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무스펠하임을 떠난 두 사람은 미드가르드 40번 스트리트를 향해 걸었다.
지하 도시 레이드 팀의 전멸 이슈가 퍼져 쳐다보는 플레이어들이 많았지만, 중심가에서 멀어질수록 지나다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리디안은 이전에 살던 12번 스트리트보다 더 휑한 안쪽 거리를 지나며 혀를 내둘렀다. 20번대 스트리트도 썰렁한데, 외곽이나 다름없는 40번 스트리트에 그들이 살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다람 님네… 엄청 멀리 떨어진 곳에 사시네요?”
“원래는 중심가에 있었는데. 밤에 시끄럽다고 멀리 이사했대요.”
“…네? 그래요? 특이하시네요. 그래서 거의 본 사람이 없는 건가?”
“그것도 있고, 다들 야행성이라서요.”
야행성? 동물도 아니고 야행성이라니? 리디안은 기막힌 웃음을 삼켰다.
밤낮 시차에 따라 생체 리듬이 적용되는 곳이지만, 플레이어가 노력한다면 패턴을 뒤바꿀 수 있어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길드 성 및 상점에 있는 NPC들에게도 수면이라는 개념이 없어 상시 이용이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밤에는 더 어둡고 사람도 없는데. 굳이 밤에요……?”
“네. 그게 더 조용해서 좋대요.”
그렇구나, 하며 리디안은 조용히 끄덕였다. 취향 차이겠지만 어쨌든 특이한 사람들인 건 분명했다.
크라이그를 따라간 곳은 40번 스트리트의 어느 주택가였다.
사람이 없어 한적하고 좋긴 한데, 대체 어디서 만나는 거지? 설마 집으로 들어가는 건가? 갸웃거리던 리디안은 조용한 주택가 사이, 덩그러니 놓인 작은 공원을 목격하곤 낮은 탄성을 질렀다.
키 작은 꽃나무와 나무 벤치가 여럿 놓인 그곳엔, 처음 보는 플레이어 세 명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다람 / 길드 : 이상성욕자(M)
레벨 : 78 / 직업 : 다크 템플러 / 보조 직업 : 없음
HP : 2500 / MP : 2500
플레이어 정보
이름 : 고독한 / 길드 : 이상성욕자
레벨 : 77 / 직업 : 아쳐 / 보조 직업 : 없음
HP : 2850 / MP : 850
플레이어 정보
이름 : 김팔라 / 길드 : 이상성욕자
레벨 : 76 / 직업 : 팔라딘 / 보조 직업 : 없음
HP : 3210 / MP : 990
거리가 제법 가까워져,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한 리디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특이하다는 평판과 다르게 다들 생김새는 멀쩡해 보였다. 그렇다고 반쯤 맛이 간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서도, 겉보기에 몹시 평범한 터라 리디안은 다소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다람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크라이그나 주변인보다 키가 좀 작은 걸 제외하면. 딱 그 나이다웠고, 얼굴 가득 묻은 웃음도 첫인상으로는 지극히 호감이었다.
힘 아쳐로 유명하다는 고독한 역시 다람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다만 큰 키에 떡 벌어진 체격은 물론. 무표정한 얼굴 탓에 다소 무서워 보이긴 했다.
그 옆 김팔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마도 힘 스탯을 찍은 팔라딘. 한때 그 괴이한 육성 방식에 대해 공식 커뮤니티에 이런저런 토론이 올라왔기에, 리디안은 신기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가장 크라이그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김팔라가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야, 서윤재. 진짜 오랜만이다.? 저번 달에 광장에서 보고 처음인가? 요새 레이드 뛴다고 바쁘냐? 전투 길드 체질인가 보네?”
한달음에 달려온 김팔라가 크라이그의 등을 퍽 후려쳤다. 레기온에서 크라이그의 몸을 막 대했던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리디안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시선에 낯선 인물을 힐끔거린 김팔라가 궁금증을 드러내던 때,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다람과 고독한도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곤 리디안을 주시했다.
“아, 안녕하세요!”
