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꼬마와 푸우의 탈락으로 자유의 몸이 된 일반인은 다음 타깃으로 신사와 마프로를 노렸다. 무방비한 괴자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근처에서 은신한 삼촌을 방해하기 위해 마법을 난사하던 맥스비가 우연히 그의 진로를 목격하고 말았다.
이미 딜러가 둘 나가떨어진 상황이라, 원거리들이 뭉쳐 일반인을 처리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 판단한 맥스비는 중대장에게 삼촌을 대신 마크해 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신사와 마프로에게 신호하기도 전에 방해꾼이 붙었다. 토토리아를 호드라에게 붙여버리고 여유로워진 시우가 맥스비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두 사람 다, 매지션 정체성이 확고한 탓도 있고 시우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알아, 맥스비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시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생각인지, 시우도 멈춰 맥스비를 겨냥했다.
각자의 버릇이겠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처음부터 가장 강한 스펠인 ‘엘레멘탈 스피어’가 동시에 날아갔다.
이후로 각자의 주력 속성을 조합해 연계하니, 거의 한 방 싸움이었다. 하지만 양측 모두 후방에서 힐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있어, 사실상 대미지 자랑 전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 주위로 요란하게 터지는 이펙트는 물론, 400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려는 두 사람의 HP에 모두가 손에 땀을 쥔 채 몰두했다.
“어, 저기 관우 님 온다!”
느긋하게 지켜보던 파파가 소스라치게 놀라 손가락질했다.
예정대로 시우의 발목을 잡으려 했던 관우는 맥스비가 붙어 있는 것에 더 안심하고 달려갔다. 관우는 적정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신의 사슬’을 시전했다. 영역 내에서 솟아올라온 백색 사슬이 시우의 다리를 옭아맸다.
어그로가 걸린 시우는 그대로 스펠을 멈춘 채 생존에 주력했다.
그사이 일반인의 접근을 눈치챈 신사는 잡히기 전에 괴자부터 처리해야겠다고, 마프로를 향해 신호했다. 잘 알아들은 마프로는 급히 이동하며 신사의 신호에 맞춰 괴자를 조준했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화살과 차크람, 그리고 기가 막히게 계산되어 날아오는 공격 스킬에도 괴자는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아픈 기색 하나 없이 파티원들을 위한 전체 회복 스펠 ‘여신의 손길’과 본인을 위한 단일 회복 스펠 ‘자애의 손길’을 번갈아 쓰며 버티고 버텼다. 그것도 모자라, 정신없는 파티원들의 이동 범위를 보며 한 걸음씩 움직여 힐 범위를 조정하기까지 했다.
콧대 높은 세인트의 경우 보통은 딜러, 탱커들이 자기 움직임에 맞춰 주길 바라는 편이다. 그런데 괴자는 세심하게 먼저 파티원들을 신경 써줬다. 결투장 경험 자체도 캐티스보다 훨씬 많은지, 세세한 부분에서도 관록이 엿보였다.
“와, 괴자 님 결장 지박령이라더니. 진짜였나 보네.”
“소름 돋게 힐 범위 계산하는 거봐.”
“HP 떨어지는 상태가, 매지션들 한 방 싸움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데. 겁나 잘 버티시네.”
“지금 거의 물방 세팅이신 것 같은데. 맥스 형이 차라리 처음부터 괴자 님 공략했어야 했어.”
“글쎄. 저 정도면 속성 저항 세팅도 충분히 하셨을 것 같은데?”
“신사 형이랑 마프가 동시에 크리티컬 최대치로 터지면 아웃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동시에 최대치 뜨기는 좀 힘들겠지?”
대인전이라면 내로라하는 ONE 길드 하이 랭커들도 괴자의 생존력을 보며 감탄했다. 리디안이나 앵두군, 럭키가이는 아예 입 벌린 채 눈을 떼지 못하는 상태였다.
죽기는커녕, 당황도 하지 않는 괴자의 모습에 되레 당혹스러워진 신사는 작전을 바꿨다. 그냥 괴자를 포기하고 딜러부터 잡자고, 이번엔 그리 신호했다.
