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68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68화>
몽환의 재해(2)
나베즈에 들어서자마자 잠든 채 움직이는 군중들이 나를 향해 막무가내로 손을 뻗어 왔다. 마치 사령 계열 몬스터인 구울(Ghoul)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차라리 구울이 낫지!’
이들은 어디까지나 조종당하고 있을 뿐인 민간인.
시오르를 처치하기만 하면 깨어날 이들에게 함부로 공격을 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움직임이 빠르지 않아 피하기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
나베즈는 엄연히 한 왕국의 수도.
그만큼 모여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거리에는 말 그대로 바글바글 몰려다니며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나는 혀를 차며 옆에서 달려드는 남자의 가슴을 강하게 밀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인간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점점 더 정교해질 거야.’
시놉시스의 내용에 의하면 몽환의 재해의 권속이 된 인간들은 후에 무장까지 하며 군대처럼 정교하게 움직인다.
그때가 되면 이렇게 가볍게 뿌리치지 못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푸른빛을 슬쩍 쳐다보곤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마족들은 속였을지 몰라도 나는 못 속이지.’
나베즈의 상공에서 반짝이고 있는 푸른빛.
그것은 시오르의 일부일 뿐, 본체가 아니었다.
‘진짜 녀석이 있는 장소는…….’
곧 얼음을 깎아 만든 듯한 아름다운 궁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인트반의 왕성, 수정궁.
녀석은 반드시 그곳에 있을 터였다.
겨울 정령 시오르, 놈은 결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잠시 후 도착한 왕성의 입구는 아수라장이었다.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이들이 즐비했으며, 시오르의 능력에 걸려든 기사와 병사들이 사방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주 난장판이네.’
왕성의 입구는 사실상 뻥 뚫려있었다.
내부에서 어렴풋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나는 그쪽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역시 왔군.’
입구에 도착하기 무섭게 나타난 푸른색의 잔영.
푸른 머리칼에 수정과 같은 눈동자를 지닌 소년, 그가 바로 겨울 정령 시오르였다.
“제노바를 가진 인간. 너는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 없다.”
시오르는 딱딱한 어조로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놈의 모습을 차분히 살폈다.
‘역시 솔라리스를 가진 건 이 녀석이었어.’
시오르의 등에는 특이한 형상의 검이 매여 있었다.
저것이 바로 경계검 솔라리스, 모든 것의 경계를 벨 수 있는 검.
‘좋아.’
나는 녀석의 설정을 살핀 후 속으로 은밀히 웃었다.
과연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왜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지?”
“얌전히 물러간다면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다.”
녀석은 제노바를 흘깃 쳐다보며 짙은 경계심을 보냈다.
놈의 입장에서 나는 가장 배제하고 싶은 적일 텐데도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는 것은 제노바 때문이겠지.
철컥.
나는 제노바를 손에 쥐며 차분히 숨을 내쉬었다.
‘슬슬…….’
올 때가 됐을 텐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하늘에서 등 뒤에서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예상치 못한 소득이로군.”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온 건 두 명의 마족이었다.
하나는 루티아,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갈색 머리칼의 마족은 그동안 제이드가 감시하던 마족 중 한 명이었다.
“설마 제노바의 주인만이 아니라 다른 검까지 발견할 줄이야. 저건 확실히 진짜인 것 같군.”
갈색 머리칼의 마족은 나와 시오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잘했다, 루티아. 마왕님에게 보고하여 큰 포상을 약속하마.”
“가, 감사합니다.”
루티아는 슬그머니 내게 시선을 보낸 후 후다닥 도망갔다. 그녀는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너는 누구지?”
“나는 제논이라 한다, 제노바의 주인이여. 설마 이런 식으로 네놈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제논은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백은 이전에 만났던 베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중급과 상급의 차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크구나.’
이 정도면 일반적인 소드 마스터로는 어림도 없었다.
