고만 사니.]“속이다니. 오히려 모네는 요정을 볼 수 있다고 좋아할걸?”
실제로 모네는 파비안이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요정들과 즐겁게 놀면서 보낸다.
“어쨌든 모네의 승낙도 받았으니…….”
[승낙 받았으니?]“던전에 갈 준비를 해야지. 우선 역시 던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겠어.”
시놉시스에 나와 있는 정보가 전부일 것이라고 확신하긴 어려웠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던전에 혼자 가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그냥 기사들 데려가면 되는 거 아냐?]‘지금 우리 가문에 기사가 어딨다고.’
[아, 그러네.]남아 있는 기사들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실력이 썩 좋은 자들은 아니었다.
가문에 충성을 바쳐 남은 기사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못 미더운 감이 컸다.
차라리 그럴 바엔 던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모험가와 함께 가는 게 이득이었다.
‘후에 시간이 되면 검술을 봐줘야겠군.’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기사들의 검술을 봐주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밖에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 * *
기본적으로 모험가 길드는 조금 크다 싶은 마을이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말이 모험가 길드지, 사실상 인력 사무소에 가까우며 다양한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편이다.
‘파비안이 키튼 숲에 가게 됐던 것도 모험가 길드의 의뢰 때문이었지.’
파비안이 반하르트의 영지에 돌아온 건, 아인트반 왕국에서의 일을 끝마친 이후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피폐해진 파비안을 위해, 모네가 반하르트 영지로 돌아가자고 권한 것이다.
‘물론, 원작에서는 내가 죽었으니 영지도 다른 귀족에게 넘어갔겠지만.’
아마 데올릭가나 벨런가 중에 하나가 흡수했을 확률이 높다.
아무튼 고향으로 돌아온 파비안은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모험가 길드의 일을 돕게 된다.
그것이 이 반하르트 영지에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실례하지.”
덜컹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건물 내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고급스런 의복을 입은 내가 모험가 길드로 들어오니 아무래도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앗!”
길드의 접수원은 나를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 나오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갈색 머리칼에 순한 인상을 지닌 그녀는 나도 안면이 있는 이였다.
“어서 오세요, 클레이 도련님. 소문은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큰 공훈을 세우시고 제국 건국제에 가셨다고…….”
길드 접수원인 사라는 거기까지 말한 후 말을 줄였다.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으니 무슨 일이 있던 거라 어림짐작한 모양이다.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돌아왔을 뿐이야. 그리고 이젠 백작이지.”
“아! 실례했습니다, 백작님.”
“아니, 굳이 그렇게 불러 달라는 건 아니고……. 나도 솔직히 백작님이라는 호칭은 어색하거든. 그냥 전처럼 편하게 불러.”
“네.”
싱긋 웃는 사라는 이전에 봤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라는…… 딱히 파비안과 얽히는 일은 없나 보군.’
모험가 길드 ‘레드아이즈’.
파비안이 한동안 거점으로 삼고 활동하게 되는 길드다. 당연히 사라와도 상당히 얽혔던 터라 혹시나 ‘주연’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다.
파비안에 관한 정보가 있긴 했지만, 지극히 단편적일 뿐이니 업무 관계로 몇 번 얽힌 게 다였다.
“그런데 길드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늘 그렇듯 의뢰를 하러 왔지.”
“어디 몬스터라도 출몰했나 보군요.”
기사들이 상당수 빠져버린 이후, 나는 치안을 위해 모험가를 몇 번 고용하여 몬스터를 처리한 적이 있었다.
돈이 좀 들기는 했지만, 기사를 움직이는 것보단 싼데다 책임감이 있어서 사후 보장도 확실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이번에 내가 어떤 던전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데 정말인지 확실히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
“던전이라……. 그럼 던전 경험이 풍부한 모험가들을 찾아 드리면 되겠군요. 숫자는 어느 정도면 되죠?”
“숫자는 대충 두셋이면 돼. 첫날은 우선 정찰만 하고, 부족하면 좀 더 보충할 예정이야.”
“던전의 위치는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키튼 숲.”
키튼 숲이라는 말에 사라의 표정이 묘해졌다.
“키튼 숲에 던전이 있다는 정보는 듣지 못했는데요?”
“나도 우연히 알게 된 정보거든. 근데 알다시피 거긴 관광지로 이름이 높잖아. 혹여나 사건이 터질지 모르니 확실히 알아봐야지.”
“역시 도련님은 그런 사소한 것들도 신경 써 주시는 군요. 정말 도련님이 영주여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얼굴에 금칠을 하는 그녀는 확실히 프로였다.
“그럼 알겠습니다. 키튼 숲에는 언제쯤 가실 예정인가요?”
“이번 주 토요일쯤. 오후 2시까지 와 있으면 돼.”
“알겠습니다.”
아마 사라라면 딱 적당한 인물들을 추려서 보내 줄 것이다. 사실상 이제 준비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건…….’
요정 여왕을 배알하고 던전을 공략하면 끝이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시놉시스는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정보를 줄 뿐, 모든 걸 알려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데미안이 왜 던전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형태로 살아 있는지가 중요했다.
