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하지만 오전에 벌어졌던 길드전 때 그랬듯, 다람은 연비가 나빴다.
자신 있게 디버프 필드를 깔다가도 금세 MP가 동나 울면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심지어 상대편 힐러인 먹구름이 성능 좋아 보이는 지능 무기로 다람의 디버프를 딱딱 풀어내고 있으니… 솔직히 지금 상황에선 다람의 디버프가 썩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아, 뭔가 저분은 되게 여유로워 보인다…….’
리디안은 멀리 보이는 먹구름의 모습에 살짝 부러움을 느꼈다. 실제로 먹구름은 딱 두 사람만 신경 써 풀어 주고, 힐을 해주면 그만인지라. 이것저것 따져 비교하면 사실 리디안보다는 훨씬 더 여유로웠다.
어째 나만 바쁜 것 같다고. 리디안이 내심 서러워하는 사이, 아무도 못 빠져나가게 입구를 지키던 가디언 빅토리아가 움직였다.
잠시 지켜본바 ONE, 레기온, 이상성욕자가 추하게 대기실로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움직임을 눈치챈 먹구름이 재빨리 빅토리아에게 성령의 축복을 걸었다. 이동 속도가 빨라진 빅토리아는 먹구름을 그대로 지나쳐, 순식간에 딜러들이 뒤엉킨 한복판으로 끼어들었다.
“용기의 외침……!”
가디언의 어그로에 걸린 사람은 이노센트와 벤딩이, 개복치였다. 세 사람의 발이 묶이자, 갤럭시와 프리스비의 눈이 빛났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작은 목소리로 저희끼리 속닥인 두 사람은 곧장 벤딩이부터 다굴 했다. 공격력은 별거 없어도 워로드의 경직 스킬이 가장 짜증 났기 때문이다.
놀란 리디안이 다급히 여신의 손길을 외웠지만, 움직일 수 없던 벤딩이는 속수무책 등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벤딩이 님이 사망하였습니다.]회복 스펠로 인해 워낙 빠르게 빠져나가는 HP에 ‘부재축’을 사용할 틈이 없었다. 리디안은 사망한 아군의 모습을 잠시 허망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넋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정신 차린 리디안은 즉시 MP 잔량을 확인한 후 벤딩이에게 ‘부재축’을 넣을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렸다.
그사이, 갤럭시는 유유히 아수라장을 빠져나와 리디안에게로 향했다. 목표를 바꾼 갤럭시가 전진하니 먹구름도 힐 범위에 맞춰 전진했다.
고독한이 재빨리 화살을 쏴 은신한 갤럭시를 견제했지만, 성령의 축복을 받아 벌처럼 이동하는 갤럭시를 조준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대등한 조건으로 갤럭시를 상대할 수 있는 건 페이지뿐인데, 공교롭게도 현재 페이지는 나이트 프리스비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따거보다 훨씬 나이트 컨트롤이 숙련된 프리스비는 아예 페이지를 마크하기 위해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 위주로 장비를 세팅한 상태였다. 프리스비는 검술류를 이용해 페이지의 은신을 수시로 풀고 무조건 밀착해 빠르게 공격했다. 페이지도 빠져나오기 위해 나름대로 안간힘을 썼으나, 사이가 빈번히 다가와 온갖 디버프를 걸어 방해했다.
“아홉 가닥의 꼬리!”
자존심 상한 페이지는 아끼고 아껴 뒀던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프리스비의 빠른 공격에 은신이 풀린 상태라… 섀도우 헌터가 자랑하는 크리티컬 대미지 효과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당연히 프리스비의 HP를 얼마 깎지 못했고, 그마저도 먹구름이 휘리릭 회복시켰다.
“아, 진짜!”
페이지가 답답해 펄쩍 날뛰었다. 그나마 리디안이 빠르게 디버프를 풀어 주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연계에 발이 묶여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다람의 보조를 기대하기엔 다람의 기동성이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갤럭시는 은밀하게 이동 중이었다.
