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리디안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반사적으로 고개 돌린 리디안은 때마침 반대편 사냥터 입구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여성 플레이어의 모습에 멈칫했다.
“거기 세인트님! 잠깐! 제발! 멈춰요! 잠깐만!”
리디안은 그대로 굳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플레이어를 바라봤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이노센트 / 길드 : 레기온
레벨 : 77 / 직업 : 바바리안 / 보조 직업 : 세공사
HP : 3150 / MP : 1130
헬하임 지역은 고레벨 플레이어가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니, 랭커를 만난다고 해서 신기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이쪽 세계로 이동된 후. 고레벨 여성 플레이어를 사냥터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리디안은 다가오는 이노센트에게 약간의 흥미를 느꼈다.
우선 그녀는 키가 컸다. 꽤 오래 운동한 몸인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몸에 얼핏 보기로도 잔근육이 탄탄했다. 실제로 운동을 하는 분인가? 리디안은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부활 있죠?!”
날아오듯 바람을 날리며 착지한 이노센트는 리디안에게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이목구비가 짙고 눈빛이 강렬했다. 그 카리스마에 눌린 리디안은 얼떨결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저 좀 도와주세요!”
이노센트는 전광석화처럼 손을 움직였다. 곧장 알림 음과 함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노센트 님으로부터 파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Y / N]순식간에 뜬 시스템 창에 리디안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나 지잉― 쏘아지는 무언의 압박에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수락을 눌렀다. 무슨 일이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백검, 이노센트 님과 파티가 되었습니다.]상태 창이 확인되지 않는 이노센트 외 한 명이 더 있었다. 다른 맵에 있는 건가? 리디안은 또 하나 익숙한 아이디에 마른 침을 삼켰다.
‘백검’이라는 플레이어도 게임 내에서 유명한 하이 랭커였다. 특히 PVP 이벤트마다 자주 언급되던 이름이기도 했다.
다급한 이노센트의 분위기와 부활을 언급한 것을 보면……. 백검이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부활 스펠인 부활과 재생의 노래는 플레이어 사후 10분 안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페페는 시체가 10분 뒤 증발하여 미드가르드 도시 게이트 앞으로 이동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랭킹이 생명인 랭커들의 경우 부활시 경험치 회복은 필수였다.
그러나 ‘부재노’는 HP와 경험치 중 하나만 랜덤으로 100% 복구한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반반 확률에 기대를 걸고 부활을 찾는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게임 때처럼 부활 가능한 세인트가 부르면 바로 오는 콜택시 같지는 않을 테니……. 그들로선 ‘부재노’ 세인트라도 다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기, 부재노 필요하신 거죠?”
“맞아요, 맞아! 경험치는 됐고, 퀘스트 때문에 급해요. 힘들게 모아 놨는데, 다 날아가게 생겼다니까요? 일단 빨리 갑시다!”
말 빠른 이노센트는 즉각 손짓하며 따라오라 재촉했다. 끌려가다시피 들어선 곳은 무한한 생명의 숲 A구역 게이트였다. 리디안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헬하임 지역은 구역에 따라 난이도가 판이했는데, C구역이 70을 갓 넘은 플레이어가 겨우 사냥할 정도면, A구역은 최소 73 정도는 돼야 했다.
특히나, 방어력 낮은 세인트에게는 너무 무서운 곳이었다.
“자, 잠깐만요! 여기 저한테는 너무……!”
이노센트는 리디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일단 손목을 잡아끌었다.
[무한한 생명의 숲 A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사냥터 내부에서의 이동 마법 및 아이템 사용이 제한됩니다.] [무한한 생명의 숲 A구역―1 / 적정 레벨 : 75 이상] [출현 몬스터 : 숲 불개미 / 여왕 숲 개미 / 변종 여왕 숲 개미] [출현 보스 몬스터 : 불사의 여왕 숲 개미]본의 아니게 입장하기가 무섭게 리디안의 시스템 창 위로 warning 메시지가 반짝였다. 플레이어 분수에 맞지 않는 고레벨 맵에 입성하면 뜨는 경고였다. 그간 헤른은 여러 번 봤을 문구.
