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뒤늦게 달려간 인드라에 의해 매지션들이 제압되고 나서야 뒤집혔던 상황이 겨우 진정됐다. 차례차례 죽은 이들을 부활하던 캐티스는 난색이 된 채 중얼거렸다.
“이거 이제 혼령화 패턴 때도 무조건 사망자 나오게 생겼네요.”
설마하니 조금 떨어져 있던 하츠가 비격 쪽으로 돌진해올 줄은 몰랐다고. 캐티스는 찡그린 눈으로 수면 상태에 빠진 하츠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하츠 님을 다른 쪽으로 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네요. 메인 다템이라 주기적으로 보스 디버프도 걸어야 하고, 반대 방향에 있는 다람 님도 대비해야 하니까. 위치가 너무 애매해서…….”
“어쩔 수 없죠. 하츠 님 혼령화에 걸리는 순간, 우리가 알아서 도망가는 수밖에는. 어쨌든 다람 님보다는 덜 위험하니까요.”
페페도 별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흘끔거리는 시선을 의식한 다람은 뭣도 모르고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표현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해맑은 그의 모습에 페페와 캐티스는 나란히 한숨을 뱉었다.
혼돈 그 자체였던 혼령화 패턴이 지나가자, 진정된 딜러들은 다시 로크바 공략에 집중했다.
떨어진 방어력 덕분에 이른 시간 안에 60%대로 진입했지만, 로크바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차례 봉인으로 플레이어들을 무력화시키더니, 바닥으로 하얀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또다시 시작된 랜텔 패턴에 리디안은 지친 어깨를 떨어트렸다. 랜덤 텔레포트 역시 혼령화 못지않게 인원수가 증가한 상태라, 현재 서른 명 가까이 이동되고 있었다.
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면 똑똑한 길잡이를 만날 확률이 높다고 느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거진 달리기 대회가 되어가는 참이라, 리디안 입장에서는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크라이그도 이제는 리디안에게 구태여 상황을 묻지 않았다.
한 포인트에 대부분 세 명, 네 명이 함께 이동되다 보니 길 운이 좋은 리디안은 매번 길잡이를 만나고 있었다.
이번에도 리디안은 파파와 개복치를 만나 고생 없이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이동 속도에 대한 부담이 커진 탓에 뜀박질은 필수였다. 소수가 된 중앙을 배려해 1초라도 빨리 중앙으로 귀환해야 하기에, 헉헉거리며 뛰는 리디안의 표정은 몹시도 괴로워 보였다.
이동 속도에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보통은 1분대로 귀환하는 편이라. 랜덤 텔레포트 패턴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간혹 힐이 모자라 중앙에 남은 이들 중 사망자가 생겨나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복량이 높은 페페와 리디안이 무조건 이동되는 데다, 랜덤 인원에 다른 힐러까지 포함되고 있으니 말이다.
“다들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만 빨리 와주시면 문제없습니다!”
중간중간, 레온이 사기 증진차 힘껏 외쳤다. 보답하듯 미약한 환호가 뒤따랐다.
로크바의 HP는 어느새 50%대로 줄어들어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보스가 또다시 회복할지 몹시 궁금해 연신 게이지를 흘끔거렸다.
“아이스 스톰.”
“어스 퀘이크.”
“엘레멘탈 스피어.”
약속이라도 한듯, 차례대로 시전된 매지션들의 마법 공격에 로크바의 HP는 한순간에 쭉 하락했다. 대망의 50%를 지나 또다시 49%가 되는 순간, 모두의 눈동자에 간절함이 아른거렸다.
다행스럽게도 로크바는 추가 회복하지 않았다.
“나이스!”
“회복은 한 번뿐이었다!”
“어, 근데 피가 다시 안 깎이는 느낌인데?”
“뭐야, 물 몸 타임 끝?”
“아, 손맛 제대로였는데.”
“진짜 50%까지만 허용된 듯.”
“그럼 이제 다시 지옥 길 모드?”
별다른 몸짓 없이 얌전한 로크바의 모습에 곳곳에서 환호와 의문이 터져 나왔다. 레온의 추측대로 방어력 저하는 한정적이었는지, 처음과 같아진 방어력에 피가 닳는 속도는 다소 느려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회복이 일회성이었다는 점은 박수 치고 기뻐할 부분이라, 모두의 얼굴로 반가운 꽃이 폈다.