“리디! 뒤 조심해!”
초조하게 갤럭시의 행적을 좇던 이노센트가 급히 경고했다. 리디안은 근처에 갤럭시가 있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리디안 옆에 꼭 붙어 있던 김팔라, 파피루스도 마찬가지였다.
감시자의 눈 옵션이 없는 세 사람은 사색이 되어 황급히 무빙을 시도했다. 그대로 가만히 서있다가는 외이리나 코헤이처럼 죽을 테니까.
리디안은 섬뜩해지는 등골에 바르르 떨며 분주히 뜀박질했다. 아마 저 채찍질에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바로 원 킬 당할 게 분명했다. 김팔라와 파피루스를 따라 정신없이 뛰던 리디안은 잠깐의 틈을 봐 죽은 벤딩이를 살려 냈다.
“벤딩이 님 탱커 조심하세요!”
그 말대로 또 당할 순 없다며, 벤딩이는 빅토리아를 피해 프리스비에게 달려들었다. 붙들려 있는 페이지를 구출하기 위함이었다.
벤딩이는 바로 창대를 내려쳐 경직을 걸려 했으나, 어디선가 튀어나온 사이가 벤딩이에게 디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신성한 축복!”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리디안이 재빨리 벤딩이의 디버프를 풀었다. 하지만 또다시 ‘신축’, 디버프의 반복이었다. 리디안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갤럭시를 피해 뛰느라 헥헥거린 리디안은 사이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아군에게 큰 도움이 못 되고 있는 다람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멈출 일 없이 쌩쌩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와는 달리 다람은 또다시 MP가 동나 파피루스 옆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정상 스탯과 비정상 스탯의 차이가 확연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섀도우 헌터인 갤럭시의 존재도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아! 갤럭시, 진짜!”
상대방이 듣던지, 말든지. 김팔라가 짜증을 담아 빽 소리 질렀다.
갤럭시는 지나치게 빠른 이동 속도가 최대 장점인 플레이어. 그 민첩함으로 근접 딜러들을 어린아이 다루듯 피해 다니고 있으니, 도무지 공격할 틈이 없었다.
다크 템플러나 팔라딘이 잡지도 못하는 상황에, 보조해야 할 원거리마저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아군의 딜러 셋이 적군의 탱커에게 붙잡혀 꼼짝도 못 하는 중이라…….
지금 상황에선 아무도 갤럭시를 견제할 수 없어 더 불리했다.
갤럭시를 견제하려면 온전한 탱커의 역할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중간한 김팔라의 포지션이 또 문제였다. 김팔라는 모두가 알다시피 힘 스탯을 찍은 팔라딘. 체력이 아닌 힘 스탯을 찍은 탓에 일반 탱커보다 방어력과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제아무리 직업 기본 방어력이 있다 해도, 공격력 세팅에 치중한 김팔라는 필시 갤럭시의 공격을 버텨 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감시자의 눈도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가 리디안이 뒤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패배의 지름길이었다.
“와나, 미치겠네. 오늘처럼 힘 찍은 거 후회되긴 처음이네. 아니, 왜 하필 저 두 명이 같이 와서……!”
김팔라도 자신의 처지가 답답한 듯했다.
이노센트와 개복치는 여전히 빅토리아에게 묶여 있었고, 페이지 역시 프리스비의 공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나마 스타일리쉬가 프리스비를, 고독한이 갤럭시를 틈틈이 겨냥했지만… 먹구름의 효율적인 힐 연타에 제대로 들어가는 타격은 하나도 없었다.
“아우, 우리 증원 언제 와요? 일단 딜러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좀 편할 거 같은데?”
김팔라가 애타게 물었다. 상황을 알 수 없는 파피루스는 글쎄요, 하며 볼을 긁적였다. 그 와중에도 갤럭시가 무섭게 쫓아오는 중이라 리디안, 김팔라, 파피루스는 헥헥 대며 지쳐 가고 있었다.
