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73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73화>
모여드는 자들(1)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기분이네요.”
반하르트령에 들어서자 조용히 밖을 바라보던 마리아가 말했다.
‘하긴, 쉴 새 없이 돌아다나긴 했지.’
나 또한 그런 기분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아인트반에서 보낸 시간은 한 달이 좀 넘었는데, 체감상으로는 거의 몇 달 만에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당분간만이라도 푹 쉬고 싶은데…….”
지금까지 카인젤 왕국과의 전쟁, 제국 건국제 등 여러 일들로 오랫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쉬기란 힘들었다.
쌓인 영지의 일을 처리해야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곧 닥칠 커다란 문제가 남아 있었으니까.
‘루갈 네크리스의 부활까지 앞으로 한 달 좀 더 남았나.’
반년이 남았다고 했을 때는 정말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마치 쏘아진 화살같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이제 5초식까지는 사용할 수 있잖아.]‘정말 다행이지. 운이 좋았어.’
[그래, 운 좋은 줄 알아! 내 도움 없이는 어려웠을 테니까.]자신만만한 그란세시아의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말처럼 혼자서 5초식까지 익히려고 했다면 솔직히 힘들었을 테니까.
“클레이…… 아, 아니, 이젠 백작님이라고 해야겠죠?”
“그냥 편한 대로 불러. 솔직히 아직 백작님이라는 칭호는 좀 부담스럽거든.”
젊은 백작이라는 것도 좋지만, 역시 뭔가 호칭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었다.
거기다 나는 친분이 있는 상대가 이름으로 부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정말 괜찮은가요?”
“물론 예의를 갖춰야 할 자리에선 지양해 주는 게 좋겠지만.”
“그럼 알겠습니다.”
마리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무표정한 마리아의 얼굴을 생각하면 온힘을 다해 활짝 웃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왜 부른 거야?”
“아뇨, 지금 그란세시아 님과 대화를 나누고 계신 것 같아서요.”
“어떻게 알았어?”
현재 마차 안에는 나와 마리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성격인 루티아는 마차 안이 답답했는지, 옆에서 따로 말을 몰며 가는 중이었다.
“은근히 티가 나거든요.”
“그래?”
“뭐라고 해야 할지……. 평상시와는 다르게 굉장히 편한 표정을 하고 계세요.”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란세시아와 대화를 나눌 때가 가장 편하긴 했다. 나의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유일한 상대이니까.
그녀에겐 힘들게 뭔가 감출 필요 없이 털어놓을 수 있기에,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평상시엔 신경을 좀 쓰긴 해야겠는데?’
일전에 리야도 무언가 낌새를 느꼈던 걸 보면, 이래저래 티가 나긴 하는 모양이다.
뭐, 이걸로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남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건 사양이었다.
‘그보다…….’
마차가 점점 반하르트가의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고민되는 게 하나 있었다.
‘마리아는 이대로 보내야 하나?’
저택에 도착하면 마리아는 그대로 티몬스 상단으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그리고 이후 만나기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녀는 일을 도맡아서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이대로 보내긴 아까운데.’
[왜? 상단이 크면 좋은 거 아니야?]물론, 티몬스 상단이 내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녀가 상단을 키워 준다면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꿈속에서 단련을 못하게 되잖아.’
[……뭐? 아니, 인간이라면 그게 정상이야!]분명 나는 사기적이라 할 만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파비안은 그마저도 압도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그의 뒤를 따라잡기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 쳐야만 했다.
수면을 하면서도 단련을, 그것도 그란세시아에게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마리아의 능력은 그런 나에게 간절한 힘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멋대로 마리아를 저택으로 데려올 수도 없고.’
[그래, 엄한 여자애 혼삿길 막지 말고 내버려 둬.]‘끄응.’
덜컹.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며 저택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나는 아쉬움을 어렵사리 떨쳐 내며 마차의 밖으로 나왔다.
“도련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건 단연 도리안이었다. 그는 정갈한 집사복을 입은 채 내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티몬스 상단의 아가씨도 계시는군요. 별일은 없으셨습니까?”
“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모네는요?”
“모네는 지금 안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 중입니다.”
도리안은 다른 하인들에게 명령해, 마차에서 내린 짐을 옮겼다.
“그럼 백작님, 저는 그럼 이만 여기서 인사드리도록 …….”
마리아는 도리안에게 한 번 시선을 준 이후, 기품 있는 동작으로 허리를 숙였다.
“식사? 혹시 우리도 같이 먹고 가도 괜찮아?”
“어머니!”
그러나 그때,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루티아가 시원스럽게 소리쳤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
도리안은 나에게 시선을 돌려 눈짓으로 허가를 구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승낙이 떨어지자 도리안이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모네는 워낙 손이 크니까요.”
“그, 그럼……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리아는 내게 재차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런 마리아의 뒤로 루티아가 혀를 날름 내밀며 한쪽 눈을 찡긋하는 게 보였다.