이런 곳에선 한 대만 맞아도 HP가 반 이상 줄어들 게 분명했다. 리디안은 하얗게 질려 굳었다. 앞서 나간 이노센트는 살짝 고개 돌리더니, 씨익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고 버프나 걸어 줘요. 님 절대 안 죽게 해드림.”
바바리안 이노센트는 직업 전용 무기인 자마다르를 장착한 후 가볍게 몸을 털었다.
‘어쩌면… 오늘 처음 죽음을 경험해 보는 게 아닐까?’
주륵, 눈물을 흘린 리디안은 서둘러 스펠을 외웠다.
“시, 신의 수호, 성스러운 은총, 보호의 빛, 성령의 축복, 여신의 세례!”
“오, 역시 버프가 있어야 든든하다니까. 아, 리디안 님. 땅에 툭 튀어나온 흙더미 보이죠? 그거만 될 수 있는 대로 밟지 말고 조심조심 따라와요!”
버프로 몸이 빛나는 이노센트가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개미집을 건드리면 큰일이 나는 모양이었다. 이해한 리디안은 조심스레 바닥을 살피며 이노센트의 뒤를 따랐다.
숲을 지날수록 바스락거리며 나타난 몬스터는 놀랍게도 이족 보행을 하는 개미 몬스터였다. C구역의 허접한 개미들과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리디안도 게임 시절 B구역 이상으로는 진입해 본 적이 없어, 처음 보는 몬스터의 모습에 덜덜 몸을 떨었다. 그러곤 곧장 날아올라 몬스터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노센트의 모습에 탄성을 내질렀다.
바바리안은 격투가 계열의 딜러로 뾰족한 칼날을 주먹처럼 쥐고 민첩하게 싸우는 것이 특징인데, 그 공격 스킬 대다수가 상대에게 경직 효과를 일으킨다. 워로드와 비슷했다.
다만, 단점은 방어력이 낮고 경직의 발동 시간이 1초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스킬 사용에 대한 MP 소모가 높아 스킬 공격보다 일반 공격을 더 많이 하는… 짠내 나는 직업으로도 유명했다.
물론 게임 시절 물약 부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물약을 먹어 HP, MP를 회복할 수 없으니 마나 배터리인 바드가 없으면 전투에 상당히 불리한 직업이었다.
그런데도 이노센트는 바바리안의 주력 스킬들을 번갈아 사용하며 능숙하게 몬스터를 처리했다.
“아, ‘마법사의 눈물’ 갖고 계시는구나!”
빠르게 움직이는 이노센트의 목에서 덜렁거린 것은 유니크 아이템 ‘마법사의 눈물’이었다. 대표적으로는 기본 공격 및 스펠, 스킬 등을 포함한 모든 공격 성공 시 MP가 잭팟처럼 회복되는 성능을 가졌다.
게임 시절에야 MP 포션을 먹으면 그만이었기에 잡템 취급받던 것이었지만, 현재로선 목걸이 부위의 부가 성능을 포기한다 치더라도, 마력 소모가 높고 평타 공격이 많은 직업군에겐 현재로선 상당한 효자 아이템이었다.
“근데 진짜 잘 싸우신다.”
간간이 힐을 시전하면서도. 리디안은 이노센트의 움직임에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사냥터에서 여성 플레이어의 전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딜러인 탓에 몬스터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그녀는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돌진하여 몬스터의 급소를 무자비하게 찔러 공격했다.
통각에 대한 용기도 용기지만, 움직임 자체가 대단했다. 게임 시절에는 게임 캐릭터라는 느낌이 강해 시야로 봐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실제 사람의 몸으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몹시 색달랐다. 마치, 한 편의 시원한 액션 신을 보는 것도 같았다.
“여기예요! 빨리 이 멍청이 좀 살려 줘요.”
손쉽게 몬스터를 처리하는 이노센트를 따라간 곳은 ‘무생숲’ 입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리디안은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남자의 시체에 숨을 삼켰다. 이 세계에 와서 시체는 처음 봤는데, 정말 표현이 리얼했다.
