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태양 연합의 사정】
태양, 무법자, 슈퍼문.
세 개의 전투 길드가 연합해 진행한 ‘죽사막’ 레이드에는 총 50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레이드에 있어 가장 부족했던 세인트 직업군을 슈퍼문 길드에서 충원한 덕분에 든든했고, 한동안 필드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대장군’까지 레이드에 참여해 딜러진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덩달아 집합 한 시간 전에 들려 온 ONE과 레기온의 지하 도시 전멸 소식에 다들 축제 분위기였다.
어차피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 서로 간 길드 분위기가 이리된 마당에 그들이 지하 도시 레이드에 성공해 공략법을 공유할 확률은 낮았다.
그러니 그들의 실패를 축하해야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오늘 느낌 좋네~ 저는 핑푸 님만 믿습니다~”
슈퍼문의 길드 마스터, 무너스키가 핑크푸크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아이디 때문에 대머리라고 놀림받는 것과는 달리 그는 숱이 풍성한, 인상 좋은 40대 아저씨였다.
최근 ONE과 레기온의 합동 레이드에서 종결 아이템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는 소문 탓에 소수 정예인 슈퍼문 또한 레이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무너스키로서는 이 연합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레이드 출발 직전, 죽은 모래사막 대기실은 50명의 플레이어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아이템을 먹을 생각에 들뜬 한편. 슈퍼문의 세인트, 보리알은 속 편하게 웃고 떠들기 바쁜 무너스키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누나, 왜 그래요?”
같은 길드의 세인트인 ‘먹구름’ 이었다. 워낙 친한 동생 사이라, 보리알은 기다렸다는 듯 쌓인 불만을 내뱉었다.
“별로야.”
“뭐가요?”
“다 마음에 안 들어. 용식이는 레벨 낮다고 오지도 못하고. 그리고 다들 어떤 스타일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는 게 말이 돼? 세인트도 좀 별로야. 저기 무법자에 이트 말고 믿을 만한 힐러도 없잖아. 딱 봐도 우리 길드 애들만 잔뜩 고생할 것 같은데.”
“흠. 그렇긴 하죠. 태양이 워낙 물망초만 밀어댔으니……. 외이리? 코헤이? 이 사람들 종종 보이긴 했어도 크게 활약한 것도 없고, 아이템도 그저 그렇고. 뭐, 그래도 알아서 잘하겠죠. 나름 2위 길드 세인트들인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대장군 실물 쩌네요. 진짜 멀리서 봐도 그냥 모델이네, 모델. 키가 185랬나? 엄청 눈에 띄네요. 내려다보는 기분 진짜 째지겠다.”
현재 대장군은 대기실 중앙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태였다.
단연코 눈에 띄는 외모라, 교류 없던 플레이어들도 다가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다른 여자 플레이어들도 와, 하며 감탄했지만 보리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쟤도 별로야. 비리비리하게 생겨서. 딱 보니 부주보다 못 할 거 뻔하고. 실실 쪼개는 거 보니까 실속 없어 보여.”
“와, 누난 진짜 박하다. 지금 다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대장군 쳐다보기 바쁜데.”
“얼굴이 무슨 소용이야. 당장 죽느냐, 사느냐가 달렸는데.”
“그렇긴 한데. 에이,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아요, 누나~ 표정도 좀 풀고요~”
“아, 몰라. 아무튼, 다 짜증 나.”
잔뜩 성난 보리알의 태도에도 먹구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보리알은 평소에도 예민한 사람이라 낯선 사람들과 파티를 한, 이 상황이 큰 스트레스인 건 당연했다.
“보리알 님! 먹구름 님! 잠깐 이쪽에 모일게요!”
무법자의 세인트, 이트가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표정을 갈무리하곤 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트는 모든 세인트가 모이자, 보리알의 눈치를 살폈다. 깐깐하지만 지휘 쪽으로 나서는 건 또 싫어하는 성격인 보리알은 알아서 하라며 눈짓했다.
덕분에 이트는 편안한 얼굴로 말할 수 있었다.
“보리 님이랑 의논 후 정한 담당이에요. 우선 메인 힐은 저랑 보리 님이 맡습니다. 버프는 태양 길드의 외이리, 코헤이 님이 전담하시고. 먹구름 님, 환몽 님이 한 시 방향에서 신축 담당. 타로티 님, 오열 님, 리미티드 님이 잡몹 파티에서 보조 힐 담당해 주세요.”