‘괜히 불안하네.’
루티아는 종족의 성질인지는 몰라도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분명 예지몽을 보고 자신의 희생까지 염두에 뒀던 것을 보면 결코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서 오세요, 클레이. 그동안 기다렸답니…… 응?”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벼운 드레스를 입은 리야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긋 웃다가 옆에 따라온 마리아와 루티아를 보더니 눈을 살며시 찡그렸다.
“티몬스 상단의 마리아가 아닌가요? 그리고 옆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디로 봐도 썩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리야 황녀님, 그러시면 안 돼요!”
그때, 어디선가 도도도 달려온 모네가 리야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리야는 얼굴을 살며시 찡그리고는 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네요. 아무튼 클레이, 모르는 분이 계신 것 같은데 소개를 해 주실 수 있나요.”
순식간에 환기되는 분위기에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리야는 내가 상대하기 벅찬 감이 있었다.
[모네는 또 언제 저 도마뱀 계집애랑 친해졌데?]‘나도 몰라.’
모네는 행운도 행운이지만, 친화력도 굉장한 아이였다. 그야말로 행운의 카피바라라고 할 수 있다.
모네의 등장으로 상황이 환기된 틈을 타, 나는 재빨리 일행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마리아의 어머니인 루티아 씨라고 해.”
“어머, 안녕하세요. 저는 리야 아스크탈린이랍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생긋 웃으며 어여쁘게 웃는 리야의 말에 들어올 때만 해도 발랄하던 루티아의 얼굴이 쩍 굳었다.
그리곤 살며시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제국의 황녀가 왜 여기 있니?”
“어쩌다 보니.”
“그게 겨우 그런 말로 끝낼 사안이야?”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속삭이는 루티아의 말에 생긋 웃고 있던 리야의 눈이 재차 서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불온한 기색에 루티아의 시선이 리야에게 향했다.
“응? 설마…….”
그런 리야의 시선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루티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사사삭 움직이더니 언짢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리야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처음에만 해도 갑자기 다가온 루티아를 경계하던 리야는, 점차 그녀의 말에 몰두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암요, 전 서큐버스인걸요. 사랑의 프로랍니다.”
그 말에 뭔가 신뢰가 갔는지 리야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진지한 얼굴로 루티아의 말을 곱씹는 것을 보니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모네에 이어, 루티아까지 수상쩍게 리아에게 속삭이는 모습을 보니 무어라 이야기를 한 건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 * *
대충 식사를 끝낸 직후, 이번에야말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마리아에게 루티아가 슬쩍 던지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위…… 가 아니라, 백작님께서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하더라고.”
“네?”
갑작스런 루티아의 말에 마리아가 내게 진짜냐는 듯 시선을 돌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최근 잠을 설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숙면을 하면 숙면을 했지, 잠을 못 잔 적은…….
“아, 확실히 그래. 아무래도 여러 가지 일을 겪다 보니 요즘 잠이 잘 안 오더라. 불면증이라도 걸린 건가.”
하지만 나는 곧바로 루티아의 말을 받았다. 루티아가 뭘 하고자 하는 건지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마리아.”
“네, 어머니.”
“티몬스 상단은 반하르트가에 충성을 맹세한 바,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한 명쯤은 백작가에 상주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니?”
“네? 갑자기 그게 무슨…….”
“그래, 라빈의 일은 이 어미가 도우면 되니 마리아는 여기서 백작님을 돕는 게 좋겠어.”
마리아는 그런 루티아의 말에 뭐라 대답을 못하고 눈을 껌벅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보통 당혹스런 일이 아니었으리라.
[포기한 거 아니었어?]‘명분도 없이 강제할 수는 없던 거지.’
하지만 루티아가 저렇게 도와준다면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 저 아줌마, 너랑 마리아가 맺어지게끔 하려는 거야!]‘뭐, 그런 의도도 있는 거 같지만…… 꼭 그것뿐만은 아니야.’
루티아와 단둘이 되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가 좀 더 나이에 맞게 살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티몬스 상단에 머문다면, 마리아는 분명 무엇이든 일을 찾아 하려고 할 것이다.
‘마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루티아의 빈자리를 도맡아서 처리했으니까.’
너무 어린 나이부터 세상을 배웠다.
그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마리아를 두고 떠났던 루티아의 입장에선 계속 마음에 걸렸으리라.
그러니 루티아는 마리아를 되도록 일과 동떨어진 장소에 두고 싶어 했다.
물론 그 기간은 마리아의 의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루티아의 뜻은 그러했다.
‘그 시간 동안 마음만 맞으면 어떻게든 되는 거지, 라나.’
[이래서 서큐버스들이란…….]마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란세시아치고는 꽤 온화한 말투였다.
“어때, 마리아. 이처럼 우수한 백작님 옆이라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을 거야.”
“저는…….”
마리아는 슬쩍 나를 보곤 망설이는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마리아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