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76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76화>
영지전(2)
“빌어먹을!”
벨런 백작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수많은 문서들을 집어던졌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순조롭다고 생각한 사업이 망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자신과 거래를 하던 상단들은 이미 잠적한 지 오래였으며, 자신과 연을 맺고 있던 귀족들도 등을 돌렸다.
상황이 이쯤 되니 벨런 백작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수많은 광산을 굴릴 돈도 나오지 않았다.
인부에게 줄 돈도 부족했고, 어떻게든 채광한들 빚을 갚는 일은 요원해 보였다.
“클레이, 반하르트……!”
벨런 백작은 땅에 떨어진 문서를 벌게진 눈으로 보았다.
그 문서에는 최근 반하르트 백작가의 동향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을 읽는 순간 벨런 백작은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광산을 원했던 것이냐? 대체 어떻게 알고!”
반하르트 백작가에게 넘겨주었던 폐광.
설마 그곳에 마정석이 묻혀 있을 줄이야.
“저것만, 저것만 있었어도!”
콰앙!
분노를 참지 못한 벨런 백작이 책상을 걷어차자, 책상이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벨런 백작 역시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초인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내쉰 벨런 백작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네놈이 자초한 거다, 클레이 반하르트.”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벨런 백작가는 몰락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도박을 하는 편이 나았다.
명예는 추락할지라도, 적어도 가문은 살릴 수 있을 테니까.
* * *
“영지전?”
나는 갑작스런 도리안의 보고에 어리둥절했다.
“그렇습니다. 설마 벨런 백작이 이렇게나 갑작스레 영지전을 걸어올 줄은 몰랐습니다.”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도리안의 말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와, 설마 뭔가 하지 않을까 싶긴 했는데 설마 영지전을 걸 줄이야.
‘진짜 이판사판이라는 거구만.’
나는 책상을 검지로 두드리며 도리안에게 물었다.
“영지전을 신청한 이유는 뭐죠?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영지전을 신청할 수 없다는 걸 알 텐데요?”
“최근 몽환의 숲에서 기사가 실종됐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명목입니다.”
“얼씨구.”
즉, 잭 바일의 일은 니오르의 일과는 별개로 친다는 거군.
니오르의 일은 리야가 연관되어 있으니 건드리진 못하니까 할 수 있는 건 그뿐이겠지.
“그런데 오히려 그건 이쪽이 영지전을 신청할 이유 아닌가? 웃긴 놈들이네.”
엄연히 내 목숨을 노리고 습격했던 기사들이다.
그런데 마치 그런 적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는 게 웃겼다.
심지어 벨런 백작가에서 내 목숨을 노렸던 일은 게일 공작이 알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몰래 보고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미래가 달라져서 벨런 백작이 회생할 낌새가 보이면 게일 공작을 통해 무너뜨리려 했는데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이야.
“그냥 거절하면 그만인 문제네요.”
영지전은 국왕의 승인이 필요한 일이다.
게일 공작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이상, 내가 거절만 하면 영지전이 승인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벨런 백작의 서신을 반으로 찢었다.
“뭐, 받아들일까요.”
태연한 내 말에 도리안은 경악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도, 도련님, 저희는 영지전을 벌이기엔 기사와 병사의 수가 한참 부족합니다!”
“기사와 병사의 수가 중요하긴 하지만, 전쟁이란 게 꼭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죠.”
“……예?”
전쟁에서 병력의 수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진 않는다.
단순히 숫자로만 결정될 문제라면, 전략도 전술도 필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대로 벨런 백작가가 무너지면 조금 난감할 뻔했거든요.”
아인트반에서의 사건 이후, 제이드는 반하르트령에 도둑 길드의 지부를 만들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탈루아 왕국으로 와서 말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로서는 나쁠 것 없는 일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를 따라온 제이드에게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데올릭가에서 벨런가를 집어삼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현재 벨런가의 재정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영지전을 벌이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영지전이 진행된다면, 그리고 그 영지전에 내가 승리한다면 벨런가는 그대로 공중분해될 것이다.
그리고 이후 벨런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자연스레 반하르트가에 귀속되게 될 터.
‘그렇게 된다면 데올릭가에서 가만히 있진 않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그만인 문제였다.
당장은 눈앞의 적인 벨런 백작가부터 부수도록 하자.
* * *
벨런가에 답신을 보낸 후, 나는 저택에 있는 이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곧 이 주변 일대는 전쟁터로 변할 테니, 그동안 다른 곳으로 피해 있으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후후후. 그 귀족…… 생각보다 재밌는 분이었네요.”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단연 리야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품위 있는 모습으로 웃었지만, 눈동자는 서늘할 뿐이었다.
“어떤가요, 클레이. 기사나 병사라면 넘치도록 있답니다?”
“제국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어. 그렇게 해서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을 테니까.”
힘으로 단순히 찍어 눌러서 해결될 이라면 제국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방법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없었다.