하이 랭커 세인트의 지도에 따라 보리알을 제외한 세인트들이 네, 하며 끄덕였다. 자신의 역할을 숙지한 세인트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잘 부탁드린다는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는 사이, 보리알은 낯선 세인트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슈퍼문의 세인트들이 제 눈치를 보며 잔뜩 각이 잡혀 있었다. 반면에 태양의 외이리, 코헤이는 서로 피식거리며 농담을 나눴고, 무법자 길드인 타로티는 잔뜩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무언가 언밸런스한 광경에 보리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세인트 경력 3년. 보리알은 불협화음을 직감했다.
* * *
‘죽사막’ 입장 후, 연합 레이드 파티가 보스 구역 근처에서 트랩 작업을 진행할 무렵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트랩을 확인하는 내내 실수 한번 없었고, 확인 작업도 20분 내로 빠르게 끝났다. ONE과 레기온이 초반 트랩 작업 시, 누락되어 사망자가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무척 평탄한 편이었다.
“보조 직업 재료 떨어진 위치 주의하면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핑크푸크가 트랩에 대한 경고를 날리는 사이, 보스, ‘사막의 지배자 리비쿠스’를 앞에 두고 많은 이들이 긴장을 삼켰다. 스무 명 정도는 필드에 익숙지 않은 데다, 레이드 자체가 처음인 사람도 있어 당연했다.
트랩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며 바드와 세인트들이 먼저 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대강 버프가 완료될 즈음, 메인 탱커인 아퀴나스, 미인도, 하막이 각자의 어그로 스킬로 레이드 시작을 알렸다.
분노한 리비쿠스의 몸체가 완전히 솟아올랐고,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메인 다크 템플러인 블루벨이 먼지를 뚫고 뛰어가 수치 감소 계열의 디버프 필드를 깔기 시작했다.
조심성 많은 핑크푸크는 모든 디버프가 완전히 적용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공격을 지시했다.
“딜러! 공격 개시!”
긴장을 삼키며 대기하고 있던 딜러들이 일제히 뛰어나갔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핑크푸크는 안정적으로 떨어지는 보스의 HP를 바라보며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세 길드의 하이 랭커 수는 거진 서른 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상위 하이 랭커 딜러의 분포가 부족해, 다들 극 공격력 세팅을 한 상태였다.
거의 모든 딜러의 HP가 평소보다 현저히 낮아진 터라, 메인 힐러인 보리알과 이트가 바쁠 수밖에 없었다.
보리알도 이트처럼 이곳에 온 이후 레이드는 처음이었다. 변수가 많다는 얘길 들어 초반에는 전체 힐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노련한 세인트답게 금세 적응했고, 점차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한숨 돌릴 정도가 되자, 보리알은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덩달아 바쁜 상황에 가려져 있던 문제점들이 그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리비쿠스의 등장 후부터 쏟아지는 패턴은 듣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직접 몸으로 뛰는 만큼 닿는 순간 즉사하는 중독 필드를 피해, 사력을 다해 달려야 했다. 독 기둥이나 모래 구덩이 패턴이 이어질 때 역시 죽지 않기 위해, 혹은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넘어지기도 일쑤였다. 혹은 누군가와 부딪히기도 했고, 재수 없으면 트랩을 밟아 즉사하기도 했다.
공략이 완벽해도 어쩔 수 없었다. 비겁한 변명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처음이라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한 인물이 유독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탓에 사람들의 눈초리가 점차 사나워졌다.
“아, 진짜 왜 자꾸 밟는 거야.”
네 번째 독 기둥 패턴이 끝난 후, 이트는 트랩을 밟고 죽은 따거를 향해 부활 스펠인 ‘부재노’를 외우며 중얼거렸다. 따거만 벌써 세 번째였다. 보리알도 자꾸 반복되는 따거의 실수에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비단 독 기둥 패턴뿐만이 아니었다. 모래 구덩이 패턴 때도 따거는 실수를 연발했다.