끈질긴 괴자의 생존력에 서서히 지쳐 가던 참이었다. 마프로는 그 말만 기다렸다며 황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도망치듯 물러나는 두 사람 덕분에 일반인은 곧장 괴자와 합류할 수 있었다.
종종 쏟아지는 광역기와 딜러들의 어그로를 피해 근처를 배회하던 오토마타, 체리보이, 도도. 그리고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이터널리스트도 일반인과 괴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리를 이룬 레기온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한편, 범위에서 멀리 떨어진 신사와 마프로는 딜러 중 최약체에 가까운 또치를 공략했다.
세자와 꼭 붙어 파피루스를 잡던 또치는 갑작스레 뒤편에서 날아온 화살과 차크람에 놀라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작정하고 퍼붓는 아쳐와 레인져의 스킬 난사는 또치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치 님이 탈락하셨습니다.]결국, 또치는 신사의 ‘스나이핑 샷’이라는 레벨 제한 75의 스킬에 크리티컬이 터져 아웃 됐다.
“아, 어떡해!”
흡사 죽기라도 한 것처럼. 자토는 엉엉 울며 당장이라도 파이트 홀로 내려갈 기세였다. 그런 자토의 팔을 붙잡아 진정시킨 노네임은 어쩔 수 없다며 한숨 쉬었다.
“에잉. 아쳐, 레인져 합공이면 저건 못 버티지. 그나마 세자라도 도망가서 다행이네.”
레기온 길드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워했다. 발 빠른 세자는 부리나케 도망쳐 힐러인 괴자가 있는 무리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크라이그를 상대로 버티고 있던 레온은 낭패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완벽한 극 공격력 세팅으로 나올 거라 믿었건만, 크라이그는 현재 체력과 방어 세팅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시작하자마자 검은빛 레바테인이 아닌, 붉은빛 레바테인을 들고 있어 설마 했다.
본인의 주력 스킬인 검기류는 쓰지 않고, 검술류를 주로 사용하며 근접해 오는 걸 보니, 작정하고 자신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크라이그를 지나치자니, 등을 보이며 계속 스킬을 맞아주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뭐가 됐든 레온과 크라이그는 나이트 1위, 2위를 나란히 달리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형!”
인드라의 목소리였다. 다크 템플러가 합세한다면 유리하겠지만, 상대방의 세팅이 방어에 치중되어 있어 디버프가 깔려도 크게 유리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가라고 신호하려 하는데 인드라 뒤로 마제스티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레온은 단박에 표정을 구겼다. 아니, 올 거면 혹이나 떼고 오지 하필이면 귀찮은 사람을 또 달고 올 건 뭐야?
레온은 아찔함을 느끼며 험한 욕을 씹어 삼켰다. 바바리안 마제스티도 이노센트 못지않은 실력자였다. 악마처럼 날름 입가를 다시며 크라이그와 눈짓하는 마제스티의 모습에, 레온은 난색 하며 서둘러 지원군을 찾았다.
그러나 다들 각자의 전투에 바쁜 눈치였다. 이대로라면 말짱 크라이그, 마제스티를 상대로 시간만 낭비할 판이라 절망하던 그때. 버베나의 뒤쪽으로 은신한 삼촌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버베나는 현재 공격력 위주로 세팅한 상태라, 감시자의 눈 옵션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한지원! 뒤에 조심해!”
걱정된 마음에 그리 외쳤으나, 다행스럽게도 삼촌을 뒤쫓아 온 중대장과 색시가 그를 저지했다. 호드라와 전투 스타일이 똑 닮은 중대장은 무자비하게 창대를 내려쳐 범위 공격을 시전했다.
광역 공격 스킬에 닿자 삼촌의 은신은 금세 풀려버렸다. 낭패한 삼촌이 서둘러 도망쳐 다시 은신하려 했으나, 중대장과 색시가 무섭게 접근해 왔다. 삼촌은 뒤로 바짝 달라붙은 색시의 현란한 발차기에 휘둘려 주춤주춤 뒷걸음질만 쳤다.
