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82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82화>
결전을 위한 준비(2)
이제야 데미안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루갈의 봉인지로 언제 향해야 하는지는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루갈의 부활은 그 징조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또렷했다.
“……이게 재해보다 더 재해 같은데?”
나는 말 위에 앉아 검은 하늘을 응시했다.
대체 왜 루갈이 재해가 아닌지 신기할 정도였다.
하늘을 뒤덮은 어둠은 키튼 숲만이 아닌 반하르트령 전체, 나아가 근처 영지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거기다 이제는…….’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점점 검게 물들어 가던 하늘에, 갑자기 구멍이 뚫리며 검은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분명 루갈의 봉인지에 꽂힌 거야.’
저게 분명 데미안이 말하던 징조라고 생각한 나는 서둘러 병사들을 이끌고 키튼 숲으로 향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사람들을 통제할 이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블랙스컬 용병단도 끼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만, 백작님과 함께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씩 웃으면서 말한 자는 막스였다.
아인트반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까칠했던 그는 이젠 그저 서글서글한 중년 아저씨와도 같은 인상이었다.
“안에는 나와 리야, 그리고 마리아만이 들어갈 거야. 막스는 다른 기사와 병사들을 도와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맡아 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셋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황녀 전하가 대단한 분인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리아를 보았다.
아마 그가 가장 걱정하는 대상은 마리아일 것이다.
‘루티아의 딸인 걸 알았을 때는 아주 웃겼는데.’
막스가 마리아와 루티아의 사이를 알게 된 건 이곳에 도착하여 승전 연회를 벌이던 도중이었다.
여태 마리아와 루티아의 관계를 자매 정도로 생각했던 그는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그야 루티아는 아직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어린 외관이었으니, 마리아 같은 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막스를 향해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시선을 돌려 리야와 마리아를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준비됐어?”
“예. 전 언제든 괜찮아요.”
“저도 준비됐습니다.”
리야와 마리아는 평상시와 다르게 움직임이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평상시엔 볼 수 없는 모습인 터라 잠시 시선을 뺏겼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느긋하게 감상이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응?”
키튼 숲의 입구에서 천천히 장비를 점검하고 있자, 주변에서 시끌시끌한 소란이 들려왔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살피자, 병사 하나가 헐레벌떡 내게 다가와 말했다.
“백작님! 데올릭 백작과 그 사병들이 왔습니다!”
“뭐?”
나는 황당함에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데올릭이 왜 이 타이밍에, 그것도 멋대로 우리 영지를 침범했다는 말인가.
‘한시가 급한데 정말 귀찮게 하는군.’
쯧, 하고 짧게 혀를 차곤 병사에게 말했다.
“데올릭 백작은 지금 어디 있지?”
“지금 마을의 입구에서 자신들을 들여보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쪽으로 가지.”
초조해하는 병사를 안심시킨 후, 리야와 마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됐으니 잠시 다녀올게.”
“곤란하시면 저도 같이 가 드릴까요?”
“그럼 나야 고맙지.”
대충 상황을 옆에서 전해 들은 리야는 심히 언짢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나는 리야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리야의 이름이 불러오는 이점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으니까.
“후후, 그럼 가도록 하죠. 대체 어떤 무례한 귀족인지 얼굴을 보고 싶네요.”
……서늘한 리야의 미소는 섬뜩하긴 했지만 말이다.
저런 모습을 보면 설령 거절해도 멋대로 따라왔을 확률이 높았다.
“반하르트 백작!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마을의 입구로 향하자, 로건 데올릭이 노성을 터트리며 외쳤다. 그 뻔뻔함에 황당할 뿐이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데올릭 백작. 남의 영지에 멋대로 들어오다니 대체 법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군.”
“……호오, 백작이 되더니 건방져졌구나. 나와 맞먹으려 들다니.”
“먼저 하대를 한 건 그쪽이다. 굳이 예를 갖춰 줄 필요는 없겠지.”
적어도 벨런 백작은 법을 어긴 적은 없었다.
그 아들인 니오르야 어쨌건, 벨런 백작은 제대로 영지전을 신청하고 멋대로 개박살 났을 뿐이니까.
그래서 나름의 예는 차려 줬지만, 남의 영지에 멋대로 침범한 로건에게 예를 차려 줄 필요는 없었다.
“좋다. 그 건방짐이 언제까지 갈지 보겠다.”
“알겠으니까 용건만 말하지?”
“……!”
“그래서 멋대로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뭔지 들어나 보자.”
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로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클레이!”
로건은 크게 분노하여 내 이름을 크게 소리치며 한 걸음 다가왔다.
마치 내 멱살이라도 쥐려는 듯한 그의 행동에, 내 곁에 서 있던 리야가 조용히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또 뭐…… 헉?!”
