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52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52화>
티몬스 상단(2)
‘그놈에게 뭘 뜯어내는 게 좋을까.’
요즘 니오르 벨런은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바로 지금 그의 손에 쥐어진 각서 때문이었다.
“우울할 때마다 이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군.”
각서에는 만약 티몬스 상단이 석 달 안에 돈을 갚지 못할 시, 반하르트 백작가가 모든 빚을 갚는다고 되어 있었다.
‘처음에 놈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만…….’
그 탓에 꼴사납게 도망치듯 돌아오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나쁠 것 하나 없는 제안이었다.
‘티몬스 상단이 석 달간 10만 골드를 마련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럼 결국 클레이 놈이 돈을 갚게 되겠지.’
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계약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알기로 반하르트가 역시 10만 골드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긴 했지만, 아직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한 건 아니었으니까.
포상금을 받긴 했지만, 그것도 10만 골드를 지불하면 홀라당 날아가 버리리라.
‘그놈한테 돈도 뜯고, 마리아도 데려와야지.’
빚과 상관없이 니오르는 라빈을 협박하여 마리아를 자신의 하녀로 들일 생각이었다.
저번에는 클레이의 방해가 있었지만, 다음번에는 반드시 끌고 오리라.
“도, 도련님!”
그때였다. 한 하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니오르는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온 하인의 행동에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슨 일이냐?”
“그, 그게 티몬스 상단의 라빈이 찾아왔습니다.”
“라빈?”
대체 왜 찾아온 거지?
‘아, 뒤늦게 안 될 것 같으니 빌러 온 거로군!’
분명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클레이가 라빈을 종용하여 사과하라 지시한 게 분명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지.’
니오르는 킬킬 웃으며 하인에게 물었다.
“그래, 놈이 죄송하다며 빌더냐?”
“아닙니다. 그게…… 돈을 가져왔습니다.”
“뭐?”
순간 하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니오르가 반문하자, 하인은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설명했다.
“라빈이 10만 골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뭐라고?!”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벨런 백작가에 다녀온 라빈은 반하르트가의 저택까지 직접 찾아와 내게 감사를 전했다.
“만약 백작님이 아니었다면 티몬스 상단은 정말 돌이킬 수 없었을 겁니다.”
“아뇨, 이제 뭐 다 해결됐잖습니까?”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라빈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저희 티몬스 상단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평생 반하르트가를 섬기겠습니다. 본거지도 빠른 시일 내에 바로 옮기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처음에 말씀하셨던 조건이잖습니까?”
라빈은 거기까지 말한 후, 잠시 내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젠 저를 심복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말씀해주 십시오.”
“심복이라니…….”
“백작님은 단순히 저희 상단의 빚을 갚아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제 동생인 마리아를 구해 주신 은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계속 내가 경어로 말하는 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론 편하게 말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나는 허리를 깊게 숙이는 라빈의 모습에 속으로 은밀히 웃었다.
‘이 정도면 미스릴 장비를 넘긴 보람이 있는데?’
설마 이렇게나 절절하게 이야기하며 감사를 표할 줄은 몰랐다. 거기다 설정을 보면 라빈은 한 번 말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인물.
이제 티몬스 상단은 사실상 반하르트가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광산 채굴은 언제부터 가능하지?”
“아마 빠르면 이틀 후부터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틀이라…….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라빈이 정말 최선을 다한 모양이군.’
역시 티몬스 상단을 선택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훗날 대륙 3대 상단에 꼽히게 되니 미래도 창창했다.
“광산 건은 모두 자네게 일임하도록 하지.”
“예? 제게 말입니까?”
“채굴이나 유통에 대해선 나보다 잘 알 테니까 말이야. 내가 끼어들어 봤자 오히려 방해만 될 거다.”
라빈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표정을 굳히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끄덕이는 라빈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곤 생각에 잠겼다.
‘그럼 이제 다시 데미안을 찾아가 봐야겠군.’
저번에는 조금 일찍 돌아왔지만, 이번엔 한동안 그곳에 머물 생각이었다. 물론 데미안이 허락해 준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아? 그렇게 해도.’
미리 그란세시아에게 이야기해 두긴 했지만, 역시 이번엔 녀석의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웬일이야, 항상 대놓고 사기 치더니.]‘내가 양심도 없는 줄 아냐? 아무리 그래도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데 그냥 할 수는 없지.’
나름 진지하게 말하자 그란세시아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상관없어. 그리고 나도 보고 싶기도 하고. 그 꼬마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말이야.]아무래도 그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데미안 경이 너에겐 꽤 특별한 사람이었나 봐?’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신전에 자주 찾아오던 꼬마지. 가끔 마물 퇴치 같은 걸 할 때 데려가곤 했었어.]‘마물 퇴치할 때 애를 데려간다고?’
[내가 있는데 뭐가 위험해?]태연히 말하는 녀석의 말에 결코 이 녀석에게 아이를 돌보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사이인 것 치고는 꽤 감성적이더만.’
[설마 여태 살아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데스나이트가 살아 있는 걸로 취급되나?’