“서, 성령의 축복!”
리디안은 부지런히 이동 속도 증가를 외웠다. 저 빠른 갤럭시에게서 도망치려면 이동 속도 증가 버프는 필수였다. 그러나 본인까지 포함해 세 명에게 걸어야 했으니 일만 더 늘어날 뿐이었다.
힐, 신축, 성축. 그것도 모자라 눈치 없이 시간이 줄어가는 버프 아이콘을 확인한 리디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차라리 그냥 죽여 달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먹구름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하지만 점점 길어지는 상황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아군 상황이 훨씬 더 유리해 보이는데,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상황에 먹구름의 눈은 점점 더 가늘어지고 있었다.
“아, 괜히 왔나.”
먹구름이 찝찝하게 중얼거렸다. 친하게 지내던 갤럭시가 용병으로 와달라고 부탁해 어찌어찌 오긴 했지만……. 솔직히 무너스키나 보리알이 알면 크게 혼을 낼 상황이었다.
그래도 갤럭시에게 신세를 진 것이 있고, 상황도 금방 정리될 거란 말만 믿고 온 건데, 정리되긴커녕 한 명도 못 죽이고 있으니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아. 저 부활 세인트만 잡으면 될 것 같은데. 스카디 힐에 부재축이라 다른 놈들 죽여도 소용이 없으니…….”
곁에 있던 타래도 답답하게 중얼거렸다. 먹구름은 분주히 뛰어다니는 리디안을 쳐다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순전히 스카디발, 신스펠발 힐러인 줄 알았는데, 힐을 하는 타이밍이나 MP 계산력, 스펠 반응 속도를 보면 못하는 힐러는 아니었다. 심지어 현재 보조 세인트가 없어 신스펠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혼자 저리 버티고 있으니, 객관적으로 따져 매긴다면 잘하는 세인트임은 분명했다.
“흐음. 오전에는 다른 세인트들 때문에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꽤 하네.”
그래도 적군이라, 차마 잘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먹구름은 저 위,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을 태양 길드의 세인트들을 떠올렸다. 외이리나 코헤이. 둘 다 실력도 별거 없으면서 길드 뒷배만 믿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사람들이었다.
“쓸모없는 놈들, 진짜. 차라리 저 사람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찡그린 먹구름의 중얼거림에 타래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타래가 태양 길드임을 알아 먹구름은 아무것도 아닌 척, 재빨리 빵싯 웃어 보였다.
“아! 김팔라 님! 그냥 어그로 써서 희생하시죠! 그사이에 아쳐들이 잡게!”
“저 공격력 올인 세팅인데. 두 방 정도만 버티면 되나요? 그 이상은 힘들 것 같은데……!”
“아악! 진짜 힘팔라! 빌런이 따로 없네!”
이젠 힘이 쏙 빠져 기운 없는 파피루스가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러다 HP가 아닌, 피로도가 다 닳아 죽을 것 같다며 말이다. 대놓고 이어지는 구박에 김팔라는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리디안 님!”
지옥의 술래잡기가 끝없이 이어지던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에 리디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함께 고개 돌린 김팔라와 파피루스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페페 님이 자애의 손길 을 사용하셨습니다.] [페페 님이 성령의 축복 을 사용하셨습니다.]입구 쪽에서 달려오는 페페의 옆으로 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리디안은 무서운 속도로 접근한 크라이그의 모습에 바보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어? 크라이그 님까지…….”
눈 한번 깜빡이는 사이에 크라이그는 자석처럼 갤럭시에게 붙었다. 놀란 갤럭시가 다급히 도주를 시도했지만, 전광석화처럼 날아온 ‘일섬신월’을 맞아 은신이 풀리고 말았다.
그에 리디안은 고작 네다섯 걸음 뒤에 있던 갤럭시의 모습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