“긴장합시다! 반 피 아래 떨어진 시점에선 보통 더 위험해지니까요!”
신사는 빈틈없었다. 여러 레이드 경험에 의하면, 피가 잔뜩 떨어진 보스의 광폭화는 정석이었다. 물론, 아닌 것도 있었지만 주의할 필요는 있었다.
현실적인 충고에 붕 떴던 분위기가 적당히 가라앉았다. 플레이어들은 다소 진정되어 차분한 대화를 나눴다.
“흠. 이제 한 50분 됐나?”
“한 시간 되어가니 좀 지치네요.”
“미로 때문에 뛰기도 했으니까, 슬슬 피로도 쌓일 때 됐죠.”
“미친 듯이 달리던 죽사막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육체적인 스트레스는 죽사막이 최고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여기가 더 높은 듯?”
“으아, 저기 오브젝트 생성되는 것 같아요!”
지쳐있던 탐식자가 질색한 표정으로 열두 시 방향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열두 시 구석에서 오브젝트 생성을 알리는 붉은 빛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붉은 빛무리가 점차 다이아몬드 모양의 형체를 가질 무렵, 오브젝트 처리 팀인 섀도우 헌터들이 앞다투어 달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로크바는 플레이어를 향해 봉인, 쿨타임 증가 패턴을 랜덤하게 걸었다.
재수 없게 그에 걸린 비격들이 답답함에 아우성치는 사이, 제대로 된 매운맛을 보여 주듯 이번에는 혼령 폭탄 전체 공격이 떨어졌다.
“악! 뭐야, 방금!”
머리 위에서 터진 폭발에 모두가 놀라 동시에 소리쳤다. 리디안도 귀까지 먹먹해지는 어마어마한 공격력에 토끼 눈을 떴다.
“아까보다 공격력 더 올라간 거 같지 않아요?”
“혼령 폭탄 원래 50% 깎이던 거 맞지? 방금 70% 깎인 거 같은데?”
“반 피 떨어지고 나서 오브젝트 더 강화됐나.”
“길마님! 여기 변수 추가요~!”
방심하던 차에 생겨난 변수에 레온과 마제스티의 표정이 구겨졌다.
노르드 월드의 레이드에서 다 죽어가는 보스의 광폭화는 정석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며, 마제스티가 뒷목을 잡기도 했다.
“저 오브젝트 보조할게요!”
불안하게 발만 동동 굴리던 작약이 결국, 오브젝트를 향해 뛰어갔다.
레온은 딱히 말리지 않았다. 오브젝트로 인해 보스의 공격력이 지나치게 높아진 이상, 1초라도 빨리 오브젝트를 파괴하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작약의 참전으로 오브젝트의 HP는 좀 더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섀도우 헌터 네 명이 사납게 채찍을 휘두르며 스킬을 난사하니, 오래 지나지 않아 HP를 모두 소진한 오브젝트가 펑 하고 터져버렸다.
덕분에 큰 위험 없이 보스의 공격력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캐티스가 익숙하게 섀도우 헌터들을 되살렸다. 비척거리며 제자리로 돌아온 작약을 향해 레온은 말없이 그 등을 두드려 다독여 줬다.
“흠. 오브젝트 공격력 증폭이랑 혼령화만 잘 버티면 클리어할 수 있겠는데요?”
가늘게 뜬 눈으로 상황을 살피던 마제스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레온도 그에 동의하는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혼령화가 열일곱 명? 마제 님 말대로 스무 명 넘어가면 진짜 힘들어질 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잠시 레온의 팔을 끌어당겨 뒤로 물러난 마제스티가 속닥속닥 의견을 전달했다. 얌전히 듣고 있던 레온의 안색이 잠시 굳어졌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꽤 합리적이라 판단했는지, 끙 신음하다 무겁게 승낙했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레온은 로크바가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모두에게 공지했다.
“주목! 지금부터 혼령화 패턴에 걸린 분들이 위급하다고 판단될 시, 딜러들이 빠르게 판단해 선처리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은 즉, 상대가 찝찝하다 싶으면 바로 죽여버리라는 척살령이었다.
예상대로 곳곳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헐. 팀 킬을 하라고요? 찝찝한데.”
