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경계의 숲】
“음. 길드 회의면 이제 굳이… 제가 끼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축제와도 같았던 오후를 지나, 바로 이튿날. 마제스티와 백검, 도도, 크라이그를 따라 ‘니플헤임’으로 향하던 리디안이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에이, 무슨 섭섭한 말씀을. 거의 미미르 전용 통역자셨고 퀘스트까지 수행 중인데 당연히 같이 들어야죠. 그리고 오히려 갑자기 쏙 빠지는 것도 더 어색해요.”
백검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어차피 미미르와의 대화는 모두가 들은 내용이고 퀘스트 자체도 따로 놓고 보자면 오늘의 회의 내용과는 작게 연관만 있을 뿐, 리디안이 왈가왈부할 대목은 아니었다.
오늘의 주제는 어제 알게 된 사실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 그리고 헤임달이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탐색. 이 두 가지였다.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지라, 리디안은 부담 백배였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경계의 숲 탐색 때문에 안 따라갈 수도 없었다. 리디안은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 많은 리디안이 이런저런 부담에 끙끙대는 사이. 빠르게 도착한 눈꽃주점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쪽 세계의 전말을 듣자마자 다시 굴속으로 들어간 파라다이스 길드를 제외하면, 멤버는 어제 회합과 같았다. 샘에 가지 않고 미리 자리를 피한 고독한이나 호드라, 샤봉. 그리고 도망치듯 내뺀 제니스와 마리타도 말이다.
이미 먼저 온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는지, 주점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들은 잔뜩 열이 올라있었다.
제니스는 또 한바탕 울었는지 눈가가 빨갰다. 마치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 리디안이 침울하게 고개 숙인 순간이었다.
“오! 리디안 님! 스카디 9강 축하요!”
분위기를 확 깬 것은 박회장이었다. 그 바람에 흠칫 놀란 리디안이 반사적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다수가 리디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작게 감탄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같은 연합 사람들은 당연했고 심지어 적대 길드였던 보리알, 무너스키까지 관심을 보였다.
“그거 스트레이트 진짜예요? 그동안 스톤 몇 개 들었어요?”
“혹시 무슨 비법이라도 있어요? 왜 이렇게 잘 띄우시는지…….”
거리낌 없는 두 사람의 태도에 영향받았는지, 곧 네오와 핑크푸크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대장군까지 슬그머니 합세하자 리디안의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형식적이었다.
리디안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아이템 정보를 공개했고 모여든 사람들도 적당히 감탄하다 곧장 물러났다.
“현석아. 너도 함 질러 봐라. 혹시 아냐? 네 것도 9강될지.”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던 아퀴나스가 이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본인 역시 스카디가 궁금했지만, 자존심에 차마 다가가지 못했던 이트는 리디안을 곁눈질하며 대꾸했다.
“저는 6강이면 충분해요. MP가 모자른 것도 아닌데요, 뭘.”
태연하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몹시 부러웠다. 심지어 리디안은 어제의 일로 이상한 아이템도 받은 상태였다.
잠시 문제가 생겨 지금은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지만, 현재 진행 중이라는 퀘스트가 잘 풀린다면…….
이트는 잠깐이마나 9999였던 리디안의 MP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탄식했다. 솔직한 말로 너무 부러웠다.
스카디로 인해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과한 관심에 조마조마했던 리디안이지만, 다행히 어제와 같은 낯선 시선은 없었다.
“다들 모이신 것 같으니 회의 시작할게요.”
레온이 발언했다. 스카디로 인해 잠시나마 밝아졌던 사람들의 표정이 우중충해졌다. 다시 맞닥트린 현실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박회장이 나섰다.
“다들 기운 좀 내세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원하게 받아들이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어때요? 우리가 희망을 품고 밝게 생각해야, 다른 사람들도 영향받고 건강한 마음으로 협조하지 않겠어요?”
지극히 맞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표정에 풍월주도 한마디 했다.
“힘든 거 알지만 우리가 정말 노력해야 해요. 우리가 우울해하면 가장 먼저 영향받는 게 길드원이고. 길드원들 분위기 우울하면 일반 플레이어들도 눈치 보면서 주눅 들어요. 어떻게 보면 이렇게 안일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도 다 우리 책임인데.”
꼬집기라도 하듯, 풍월주의 시선이 스윽 마리타에게 닿았다.
“그러니 수습도 우리가 해야죠. 안 그래요? 다들 페널티 관련해서 어느 정도 동의했으니까 마음 아플 거 아니에요.”