리비쿠스가 집게를 모래에 처박고 진동을 일으키면 생기는 게 모래 구덩이였다. 사전에 옅은 그림자가 표시되기 때문에 발밑만 살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패턴이었다.
그런데도 매번 모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덩이에 빠진 상태면 아무것도 못 하고 HP만 줄줄 떨어지기에. 죽지 않게 신경 써야 할 힐러의 부담이 늘어나는 셈이었다.
“아, 저 사람은 무슨 벌써 노안이 왔나. 발밑에 그림자 안 보이나?”
무법자의 바드인 지울리아노 역시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 그러나 가장 쉬운 독 안개 패턴 때, 보인 따거의 행동에 보리알이 참다못해 빽 소리 질렀다.
“따거 님! 방향 좀 보고 다니세요! 바람 부는 방향만 보고 피하면 되는데, 왜 그걸 그대로 다 맞고 자꾸 딸피 되는 거예요?!”
그러나 돌아온 건 따거의 적반하장이었다.
“안 뒤지면 되는데, 뭐가 문제? 그쪽에서 힐만 꼬박꼬박 주면 죽을 일 없는데?”
보리알은 어이가 없어 입가를 파들파들 떨었다. 죄송합니다, 라는 대답을 바랐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따거가 되레 따지고 드니 어안이 벙벙했다.
“보리 님. 참으세요. 저 형님이 원래 좀…….”
너무 익숙한 패턴이라, 태양의 바드인 흑도가 재빨리 보리알에게 속닥였다.
그러게 처음부터 빼놓고 가자니까. 따거가 나름 하이 랭커 딜러라고 일단은 데려가 보자는 핑푸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보리알은 그런 흑도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내가 참아야 하느냐고 따져 물으니, 흑도는 진땀만 뻘뻘 흘렸다.
기가 막혀 또 한 소리를 하려던 찰나, 먹구름이 다가와 뜯어말렸다. 아끼는 동생의 얼굴에 보리알은 간신히 화를 참았다.
그러다 또 한 번 따거가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목격한 순간,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폭발했다. 보리알은 앙칼진 목소리로 버럭 성냈다.
“야! 장난해?! 너 때문에 자꾸 쓸데없이 MP 낭비하잖아! 제대로 하라고!”
구덩이에 빠져 정지해 있던 따거의 눈이 커다래졌다. 끽해야 서른도 되지 않았을 어린 여자가 바락바락 반말로 소리 지르며 눈을 부라리니 놀랄 수밖에.
그러나 그에 주눅들 따거가 아니었다. 곧장 정신 차린 따거가 쌍욕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급히 뛰어들어 따거를 말린 핑크푸크가 아니었으면 싸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다.
레이드 중이니 참으라고, 형님도 잘한 거 없다는 핑크푸크의 말에 따거는 한참 동안 씩씩거렸다. 그러나 다시금 쏟아지는 리비쿠스의 패턴에 바빠져 화를 낼 틈도 없었다.
겨우 분위기가 소강되나 싶었는데…….
빈번해지는 독 기둥 패턴에 따거가 요란하게 도망 다니기 시작하자, 또다시 분위기가 싸해졌다. 동선 생각 못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탓에, 따거는 여러 사람과 부딪치고 있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자기 몸 우선시하느라 남 배려 못 하는 움직임에, 보다 못한 파프리카가 따거를 향해 외쳤다.
“따거 형님! 가능한 사람들 없는 쪽으로 도망 다니세요!”
지켜보던 이들은 어이없을 뿐이었다. 저걸 굳이 말로 해야 하나? 뇌가 제대로 박혔으면 혼자 판단할 일 아닌가? 슈퍼문의 열혈전사가 허무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상황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따거는 여전히 제멋대로 계산 없이 달렸고, 근처를 뛰던 많은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일부러 따거를 피해 도망 다니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잘 도망쳐 숨 돌리던 사람은 갑자기 쫓아온 따거 때문에 급히 발길을 돌렸으며, 독 기둥을 피해 순탄히 도망 다니던 사람은 자신을 앞지른 따거 때문에 진로를 잃고 허둥대다 넘어졌다.
곳곳에서 난리 통이 벌어지니, 혼잡함에 트랩을 밟고 죽는 플레이어도 생겨났다. 이젠 누구 잘못 때문인지 판별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필드는 개판 오 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