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85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85화>
명왕(3)
나는 지금까지 데미안과 수차례나 검을 섞어 보았지만, 단 한 번도 그의 전력을 끌어낼 수 없었다.
그가 전력을 발휘하면 나와의 대련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탓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데미안의 검격을 통해, 그가 지금껏 얼마나 나를 봐주면서 대련에 임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데미안 비에트, 그는 인지를 아득히 넘어선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가 검신이라 불리고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그를 넘어설 검사는 없으리라 생각됐다.
‘……터무니없네.’
그런데 루갈은 그러한 데미안의 검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고 있었다.
과연 그 또한 최초의 칠영웅이라는 칭호에 부족함이 없는 괴물이었다.
“저 인간 진짜 대단하네.”
나는 벽에 처박혀 기절한 로건 데올릭을 보았다.
그는 대체 무슨 담력으로 저 사이에 끼어들었단 말인가.
콰콰쾅!
백색의 검광이 말 그대로 뿜어지며 루갈이 있는 장소를 난도질했다.
수백 개의 검기가 부메랑처럼 휘어지며 루갈을 향해 날아들었다.
‘단월신검의 세 번째 절기, 백앵화영(百櫻華榮).’
내게 시범을 보여 줬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단월신검의 절기 중 가장 화려하며, 아름다운 절초.
저 새하얀 꽃잎들 하나하나가 검기다.
수백 개에 이르는 검기가 꽃이 피듯 퍼져 나가며 일대에 만개했다.
사사사삭!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격이건만, 루갈은 그것을 일부는 방벽으로 막고, 일부는 허공에서 만들어진 흑색의 사슬을 회전시켜 튕겨 내며 역으로 데미안에게 반격을 가했다.
나는 한 번 펼치기도 힘든 절초가 수없이 펼쳐졌고, 루갈은 그에 아무렇지도 않게 맞섰다.
[보고만 있을 거야?]내가 잠자코 있자, 그란세시아가 조용히 물었다.
결코 나를 탓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게 정상이라며 나를 달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틈을 보고 있었을 뿐이야.”
물론, 두려움이 앞서는 건 맞다. 상식 밖의 괴물을 눈앞에 두고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미 각오를 다지고, 이 앞에 선 것이다. 이제 와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신중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내가 끼어들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을 테니까.”
기껏해야 한 번이나 두 번.
저 괴물들의 싸움에 내가 끼어들 수 있는 기회는 그 정도가 고작이리라.
그렇기에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눈앞의 싸움을 바라봤다.
다가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데미안,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죽이고 나는 이곳을 벗어날 테다!」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흑색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마법이 폭격처럼 쏟아졌다.
데미안은 그 모든 걸 받아 내며, 역으로 루갈을 몰아붙였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무덤덤하게 읊조리는 데미안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반면 루갈에게서는 여유는커녕 긴장한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많이 성장했구나.’
이전이었다면 둘의 싸움에서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식의 기본을 터득한 지금, 압도적 강자들의 싸움에서도 어렴풋이나마 그 흐름을 읽어 내는 게 가능했다.
팽팽히 맞서고 있는 듯 보이지만, 지금의 싸움은 분명 데미안이 한 발짝 앞서고 있었다.
「여유를 부리는 것도 거기까지다, 데미안!」
그러나 루갈은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듯 격정적으로 소리치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 순간, 주변에 넓게 펴져 있던 사기가 단번에 루갈에게 빨려들며 새하얗던 그의 뼈를 검게 물들였다.
“……정말 포기할 줄을 모르는군.”
데미안은 루갈을 향해 안타깝다는 시선을 보내곤 더욱 강하게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재차 검을 휘두르려던 그때였다.
“이건…….”
무언가를 느낀 데미안은 멈칫했다.
그조차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기운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 느껴진 탓이었다.
“……루갈, 설마 이 일대를 전부 지워 버릴 생각인 것이냐?”
질문을 던지는 데미안은 처음으로 여유를 잃은 모습을 보였다.
‘뭐?’
나는 그의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미스릴로 견고하게 둘러싸인 장소다. 여길 지워 버린다는 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크크크. 지금 알아차려 봤자 이미 늦었다.」
그러나 루갈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긍했다.
「결국 너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이로써 너와 동등한 위치에 오를 수는 있겠구나. 같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말이다.」
데미안과 나는 루갈이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루갈이 부활을 늦추면서까지 힘을 모았던 건, 데미안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귀어진을 하기 위함이었다.
즉, 애당초 데미안에게 이길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한 거겠지.’
루갈이 리치가 된 것은 오로지 데미안이라는 벽을 넘어서기 위해였다.
그러나 수백 년이라는 시간에 걸친 시간 끝에 깨달은 것이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검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데미안이 루갈과 동귀어진을 했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해도, 데미안을 두고 도망칠 파비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애당초 이러한 상황이었다면 손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는 저 막대한 사기는 솔라리스를 사용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데미안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겠지만…….’
데미안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루갈의 마법을 파훼했을 것이다. 그는 파비안이 죽도록 내버려 둘 자가 결코 아니었으니까.
나는 루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건가?’
수백 년간 숨겨져 있던, 루갈의 생명력이 담긴 핵.