내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로건은 그제야 리야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건이 리야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우선 제국 신년제나 건국제에 몇 번이나 참여했으며, 리야의 머리에는 한쪽이 부러진 용의 뿔이 자라 있어 딱 봐도 그녀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황녀께서 왜 여기에…….”
“어머나, 제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되나요?”
“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데올릭 백작은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엄청난 실력자다. 언제나 떳떳하던 그가 이토록 위축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신년제에서도 자주 봤었지요, 백작?”
“그렇…… 습니다.”
“설마 백작이 이토록 무례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네요.”
“하, 하지만 이건 특별한 일인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일?”
리야가 의아한 듯 묻자, 로건은 그제야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떠들었다.
“이 하늘을 보십시오! 지금 탈루아 남부의 모든 영지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반하르트령에서 분명 무슨 일을 꾸민 건 아닌가 싶어 제가 조사를 나왔을 뿐입니다.”
“어머나.”
리야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맺혔지만, 눈은 백년한설이 내려앉은 것처럼 차갑게 변했다.
“이걸 어찌할까…….”
리야는 검지를 볼에 데며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누군가 본다면 퍽 귀여운 얼굴이었을 테지만, 나는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저거 여기 있는 애들 다 죽여 버리려는 것 같은데?]‘에이, 설마.’
아무리 제국의 황녀라고 해도 멋대로 타국의 귀족을 해할 수는 없다.
“클레이.”
“응?”
“저, 잠시 여기 계신 분들과 따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한없이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용언을 다루는 용에게 있어 대화란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하니까.
이대로 두면 큰 사단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물론 나 역시 로건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그를 해한다면 문제가 커질 여지가 있었다.
‘흠…… 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할 수는 있겠는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황녀 전하, 이 자리는 제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혹시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아쉽다는 듯 물러서는 리야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이쪽을 살피고 있던 로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로건 데올릭, 한 가지 제안을 하도록 하지.”
“제안?”
“나는 지금 이 현상의 원인이 되는 장소로 향할 거다. 원한다면 동행하는 걸 허락해 주겠다.”
“현상의 원인이라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냐?”
예상치 못한 내 제안에 로건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무언가 낌새를 느낀 것인지 그는 이내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벨런 백작과 달리 만만하게 볼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폐광이었던 미스릴 광산의 채굴을 시작하면서 그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뭐라고? 설마, 정말 반하르트가가…….”
“오해를 살 듯하니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지. 그 광산 아래에서 고대 유적이 발견됐다.”
“고대 유적?”
반하르트가나 데올릭가는 모두 남부에 오랫동안 자리했던 가문이다.
키튼 숲에 고대 유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조차 없었기에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유적인 거지?”
“그건 이제부터 조사해 봐야 알겠지. 원한다면 동행을 허락해 주겠다. 기사나 병사도 원하는 대로 데려가도 좋다.”
“…….”
로건은 내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 시선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마 지금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겠지.
나와 동행할 때의 이득과 동행하지 않을 때의 이득을 저울질하고 있으리라.
[굳이 다른 기사나 병사들까지 데려가는 걸 허락해 준 이유는 뭐야?]‘원래 소문은 목격자가 많을수록 빨리 퍼지는 법이지.’
데올릭가와의 마찰은 이미 예정된 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잘 풀린다면 여기서 그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다. 동행하도록 하지.”
결국 로건의 선택은 나를 따라가는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내가 먼저 함께 가겠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따라오지 않았겠지.’
벨런가의 입장에선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조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내가 이곳에서 무슨 수상한 짓을 벌였다고 소문을 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고대 유적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마음대로.”
멋대로 해 보라는 듯 말하자 로건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전처럼 호전적으로 덤비지는 못했다. 아마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리야 때문이겠지.
로건은 잠시 자신의 사병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더니 기사 열 명과 병사 서른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 정도 수를 데려가도 괜찮겠나?”
“상관없다. 뭐, 우리는 셋만 갈 테지만.”
“뭐라고?”
로건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는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아무래도 내가 놀리는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곧 키튼 숲의 입구에 도착하여 나와 리야, 그리고 마리아만이 입구에 들어갈 준비를 하자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정말 너와 그 둘이 전부인가?”
“그래.”
로건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걸 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쪽도 소수만 데려가고 싶으면 그래도 되는데?”
“……아니. 우리는 그대로 가겠다.”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최악에는 우리를 몰래 처리할 생각도 하고 있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
아무리 리야가 강해도 로건이 먼저 몰래 기습을 가한다면 어떻게 가능할 수도 있었다.
혹은 아래에서 무슨 사태가 터졌을 때, 역으로 우리를 죽이려는 건지도 모른다.
‘그럴 기회나 있으려나 모르겠네.’
나는 미리 로건 데올릭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