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67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67화>
몽환의 재해(1)
“요즘 하늘이 우중충한데…….”
아인트반의 수도 나베즈의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자주 눈이 내리곤 했지만 요즘은 그 빈도가 몇 배는 잦아졌다.
“그거 들었어? 이번에 잠이 든 건 그렌 씨라던데.”
“거참 이번 주에만 대체 몇 명째인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이야.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모르겠어.”
나베즈의 거리에는 그런 말이 심심치 않게 튀어나왔다.
간간히 발생하던 기면증의 빈도가 최근 한 달 사이에 크게 늘었고, 그 범위도 전보다 한층 넓어졌다.
나베즈의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그나마 아직은 단순히 잠이 드는 게 전부였기에 큰 혼란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바로 오늘까진.
“어? 눈이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 눈.
언제와 같은 광경이었지만, 이어진 상황은 전과 전혀 달랐다.
새하얀 눈송이가 나베즈의 전체를 뒤덮듯 내리기 시작하며 눈송이에 맞은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태까지의 기면증과는 급을 달리하는 현상이었다.
“뭐, 뭐야!”
“눈, 눈을 맞으면 안 돼! 모두 피해!”
눈에 맞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하자,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 피했다.
다행히 눈송이에 닿지만 않으면 잠이 드는 일은 없었기에, 사람들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어? 금방 일어나는 것 같은데.”
한 남자가 쓰러진 사람들을 가리켰다.
눈송이에 몸이 닿아 쓰러졌던 이들이 하나둘 몸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뭔가 이상했다.
눈을 감고, 한없이 평온한 얼굴로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삐걱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마치 몽유병((夢遊病)과 같이.
“히이익!”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숨겼다.
비명 소리가 들리자, 몽유병에 걸린 듯 걷던 사람들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이거 놔!”
눈을 피해 숨어 있던 이들은 몽유병에 걸린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밖에 끌려 나갔다.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또한 숨어 있는 이들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인형이 되었다.
“젠장! 다가오기 전에 모두 쓰러뜨려야 해!”
“아, 안 돼요! 저희 어머니는 그냥 잠시 이상해지신 것뿐이라고요!”
몽유병에 걸린 이들은 전부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친구였다. 그런 이들에게 반격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되길 잠시, 나베즈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혼란으로 뒤덮였다.
“이제 시작이야.”
푸른 머리칼과 피부를 지닌 겨울 정령, 시오르.
그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퍼지며 하늘에 닿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양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모조리 잠재우겠어.”
이 작은 왕국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사는 세계 전체를 침묵으로 빠트릴 것이다.
자신을 고독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던 이 세계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
* * *
“역시 이 눈은 인위적으로 내려지는 모양이군. 힘이 한층 강해졌어.”
적색의 머리칼을 가진 마족, 마르갈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몸 주위에는 붉은 기운이 아른거리고 있었는데, 눈송이들은 그 기운에 닿기 무섭게 증발하며 사라졌다.
“아스크탈린 제국에서 있었던 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아, 그거? 젠장, 먼저 아스크탈린 제국부터 갔어야 했는데!”
“이미 소유자가 생긴 이상 늦은 일이지만요.”
부관의 말에 마르갈은 혀를 찼다.
천하칠검은 소유자가 생기기 전에 차지해야 한다.
검의 주인이 생기고 나면, 설령 소유자를 죽이더라도 검을 차지할 수 없었다.
천하칠검의 소유자는 오직 단 한 명밖에 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논.”
“예.”
“나만 여기에 친하칠검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냐?”
마르갈의 부관, 상급 마족 제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판단에 동의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이상한 현상…… 마왕님은 재해라고 부르셨지?”
“아스크탈린 황제도 그리 말하더군요.”
세계를 멸망시키는 존재. 자신들의 마왕 역시 그것에 대해 언질을 한 상태였다.
솔직히 대부분의 마족은 반신반의했지만, 제국에서 일어난 사건과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는 기현상을 보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그리 강한 놈은 아니야. 찾기만 한다면 금방 처리할 수 있겠어.”
“근데 굳이 재해를 죽일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검은…….”
“왕궁에도 없었잖아.”
아인트반에 도착한 이후, 두 마족은 카인젤 왕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인트반의 왕에게도 찾아가 똑같은 제안을 했었다.
그러자 아인트반의 국왕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천하칠검은 우리의 손을 떠났소.”
그가 말하길 이미 유적을 지키던 존재도, 그리고 천하칠검도 사라졌다고 하던가.
마르갈은 그것이 지금 이 ‘재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나눠져 찾는다. 할 수 있겠지?”
“예, 맡겨 주십시오.”
단호히 대답하는 제논의 모습에 마르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자.”
마르갈의 말과 함께 두 마족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재해, 혹은 천하칠검을 찾기 위해서.
* * *
“저, 정말 우리들만으로 충분해?”
루티아가 불안한 얼굴로 나베즈의 입구에서 말했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본래 재해는 블랙스컬 용병단을 비롯한 수많은 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상대했기 때문이다.
“그건 수도만이 아니라 왕국 전체가 놈의 땅이 되었을 때이니 그렇지.”
“그럼 지금은 우리들만으로 가능하다고?”
“물론.”
나는 시오르가 통제하는 영역을 가늠했다.
특별히 마력을 탐지하거나, 혹은 통찰안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눈이 내리는 곳이 바로 놈의 영역.’