그곳으로 계속해서 지독한 사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루갈은 그것을 일시에 해방하여 이 공간과 함께 이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워 버리려는 생각일 터였다.
지금까지 부활을 반복할 수 있게 해 준 핵을 드러냈다는 건, 그만큼 루갈로서도 모든 것을 걸었다는 의미였다.
‘잘됐어.’
나는 씩 웃었다.
아무래도 일이 훨씬 쉽게 풀릴 것 같았으니까.
「지독한 인연과도 이제 작별이구나, 데미안!」
쿠르릉!
핵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기가 확 뿜어져 나가며 자색의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카가가각!
데미안의 검격이 마법진을 향해 쇄도했지만, 주변에 몰아치는 사기의 폭풍우를 뚫지 못한 채 튕겨져 나갔다.
그 광경을 본 루갈의 턱뼈가 삐뚜름하게 비틀렸다.
분명 비웃음을 지으려 했던 거겠지.
「잘 가라.」
녀석의 손이 지상을 가리켰고, 동시에 데미안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던 순간.
쿠우우웅!
「……응?」
마법진이 크게 흔들렸다.
더불어 루갈의 붉게 번뜩이는 눈빛도 흔들렸다.
광범위한 폭격을 쏟아냈어야 할 마법진이 크게 흔들리며 발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흔들리고, 흔들려서, 부서져라.”
사기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굉음 속에서도 귓가에 박혀드는 음성이 있었다.
그건 단순한 음성이 아니다.
세계의 이치와 법칙에 관여하는 목소리, ‘용언’이 사방에 모여들던 마력을 옭아매며 마법진을 야금야금 파괴시키고 있었다.
「저, 저건…… 대체 뭐냐?!」
그제야 루갈은 뒤늦게 리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던 탓에 리야의 존재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용언을……?」
루갈은 역사상 최악이자, 최강의 마법사 기록되는 인물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대로라면 그가 도달한 경지는 무려 8클래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위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조차 용언의 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루갈, 내가 늘 말하지 않았나.”
「데미안, 이놈! 대체 저런 계집을 어디서……!」
“시야를 좀 더 넓게 가지라고 말이야.”
마법의 발동을 멈춘 틈을 타, 데미안은 단월신검의 절기를 펼치며 루갈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루갈은 당황한 와중에도 남은 힘을 쥐어짜 그것을 막아 냈지만, 확연히 여유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제길! 설령 용언이라도 이 마법의 발동을 완벽히 막지는 못한다! 그저 조금 시간을 벌 뿐…….」
이를 바드득 갈며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데미안에게 소리치던 루갈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바로 뒤쪽에서 옅은 기척이 느껴진 탓이었다.
「아니?!」
경악한 루갈의 외침이 들렸다.
그야 당연했다.
누구의 접근도 허락지 않던 핵의 근처까지 누군가가 도달했으니까.
그게 누구냐고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나였다.
「대체 언제 저곳까지……!」
녀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솔라리스로 공간을 갈라, 공간의 틈새를 통해 몰래 이동한 것이었으니까.
아인트반에서 상급 마족들도 이와 같은 솔라리스의 능력에 크게 당황하여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
「이 벌레 같은 놈이! 거기서 움직이지 마라!」
루갈은 데미안을 뿌리치고 내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코앞에 검신(劍神)이 있는데 어찌 내게 다가올 수 있단 말인가.
콰득, 콰드드득!
루갈은 어떻게든 내 주변에 마법을 발동시켜, 핵의 근처에 무수한 검은 촉수를 만들어 나를 공격했다.
검은 촉수는 가까이 다가서기만 해도 피부를 녹여 버릴 정도로 지독한 사기를 내뿜고 있었다.
물론 나한테는 전혀 소용없지만.
「도대체 어떻게……!」
신혈, 그리고 아가트람은 사기의 접근을 완벽히 막아 주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루갈의 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베고, 베어 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검은 촉수는 신혈로 휘감긴 제노바에 베이자,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이노오옴!」
핵의 코앞까지 접근했을 때, 루갈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데미안의 공격에 몸 곳곳이 베어지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신체는 파괴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회복할 수 있지만 핵은 아닐 테니까.
“늦었어.”
푸욱!
나는 그렇게 말하며 보라색 마법진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정확히는 마법진의 중심, 심장처럼 고동치던 보라색 보석을.
「이 벌레 새끼가……!」
이 와중에도 집념을 불태우며 다가오는 루갈의 모습은 심히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녀석은 내게 도달할 수 없었다.
내 바로 앞에서 데미안의 검에 사지가 잘려 나가며 머리가 꿰뚫렸기 때문이다.
「……!」
녀석의 입이 벌려지며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 부서진 해골의 덜그럭거림만이 울릴 뿐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죽어라.”
핵을 꿰뚫은 제노바의 검신이 본래의 색을 되찾아갔다.
정확히는 검신을 휘감고 있던 신혈이 방금 꿰뚫은 루갈의 핵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혈폭(血爆).”
혈폭.
혈 마법의 하나로, 그 효과는 간단했다.
말 그대로 피를 폭탄처럼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마력이 부족한 나의 경우엔 이런 식으로 상대의 몸에 피를 흘려 넣은 다음 폭파시키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겠지.
콰아아앙!
검 끝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동시에, 하늘에서 은색의 기둥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