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5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51화>
티몬스 상단(1)
‘마지막 일격을 가하라고?’
어처구니없는 개연성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명왕 루갈 네크리스에게 덤벼든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직접 배우기라도 할 수 있다면 설정 추가는 포기하겠는데 그것도 불가능하니.’
파비안은 무(武)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데미안은 그에게 자신의 검술을 전수해 주겠다며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검의 한계를, 단월신검의 끝을 파비안을 통해서라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긴 했지만…….’
터무니없는 재능을 지니고 있던 파비안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데미안 비에트의 검술을 손에 넣으려면, 결국 내 손으로 명왕 루갈을 쓰러뜨려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표정이 좋지 않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걸 어찌해야 되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대로라면 루갈은 이미 몇 번이나 되살아났으며 데미안 경은 그걸 막고 있었다는 거겠죠.”
“그렇다.”
“거기다 정황상 이번 부활은 전과 상당히 다른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뭡니까?”
요정 여왕이 느꼈던 사기(死氣).
그것은 루갈이 부활하면서 방출된 기운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번 주기는 상당히 늦춰지고 있는 상태였다.
“앞서 말했지만 내가 루갈을 쓰러트린 건 한두 번이 아니다. 녀석은 아무리 죽여도 계속해서 되살아났지.”
그의 투구에 어렴풋이 보이는 붉은 눈빛이 나를 향했다.
“그렇게 수백 년간 이어진 패배 끝에 녀석은 생각을 바꾼 거다. 이번에는 모든 걸 쥐어짜서라도 마지막 승부를 걸기로.”
데미안의 설명은 이러했다.
리치가 된 루갈은 생명력이 담긴 핵이 파괴되지 않는 한 끝없이 부활하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터라 파괴하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다.
그동안 데미안이 루갈을 완벽히 죽이지 못했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핵을 숨겨 두는 것이 루갈에게 상책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완벽한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힘이 한정되었으니까.
결국 이대로는 끝이 없다고 판단한 루갈은 결전을 택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숨겨 두었던 핵을 꺼내 들어서 전력으로 데미안과 맞서고자 한 것이다.
‘즉,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하는 명왕 루갈과 싸워야 한다는 거잖아?’
단월신검을 포기하면 되는 문제였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검신 데미안 비에트, 그를 대륙 최강으로 만들어 준 검술이었으니까.
“……데미안 경,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차피 나는 죽은 자. 시간은 넉넉하니 얼마든지 상관없다.”
나는 차분히 답하는 그를 빤히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영웅으로서의 영광마저 포기한 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것.
과연 그게 정의감만으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일까?
나라면 절대 그러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순수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루갈과 나는 닮았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투구에 가려진 얼굴은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씁쓸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목표로 한 자를 도저히 넘어서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절망감. 나 또한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놈을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거지.”
목표롤 한 자를 넘어서지 못한다…….
아마 루갈에겐 그 대상이 데미안이었으리라.
“그런데 루갈과 데미안 경이 닮았다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는 데미안 역시 목표로 하던 인물이 존재했고, 그자를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검신 데미안 비에트는 당대 최강의 검사라 불리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무의 끝을 보았다고 알려진 자다.
그가 넘어서지 못한 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 나도 결국 마지막까지 넘어서지 못한 자가 있었지. 아마 그대도 아는 자일 거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대륙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그란세시아 아텔.”
영원한 별의 처녀라 불리며.
알타이르 교단을 대표하는 성녀.
“그녀가 바로 나의 목표였다.”
* * *
내가 요정의 숲으로 귀환한 건, 달이 떠 있는 늦은 밤이었다. 숲에 도착하자 모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달려와 따졌다.
“대체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걱정했다고요.”
“요정들이랑은 잘 놀았어?”
“네, 뭐 즐겁긴 했지만요.”
모네는 거기까지 말한 후 눈을 새치름하게 뜨며 나를 보았다.