은근한 쐐기에 타 길드 마스터들이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마리타의 발언 이후, 레온과 마제스티에게 죄를 다 뒤집어씌우는 느낌이라 심기가 불편했던 신사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청풍명월의 풍월주. 모르는 사이일 땐, 좀 톡톡 쏴대는 사람이라 비호감이었는데, 알고 보니 사이다도 이런 사이다가 또 없었다.
“자자, 다들 기운 내는 거로 하고. 일단 어떻게 할지 얘기해 보죠.”
풍월주의 직설적인 발언에 괜히 분위기가 더 나빠지진 않을지, 우려한 마제스티가 서둘러 끼어들었다.
“어제 우리가 보고 들었던 것에 대해,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숨겨야 하는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차피 욕받이는 레온 님이 할 테니, 후일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들의 망설임을 우려한 신사가 그리 덧붙였다.
본인은 악의 없이 솔직하게 말한 것이지만, 사실 상대방이 듣기에는 꽤 거북스러운 말이었다.
그 예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핑크푸크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 간신히 분위기를 수습한 마제스티는 굳어지는 분위기에 놀라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어쩌나 하고 고민하던 때, 다행히 대장군이 먼저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개인적으로 저는… 당분간은 저희끼리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한층 걱정이 담긴 눈으로 대장군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요즘 저희 싸운 것 때문에 분위기도 좀 그렇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싸우라고 부추기는 편인 데다가 또 신세계도 문제잖아요. 괜히 알려지면 패닉 상태에 이르러서 더 폭주하지 않을지 우려돼요.”
대장군은 느낀 그대로 털어놓았지만, 핑크푸크는 인상 쓰며 몰래 한숨 쉬었다. 하마터면 ‘넌 대체 누구 편이냐’는 핀잔이 나갈 뻔했다.
아무리 ‘신세계’가 없는 자리이고, 하나의 중요한 일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온 측과 완전히 동맹한 건 아니었다.
하물며 대장군은 현재 부길드 마스터다. 적대 길드가 잔뜩 있는 자리에서 같은 연합을 대놓고 까내리는 건 아주 잘못된 태도였다. 핑크푸크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러했다.
핑크푸크는 대장군을 아니꼽게 쳐다보다 이내 한숨 쉬며 고개 돌렸다.
“흠. 그래서 이대로 그냥 계속 숨기자는 건가요?”
“네. 아니면 하다못해 멘탈 약한 사람들을 좀 케어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그저 희망 사항이기에 대장군은 조심스럽게 주변인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터무니없다는 눈빛이 쏘아졌다.
그런 대장군의 태도가 답답했는지 보리알이 칼같이 치고 들어왔다.
“케어를 뭐 어떻게 할 건데요? 파라다이스처럼 사람들 모아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격려하는 거요? 뭐, 나쁘지 않아요. 근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없지 않나요? 그렇다고 이대로 신전 레이드를 미룰 수도 없잖아요.”
“맞아요. 좋은 뜻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좀……. 근데 알리지 말자는 의견에는 동의해요. 차라리 이벤트 시작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알리는 게 낫지 싶은데요. 솔직한 말로 일반 플레이어들이 지금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분위기만 혼란스럽고 나빠지지. 우리한테 뭐, 도움될 게 있을까요?”
이유가 잔인했지만, 어쨌든 풍월주도 대장군의 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에 박회장이 얼굴을 구기며 반박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요?”
“맞아요. 일반 플레이어들은 쓸모도 없다는 식으로 들리는데요. 그러니까 도움 안 되는 일반 플레이어들은 죽든 말든 상관없다, 이거 아니에요?”
듣고 있던 마리타도 언짢은 얼굴로 한 소리 했다. 그에 한숨 쉰 풍월주가 천천히 대꾸했다.
“그거까지 숨기자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그건 알려야죠. 사람 목숨이랑 직결되는 일일 수도 있는데.”
“페널티 관련해선 충분히 돌려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거저거 이유 갖다 붙여서 자제시키면 길드 차원에서 충분히 제어할 수 있어요. 뭐…….”
풍월주의 발언에 살을 붙인 신사가 힐끔 제니스와 마리타를 쳐다봤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누군가가 폭로하면 의미 없는 얘기긴 하지만요.”
유독 정보 공유가 쓸데없이 활발한 친목 길드를 비꼬는 말이었다. 그에 두 사람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실제로 제니스는 제 측근들에게 어느 정도 운을 띄워 놓았고, 마리타 또한 부길드 마스터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 상태였다.
‘말했네.’
‘벌써 썰, 다 풀었나 보네.’
‘그럴 줄 알았다.’
동시에 얌전해지는 두 사람의 고갯짓에 풍월주, 박회장, 레온은 확신했다. 한숨 쉰 신사는 반사적으로 네오를 쳐다봤다.
입 막으러 간 거 아니었느냐는 눈치에 네오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