예의 있는 리디안은 서둘러 고개 숙여 그들에게 인사했다. 뭔가 뒷말을 더 붙였어야 했을까? 아차, 싶어 당황하는데. 다람이 커다란 호기심을 보였다.
“오? 세인트? 실험 참가자임? 직접 데려와 준 거? 진짜? 땡큐! 역시 믿을 건 너밖에 없다. 지능 세인트 진짜 궁금했는데. 잘 됐다. 아, 물약 지금 창고에 있는데. 지금 가져올까?”
의외로 또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흥분이 묻어 성급해 보이기도 했고, 뭔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느낌도 들었다.
리디안은 갑작스러운 발언에 깜짝 놀라 크라이그를 바라봤다. 실험? 지능 세인트?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나 혹시 속은 건가? 불안함에 눈을 깜박거리던 때. 크라이그가 짙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 개소리 그만. 이상한 김칫국도 그만 퍼마시고. 그냥 나랑 같은 길드원이야.”
“아, 그래? 여자 친구? 여자 친구구나? 오오~ 나 지금 춤춰야 되는 거 맞지?”
좀 더 높아진 목소리에 리디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왜 또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죠?
한편, 크라이그는 방정맞게 몸을 흔드는 다람을 보며, 또다시 한숨 쉬었다.
“아, 진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집중 좀 해. 방금 내가 같은 길…….”
“나한테 인사하러 온 거 맞지? 이야, 기쁘다! 집 나간 아들이 이렇게 열매를 맺어 돌아오다니!”
크라이그가 짜증을 부리기도 전에, 다람은 크라이그에게 달려들어 진득하게 끌어안았다.
이건 또 무슨 플레이지? 리디안이 황당하게 쳐다보기가 무섭게 휙 시선을 돌린 다람은 다시 떨어져, 리디안을 향해 눈을 빛냈다.
“반가워요! 아니, 근데 어쩌다가 윤재랑 만났어요? 윤재 개또라인데? 잘해 줘요? 주로 어디서 놀아요? 근데 여기 놀 곳이 있나? 생각해 보니 궁금하네? 여기서 연애하면 뭐 하고 연애하지? 혹시 사냥? 아~ 그럼 그렇지. 이 또라이가 그럼 그렇지. 그냥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는 건 어때요? 얜 아니야. 레기온에 좀 정상적인 사람 없어요? 아니면 다른 길드라도. 아, 얘도 괜찮은 앤데. 윤재보다 듬직하지 않아요? 그치, 김팔라? 아, 근데 몇 살이에요? 어려 보이는데? 원래 계속 세인트만 했어요? 그런데 아이디가 어디서 좀 들어본 거 같은데? 아, 맞다. ANG 길드 아니었나? 남캐 아니었어요? 혹시 캐릭 사신 거?”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휘몰아치는 질문은 물론. 예고 없이 들어온 요청에 리디안의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고작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리디안은 어버버 당황했다. 물어본 것에 부정도 해야 하고, 답변도 해야 하는데.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뭐가 그리 급한지, 다람이 자꾸 친구 요청을 중복으로 걸어 눈앞에서 시스템 창이 사라지질 않았다.
다른 것과는 달리, 친구 신청은 중복으로 들어간다는 게 노르드 월드의 큰 단점이었다.
당황한 리디안은 일의 순서를 잊어버린 채, 손끝만 파르르 떨었다.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시끄럽게 울리는 알림음과 속사포로 터지는 다람의 주절거림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 근데 혹시 지능 세인트 할 생각 없어요? 스탯 재조정 물약 지원 가능한데. 내가 진짜 전 직업 스탯 실험해 보는 게 소원이거든요? 근데 물약이 하나밖에 없어서 계속 지능 스탯 유지해야 하는 단점이 있긴 해요. 그래도 나쁘지 않을걸요? 신축할 때 솔직히 삑사리 나면 짜증 나잖아요. 그쵸? 내 말대로 하면 완벽한 국산 신축되는 건데. 어때요, 괜찮죠? 땡기죠? 하고 싶죠? 하고 싶을 거야. 이거 하면 완전 네임드 된다니까요?”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아, 아니. 다람 님? 자, 잠깐만요… 잠깐, 잠깐……!”