“혹시 또 위험한 곳 다녀오신 건 아니죠?”
“아니야. 그냥 요정 여왕님이 부탁하신 게 있어 그걸 처리하고 왔어.”
“그럼 다행이지만…….”
베아트리스를 언급하자 그제야 모네도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반면 베아트리스는 약간 양심에 찔렸는지 내게 말했다.
「클레이, 오늘 고생이 많았다. 설마 그 사이한 기운의 주인이 명왕 루갈이었을 줄이야.」
“여왕님도 아시는 자입니까?”
「오래전 이름을 날렸던 영웅이니 모를 리 없지. 생각해 보면 숲이 아직 작았을 무렵 소란스러웠던 기억이 있군.」
베아트리스는 먼눈을 하며 옛일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명왕의 부활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는 들었는가?」
“예. 앞으로 반년 남았다고 합니다.”
본래라면 파비안이 아인트반 왕국에 다녀온 이후에 발생하는 에피소드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반년…….」
짧지는 않지만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베아트리스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유는 알게 됐으니 약속대로 보상을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의문이 해결됐음에도 근심이 어린 얼굴이었다.
아니, 오히려 처음 내게 의뢰를 맡겼을 때보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루갈이 신경 쓰이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구나. 만약 데미안이라는 자가 그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 숲도 큰 피해를 입게 될 테니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여왕님,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예, 이번 던전과 관련된 일입니다.”
「어떤 부탁인지 말해 보거라.」
“던전 안에 미스릴 광맥이 있더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그 광산에서 채광을 하고 싶습니다.”
지속적으로 키튼 숲에 많은 인간에 드나들어야 하는 만큼 광산 채굴 건은 그녀의 허락이 중요했다.
「미스릴 광산? 그런 건 우리에겐 필요 없으니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
다행히 베아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승낙했지만, 아직 짚고 넘어갈 것이 남아 있었다.
“채광은 상당히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많은 인간을 필요로 하죠.”
「흠. 아무래도 그럴 테지.」
“그러니 작은 오솔길이라도 좋으니 인부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숲을 지날 수 있게 마법이 미치지 않는 길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로구나.」
“그렇습니다.”
「흐음.」
이번 부탁에는 꽤나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사실상 키튼 숲의 일부 구역을 개방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대신 제가 데미안을 도와 확실하게 루갈을 쓰러트려, 영원히 깨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대가?」
“예, 약속드립니다. 만약 제가 반년 후에 루갈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다시 길을 막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베아트리스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한 번 더 부탁하마. 명왕 루갈 네크리스를 성공적으로 토벌한다면 채광이 끝나는 날까지 길을 열어 주는 건 물론, 그대에게 큰 축복을 내려 주마.」
“감사합니다, 여왕님.”
이걸로 광산 건도 해결이었다.
나는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반년 후에 루갈이 확정적으로 소멸된다는 사실을 모르니.’
시놉시스에 의하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루갈은 데미안에 의해 소멸된다.
‘거기다 인검 제노바 덕이겠지.’
내가 평범한 인간이면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노바를 지닌 인간이 루갈을 쓰러트린다고 호언하니 믿음이 생겼으리라.
‘그런데…….’
나는 힐끗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색 장갑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시모사의 눈을 착용하고 있는 손이었다.
‘평소면 이럴 때 사기 치지 말라며 핀잔을 줬을 텐데 조용하네.’
아무래도 데미안과 만났던 영향인 것 같았다.
‘둘 사이에 무슨 연이 있는 건가? 혹시 제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야.]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란세시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데미안은 나를 만나러 자주 신전까지 찾아왔던 아이야.]‘왜?’
[몰라. 내가 싸우는 모습을 몇 번 봤던 게 영향이려나. 그때도 저렇게 말했었어. 나처럼 되고 싶다고.]그란세시아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오래전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그리고 데미안을 만났던 때를 떠올리며.
