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대장군이 수줍게 웃었다. 얼굴이며 말이며 예쁘기 그지없었다.
백검은 아저씨처럼 허허 웃으며 대장군의 옆에 바짝 붙었다.
“이야, 보기보다 융통성 있으시네. 마음에 들었어요. 저 오늘부터 장군님 팬 할게요.”
다른 길드 마스터들이 웃는 것처럼, 리디안도 의외의 모습을 보여 준 대장군을 향해 옅게 웃었다.
오늘로써 대장군에 대한 인상이 완벽하게 바뀌었다.
사실, 전부터 대장군이 먼저 평화를 제안했다는 얘길 들어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대장군이 워낙 핑크푸크의 눈치를 보고 소극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 대장군 개인에 대한 평가는 그저 그랬다.
하지만 오늘 대장군이 보인 행동이나 발언은 대장군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바꾸는 데 완벽히 일조했다.
평소 태양 길드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도도 역시, 대장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진짜 좋은 의견이네요. 지하 도시나 죽사막이나 인원이 정말 많이 필요해서 파티 짜는 데 좀 힘들긴 하겠지만. 동시에 공략 가능한 인원이 충분히 나온다면 안 갈 이유가 없죠.”
“어, 근데… 레이드 특성상 사망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이건 어떻게 수습하죠?”
문득, 한참 전 이슈를 떠올린 리디안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에 곳곳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보리알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였고 리디안을 향해 의아하게 되물었다.
“안 죽으면 되잖아요?”
그게 어렵냐는 말에 리디안은 쓰게 웃었다.
“아, 그게… 그렇긴 한데요…….”
리디안은 잠시 말끝을 흐렸다. 거의 같이 가는 분위기인 듯하지만, 영업 비밀에 속하는 레이드 패턴을 멋대로 알려 줘도 되는지. 잠시 혼란이 생겼기 때문이다.
뭐, 보리알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어차피 공략도 다 알고 있으니 서로 숙지하고 주의한다면 사망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하 도시였다.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하 도시는 오브젝트 패턴 특성상 특정 직업. 혹은 플레이어의 죽음이 필수인 곳이었다.
“그게… 죽사막은 컨트롤로 커버가 되지만, 지하 도시는 힘들어요. 오브젝트 공격조는 무조건, 최소 세 번은 죽는 구조라서요.”
다행히 백검이 쓴웃음을 지며 설명했다. 설마 그 정도일 줄 몰랐던 보리알은 입을 틀어막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리디안을 바라보며 진짜냐고 되묻기도 했다.
비단 보리알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레이드에 익숙한지라, 대장군은 오트젝트 공격조의 최적화된 직업이 섀도우 헌터임을 상기하곤 하얗게 질려버렸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용기 있게 나섰으나, 솔직한 말로 죽음까지 각오할 정도로 마음이 굳세진 않았기 때문이다.
늑대 동굴부터 레이드에 합류한 풍월주나 샤봉 역시. 처음 듣는 정보에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지하 도시 때 잡몹 처리반을 보조했던 박회장은 레온을 통해 패턴을 전달받아 아는 눈치였다.
“흠……. 또 골치 아프게 됐네.”
다시 찾아온 적막에 마제스티가 무거운 한숨을 뿜었다. 곧 릴레이처럼 곳곳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모두가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점점 길어지는 침묵에 크라이그가 주변을 둘러보곤 한마디 했다.
“일단 이 얘기는 태양 연합 만나서 다시 하고. 여기 탐색 마무리부터 해요.”
그에 마제스티와 레온이 아, 하며 끄덕였다. 아직 경계의 숲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을 핑크푸크의 파티도 생각해야 했다.
“뭐……. 근데 더 볼 것도 없긴 하네요. 어차피 헤임달도 정지한 상태고. 시스템적인 부분이 아예 없는 날 것 그대로인 곳이라, 우리끼리 찾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이어진 크라이그의 덧붙임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탐색에 대한 의욕이 사그라든 샤봉은 인제 그만 나가자며 칭얼댔다.
깐깐한 신사도 더 볼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바라본 나머지 파티원들의 생각도 같았다.
만장일치에 레온과 마제스티도 그만 나가자고 손짓했다.
뒤돌아 움직이던 때 마제스티에게로 곧장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마제스티는 양반은 못 된다며 끌끌 혀를 찼다.
[마제스티 : 다 끝났어요. 몇 개 발견하긴 했는데 별거 없었고요. 지금 대기실로 이동할게요.]곧장 그게 뭐냐는 답장이 왔지만 마제스티는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티원들을 주변으로 모아 신사에게 받은 파티 이동 스크롤을 사용했다.
미지의 맵 탐색은 다행히 아무런 위험 없이 완료했고, 리디안은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을 바라보며 비로소 안도했다.
* * *
“동시 공략이요?”
“네. 길드원들 의견도 중요하긴 한데. 의견 다 듣다간 시간 다 갈 것 같아서요. 설득은 나중에 하고 일단, 저희끼리 먼저 일정이나 팀 조율부터 해놓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급히 대기실로 달려온 태양 연합의 표정은 다채로웠다.
서로의 길드를 섞어 지하 도시와 신전을 동시에 공략하자니. 뭐가 됐든 우선 팀부터 미리 짜놓자는 말에 핑크푸크는 잠시 당황해야 했다.
