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71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71화>
꿈을 좇다(2)
조용히 감겨 있던 시오르의 눈이 떠졌다.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꼭 닮은 분신들도 눈을 떴다.
“…….”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정신들 사이로 이질감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그 감각은 점차 선명해져 갔다.
그리고 그것은 명확히 한 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짓을.”
조금씩 가까워지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이대로 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도달하고 말 것이다.
“……검의 주인.”
본래라면 자신이 맞이하고 검의 시련을 내렸을지 모를 존재.
하지만 이제는 이미 지난 일이다.
자신은 수호자가 아닌 재해로서 이곳에 있으니까.
* * *
시오르의 영역에 발을 내디딘 후, 몇 개나 되는 꿈을 지나쳤다.
검의 공명을 따라 시오르와 연결된 수많은 꿈들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이번에는 어느 쪽이야?”
“오른쪽!”
루티아의 손에 잡아 끌려 통로로 들어가면 그곳은 또 다른 세계였다.
인간의 꿈이란 광활하며,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왔나.’
푸른 초원으로 뒤덮인 대지 위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싶은 순간, 이제는 익숙해진 푸른 머리칼의 소년이 튀어나왔다.
‘저게 몇 명이야?’
초원을 가로지르며 날아온 푸른빛 무려 십여 개에 달했다.
다행인 것은 제논이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던 분신을 쓰러트려 준 덕분에, 각기 지닌 힘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검의 주인이여!”
수많은 분신들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을 보니 절로 소름이 돋았다.
“내가 최대한 막아 볼 테니까, 빨리 녀석의 본체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
서큐버스는 꿈속에서라면 현실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약화된 분신이라면 상당수를 막아 낼 수 있으리라.
나는 루티아를 믿고 검의 공명을 따라 빠르게 달렸다.
‘분명 녀석의 본체는 솔라리스가 있는 곳에 있을 거야.’
분신들이 이렇게 약체화가 되어 있으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본체를 지키기 위해 곁을 지키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분신 중 하나가 솔라리스를 들고 왔겠지.
“이런!”
그때, 미처 루티아가 막지 못한 분신 몇 명이 내게 날아왔다.
놈들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칼날의 형태를 띠고 있는 팔을 휘두르며 나를 노렸다.
“그대는 이 세계를 위해 안배된 인간이 아니다! 어째서 나를 막는 거지? 너는 나를 막을 이유가 없을 터인데!”
쐐액! 쐐액!
날카로운 검격이 바람을 찢으며 연이어 쇄도했다.
사방에서 덮쳐 오는 공격은 매섭기 그지없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튕겨 냈다.
‘한 달간 멍하니 시간만 보냈던 건 아니거든!’
마리아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나는 매일같이 잠을 자는 와중에도 단월신검을 단련했다.
그것도 그란세시아의 가르침을 받으며.
‘단월신검, 제1초식.’
월아(月牙).
새하얀 달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분신들의 공격을 튕겨 냈다.
내가 공격을 너무나도 쉽사리 막아 내자, 분신들은 상당히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대체 어떻게……!”
제아무리 약화되었다지만 무려 ‘재해’의 분신이다.
고작 인간에게 이토록 고전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겠지.
“구원자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
“물론, 아직은 파비안에 비하면 한참 부족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주인공조차 갖지 못한 걸 지니고 있었다.
바로 단월신검(斷月神劍).
파비안은 몽환의 재해를 쓰러트리고 난 이후에야 얻는 검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주인공보다 앞에 서 있었다.
카아앙!
순백의 월광이 내 주위에 몰아치며 시오르의 맹공을 모조리 막고 튕겨 냈다.
쏟아지는 얼음을 막고, 마구잡이로 공격해 오는 다섯의 분신 중 하나의 목을 갈랐다.
“크윽!”
분신 중 하나가 유리가 깨지듯 흩어지자, 나머지 분신들이 주춤했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또 하나의 통로를 통과했다.
콰아아아!
이번에 나타난 건 끔찍한 악몽이었다.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동료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병사가 보였다.
아마 누군가의 악몽을 구현화한 듯했다.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불길을 헤치며 푸른 머리칼의 소년이 걸어 나왔다.
그 분신은 지금까지의 것들과 달랐다.
‘솔라리스!’
이번에 나타난 분신의 손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솔라리스가 쥐어져 있었으니까.
