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경계의 숲으로 향하기 직전, 각 파티의 바드 부재로 인해 플레이어들에게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부름을 받은 파피루스는 30분이 지나서야 장비 세팅을 마치고 도착했다. 이번 파티의 목적을 알고도 파피루스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했다는 희미한 미소에 레온은 말없이 파피루스의 등을 두들겨 주기도 했다.
“슬슬 시간 됐네요. 식사, 다들 마치셨으면 우리도 이제 출발하죠.”
13시 정각 직전. 시간을 확인한 신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진작 따로 주점을 나선 태양 연합과는 달리, 레기온 연합은 주점에 남아 있던 상태라 빠르게 집합했다. 그러곤 빠르게 파티를 맺어 약속 장소인 ‘경계의 숲’ 대기실로 이동했다.
“파티장 마제 님인가요? 제가 동맹 걸게요.”
들어서기가 무섭게 핑크푸크가 마제스티에게 다가왔다. 태양 연합은 일찌감치 도착해 대기실을 점령한 상태였다.
맨 마지막으로 입장한 리디안은 비좁은 대기실에 꽉 찬 사람들을 보곤 말없이 감탄했다.
어제 미미르의 샘에도 함께했고 하니 이제 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부대끼며 서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했다. 그동안 하도 편을 나누며 싸워 댔으니 이런 그림이 신기하고 기특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긴. 이게 정상이지. 그동안 서로 너무 자기 입장만 생각했어.’
미묘한 조합을 바라보면서도 리디안은 뿌듯함을 느꼈다. 제발 이대로만 쭉 이어지길 바란다며, 마음속으로 몰래 바라기도 했다.
[핑크푸크 님의 파티와 동맹이 되었습니다.]“경계의 숲은 저레벨 맵이라. 몹 잡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가급적 싹 쓸어 주시고요. 주변에 오브젝트나 길, 환경 위주로 이상한 건 없는지. 되도록 잘 봐주세요. 뭐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연락해 주시고요.”
레온의 정성스러운 요청에 핑크푸크 측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말없이 눈짓한 레온과 핑크푸크가 돌아서자 좌우로 팀이 갈렸다.
곧장 수신호한 핑크푸크의 지시에 태양 연합이 먼저 우르르 안으로 입장했다. 준비를 마친 리디안의 파티도 뒤따라 들어섰다.
[경계의 숲 A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사냥터 내부에서의 이동 마법 및 아이템 사용이 제한됩니다.] [경계의 숲 A구역―1 / 적정 레벨 : 40 이상] [출현 몬스터 : 경계의 난쟁이 / 봉인의 유령 / 길 잃은 혼령] [출현 필드 보스 몬스터 : 죽음을 기다리는 난쟁이]게이트를 지나자 짙게 녹음 진 숲의 전경이 펼쳐졌다. 전체적으로 조금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라 리디안은 괜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나치게 밝은 ‘요정의 미로’나 ‘무한한 생명의 숲’이 조금 특이할 뿐, 노르드 월드의 숲은 대체로 이런 풍경이었다.
“그럼 왼쪽은 저희가 맡을게요.”
대장군, 아퀴나스, 이트, 무너스키, 보리알, 네오, 흑도. 일곱 명의 플레이어가 핑크푸크를 선두로 맵 왼쪽으로 이동했다.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리디안의 파티도 재깍 오른쪽으로 향했다.
“입구 근처는 몹이 별로 없네. 저레벨 맵이라 그런가?”
앞장선 백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본인들의 레벨에 비해 난도가 낮다 보니, 다들 긴장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하기야, 딜러 입장에서 이곳의 몹들은 몇 번 툭 치면 죽을 것들뿐이니 그럴 법도 했다.
“영웅을 위한 찬가. 마력이 깃든 축복. 전장의 선율.”
오는 내내 겁먹은 표정이던 파피루스가 반사적으로 버프를 외웠다. 칙칙한 분위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리디안도 서둘러 주력 버프를 시전했다.
“신의 수호. 여신의 노래. 성스러운 은총. 보호의 빛…….”
주력 버프를 완료한 리디안은 딜러들에게 따로 걸어야 할 보조 버프를 준비했다.
그러나 당장 걸지는 않았다. 맵의 난이도도 그렇고 파피루스 덕분에 MP는 넉넉하겠지만, 무의미한 낭비는 지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흠. 보스는 쟤네가 잡으려나?”
본격적인 이동 개시 후. 백검의 뒤를 따라가던 신사가 흘깃 뒤를 돌아봤다. 보스 몹이 열한 시 방향에 주둔하고 있으니, 태양 연합이 조우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겠죠? 뭐, 저레벨 맵이라. 쟤네면 5분 안으로 잡겠네요.”
