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우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흐린다더니……. 어떻게 보면 베누스보다 더 난감한 경우네요?”
마제스티와 백검의 짧은 논의 직후.
레기온 길드원들은 마제스티의 갑작스러운 정모 소집에 늦은 밤인데도 아지트에 모여 있었다.
일찌감치 와, 사람들에게서 도시 사정을 전해 들은 헤른이 입 벌리며 어이없어 했다.
“이제 더 이상… 망치질은 망태의 전유물이 아니야. 개나 소나 한탕 하겠다고 잉여 새X들 다 기어 나와서 딜러 행세하더라.”
30분 전, 레긴의 대장간 주변을 염탐하고 온 노네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헐. 망태가 자기 밥그릇 뺏기는 꼴을 두고 보진 않을 텐데? 전에도 자기 따라 하던 애들한테 복수하고 그랬잖아요.”
“게임 땐 그냥 지가 신고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지금은 그게 안 되잖아. 그리고 그쪽 세계에도 신용이라는 게 있어서 아직은 망태 인지도가 더 높아. 지금 새로 딜러 한다고 나서는 애들도 잠깐 단물 빼먹겠다고 어설프게 나대는 애들이 대다수잖아.”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노네임처럼 어딜 둘러봐도 모두 망태와 망치질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설마 다들 돈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 거야?”
조용히 듣고 있던 불꽃심장이 길드원들을 두루 바라보며 물었다.
뭐, 솔직한 말로 반은 돈이 목적이고 반은 재미가 목적이긴 했다. 그러나 불꽃심장은 도박에 빠진 플레이어들이 정말 돈이 없어 뛰어든 줄 알고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 삼촌이 즉각 답변해 줬다.
“아녜요, 형님. 진짜 없어서 한탕 뛰려는 애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도박 쾌락인 거죠. 딴소리긴 한데, 솔직히 여기서 사냥 말고는 뭐 하고 놀을 게 없잖아요. 맨날 탐섬에서 노가리만 까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불나방처럼 한꺼번에 휩쓸려? 내 알기로도 이건 꽤 점잖은 사람 많은 게임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뭐… 그만큼 다들, 이 상황에 지쳐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아, 이거 그것들 변호하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시면 곤란.”
삼촌은 다급히 두 손바닥을 보이며 연장자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불꽃심장은 변해버린 플레이어들의 분위기에 배신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곧 그에게서 한탄 섞인 중얼거림이 나오기 시작하자 나이 어린 길드원들이 땀을 흘리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리디안 님. 혹시 모르니까 돈 될 만한 건 무조건 모아 둬요.”
여기저기 망태 이야기로 각자 떠드는 사이, 리디안의 옆에 있던 크라이그가 작은 목소리로 언질했다. 그 뜻을 눈치챈 리디안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
아직까지는 하우스나 희귀 아이템 외에 큰돈 들어갈 일이 없는 노르드 월드에서 돈이 정말 중요해질 만한 일은 단 하나였다.
그건 바로 이곳에 갇혀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에 따라 삶의 목표가 바뀌고 생활이 뒤바뀔 테니, 재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건 당연한 순리였다.
물론 정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가볍게 하는 말이겠지만,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다들 모였어요?”
리디안이 착잡함에 대꾸 못 하고 있던 때, 잠시 외부에 나가 있던 마제스티와 백검이 나타났다.
아지트 내부를 두리번거려 인원수를 확인한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단상에 올랐다. 길드원들은 조급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갸웃거렸다.
“요즘 매일 연합끼리 모여서 회의하더니. 갑자기 밤 다 돼서 정모 잡는 거 보면 레이드 때문이겠지?”
“저녁에 공지한 가이드라인 있잖아. 그거 패널티 관련해서도 이상한 말 떠도는 거 같던데. 그것도 관련 있으려나?”
군데군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공표한 지 고작 몇 시간도 안 되어, 벌써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대충 내용을 아는지라, 그 뒤로도 여러 추측이 아지트 내부를 떠돌았다.
“밤늦게 갑자기 모이라고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붉은 태양의 신전 레이드 일정이 내일로 급히 잡혀서요.”
마제스티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에 곳곳에서 오, 하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부분 사냥 다니기 좋아하는 랭커들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새로운 레이드에 대한 도전 정신으로 잔뜩 부풀어 있던 터라, 모두가 쾌재를 부르며 환호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내일 진행되는 레이드는 태양 연합과 합의하고 진행하는 것입니다. 태양 연합 역시 같은 시간대에 ‘지하 도시’ 레이드를 진행할 것이며, 드롭되는 아이템들은 정직하게 모아 서로의 연합에 최대한 합리적으로 분배될 예정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번에는 낮은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헉. 진짜요? 근데 합쳐서 가는 거 아니고 따로따로네? 난 섞어서 갈 줄 알았는데.”
“분명 핑푸가 싫다고 그랬겠지.”
“오, 그래도 진짜 연합 구색은 맞췄네? 이것도 기적이다.”
모두가 신기해하는 것처럼. 리디안도 놀라 바보처럼 입 벌렸다.