‘그럼 본체는 어디지?’
불타는 황야에는 사람의 시체만 보일 뿐, 어디를 봐도 본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파비안 녀석은 여기서 어떻게 한 거지?’
시놉시스나 루티아의 예지몽으로 알 수 있는 공략은 여기까지였다.
분명 파비안은 제노바를 이용해 공명을 따라 솔라리스를 쫓았다.
그 이후는 시놉시스도 다음화로 넘어가 버렸고, 루티아는 다른 분신들을 막느라 파비안의 이후 행적을 알지 못했다.
“너는 모를 것이다.”
솔라리스를 쥔 시오르는 그런 나를 향해 조용히 말을 읊었다.
“나는 여태 검의 주인을 기다리며 기나긴 시간을 보냈지. 누구도 오지 않는 차가운 신전 안에서 말이야.”
다른 수호자들과 달리 겨울 정령인 시오르는 자아가 존재했다.
그는 처음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기뻐하며 언젠가 올 인간을 기다렸다.
“십 년, 백 년, 천 년……. 내게 주어진 작은 신전 안에서 억겁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더군.”
왜 내가 이런 고독에 시달려야 하는가?
카아앙!
거기까지 말한 시오르는 내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마치 그 울분을 모조리 쏟아 내는 것처럼.
그것이 검의 무게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재해가 무엇이기에, 왜 인간을 위해서 정령인 내가 희생해야 하는지.”
시오르의 소망은 간단했다.
그 작은 신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
거창한 사명도 필요 없었다. 그저 이 작은 신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자유를 갈망했다.
“그래서 나는 재해가 되었다.”
시오르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거부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나는 재해가 되었다. 작은 신전을 부수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
나는 녀석의 외침에 어느 정도는 공감했다.
솔직히 나라도 작은 신전에 수천 년간 갇혀 있으면 미쳐 버릴 것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빠져나갔을 테지.
‘아버지는 어째서…….’
이 세계를 구상하고 완성시킨 유일무이한 존재.
아버지는 어째서 그에게 이러한 사명을 준 것일까?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설마.’
아버지는 신이자, 동시에 ‘인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카아아앙!
시오르의 공격을 맞받아치며 코앞에 보이는 녀석의 눈을 보았다. 분명 아름다웠을 광기 어린 정령의 눈동자를.
“……비극.”
“뭐?”
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시오르가 반문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는 긴 시간 동안 쌓인 설움이 엿보였다.
“그래, 비극적인 연출…… 그를 통한 극적인 전개가 필요하셨던 거야.”
소설에서는 흔히 있는 내용이다.
조금 더 극적인 연출을 만들어 내긴 위한 비극.
주인공을 성장시키기 위한 시련.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연출을 만들어 내기 위한 희생양, 그것이 바로 아버지가 부여한 시오르의 ‘설정’이었던 것이다.
‘위기가 없으면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으니까.’
신이 아닌 작가가,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낸 세상이기에 이 모든 문제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이건 내가 책임을 져야겠지.
지금은 내가, 이 세계를 다시 쓸 권한을 지닌 작가이니까.
나는 천천히 제노바를 움켜쥐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검의 무게가 손에서 느껴졌다.
“허튼짓을!”
내 기색이 달라진 걸 느꼈는지 시오르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의 행동이 빨랐다.
전력으로 내달려 또 다른 통로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아이의 꿈이었는지 형형색색의 밝은 세계가 튀어나왔다.
“아직도 내 본체를 찾을 셈인가!”
계속해서 따라붙는 녀석의 공격을 가까스로 뿌리치며 사방을 훑었다.
‘어디지?’
수많은 인간의 꿈을 보았다.
수없이 많은 길을 건너뛰며 꿈의 경계를 건넜다.
그런데도 녀석의 본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신이 솔라리스를 가지고 있는 한, 이제 공명으로는 본체의 위치를 찾을 수 없어.’
할 수 있는 건 막무가내로 통로를 헤집는 것뿐이었다.
사실상 이래서야 운의 영역이 아닌가.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설마 파비안이 그냥 운이 좋아서 몽환의 재해를 쓰러트렸을 리는 없다.
대체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지?
“포기해라! 너는 영원히 내 본체를 찾을 수 없다!”
공간을 넘어오며 시오르가 내 목을 향해 솔라리스를 휘둘렀다.