적어도 리비나 백작은 되어야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딱히 네놈을 찾아가서 죽일 생각은 없었다만…… 이렇게 만났으니 처리해 두는 게 좋겠지. 저 정령은 이후에 천천히 사냥하도록 하마.”
제논은 천천히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녀석의 손등에서 길쭉한 검과 같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아마 녀석이 가진 마족으로서의 특성일 것이다.
나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제논을 응시했다.
“지금 나를 죽이면 후회할걸?”
“흥. 헛소리를…….”
나는 내 바로 앞에 있는 시오르를 가리켰다.
“경계검 솔라리스를 사용하는 이 녀석을 잡으려면 내 힘이 필요할 거다.”
내 말에 제논은 가볍게 코웃음 쳤다.
“내게 하찮은 인간 따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냐?”
“그래. 미안한 이야기지만, 너는 결코 재해를 못 이겨.”
“……뭐라고?”
“저게 작정하고 도망치면 네가 과연 붙잡을 수나 있을까?”
내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상급 마족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시오르를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애당초 공간을 넘나드는 놈을 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난 다르지. 천하칠검끼리는 일정 거리 안에서 공명을 하거든.”
“설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믿고 안 믿고는 너의 자유지만…… 과연 저걸 보고도 태연히 말할 수 있겠냐?”
나는 시오르를 가리켰다.
이미 그의 몸에서는 차디찬 냉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족의 등장으로 불온한 낌새를 느낀 시오르가 자신의 힘을 해방한 것이다.
스르릉!
“제노바의 주인, 그리고 마족. 나를 방해하지 마라.”
솔라리스를 뽑은 시오르가 우리에게 재차 경고를 보냈다. 동시에 사방으로 한기가 퍼지며 바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겨울 정령 시오르의 능력은 단순히 타인을 잠재우고 조종하는 게 끝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재해’로서의 능력. 재해화를 통해 얻게 된 힘이다.
하지만 시오르의 본질은 겨울의 정령.
냉기를 자신의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정령의 힘과 재해의 힘.
거기에 솔라리스까지 손에 쥔 시오르는 단신으로도 엄청난 힘을 지녔다.
‘파비안이 이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던 것도 린트리아의 수많은 용병들에게 도움을 받은 덕이었으니까.’
아무리 상급 마족인 제논이라도 시오르를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젠장.”
제논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분명 강자이지만 재해를 상대하기엔 부족했다.
그렇다고 자리를 비우고 다른 마족을 불러올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니 그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적어도 저놈을 잡기 전까지는 손을 잡자는 거다.”
“그게 전부인가?”
“어.”
내 제안에 제논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애초부터 놈에게는 해가 되는 게 조금도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네놈의 제안을 받아들이마.”
“아주 좋은 생각이야.”
나는 제논을 향해 씩 웃으며 제노바를 뽑아 들었다.
어쨌든 이걸로 제논이 당장 나를 죽이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그 아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 * *
적염의 백작, 마르갈은 지극히 단순무식한 마족이었다. 마족 중에는 강함을 숭상하는 마족이 많은데, 그는 그런 경향이 유독 짙었다.
그 탓에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찾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하!”
콰아아앙!
그가 한 번 크게 발을 구르자 대지가 폭파하며 사방이 부서져 나갔다. 나베즈의 건물이 우르르 무너지며 그의 주변에 있던 인간들이 터져 나갔다.
“괴, 괴물이다!”
“살려 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인간들이 보였지만 그들은 눈송이에 몸이 닿자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이래도 안 나오나?”
마르갈은 재미없다는 듯이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막무가내로 나베즈를 파괴하다 보면 재해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까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재해라고 부르길래 좀 더 거창한 녀석을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치졸한 녀석일 줄은 몰랐군.”
마르갈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눈송이에 담긴 마력이나 힘을 보면 분명 상당한 힘을 지닌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힘을 지녔음에도 재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었다. 그 점이 마르갈은 너무나 짜증났다.
“아,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나 싶었더니만…….”