마제스티의 대꾸를 끝으로 대화가 잠시 끊겼다. 안쪽으로 가까워진 데다 몹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풀숲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은 ‘경계의 난쟁이’였다. 퀘스트 아이템인 ‘난쟁이의 황금’을 드롭하는 몹이었다.
리디안은 여신의 세례와 성령의 축복을 딜러들에게 돌리며 마른침을 넘겼다.
“리디안 님이랑 파피루스 님. 망치 범위 조심하세요!”
백검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리춤에서 망치를 꺼낸 난쟁이가 번쩍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자그마한 쇠망치는 순식간에 거대해져 지면을 요란스럽게 두들겼다. 꽝꽝 울리는 효과음에 선두에 있던 도도가 상태 이상 기절에 걸렸다.
딜러들에게 보조 버프를 걸고 있던 리디안은 깜짝 놀라 신성한 축복을 시전했다.
저레벨 맵이라, 도도 정도면 충분히 면역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설마 걸릴까 싶어, 몹 가까이에 있던 도도도 놀란 기색이었다. 기절에서 풀려난 도도는 창피해하며 리디안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일섬신월.”
“참격난무.”
“스나이핑 샷.”
크라이그, 레온, 신사가 공격을 시작하니 사실 도도가 할 것도 없었다. 불러낸 소환수가 몹에 닿기도 전에 몹이 사라져 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마제스티, 박회장, 샤봉, 풍월주가 근접한 몹들을 처리했다. 마찬가지로 처리 속도는 빨랐다.
그러나 길 잃은 혼령과 봉인의 유령은 난쟁이보다 상태 이상을 많이 거는 몹이다. 일반 공격만큼이나 더 빈번한 상태 이상 공격에 마제스티와 박회장, 샤봉, 풍월주도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신성한 축복!”
박회장이 말했던 대로였다. 이전보다 상태 이상을 거는 횟수가 증가한 탓에 리디안은 여신의 손길보다 신성한 축복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다행히 다들 고레벨들이라 HP가 위험해질 일은 없었다. 그러나 딜러가 여러 명이고 힐러는 혼자인 상황이다. 빈번한 ‘신축’과 자잘한 버프에 리디안은 무척 바빠야 했다.
“진짜 디버프 오지게 거네. 이러니까 저레벨들이 안 오지.”
간헐적으로 신의 사슬을 사용해 몹을 끌어모으던 백검이 휘파람을 불었다.
사실 딜러들이 워낙 빠르게 처리해 굳이 모을 것도 없었다. 탱커의 의무상 그저 시늉만 할 뿐. 더욱이 자신의 방어력에 비하면 경계의 숲의 공격력은 간지러운 수준이라, 백검은 아주 느긋해 보였다.
“이래서 저레벨 나들이가 재밌어요. 툭 쳐서 바로 죽는 쾌감이라고 해야 하나?”
박회장은 오랜만에 소풍 나온 사람처럼 들떠 보였다. 풍월주는 그런 그를 보며 뭐가 저렇게 신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눈을 흘겼다.
하지만 리디안은 박회장의 게임의 시스템이나 설정 등에 대단히 박식하고 흥미 있어 하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 적극적인 거고, 덕분에 알게 모르게 박회장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분위기와 안정감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마제스티나 레온. 신사나 백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간부들이 느끼기에도 박회장은 ‘미지 탐색’에 꼭 필요한 조언자였다.
“회장 님이 좀 쓸데없이 텐션이 높아 보이긴 하죠? 근데 그래도 저분이 있어야 수월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우리보다 아는 게 많잖아요.”
하나의 몹 무리가 정리된 후였다. 풍월주가 박회장의 산만함을 못마땅해하는 걸 눈치챈 백검이 웃으며 말했다. 더불어 목소리를 낮춰 한마디 더 속삭였다.
“그리고 다람 님에 비하면 저 정도는 애교죠. 막말로 지금 저 포지션이 다람 님 아닌 게 어디예요? 안 그래요?”
박회장으로 인해 찡그려져 있던 풍월주의 표정이 단박에 평정을 되찾았다. 풍월주는 “그러네요.”하고 중얼거린 뒤 깊은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한편, 리디안과 함께 동떨어져 있던 도도는 머리를 긁적이며 눈치만 살폈다.
행동 빠른 딜러들 때문에 도도가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도대체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도는 한참이나 파티의 분위기를 살펴야 했다.
결국, 도도는 불러낸 소환수를 리디안과 파피루스 옆에 붙이곤 말없이 따라다녔다. 나름의 ‘호위 모드’였다.