나는 그것을 단월신검을 사용해 가까스로 튕겨 냈다.
역시 솔라리스를 손에 쥔 분신은 다른 분신들보다 훨씬 강했다.
‘더 지체했다간 다른 분신들까지 합류할 거야.’
그러면 더 이상 내게 승산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하자.’
정면에서 덤벼 오는 시오르의 검격을 튕겨 내며 차분히 숨을 내쉬었다.
그란세시아는 말했다.
위기일수록 더욱 감정을 통제하라고.
적절한 긴장은 나쁘지 않지만, 공포와도 같은 감정은 생각을 흐리게 한다.
감정으로 인한 정보의 왜곡을 억제하며, 그 속에서 올바른 정보를 도출하라.
그란세시아는 그것을 ‘유식(唯識)’이라 칭했다.
‘그때와 같다.’
병마의 재해 때, 시놉시스에서 몇 가지 단어와 글귀를 놓쳤던 때처럼.
이번에도 분명 놓치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파비안은 어떻게 몽환의 재해를 쓰러트린 것인가?
‘아.’
있었다.
정말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하나가 있었다.
몽환의 재해 이후, 영지로 귀환한 파비안의 허리춤에는 오직 단 한 자루의 검만이 존재했다.
시놉시스 어디에도 파비안은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다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데미안을 만나기 위해 함정이 가득한 통로를 통과할 때도 ‘솔라리스의 힘’을 사용했다고 나와 있었지, 솔라리스를 사용했다는 말은 없었다.
어쩌면 단순한 말장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간략하게 묘사하여 그저 누락된 부분일지도 모른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내 달라진 기색을 느꼈는지, 시오르는 틈을 주지 않고 재차 나를 향해 솔라리스를 휘둘렀다.
카아앙!
“넌 결코 날 이길 수 없다. 설령 분신인 나를 쓰러트린다 할지라도 결국 난 분신. 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또 다른 분신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아니.”
솔라리스와 제노바의 칼날이 부딪치며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각, 카가각!
금속끼리 맞물리는 소음.
그러나 그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달라졌다.
쩌적!
“무슨……?!”
시오르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제노바의 칼날이 솔라리스의 칼날을 부수며 파고들었으니까.
“솔라리스의 칼날이 부서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경계검,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검이란 말이다!”
“알고말고.”
나는 제노바를 더욱 강하게 부여잡으며 씨익 웃었다.
“하지만…… 검의 수호자라면 인검 제노바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을 텐데?”
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시오르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인검(人劍) 제노바.
이 힘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병마의 재해마저 베어 냈다.
‘아버지가 부여한 설정이 절대적인 것이라면…….’
제노바는 그 어떤 것이라도.
설령 그것이 같은 천하칠검이라 할지라도 베어 낼 수 있을 터였다.
“하, 하지만 네놈은 진정한 검의 주인이 아니라 제노바를 제대로 다룰 수 없을 텐데……?”
지금까지 내가 제노바를 해방하지 않자, 제노바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듯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녀석의 말처럼 나는 통찰안을 사용하지 않고선 제노바의 힘을 해방할 수 없다.
“만약 여기가 현실이었다면 말이야.”
우우웅!
제노바의 검신이 떨리며 적금색으로 물들었다.
제노바는 인류의 기원과 소망에 반응하여 강해지는 검. 많은 이들의 소망이 깃들 때 그 힘은 극대화된다.
그리고 이곳은 꿈속이다.
수많은 이들의 소망을 바탕을 만들어지고 연결된 세계.
오히려 이곳에서 전력을 내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드드드드!
제노바의 칼날이 변모하며 솔라리스를 더욱 파고들었다.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검처럼 솔라리스의 전신에 거미줄과도 같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네 본체를 찾을 필요도 없었어.”
나는 검에 쥔 손에 힘을 집어넣으며 사납게 웃었다.
“너는 이 솔라리스에 깃들어 있는 정령 그 자체였으니까.”
녀석이 왕성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간단했다.
그곳에 따로 본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검이 보관되어 있는 신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콰드득!
제노바의 칼날이 완벽히 솔라리스의 안에 파고들었다.
검신에 퍼진 금에서 미세한 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 돼……!”
“돼.”
시오르의 짤막한 단말마와 함께 한없이 금색에 가득 찬 백광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