기회를 노리던 중대장은 곧장 그 뒤로 돌아가 삼촌의 등을 창으로 가격했다. 앞에서는 빠른 발차기 공격이, 뒤에서는 능수능란한 창 기술이 이어지니 은신을 쓸 겨를이 없었다. 삼촌은 빠르게 닳아가는 자신의 HP를 바라보며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삼촌 님이 탈락하셨습니다.]“아~ 삼촌 진짜!”
“오주현, 뭐 하냐.”
“야, 근데 쟤 누가 내보냈어? 페이지 님 왜 안 보냈어?”
이모탈을 포함한 40대 형님들의 안색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한숨 쉬며 지켜보던 파파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저 철없는 형이 자기 해보고 싶다고 떼쓰는 바람에… 힘없는 막내 페이지 님은 벤치 멤버 됐어요.”
“아오, 저 개진상.”
“이야, 삼촌 실력 많이 죽었네. 옛날엔 훨훨 날아다녔는데.”
“창업인지 뭔지 그거 한다고 거의 6개월 잠수였잖아요. 감 다 잃었지.”
파이트 홀의 상황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이노센트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페이지를 향해 피식 웃었다.
“아깝다. 우리 페이지 님 나갔으면 싹 쓸어버리는 건데.”
그쵸? 하고 은근하게 묻는 표정에 페이지는 곧장 고개 숙였다. 부끄러운 것도 있고, 속마음은 자기가 더 잘할 수 있었다는, 그런 오만도 있었다. 페이지는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며 티 안 나게 안달했다.
초반에 탈락한 두 명처럼 제대로 된 활약도 못 하고 광탈해 버린 삼촌 때문에 레기온 큰 형님들의 분위기는 날카로웠다. 웬만한 일에는 보살처럼 인자한 불꽃심장조차 삼촌의 탈락이 달갑지 않은지 연신 탄식하고 있었다.
“삼촌 형 올라오면 진짜 살인 날 듯.”
분위기의 진중함을 파악한 테세우스가 그리 중얼거렸다. 그에 곳곳에서 손을 들며 눈을 부릅떴다.
“무조건 내가 먼저 죽인다.”
“아뇨, 제가 먼저요.”
“사이좋게 순번 정합시다.”
“아, 근데 이제 어떻게 되려나.”
각각 딜러를 둘씩 잃은 상황에서도. 양 측은 흔들림 없이 전투를 이어나갔다. 리디안은 한참 전부터 괴자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와아, 진짜 대단해요. 저 많은 공격에도 버티는 것도 그렇고, 당황도 안 하시고, 주변 힐 범위 신경 쓰면서 움직이는 것도 다 존경스러워요.”
대단하다, 대단하다를 재차 중얼거리는 리디안의 모습에 페페가 작게 웃었다.
“저도 결투장에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원래는 저런 분이 아니셨는데…….”
쓰게 웃은 페페는 슬쩍 리디안을 쳐다봤다. 지금은 저렇게 날아다녀도, 괴자도 한때 리디안 같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레기온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괴자가 직접 리디안에게 PK를 가르쳐 줄 모양인데. 설마 이러다 리디안이 PK 쪽으로 눈을 뜨는 게 아닌지, 잠시 저 아래 있는 괴자와 리디안의 모습을 바꿔 생각하니 삐질삐질 땀이 흘렀다.
물론, 리디안이 괴자처럼 성장한다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뿌듯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리디안이 성장하는 만큼,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리디안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고, 그녀의 곁에는 믿고 의지할 만한 이들이 많았다. 게임 때처럼 페페에게 모르는 걸 묻고 의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달라진 리디안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운하면서도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페페는 쓰게 웃었다. 둘만의 그 특별했던 관계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우울해졌다.
“어, 크라이그 님도 저쪽에서 혼자 잘 버티고 계시네요? 거의 공격을 안 하시는 걸 보니, 오늘은 공셋이 아닌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크라이그의 얘기가 나오자 페페의 표정은 더 시무룩해졌다. 이전부터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두 사람이 친해졌다는 게 실감 났다.
처음부터 내가 좀 더 리디안 님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다른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잠깐이지만 못나게도 그런 생각이 들어, 또다시 마음이 아파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