곳곳에 혈흔도 가득했고 등 쪽으로는 날카로운 것에 움푹 팬 상처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리디안은 다소 미약하게 풍겨오는 피 냄새에 급히 숨을 참았다.
마치 실제 죽음을 눈앞에 둔 것처럼. 갑작스러운 공포에 손발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백검 / 길드 : 레기온
레벨 : 78 / 직업 : 팔라딘 / 보조 직업 : 목수
HP : 0 / MP : 345/
[해당 플레이어가 사망 상태입니다.]어디선가 나타난 몬스터에 이노센트가 재빨리 몸을 날렸다. 리디안도 그에 놀라 서둘러 시체 상태인 백검에게 다가가 스펠을 사용했다.
“부, 부활과 재생의 노래.”
세인트의 일방적인 부활 스펠이기에 상대방의 동의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사용 조건만 충족한다면 시체 상태의 플레이어를 되살린다.
스펠을 외우기가 무섭게, 하얀빛이 백검의 몸을 감쌌다. 떠다니던 빛이 증발하자 엎어져 있던 백검이 번쩍 눈을 떴다. 어느새 그의 HP는 빨간색으로 가득 차올라 있었다. HP 100% 회복 효과가 적용된 것이다.
HP야 바로 힐을 쓰면 회복이 되기 때문에 리디안은 자기 것인 양, 경험치 회복이 되지 않은 것에 내심 아쉬워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백검 / 길드 : 레기온
레벨 : 78 / 직업 : 팔라딘 / 보조 직업 : 목수
HP : 7140 / MP : 445
발딱 몸을 일으킨 백검의 모습에 놀란 리디안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말끔한 남자였다. 그는 눈이 마주친 리디안을 보자마자 오, 하고 감탄했다.
“와, 세인트님이 나 살려 주셨구나?”
“인간아! 멍청하게 있지 말고 빨리!”
리디안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이노센트의 성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화들짝 놀란 백검이 서둘러 땅에 떨어진 자신의 무기인 성검을 주워들었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이노센트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리디안은 얼빠진 모습으로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봤다.
팔라딘은 세인트처럼 성직자 계열의 직업이지만, 가디언처럼 가드 포지션이다. 즉, 탱커.
다만, 가디언과는 달리 성기사라는 콘셉트에 맞게 자체 힐과 자체 강화 버프가 가능해 콘셉트 면에서는 가디언의 상위 호환 직업이었다.
그러나 바바리안처럼 스킬에 의한 MP 소모가 심하고, 체력에만 스탯을 올인하는 가디언과는 달리 정신력 스탯에도 어느 정도 투자를 해야 하는 직업군인지라 순수 탱커로는 가디언에 밀리는 모자란 탱커였다. 그렇다고 또 딜러로 나서자니 탱커 포지션이라 공격력도 낮은 어중간한 직업이었다.
그나마 최근 밸런스 패치로 마법 공격 면역에 특화되어 마법 계열 보스전에서 쓰임새가 생겨 활발해지긴 했다.
게다가 이상성욕자 길드에 의해 힘을 때려 박은 공격형 팔라딘이 심심찮게 보이는 추세였다.
리디안은 혹시나 하여 관찰했지만, 백검은 평범한 팔라딘인 듯했다.
백검은 곧장 이노센트의 곁으로 가 몬스터들에 대한 어그로를 끌었다. 팔라딘 전용 개인 버프인 ‘성전사의 깃발’을 사용한 후 공격보다는 방어에 주력했다.
“아, 맞다. 파티 중이지.”
넋 놓고 있던 그녀는 황급히 주력 버프 스펠을 외웠다. 그리고 시시각각 닳는 두 사람의 HP를 주시하며 회복 스펠을 외웠다.
버프와 힐로 인해 상황이 더 안정적으로 변화하자 랭커답게 두 사람은 훨훨 날아다녔다. 정확한 순위는 몰라도, 두 사람 모두 50위 안에는 들 텐데.
‘백검은 어쩌다 여기서 죽은 걸까?’
리디안이 갸웃하는 사이, 몹들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손발 빠른 이노센트에 의해 몰려 있던 개미들이 거의 다 처리되자, 여유로워진 백검이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었다.
“와, 여보! 나 퀘템 다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