[물론 난 깊게 생각 안 했어. 근데 설마 후에 검신으로 불리며 추앙받았을 줄이야. 반갑긴 하지만…… 저런 모습이 되다니.]‘데스나이트가 된 것 때문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보단 데미안이 말했잖아. 루갈과 자신은 닮았다고.]그래, 분명 그런 말을 했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두 사람은 결코 닮지 않았어.’
실제로 데미안의 말대로 두 사람에겐 닮은 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루갈은 목표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 채 잘못된 길을 택한 반면, 데미안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세상을 지키고자 하고 있었다.
데미안은 데스나이트가 되었음에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영웅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한 두 사람을 어찌 닮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란세시아는 생각이 달라 보였다.
[아니, 나는 느낄 수 있어. 그 아이……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거야. 정말이지, 왜 나 같은 거를 동경했던 걸까.]“…….”
무척이나 씁쓸한 그 목소리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 *
요정 여왕에게 광산 채광 건을 약속받은 나는 곧바로 티몬스 상단을 찾아갔다.
상단은 상당히 어수선했는데, 내가 부탁한 대로 광산 채굴을 위한 인부와 장비들을 모으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반하르트 백작님. 어서 오십…….”
물건을 나르는 인부들에게 지시하던 라빈은 뒤늦게 내 뒤를 줄줄이 따라오는 일꾼들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랜만입니다, 라빈 상단주.”
열 명이 넘는 일꾼들은 저마다 큰 꾸러미를 들고 있었는데, 내 지시에 따라 라빈의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백작님, 이게 도대체…….”
“열어 보시면 알 겁니다.”
어서 열어 보라는 듯 손짓하자, 라빈은 조심스럽게 꾸러미를 열었다.
“헉! 이, 이건!”
“역시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한눈에 알아보실 줄이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미스릴로 만든 무구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상인이라고 이름을 댈 자격이 없죠!”
라빈은 미스릴 무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전에 제가 키튼 숲에 던전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십니까?”
“……혹시 이게 전부 그 던전에서 구하신 겁니까?”
라빈에게는 미스릴 광산에 대해 이야기하며 키튼 숲의 던전에 대해서도 설명해 둔 상태였던 터라 이해도 빨랐다.
“맞습니다. 몬스터로부터 회수한 무구들이죠.”
“세상에. 전부 잡아서 가져오신 겁니까? 혹시 더 남아 있다면…….”
“아쉽지만 그게 끝입니다. 그보다 이 정도면 빚을 청산하고도 남지 않을까요?”
“빚? 아아!”
이 정도 수의 미스릴 무구라면 채굴을 시작할 필요도 없이 벨런 백작가의 빚을 청산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가능합니다. 가능하고말고요. 갚는 건 물론이고, 족히 5만 골드는 더 남을 겁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내가 싱긋 웃자 라빈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설마 이것들을 전부 주시는 겁니까?”
“정확히는 투자입니다. 어차피 광산 채굴에 들어갈 인부나 도구를 구하려면 돈이 들겠죠. 그걸로 전부 해결하시면 될 것 같군요.”
“이 정도면 충분하고말고요!”
이제야 현실감이 드는지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라빈의 모습에 나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속마음은 겉처럼 태연하진 않았다.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저 미스릴 무구는 저번 키튼 숲 던전에서 나를 도왔던 세 모험가에게 분배하고 남은 온전히 나의 재산이었다.
솔직히 광산을 채굴하면 티몬스 상단의 빚을 청산하는 건 시간문제이니 꼭 무구를 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티몬스 상단을 우리 반하르트령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아무래도 시간 내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 같으니까 말이야.’
지금의 내겐 광산 채굴에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데미안의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검술 수련을 해야만 했으니까.
그러려면 서둘러 티몬스 상단의 빚을 처리하고 반하르트령으로 데려오는 게 중요했다.
‘……그래. 투자지, 투자.’
아깝긴 했지만 어차피 앞으로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