“지하 도시 클리어가 좀 번거로워서… 별님반, 델피네, 이상성욕자, ANG까지 다 불러서 얘기해야 하니 우리 먼저 주점으로 이동하죠.”
바빠진 마제스티의 손짓에 사람들은 우왕좌왕 당황했다.
아퀴나스, 무너스키, 네오는 마제스티를 따라 손짓하는 대장군과 얼빠진 핑크푸크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다.
핑크푸크가 연합의 주체이니 일단은 핑크푸크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데, 부길드 마스터인 대장군이 벌써 다 끝난 얘기인 양 행동하고 있으니 혼란스러웠다.
“뭐예요? 설마 대장군 님이 멋대로 대리로 동의한 거 아니겠죠?”
불안함을 느낀 이트가 다가와 핑크푸크에게 속삭였다. 핑크푸크는 떨떠름하게 대장군을 쳐다봤다.
물론, 마제스티와 레온은 그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하자, 라는 뜻이었지만 대뜸 끌려가는 입장인 핑크푸크에겐 그리 달가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표정이 고깝기는 무너스키도 마찬가지였다.
“야, 보리야. 너도 같이 있었으면 한마디 했었어야지. 아니, 뭐. 동시 공략이야 물론 좋은 의견인데. 그렇다고 쟤들이 하자는 대로 덜컥 따르면 어떻게 해? 우리도 생각할 시간은 있어야지. 막말로, 우리가 호구야? 쟤들 쫄따구야?”
답답하다며 무너스키가 연신 한숨을 토로했다. 하지만 보리알의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아, 오빠. 장난해요?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애들도 아니고 뭔 밀당이에요? 서로 어쭙잖게 체면 차리면서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어요. 이건 무조건 협동해서 해야 해요. 그리고 먼저 제안한 건 대장군 님이고요.”
이어진 뒷말에 핑크푸크, 무너스키, 아퀴나스, 이트의 어안이 벙벙했다.
이트는 대놓고 ‘쟤가 뭐라고?’라는 표정이었다.
이러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가 나올까 봐. 보리알이 먼저 따끔하게 그들을 다그쳤다.
“왜요. 문제 있어요? 난 진짜 부길마다운 발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물렁물렁한 대장군에 대해 한 소리 하려던 이트가 텁 입을 다물었다.
자존심 센 연합 플레이어들은 한결같이 핑크푸크를 바라보며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핑크푸크라고 이 상황에서 대장군을 향해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요즘 들어 대장군이 유난히 미운 짓을 한다마는, 그래도 대장군은 자신의 사람이었다. 거기에 대외적으로는 부길드 마스터라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쓴소리를 뱉을 수도 없었다.
핑크푸크의 머리로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천천히 마른세수한 핑크푸크는 일단은 수습이라도 하자며, 자신의 동맹 길드를 설득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한테 나쁠 거 없긴 해요. 지하 도시나 신전이나 둘 다 우리한테 꼭 필요한 레이드고, 저쪽 말대로 하면 더 쉽게. 시간 단축해서 깨는 거니까요. 그러니 좋게 생각하고 일단 가서 얘기하죠. 흑도야. 넌 먼저 아지트에 가 있어. 항상 말조심하고.”
“아, 네네. 형님.”
바로 흑도를 돌려보낸 핑크푸크가 성큼 앞장섰다.
믿었던 핑크푸크가 그리 말하니 무너스키와 아퀴나스, 이트, 네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찰나의 아니꼬운 표정을 숨긴 채 잠자코 핑크푸크의 뒤를 따랐다.
한동안 자기들끼리 실랑이를 벌이나 했더니, 차례대로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태양 연합의 모습에 리디안은 휴, 하고 안심했다.
서로 협력하기로 했지만, 가끔 아슬아슬할 때가 있긴 하다. 옆에 있던 크라이그는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기라며 한심하게 혀를 찼다.
“어, 우리도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되겠죠?”
덩그러니 남은 파피루스가 리디안, 크라이그, 도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흑도가 아지트로 귀환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라는 크라이그의 모호한 대답이 나오자 파피루스는 지친 얼굴로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중에 다시 보자는 파피루스의 인사에 손을 흔드는 사이, 맞은편에 있던 보리알도 허공을 두드리는 게 보였다.
우연히 리디안과 눈이 마주친 보리알은 형식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까닥였다.
곧 보리알의 발밑으로 아지트 귀환 이펙트가 생겨났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도도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저분 슈퍼문 부길마 아니에요? 회의 참석 안 하시려나 보네요.”
“대타예요. 원래 ‘용식이’라는 사람이 정식 부길마인데. 레벨이 너무 낮아서 지금은 보리알이 대리로 다니는 거라고 알고 있어요. 용식이 그 사람, 아마 이제 70일걸요? 초창기 플레이어긴 한데, 워낙 뒤처져서…….”
크라이그의 자세한 설명에 도도가 이해했다며 끄덕였다. 하긴, 명색이 전투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가 레벨이 낮은 것도 좀 그렇긴 하다.
덩달아 끄덕거리면서도 리디안은 무너스키를 쳐다보던 보리알의 표정이 몹시 불퉁했던 것. 그리고 대장군을 쳐다보던 핑크푸크의 미묘한 표정을 떠올렸다.
상황이 이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전부터 균열이 있었던 건지. 요즘 들어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