“내가 영지전을 발아들인 건 단순히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과연. 벨런가와의 영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클레이의, 그리고 반하르트가의 힘을 보여 줄 생각이군요?”
“맞아.”
역시 리야는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반면 모네는 여전히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저흰 기사나 병사가 부족한데 괜찮아요?”
“그래. 아직 기사나 병사를 충원하진 못했지. 하지만…… 돈은 많아졌잖아?”
“용병을 고용하실 생각이군요.”
“맞아.”
이번에 대답한 건 오늘 막 저택에 도착한 마리아였다.
그녀는 방에 짐을 풀자마자 갑작스럽게 불려왔음에도 작은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하지만 용병은 가문의 힘과 상관없지 않나요?”
아무래도 모네는 난생처음 겪는 영지전이다 보니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모네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반적인 용병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고용하려는 건 아인트반의 용병이야.”
아인트반의 용병은 쉽게 고용하기 힘들다.
간단히 말해서 용병계의 프리미엄이라고 해야 되려나.
실력도 어지간한 기사들에 준하는 실력을 지닌 용병이 즐비하니 그럴 만도 했다.
“알다시피 우리 영지와 아인트반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 어지간해선 돈을 준다고 해도 용병들이 여기까지 올 일은 거의 없지.”
우리가 아인트반의 용병들과 깊은 관계가 아니라면 말이다.
“즉, 인맥과 재력을 모두 과시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어머니가 오늘 보이시지 않았군요.”
“맞아. 내가 급하게 좀 부탁했거든.”
아마 왕복으로 다녀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지전에 맞춰 올 수는 있겠지.
‘블랙스컬 용병단과 다른 몇 개의 용병단의 힘만 빌려도 영지전 정도는 간단하게 승리할 테지.’
이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벨런가는 재정이 악화되어 예전만큼의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를 대신해 줄 용병들 또한 근방에서 모아들인다면, 지금의 벨런가를 상대하기엔 충분하리라.
“아무튼 그렇게 된 이야기야. 오늘 막 저택에 온 마리아에겐 미안하지만, 잠시간 다른 영지에 피신해 있는 게 좋겠어.”
“아뇨, 괜찮습니다. 특별히 위험할 일은 없을 것 같거든요.”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힐끗 리야를 보았다.
[그래. 저 도마뱀 계집애가 있는데, 여기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어? 다른 영지는커녕 어지간한 왕국보다 여기가 안전하겠네.]하긴, 나 또한 같은 생각이긴 하다.
만약의 일을 대비했을 뿐, 실제로 크게 위험한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영지전은 명예를 걸고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서로의 영지에 무의미한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럼 이야기해 줄 건 여기까지. 늦은 시간에 불러서 미안했어.”
나는 거기까지 이야기한 이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다들 잘 시간인지라 이 이상 붙잡고 말을 하기도 뭐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리아가 나를 따라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아, 클레이…… 읍.”
거기까지 말한 마리아는 급히 입을 막았다.
아인트반에서 귀환한 이후, 마리아는 내가 허락했음에도 늘 ‘백작님’이라 불렀다.
아무래도 지금 내 이름을 부른 건 실수였던 모양이다.
“여기에 있는 이들 앞에서는 편하게 불러도 괜찮아.”
“아, 네.”
마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순간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이미 자각하고 있던 것이지만, 저렇게 간혹 웃을 때면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다.
“흐으응.”
그때, 미묘한 콧소리가 들려 시선을 돌리자 묘하게 가라앉은 리야의 눈이 보였다.
그제야 자신이 마리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단 사실을 자각한 나는 헛기침을 하곤 화제를 돌렸다.
“큼큼.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게…….”
거기까지 말한 마리아는 힐끗 리야를 바라본 뒤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밖에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기엔 좀…….”
뭐지? 여기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일인가?
“그래, 뭐. 그럼 밖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나는 마리아와 함께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마리아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는 걸까요?”
“아아, 그거였나.”
마리아는 ‘꿈’을 오늘부터 사용할 것인지 묻는 거였다.
하긴, 남들 앞에서 가벼이 말하긴 좀 그런 내용이긴 하지.
“그래. 오늘부터 내 방으로 와 줘.”
“알겠습니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와중에 미룰 이유는 없었다.
아니,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머, 후후후.”
등 뒤에서 음산한 리야의 목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마리아는 드물게 창백한 얼굴로 숨을 삼켰다.
“……언제 나왔어?”
“대체 두 분이서 단둘이 할 말이 뭔가 싶어서 살짝 마법을 사용했는데, 재밌는 이야기가 들려와서요.”
그거 도청이잖아.
“설마, 두 분이서 한 방에서 주무시는 사이일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답니다.”
거기까지 말한 리야의 눈동자는 도마뱀의 그것처럼 쭉 찢어졌다.
용안을 발동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 시선이 향하는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용안이 향한 곳은 바로 내 옆에 있던 마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