[어쨌든! 나를 동경하는 것처럼 말한 것도 신경 쓰이고. 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성녀라 추앙받던 그란세시아라면 동경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녀석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야 허락해 준다면야 감사하지.’
[마음대로 하셔. 난 어차피 반지인걸.]툴툴거리는 그란세시아의 말에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키튼 숲에 갈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
* * *
“빠진 건 없겠지.”
나는 던전의 입구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라빈을 통해 구해 온 대량의 보존식, 그리고 훈련용 가검과 생활에 필요한 몇몇 물건들이었다.
‘내부에 물이 있는 건 확인했으니.’
데미안이 머물던 곳엔 물이 흐르는 장소가 존재했다. 아마 데스나이트로 변하기 전부터 이용하던 장소였겠지.
물론 관리가 되지 않아 오염이 됐을 수도 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겐 신혈이 있으니까!’
좀 비위가 상하긴 해도 건강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난 물만 섭취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던전 아래로 내려가, 이전에 지나친 통로를 통과하자 반구 형태의 공간이 나왔다.
“어째서 다시 돌아온 거지?”
전과 달리 그 중앙에는 검을 쥔 데미안이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데미안 경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
데미안은 느닷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약간 경계하는 기색도 존재했다.
“부탁을 말씀드리기 이전에 우선 이걸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나는 천천히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그리곤 그가 볼 수 있게 오른손을 천천히 위로 들었다.
“그건……!”
데미안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서며 크게 경악했다. 내가 그에게 보인 건 바로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하나의 반지였다.
“성녀 그란세시아의 유물인 시모사의 눈입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냐. 그건 분명 아텔가의 사제들이 엄중히 관리할 텐데……. 설마 아텔가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어깨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데미안의 붉은 눈동자가 마치 불꽃처럼 타올랐다.
“아닙니다. 그란세시아 님의 후손에게 직접 건네받은 것이죠. 그 증거도 있습니다.”
“증거라고? 사제도 아닌 너에게 성녀의 유물을 건넬 이유를 댈 수 있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의 끝을 단검으로 살짝 찔렀다. 그리고 핏방울이 맺힌 손가락을 데미안에게 보였다.
“제 피는 신혈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라는 거냐?”
“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만져 보시죠.”
데미안은 내 말에 망설임 없이 내 손가락을 자신의 손으로 쥐었다.
치이익!
“……!”
그러자 단번에 데미안의 손이 타들어 갔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손을 떼며 경악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럴 수가. 정말로 신혈이라니…….”
“제가 신혈을 가진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텔가의 인물들은 저를 성녀의 후예라 부르며 이 반지를 맡겼습니다. 후에 나타날 재해를 상대할 존재라고 말하면서요.”
“재해?”
나는 의아해하는 그에게 허리춤에 메고 있던 검을 들어 보였다.
“이건 제노바라고 합니다. 데미안 경은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재해를 상대하는 것을 상정하여 만들어진 검입니다.”
“제노바……. 그래,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 설마 진짜일 줄은 몰랐지만.”
그는 신혈과 제노바를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부탁이 뭐지?”
“저는 데미안 경에게 단월신검을 배우고자 왔습니다.”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너의 재능으로는 얼마 배우지도 못할 거다. 내게 시간은 없으니까.”
데미안의 말은 전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직설적이었다.
“저 역시 시간이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나타날 재해들은 루갈보다도 강한 강적. 그러니 전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야만 합니다.”
“……그렇군.”
내가 한 말은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단월신검을 얻고 싶다는 욕심을 떠나, 앞으로 싸울 상대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얻어 내야만 하는 검술이었다.
“그렇다면 좋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데미안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 줬다 싶은 순간, 그는 바로 말을 이었다.
“덤벼라.”
“예?”
“너의 말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우선 실력을 보겠다.”
그는 천천히 검을 들어 똑바로 세웠다.
일말의 마력도 사용하지 않고 단지 검을 들었을 뿐인데 숨길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망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허접하게 진다면 단월신검은 배울 수 없다는 걸.
[데미안은 원래 말보다는 검이 앞서는 녀석이었으니까 말이야. 어렸을 때는 참 귀여웠지.]‘넌 저게 귀엽냐?’
[내 눈에는 여전히 애야, 애.]그렇게 말하는 그란세시아는 어쩐지 즐거운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당황하는 것 자체가 재밌는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부터 가도록 하죠.”
데미안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전신에 마력을 순환시키며 시작부터 온 힘을 내었다.
상대는 최초의 칠영웅, 검신이다. 손대중을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검이 휘둘러졌다.
은성검 후반부 제1초식 신성.
초고속으로 가속되어 쏘아진 검격이 데미안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카아앙!
“……!”
데미안은 그것을 아주 간단히 튕겨 내었다.
휘둘러지는 방향을 따라 대각선으로 후려쳐 검의 궤도 자체를 간단히 틀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마력조차 사용하지 않고.’
데미안의 몸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붉은 눈이 고작 이게 다냐는 듯 나를 응시했다.
‘이게 다인데.’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신성이 이렇게 간단히 막힌다면 다른 것도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공법으로 안 된다면 꼼수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