“어, 근데 이 정도면 고레벨 몇 명 데려와서 쩔 하면 어렵지 않겠는데요?”
문득 생각이 났는지 도도가 갸웃하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지만 박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리디안을 힐끔 쳐다봤다.
“그게 아니라. 힐러가 힘들어서 그래요. 리디안 님이야 고레벨에 MP도 넉넉하니 신축 연사해도 저렇게 팔팔하지만… 여기서 저레벨 힐러들은 힐하랴, 신축 하랴. 아, 혼자면 또 버프도 돌려야지. 결국, MP가 모자라서 아주 부담스럽거든요. 그렇다고 저렙들이 고레벨 힐러 데려올 여건도 안 되고. 귀한 고레벨 힐러들이 선뜻 쩔 하러 올 만큼 사정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기가 그렇게 메리트 있는 맵도 아니니… 뭐,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피 맵이 된 거죠.”
미처 힐러의 MP 형편까지 생각하지 못한 도도가 낮게 탄식했다. 이해했다며 끄덕이는 도도처럼 리디안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인트로서, 정말 공감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빠르게 잡는 건 좋은데. 가는 길에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잊지 맙시다!”
평소 버릇대로 사냥에 집중하는 흐름을 의식한 마제스티가 다시 공지했다.
굵직한 목소리에 리디안도 번쩍 정신 차리곤 부랴부랴 주위를 훑었다.
파티원 중에서 가장 눈썰미 좋다고 자부하는 풍월주는 진작 구석구석을 스캔하고 있었다.
“이런 데 건드리면 되나?”
박회장이 먼저 길목의 바위 더미를 툭툭 발로 찼다. 그를 본 크라이그도 나무 기둥을 건드리거나 풀숲을 헤쳐 보는 등 흔적을 찾아 헤맸다.
마제스티는 혹시나 해 가로막힌 벽 부분도 손으로 직접 더듬었다. 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 움직임을 힐끔거리던 파티원들에게서 시큰둥한 반응이 터져 나왔지만, 탐색을 중지할 순 없었다.
리디안의 파티는 야유하는 박회장을 달래며 최대한 촘촘하게 맵 오른편을 쭉 돌았다.
그만큼 파티가 마주하는 몹의 수도 상당했다.
[난쟁이의 황금을 입수했습니다.]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지혜의 증명―2] [난쟁이의 황금 1 / 1 : 경계의 숲, 경계의 난쟁이를 통해 획득 가능] [요정의 오색 가루 1 / 1 : 요정의 미로, 일반 요정 몬스터를 통해 획득 가능] [요정의 눈물이 담긴 정제수 0 / 1 : 붉은 태양의 신전, 미치광이 신도와 타락의 사제를 통해 획득 가능]대략 15분이 지나서였다.
위쪽에서 쏟아져 나온 난쟁이 무리를 잡자마자 퀘스트 아이템이 드롭됐다. 한 시간 내내 매달려야 했던 요정의 오색 가루에 비하면 몹시 빠른 편이었다.
“퀘스트 아이템 나왔어요!”
리디안의 밝은 외침에 축 처져 있던 분위기가 살아났다.
“오, 빨리 나왔네요.”
“난쟁이 잡는 속도가 빨라서 그런가?”
“이제 남은 거 붉은 태양의 신전이죠?”
“네! 맞아요.”
웃으며 대답을 하면서도 리디안은 불안하게 퀘스트 창을 쳐다봤다. 일반 몹에게서도 드롭된다고 안내되어 있지만, 99%의 확률로 무조건 보스가 드롭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첫 번째 도전에서 드롭이 불발된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시간 꽤 지난 것 같은데.”
풀숲을 헤치던 신사가 힐끔 시각을 확인했다.
입장한 지 약 30분이 다 된 참이었다. 몹을 잡는 속도가 빨라, 그 정도면 맵 오른편을 모두 훑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파티원들의 표정을 살폈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뱉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지루한 분위기에 하나둘씩 불평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맵인데요?”
“그러게요. 수상한 거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데…….”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해요?”
대충 찾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모두 매의 눈으로 여기저기 꼼꼼히 살핀 것을 알아 레온과 마제스티는 어려운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의 힘 빠진 표정에 그만 퇴장해야 하나, 하고 두 길드 마스터가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였다.
[핑크푸크 : 마제 님. 잠깐 이리 좀 와보세요. 저희 방금 보스 잡았는데 뒤로 뭔가가 생겼어요.]메시지를 확인한 마제스티의 눈이 커다래졌다. 마제스티는 급히 손을 들어 흩어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다급히 전달한 소식에 지쳐 가던 사람들의 표정도 급변했다.
성질 급한 샤봉이 제일 먼저 뛰어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뒤따라 우르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