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93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93화>
이족(異族)의 땅(1)
“요정들이 검집을 만들어 준 자라면 평범한 인간은 아닐 테지.”
요정은 인간 앞에선 모습을 감추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인간에겐 설화나 전설 속 존재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아인족은 요정과 지속적으로 교류를 해 온 탓인지, 나의 이야기를 딱히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최근 발견된 신전은 오래전 드워프들이 만든 유적이오.”
“그 신전은 어쩌다 발견된 겁니까?”
“그건 이야기하자면 좀 복잡하오.”
드워프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시작은…… 그래, 마족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부터였지.”
“마족?”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광의 재해도 마족과 얽혀 있는 건가?
“마족들은 이 근처에 재해가 탄생했다며 우리에게 협력을 요구했소.”
“그게 정말입니까?”
이야기는 이랬다.
마족들은 라반테라로 찾아와 이 근방에 재해가 있음을 밝히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라반테라의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정말로 재해는 존재했고, 문제가 커지기 전에 마족에게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마족들의 말로는 재해를 쓰러트리기 위해선 천하칠검이 필요했다.
마침 라반테라에는 천하칠검이 존재했기에 재해를 토벌하는 대가로 천하칠검을 마족에게 넘겼다.
물론, 마족의 말이 거짓일 확률도 있으니 마법으로 이루어진 철저한 계약 아래 일은 진행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마족은 재해를 쓰러뜨리고 사라졌소.”
“그럼 그 신전은…….”
“재해와 마족이 싸우며 산맥에 큰 변화가 생겼지. 그 과정에서 발견된 신전이요.”
“그 신전에는 뭐가 있었던 겁니까?”
“검이오.”
그는 참담한 얼굴로 이걸 말해도 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내 결심했는지 입을 열었다.
“오래전 신이 천하칠검을 지상에 내렸을 때 드워프들은 그 신의 검을 뛰어넘는 검을 만들고자 했지. 알다시피 우리 드워프들은 어떤 종족보다 뛰어난 장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으니…….”
물론 요정과 같은 특별한 존재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무튼 드워프들은 신이 내린 검조차 능가하는 검을 만들고자 했다.
거기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드워프들이 그것에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는 게 큰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검이 탄생했지. 하지만 그 검은 보통 검이 아니었소.”
“보통 검이 아니라면?”
“마검, 그것도 지독한 마검이 탄생한 거요.”
그것을 완성한 드워프는 검을 쥔 순간 광기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일대에 있는 드워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온 드워프 전사들에게 사살당했다.
“그리고 그 전사 중 하나가 검을 쥐고, 또 같은 일이 반복됐지. 큰 희생 끝에 검을 회수한 드워프들은 검을 누구도 알 수 없는 장소에 봉인했소.”
“그것이 그 신전입니까?”
“그렇지. 검이 봉인된 장소는 우리는 물론 누구도 알 수 없도록 그 위치를 남기지 않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위치를 알게 될 줄이야.”
마검에 대한 위험을 알아야 하기에 그 검이 무엇인지는 구전되었지만, 장소는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검의 위치가 밝혀진 이상, 그것을 다른 곳에 봉인하기 위해 드워프들이 검을 옮기려 했으리라.
“그 와중에 습격을 당한 거군요.”
“그렇소.”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상해.’
드워프도 드워프지만, 이곳에는 설정상 광의 재해로 인해 죽은 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다 마족이라고?
‘설마…….’
나는 최악의 경우를 떠올렸다.
여태 개변한 내용 중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 미래가 바뀌었을 경우.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변수들을 떠올렸다.
그중 몇 가지 걸리는 것들을 따로 분류한 뒤에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그 검을 찾아야 해.’
나머지는 그 이후에 천천히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검은 아니었다.
드워프들이 운반하던 마검. 분명히 그 검은 습격한 인간들이 가져갔겠지.
그것을 어떻게든 빨리 찾아내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볼 때, 바로 그 검이 ‘광(狂)의 재해’일 테니까.
* * *
레오가르트 국왕의 탄신제까지 앞으로 4일.
원래는 탄신제가 끝난 이후 케즈먼 산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마검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었으며, 드워프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라반테라에는 천하칠검이 한 자루가 더 있소.”
당시 나타난 재해를 상대하기 위해서 마족에게 내어준 것은 ‘봉인검 씰핀’, 엘프들이 지키고 있던 검이었다.
“그리고 드워프들이 지키는 검이 하나 더 있지.”
극검 델토드.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바로 그 검이 ‘광의 재해’에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4일은 너무 촉박하지 않나요?”
케즈먼 산맥으로 향하기 위한 수속을 끝냈을 무렵, 리야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케즈먼 산맥이 탈루아 왕국과 바로 인접해 있다고는 하나, 왕복 4일로는 다녀올 수 없는 거리인 탓이었다.
“마탑을 이용한다면 산맥 근방까지는 금방 이동해. 다른 아인족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4일이면 충분하지.”
“그건 그렇지만, 만약 늦으면 탄신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공작 각하에게 말해 뒀으니 어떻게든 해 주시겠지.”
설령 촉박하고 무리라고 할지라도 가야만 했다.
그곳의 시놉시스를 확인하여 현재 뒤틀린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광의 재해가 지닌 능력이 무엇인지 한시라도 빨리 확인해야만 했다.