앙숙과도 같은 양측이 서로의 클리어 아이템을 공유한다는 것도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다행이네요. 폭탄들이랑 같이 안 가도 되니까.”
그럴 줄 알았다며 크라이그가 비죽이 웃어 보였다. 사실은 리디안도 그게 더 편했기에, 끄덕이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선 급한 일정상, 시간을 아끼고자 레이드 참여자들을 미리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신전 레이드는 저희가 첫 클리어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장비, 레벨, 직업을 비교해 효율적으로 선별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클리어 이후에 정식으로 공략 나오면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후발대로 더 쉽게 갈 수 있으니까. 혹시 이번 레이드에 희망했지만 제외되신 분들은 후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백검의 덧붙임에 레기온 길드원들이 고개를 주억이며 쉽게 수긍했다. 원래도 부드러운 분위기이긴 했지만 불온한 소문이 떠도는 와중에도 불만이나 의심 없는 분위기에 백검은 크게 안도했다.
“그럼 신전 레이드에 참여할 플레이어부터 호명하겠습니다. 편의상 존칭 생략합니다. 먼저 탱커에 일반인, 백검. 세인트 이모탈, 리디안, 앵두군, 무니. 바드 파파. 다템 하츠. 딜러 크라이그, 이노센트…….”
초반부터 이름이 불린 리디안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진작 가보고 싶었던 레이드인데다, 미미르의 샘 이슈가 있어 더 긴장됐다. 언뜻 듣기로는 ONE 길드도 이곳에 온 이후로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곳이라 했다.
오로지 기존 공략 정보만 가지고 변수를 예상하고 움직여야 하므로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발 빠르게 대응한다 해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의한 죽음은 피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상 끝입니다. 혹시 이 중에서 참석을 원하지 않는 분이 계시면 바로 손 들어 주세요.”
고요한 와중에 자토와 꼭 붙어 있던 또치가 고개를 기울이며 삼촌을 쳐다봤다.
삼촌은 참가 딜러 명단에 호명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지하 도시 말고는 섀도우 헌터의 레이드 쓰임새가 그리 적당하지 않아 이해는 갔다. 그러나 삼촌이 그간 늘 레이드에 참석했던 만큼, 또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에 삼촌 형은 안 가나 보네요?”
삼촌은 익살스러운 얼굴로 그렇다며 대충 대답했다. 사실 한참 전에 마제스티로부터 개별적으로 전달받아 타협한 상태였다.
그냥 이대로도 설렁설렁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마제스티는 잠시 고민하다 한마디 했다.
“삼촌 님은 그간 레이드에서 사망 횟수가 너무 많아 일부러 제외했습니다. 애초부터 제가 사망 패널티 관련해서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를 믿고 따라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제스티가 다시 한번 가볍게 고개를 숙여 부탁했다. 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파파가 손뼉을 치며 아는 척을 했다.
“맞네. 저 형, 지하 도시에서 오브젝트 부순다고 한 다섯 번 넘게 죽었을걸요?”
“헐. 다섯 번이나? 엄청나게 죽었네. 그럼 관리해야지. 요즘 이상한 말도 떠돌던데.”
“그래, 삼촌이 이제 몸 사려라. 너 없어도 레이드 잘~ 돌아간다~”
마지막 불꽃심장의 농담에 삼촌의 얼굴이 잠시 빨개졌다. 한동안 주변인들의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렸고 백검도 웃으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아, 참. 그리고 신전도 잡몹 팀 따로 마련할 거니까 혹시 생각 있으신 분들은 미리 말씀 주세요.”
길드 마스터의 덧붙임에 헤른과 우래귀의 눈이 빛났다.
리디안은 크라이그가 말했던 신전 레이드 보스의 특징을 떠올렸다.
보스 ‘타락의 사제’는 오브젝트에 속하는 신전 건물 내에 머물다가, 플레이어가 특정 위치에 다가서면 필드로 소환된다.
그렇게 소환된 보스는 고유 패턴에 의해 종종 걸어 다니기도 하는데, 문제는 구역 이동 제한이 없다는 거다. 보통 특정 구역 내에서만 머무르는 타 보스에 비하면 몹시 특이한 케이스였다.
레이드 팀이 보스전을 오래 끄는 경우, 심하면 보스와 함께 입구 근처까지 이동하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사이에 온갖 잡몹이 들러붙어 시간이 더 지체되거나 혹은 전멸에 이르기도 했다.
마제스티는 패턴의 변수를 고려해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자 맵 전체적으로 잡몹 전담조를 제안한 것이다.
“저요! 저요!”
“저도 하고 싶습니다!”
고맙게도 열의에 가득한 신청자가 대거 나왔다.
헤른과 우래귀는 물론. 자토와 행복, 노네임, 적혈구. 겁 많은 세인트인 도륵이나 럭키가이까지.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지원했다.
지하 도시 때처럼 대기업과 ANG에서도 협조해 줄 예정이지만, 자고로 예비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마제스티는 높은 참가율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내일, 신전 맵의 몹 씨가 마를 것이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