* * *
“키튼 숲의 명물, 요정의 화관을 팝니다!”
“어서 오세요! 요정의 인도 패키지는 지금 아주 싸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키튼 숲 근처에 형성된 마을은 생각보다 북적거렸다.
나도 이곳에 직접 와 본 건 어렸을 때가 마지막인데, 전보다 훨씬 활기가 넘쳤다.
“키튼 숲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정말 기대되네요.”
모네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지 내 옆에서 종알종알 떠들었다.
“내가 요정의 입장이라면 그냥 숲에서 길을 잃어 영원히 떠돌게 만들었을 텐데 말이야.”
“요, 요정님들은 그런 짓 하지 않아요!”
“하지만 자기네 집 앞마당에서 시종일관 행패를 부리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귀찮지 않겠어?”
키튼 숲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입구로 돌아오게 되니, 그걸 이용해 이런 기형적인 관광 산업이 생겨 버렸다. 요정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진 모네의 모습에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요정이 수십 년 동안 이 마을의 행동을 용납했다는 건 나름 즐기고 있다는 거겠지. 요정들도 다양한 사람들이 숲에 놀러 오니 장난칠 사람이 많다고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그, 그렇죠? 하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제야 방긋 웃는 모네의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순진한 애 놀리지 말라고 했잖아.]‘시끄러.’
킥킥거리며 놀리는 그란세시아의 말을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도련님, 그럼 바로 키튼 숲에 가나요? 어서 가서 요정의 장난을 겪어 보고 싶어요!”
“아, 물론이지. 그런데 잠깐 함께 갈 사람들이 있는데 괜찮을까?”
“같이 갈 사람들이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모네의 모습에 나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어색한 태도로 세 명의 남성이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반하르트 백작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는 빈스, 헤르딘, 레드라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세 남성의 모습에 모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나를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도련님, 혹시 또 저를 이상한 곳에 데려가시려는 건 아니죠?”
“아니라니까. 그냥 숲에서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모험가 길드에서 호위를 고용했을 뿐이야.”
“그건 기사님들에게 부탁해도 됐잖아요.”
“나들이 가는데 기사들에게 부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어?”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모네는 내가 미리 준비해 뒀던 변명에 가볍게 넘어가며 수긍했다.
[저렇게 순진해서야 이 거친 세상에 살아갈 수 있겠어?]‘운이 좋으니까 괜찮아.’
[……부정할 수가 없네.]기가 차다는 듯 말하던 그란세시아는 단번에 조용해졌다.
“반하르트 백작님, 그런데 정말로 키튼 숲에 던전이 있습니까?”
빈스는 모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믿을 만한 정보통에게 들었으니 확실해.”
“아, 옛.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바로 이동하도록 하지.”
계속 이런 대화를 나눠 봐야 모네가 의심할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네가 나와 빈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시고 계신 건가요?”
“아, 제가 원래 이 마을의 출신이라서 말입니다. 백작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와, 정말인가요?”
빈스는 재빠른 순발력을 발휘하면서 답했다.
“예, 진짜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전설들도 많이 알고 있죠.”
“전설? 요정에 대한 것 말인가?”
“아, 물론 요정에 대한 것도 있죠. 하지만 다른 신기한 것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빈스는 단순히 모네의 의심을 피하고자 변명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혹시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예, 그다지 어렵지도 않으니까요.”
그는 목을 한 차례 가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수백 년 전, 이곳에 아주 무서운 마법사가 살았다고 합니다.”
“마법사?”
“예. 어찌나 강력한지 그의 손에 죽은 자가 산더미처럼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강한 마법사가 있었나?
그럼 꽤나 유명했을 것 같은데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하하! 아무래도 제 말이 지어낸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 마법사를 죽인 자는 아실 겁니다.”
“대체 누구지?”
“바로 검신 데미안 님입니다! 그분은 마법사를 죽이고, 이곳에서 눈을 감으셨다고 하죠.”
데미안,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에이, 데미안님이 돌아가셨다는 장소는 여기 말고도 산만큼 있잖아요.”
“그렇죠. 후후, 어디까지나 전설이니까 말입니다. 혹시 여기가 진짜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모네에게 빈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아마 그 역시 정말로 이곳에서 데미안이 죽었다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다.
실제로 데미안의 최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행적이 묘연해지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빈스의 말이 정말인가? 데미안이 여기에 있는 건 확실한데…….’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가볍게 넘기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때, 그란세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데미안, 데미안이라…… 으음.]‘넌 또 왜 그래?’
[아니, 전에 네가 말했을 때도 그랬지만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아서 말이야.]하지만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지 그란세시아는 이내 내게 가볍게 말했다.
[뭐, 나중에 생각나면 말해 줄게. 만나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지.]‘알겠어.’
그란세시아 역시 수백 년 전의 인물이다.
거의 데미안과 동시대의 인물이니 어쩌면 뭔가 아는 게 있을 수도 있었다.
‘모든 건 직접 만나면 알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일행들과 함께 키튼 숲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