“아니, 근데 혼령화 걸린 사람도 팀킬하는 건데 우리라고 못 할 건 없죠?”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
“어차피 몬스터로 인식되니까 피케이 카운트도 안 되고, 상대방도 제정신 아니니까 통각도 못 느낄 테고. 잘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데요? 오히려 더 우리한테 유리할 듯?”
지하 도시 레이드에서 다크 템플러의 역할이 생각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기에 다크 템플러가 네 명뿐인 이 상황에서 최대한 플레이어들을 지키려면……. 달리 생각하면 이게 가장 현명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살인 지시에 충격받아, 멍하던 플레이어들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차츰 수긍했다.
“하긴 혼령화 걸려서 여러 명 죽는 것보다 걸린 사람 혼자 깔끔하게 죽는 게 낫겠네.”
잔인한 선택이었지만 플레이어들은 큰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였다. 결국, 아군끼리 죽고 죽이는 기묘한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41%…….”
또치는 기계적으로 로크바의 HP 잔량을 중얼거렸다. 제법 희망이 보이는 수치임에도, 혼령화 패턴의 위험성과 척살령에 다들 다소 긴장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디버프와 봉인을 난무하던 로크바가 다시금 혼령화 패턴을 선보였다. 검은 구슬비가 한 차례 공간을 강타했고, 당연한 듯 신사가 상황을 중계했다.
“1파티 페페! 4파티 레온, 이터널리스트, 푸우! 6파티 인드라, 토토리아! 9파티 스타일리쉬, 날개! 2파티 다람, 도도! 10파티 세자, 와츠! 3파티 마제스티, 관우! 5파티 불꽃심장! 7파티 앵두군, 8파티 적혈구, 김팔라!”
열여덟 명째. 멈춤 없이 착실하게 늘어나는 인원수에 몇 명이 너무하다며 길게 한탄했다.
“아, 또 레온 님 걸렸어!”
“이번에는 다람 님도 걸렸다!”
“인드라 님도요!”
그토록 바라지 않던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검은 게이지가 차오르자마자 돌변한 다람은 재깍 손을 뻗어 혼란 필드를 깔았다. 고독한을 대비해 근처에 있던 일반인이 그 덫에 걸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다람은 일반인에게 집중하고 있어 자리를 떠나진 않았다. 다람을 따로 격리해 둔 건 신의 한 수였다.
혼령화에 걸려 스펠을 난사하는 불꽃심장을 막 처리한 매지션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다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가뜩이나 스탯 탓에 HP도 적은데, 상위 하이 랭커들의 마법 공격이 쏟아지니, 다람도 어쩔 수 없었다.
[다람 님이 사망하였습니다.]몬스터화되긴 했어도 사망 메시지는 제대로 떴다. 매지션들은 금방 죽어버린 다람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내보였다.
기어코 죽어버린 다람의 모습에 모두가 짤막하게 애도하는 사이, 같은 길드인 개복치가 붉어진 얼굴로 깔깔거렸다. 한참 전, 다람에게 놀림받았던 것에 대한 복수였다.
리디안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개복치도 역시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스타일리쉬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와츠 님이 사망하였습니다.]다람뿐만이 아니라, 현재 사정상 감당하기 힘든 다른 딜러들도 차례차례 숙청당했다.
가급적 살려 놓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인드라까지 혼령화에 걸린 상태라, 증가한 인원에 바삐 돌아다니는 하츠나 누리의 사정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드라 님이 사망하였습니다.]뒤이어 인드라까지 깔끔하게 처리됐다. 하지만 중앙은 아직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돌변한 레온 때문에 또 한 번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하필 재수 없게도 쿨타임 때문에 보스에게서 한참 물러나 있던 레온이 타깃으로 잡은 건 근처에 있던 비격 무리였다.
휙 돌아선 레온은 그대로 돌진해 검을 그었다. 튕겨 나간 백색 검기는 그대로 괴자를 덮쳤고, 리디안은 사색이 되어 ‘여신의 손길’을 연달아 외웠다.
하지만 레온의 공격력은 비격수의 방어력을 거뜬히 짓밟고도 남았다.
레온의 비검 스킬과 더불어, 때마침 떨어진 로크바의 체인 라이트닝도 한몫했다. 로크바와 레온. 둘의 기가 막힌 콤보에 괴자는 속절없이 쓰러져야 했다.
[환경파괴자 님이 사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