“야! 환이랑 준이, 뭐 해! 빨리 너네도 친추 걸어! 와, 드디어 우리도 제대로 된 세인트 지인이 생기네! 아, 저번에 잠깐 들어왔던 나 모 님은 실험하기도 전에 탈주했거든요. 그 뒤로 연락해도 씹으셔서 상처받았는데. 응급실 길마도 나한테 한 소리 하고. 그랬지? 그치, 환아? 그래서 세인트는 포기해야 하나 했는데, 이렇게 또 기회가 생기네! 어때요, 할 생각 들죠? 마구 마구 하고 싶죠? 네임드 되고 싶죠?”
“아니, 저는 생각 없…….”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김팔라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고독한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중복으로 뜬 창이 몇 개인지. 이젠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뭔가 누르려 하면 곧장 다른 창이 떴다. 리디안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경련했다.
아니,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한 거야? 그리고 다람은 그렇다 치고. 저 두 사람은 왜 또 착실하게 말을 따르는 건데? 그것도 바빠 죽겠는데!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뒷목을 붙잡았다.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 [다람 님으로부터 친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ES / NO]‘그만해, 이 미친놈아!’
하마터면 버럭 소리 지를 뻔했다. 이쯤 되니 NO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후환이 두려워, 리디안은 눈물을 머금으며 간신히 YES 버튼을 눌렀다.
징그럽게 쌓인 다람의 신청을 지우느라, 고독한과 김팔라의 신청을 수락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1분도 안 돼서 수척해진 리디안은 넋 나간 눈동자로 크라이그를 쳐다봤다. 약간의 원망을 담아서. 크라이그는 미처 다람을 막지 못한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지, 낮은 한숨과 함께 다람의 멱살을 잡아끌고 갔다.
점점 멀어지는 다람의 모습에 고독한이 다가와 한마디 했다.
“원래 저렇게 혼자서도 정신없는 미친 새끼니까, 그냥 무시해요. 뭔 말을 해도 다 개소리니까 대꾸하지 말고.”
아예 사람 취급하지 말라는 조언에 리디안은 잠시 당황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래요? 물론 휘몰아치는 그의 말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도 무시라면, 무시려나?
“형. 제발. 저기 길드원도 데리고 왔는데, 자꾸 이렇게 미친놈처럼 굴면 내가 뭐가 되냐고.”
“뭐야. 너 내가 부끄러워?!”
“수치스러워. 그보다 내가 말한 건? 생각해 봤어?”
리디안에게 꽂혀 있던 다람의 시선이 비로소 크라이그를 향했다. 눈동자 가득 차있던 반짝임이 줄어들었지만, 흥분된 목소리는 여전했다. 새로운 대화 주제를 덥석 물은 다람은 신이 나서 또 떠들었다.
“아, 그거! 죽마저! 당연히 있지! 내가 뭐라 그랬냐! 분명 사용처 생길 거라 그랬지? 개발자 놈들이 쓸데없이 아이템을 만들 리가 없잖아. 역시 모아 두길 잘했어. 내가 아이템은 실사용 용도로 하나, 보관용으로 하나, 예비용으로 하나. 이렇게 세 개씩 모아 놓잖아? 근데, 악발이나 악손 같은 고가 템은 구하기가 힘들어서 좀 아쉽다. 저번에 거래소 가니까 영 시원치 않더라? 너네 사냥 다닌다면서? 근데 아이템 안 풀어? 길드 내수용으로만 돌려? 아, 맞다! 너네 저번에 죽사막에서 악발, 악손 나왔다면서? 누가 먹었어? 혹시 팔 생각 없나? 나 돈 많은데?”
“형. 제발, 부탁인데 그만 닥치고 본론만 말하면 안 돼?”
크라이그는 이제 그를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리디안은 지친 웃음을 흘렸다. 몇 걸음 떨어져 그냥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언젠가 ‘죽사막’ 파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파파가 말하길. 다람은 5분만 같이 있어도 기 빨리는 사람이라고 했었지. 리디안은 다시 뒷목을 잡았다. 그땐 그냥 좀 정신없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5분은커녕, 1분만 같이 있어도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