불과 몇 미터 앞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가 있는 장소는 한없이 맑았다.
나베즈에 들어서는 순간 곧바로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겠지만, 아직까진 우리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백작님,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그래? 딱 좋네.”
나는 제이드의 보고에 씩 웃었다.
도둑 길드는 마족들이 아인트반 왕성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은밀히 그들을 감시했다.
“그런데 잘도 안 들켰네?”
“아마 너무 강하기 때문이겠죠.”
제이드는 싱긋 웃었다.
“벌레에게 일일이 관심을 주는 인간은 없잖습니까? 어지간히 윙윙거리며 날아다니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를 겁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굳이 벌레를 잡기 위해 손을 쓰기 귀찮을지도 모르죠.”
역시 이놈은 결코 보통 놈이 아니었다.
‘이거 어떻게 우리 왕국이나 영지로 빼올 수 없나?’
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정보다.
괜히 내가 시놉시스를 얻었을 때 놀란 게 아니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건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힘이니까.
‘나중에 제안을 해 봐야겠군.’
리야의 이름을 팔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럼 루티아와 나는 함께 움직이고……. 마리아.”
“네.”
내 부름에 마리아가 결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전 상인이니까요.”
이럴 때 왜 상인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마리아는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확실히 구분했다.
“저, 정말 괜찮니, 마리아?”
마리아는 걱정스럽게 묻는 루티아에게 눈을 흘겼다.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하지 말아 주세요.”
“으, 으으.”
날카롭게 답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루티아는 약간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루티아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은 마음이 풀린 거겠지.’
나는 그 둘은 번갈아 본 후, 제이드에게 말했다.
“그럼 마리아는 제이드와 함께 움직여.”
“알겠습니다.”
대충 인원 분배를 끝낸 나는 심호흡을 하곤 루티아와 시선을 마주쳤다.
“루티아, 나는 재해를 쫓고 있을 테니…… 너는 알지?”
“……내게 이런 역할은 없었는데.”
나는 구시렁거리는 루티아를 뒤로한 채 나베즈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몽환의 재해를 쓰러트릴 차례였다.
* * *
짙은 먹구름 사이에서 이질적으로 빛나는 푸른빛.
제논은 그 빛이 재해라 불리는 존재라고 확신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마법으로 이동하는 것 같진 않은데…….’
그러나 아무리 그 뒤를 쫓아도 푸른빛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 어떠한 전조조차 이동하는 빛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이대로 무작정 뒤쫓는 건 시간 낭비라고 판단한 제논은 주변을 살폈다.
“흥.”
잠에 빠져든 채 주변을 떠도는 인간들.
그러한 인간이 늘어날수록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 깃든 힘이 강력해지고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당장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준이 아니었기에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가능하면 조용히 해결하려 했거늘.’
무의미한 시간 낭비에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저 권속들을 쓸어버린다면 재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터.
우웅!
제논이 인간들을 쓸어버릴 생각으로 손을 들어 올린 그때였다.
“잠시만요!”
여린 여성의 음성이 들려오며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제논은 그것이 마족, 그것도 서큐버스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분홍색 머리칼에, 검은 날개와 긴 꼬리를 지닌 서큐버스는 제논을 향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다가왔다.
“너는 누구냐.”
“저, 저는 루티아라고 합니다. 마왕님의 명으로 천하칠검을 찾는 마족 중 하나지요.”
천하칠검이라는 말에 제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루티아를 응시했다.
‘얼추 상급에 근접한 힘이군. 이 정도면 확실히 수색 중인 마족일지도 몰라.’
서큐버스는 그다지 강한 마족이 아니다.
그런데 상급 마족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다는 건 눈앞의 서큐버스가 상당한 재능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내게 무슨 일이냐.”
“그, 그게 현재 이 나라에는 제국에서 발견되었던 천하칠검, 제노바의 주인이 와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예.”
제노바의 주인.
그 말을 들으면 속이 쓰렸지만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죽여서 뺏을 수도 없었으니까.
“놈이 왜 이곳에 와 있는 건지 아나?”
“천하칠검을 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재해가 천하칠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지금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확실해요.”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함정일…… 가능성은 없겠군.’
설령 눈앞의 서큐버스가 제노바의 주인과 결탁했더라도, 자신을 상대하기엔 무리다. 자신은 일반적인 상급을 넘어 최상급에 근접한 마족이었으니까.
눈앞의 서큐버스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
‘만약 함정이라도 둘 다 죽이면 그만이다.’
생각을 마친 제논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좋다. 어디지? 안내해라.”
“이쪽입니다!”
별 의심 없이 납득하는 제논의 모습에 루티아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정말로 됐네?’
설마설마했지만, 정말로 넘어오는 제논의 모습에 루티아는 내심 안도했다.
이제 이 마족을 데리고 클레이에게 가면 끝이었다.
‘정말로 괜찮겠지?’
자신의 딸아이가 그렇게 신뢰하는 걸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뭣보다 그는 제노바의 주인이 아닌가?
그리고 파비안과는 다른 의미로, 그 또한 다른 이들과는 남다른 존재라는 걸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마리아를 그 남자에게 맡기면 되겠어.’
루티아는 이번 일의 끝이 어떻게 될지 얼핏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은 죽게 되겠지.
후에 마리아가 어떻게 될지가 유일한 걱정이었지만 그 남자라면 분명 자신의 딸을 소중하게 돌봐 주리라.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그를 도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