그렇게 중얼거리던 마르갈은 우르르 몰려드는 기척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젠장! 정말로 마족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저 괴물이 날뛰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눈송이가 몸이 닿지 않도록 천으로 꽁꽁 싸매고 위에 무장을 걸친 그들은, 바로 린트리아에서 온 용병들이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물론 마르갈로선 그냥 성가신 날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라는 재해는 안 나오고 인간들만 계속 튀어나오니 짜증이 치밀었다.
“헉!”
마족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용병들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겁에 질렸다.
‘젠장. 마족이라니…….’
그중에는 블랙스컬 용병단의 부단장인 막스도 있었다.
‘루티아가 만약 수상한 자들을 보면 싸우지 말고 도망치라고 했지만…….’
긴 세월동안 전장을 전전했던 막스조차 실제로 마족을 본 건 두 번째였다.
심지어 막스가 만났던 마족은 고작 하급 마족이었고, 그 마족에게조차 수많은 용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저건 절대 하급 마족이 아니다.’
느껴지는 기세나 여유는 결코 하급 마족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것에 맞서는 건 분명 바보 같은 짓이었다.
‘도망치는 게 옳겠지.’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괴물을 두고 어떻게 도망친단 말인가.
특히 막스는 본래 아인트반 왕국의 병사 출신이었기에 그 거부감이 더욱 심했다.
“저 마족은 내가 맡겠다. 다른 녀석들은 살아 있는 인간들을 데리고 피해!”
막스의 외침에 다른 용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마르갈은 그런 그들의 행동을 팔짱을 낀 채 조용히 구경했다.
“나를 혼자서 상대한다고?”
“……그래.”
막스는 죽음을 각오하며 검을 들었다.
‘단 몇 분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콰아앙!
“커어억!”
대체 언제 얻어맞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나름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른 그였지만 무엇 하나 볼 수 없었다.
“크어, 크으으윽!”
갑주는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흘러내렸다. 피를 한 움큼 내뱉으며 막스가 비틀비틀 일어서자, 마르갈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약해. 그 정도로 약하면 죄다. 하긴, 인간들이 다 그렇다만.”
마르갈은 부들거리며 일어서는 막스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특별히 편하게 해 주…… 응?”
막스는 갑자기 말을 하다가 마는 마르갈의 모습을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그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저건…….”
막스의 눈에 들어온 건, 분홍색 머리칼의 소녀였다.
그녀는 황폐해진 땅을 밟으며 천천히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
“호오?”
그런 마리아의 행동을 본 마르갈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다만 아직 예를 모르는 모양이야.”
“……윽!”
마르갈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마리아의 머리채를 잡아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보면 볼수록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졌다.
서큐버스의 혼혈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형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두 눈이 보였다.
“신기한 계집이군. 겁을 먹지 않다니.”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배짱이니까요.”
“상인?”
그 뜬금없는 말에 마르갈은 피식 웃었다.
하긴 자신의 앞을 막은 것으로 보아 제정신인 계집은 아닐 테지.
“약한 건 죄라고 하셨나요?”
“응? 그래, 당연하고말고. 약한 건 죄다.”
그의 대답에 마리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그래.”
붉은색으로 번뜩이는 마르갈의 눈을 본 마리아는 천천히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마르갈의 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윽?!”
그 순간 갑자기 팔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격통에 마르갈은 깜짝 놀라 마리아의 손을 보았다.
그곳에는 영롱한 빛을 내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저건 뭐지? 성물?’
설마 저것을 믿고 자신의 앞에서 그토록 당당했던 말인가?
‘괘씸한 계집이군.’
마르갈은 입가를 비틀며 자신의 팔을 잡은 마리아의 손, 성물이 끼워진 그것을 잡아 찢어 버릴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시야가 백색으로 물들었다.
“어?”
예상치 못한 사태에 마르갈은 눈을 깜박였다.
“이게 대체…….”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혹스런 어조로 중얼거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자신은 불타는 대지를 밟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건 백색으로 가득 채워진 공허한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