또한 광의 재해를 상대하는 데 극검 델도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상, 반드시 그걸 손에 넣어야만 했으니까.
‘마검을 추적하는 건 제이드에게 맡겨 두고…….’
내가 없는 사이에 재해가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지만, ‘그’라면 재해를 상대로도 잠시나마 버텨 줄 것이라 믿었다.
‘리비나 백작을 믿는 수밖에.’
리비나 백작과 그의 휘하 기사단은 현재 탄신제를 위해 시오텐에 도착해 있었다.
칠영웅인 그와 왕국 제일의 기사단이 함께라면 내가 돌아오기 전까진 버텨 주리라.
하지만…….
‘혹시 모르니 서둘러야겠어.’
나는 옆에 있는 리야에게 시선을 보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케즈먼 산맥에 갈 겁니다. 혹시 안내를 해 주실 분 계십니까?”
“저, 정말로 저희를 돌려보내 주시는 건가요?”
나를 향한 불신은 처음보다 확연히 옅어지긴 했지만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불안한 어조로 묻는 엘프 소녀에게 나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러면 제가 하도록 하죠.”
앞으로 나온 건 어제 리야에게 된통 깨졌던 엘프 청년이었다.
“제 이름은 피오른이라고 합니다. 마을 제일의 사냥꾼이었죠. 산맥의 길은 훤히 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믿는지, 그는 자신의 이름까지 밝히며 내게 신뢰를 보냈다.
“인간들 중에는 당신과 같은 사람도 있었군요. 그러니 검의 선택을 받은 거겠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가장 앞에 있는 마차의 마부석에 앉았다.
아인족들의 숫자가 꽤 되는지라 마차의 수만 해도 열 대에 가까웠다.
‘케즈먼 산맥이라…….’
좀 더 느긋하게 다녀오려고 했는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 * *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는 길지 않았다.
마탑을 경유하여 케즈먼 산맥에 가장 가까운 장소로 이동한 뒤, 산맥은 직접 걸어서 올라야만 했다.
맨 앞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엘프 청년, 피오른은 산맥의 입구에 도착하자 나를 보았다.
“험준하지만 빠른 길과 완만하지만 느린 길이 있습니다. 어디로 안내해 드릴까요?”
“최대한 빠른 길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피오른은 대답하자마자 한달음에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엘프와 드워프들은 그 뒤를 따랐고, 나 역시 뒤를 따라 달렸다.
‘확실히 이전이었다면 금방 놓쳐 버렸겠는데.’
확실히 아인족은 인간과 달랐다. 산을 타는 것이 놀랄 정도로 능숙했으며 빨랐다.
별다른 마력을 사용하는 것 같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자연을 닮는 거야.]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란세시아가 말했다.
[인간과 달리 아인족은 자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엘프는 숲, 드워프는 대지, 수인족들은 공기의 영향에 따라 달라져.]‘그게 중요한 건가?’
[중요하지. 특히 네가 이 이상의 경지를 밟고자 한다면 알아야 해. 유식을 완성하기 위해선 자연을 받아들여야 하니까.]그것이 유식의 완성이라고 그란세시아는 말했다.
‘리야는 괜찮나?’
계속해서 산을 뛰어오르던 중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리야가 떠올랐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허공에 둥둥 떠서 느긋하게 따라오는 리야가 보였다.
[저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쟤는 마법이 아니라 달려도 충분히 쫓아올 녀석이야.]‘……그렇군.’
그렇게 산맥을 타고 오를 두 시간여 흘렀을 때, 산속 깊숙이 들어서자 점점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 떴다.’
[뭐가?]‘시놉시스.’
시놉시스는 특정 지역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서 진행되는 에피소드에 한해서만 나타난다.
에피소드의 무대가 되는 건 케즈먼 산맥 전체가 아닌 터라 언제쯤 시놉시스가 나올지 산을 오르며 기다리던 차였다.
‘이건…….’
나는 시놉시스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왜 그래? 원하던 정보가 없어?]‘그건 아니야.’
정보는 있었다.
다만 그 양이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두 개의 재해가 동시에 얽혀 있는 탓인가.’
시놉시스를 전부 자세히 살피기엔 시간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우선 당장 급한 광의 재해에 대한 정보를 위주로 살펴야 할 듯했다.
쉬이익!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화살?’
그것도 단순한 화살이 아닌 검은색 도료가 발라진 화살이었다.
어렵지 않게 피할 수는 있었지만, 만약 유식을 터득하기 전이었다면 목숨까지 위험했을 뻔한 공격이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려 하느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워지고, 안개까지 낀 탓에 육안으로는 나를 공격한 자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자,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이분은 적이 아닙니다!”
“뭐라고?”
방금 내가 공격당했다는 걸 인지했는지 피오른이 내게 급히 다가왔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피오른! 왜 인간 놈을 따르고 있는 거지?”
“따르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노예상에게 잡혀갔었으나, 이분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건가?”
피오른의 말에 어둠 속에 숨은 자는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한결 기세가 꺾인 느낌은 받았다.
“후후후.”
그때, 작은 웃음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워낙 상황에 맞지 않은 소리였던지라 주변의 시선이 단번에 쏠렸다.
웃음소리의 주인은 리야였다.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방금 화살이 스쳐 지나간 장소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감히.”
살짝이지만 찢어진 옷깃.
그것을 본 리야의 동공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세로로 쭉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