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새벽에 부길마님이 딜러 줄이고 세인트 더 넣자더니. 결국은 동굴 레이드랑 비슷하게 가네요.”
백검의 파티 편성 안내가 끝난 후, 세인트의 증원을 기대했던 그레이스가 작게 푸념했다.
처음부터 힐러의 사정을 수렴한 신사가 그리 제안했으나, 뼛속까지 딜러인 몇 명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다.
딜러들이 빠르게 처리하면 되지 않겠냐는 주장도 있고, 실질적으로 더 끌어올 세인트가 없었다. 그래서 인원은 늑대 동굴 레이드 때와 거의 흡사했고, 대신 파티는 딜러를 제외하고 각자의 포지션을 우선시해 변동됐다.
리디안의 1파티는 말 그대로 메인 힐을 담당한다.
2파티는 버프 및 보조 역할을 할 세인트와 바드로 이루어졌으며, 3파티는 디버프를 풀고 거는 신축 세인트와 다템들이다.
4파티는 메인 탱커 팔라딘 셋과 서모너 셋이며, 5파티는 보스 오른쪽에서 잡몹을 담당하는 별동대. 마찬가지로 6파티가 보스 왼쪽에서 잡몹을 담당한다.
그리고 나머지 7파티부터는 딜러들로 무작위 편성되었다.
“근데 페페 님이 저 대신 메인 힐 들어오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녜요. 페페 님 반응 빨라서 신전에선 신축 담당하는 게 나아요.”
메인 힐에 자신 없는 무니가 민망하게 묻자 그레이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리디안은 페페와 함께 디버프 팀에 들어간 괴자를 바라보며 바로 수긍했다. 저 두 사람이라면 신축은 걱정 없었다.
페페는 바로 자신의 세팅을 확인하며 같은 팀인 괴자와 규호의 위치까지 잡아 주었다.
“그럼 저랑 괴자 님 규호 님이 각각 세 시, 아홉 시, 여섯 시에서 범위 규모로 담당할게요.”
“2파티는 낙루 님이랑 앵두 님이 중앙에서 주력 버프랑 보조. 추장 님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그 외 이것저것 지원 부탁드려요.”
캐티스의 요청에 낙루, 앵두군, 추장이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트 팀이 익숙하고 빠르게 각자의 역할을 지정하는 것처럼, 바드와 다크 템플러 직업군도 서로의 포지션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나는 나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보조하라는 거죠? 그거 편하네! 좋아, 좋아! 그럼 나는 내 마음대로 스펠 쓰겠음!”
잠시 눈 돌린 곳에서 다람이 깔깔 웃는 게 보였다. 어쩐지 하츠와 인드라의 귀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았다.
그간 다람에게 시달렸을 두 사람의 모습에 리디안은 잠시 안타까운 눈길을 보냈다.
“어? 토토리아 님이랑 작약 님도 오셨네요?”
잠시 한눈팔던 리디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멀리 섀도우 헌터, 로그, 아쳐가 모인 테이블에 토토리아와 작약이 있었다.
리디안은 두 사람이 ONE 길드 내에서 패널티 횟수가 상당하다고 들은 바 있었다. 패널티를 우려해 이번 레이드에서 빠진 삼촌을 떠올리며 리디안은 놀란 눈으로 페페를 쳐다봤다.
그들은 미미르의 샘 퀘스트를 알고 있으니 당연히 사망 패널티에 대한 걱정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역시나 페페는 그 눈빛을 알아채곤 곧장 한숨을 쉬었다.
“두 분이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하셔서요. 너무 강경해서 부길마님이 따로 불러서 얘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으시더라고요. 마침 두 자리가 빈 상태기도 했고 더 충원할 인원도 마땅치 않아서 결국…….”
두 사람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는 말에 리디안은 존경스러운 눈으로 토토리아와 작약을 쳐다봤다.
추측이긴 해도 어쩌면 그간 쌓은 패널티가 정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데. 또 죽을지도 모르는 레이드에 두려움 없이 자원했다고 하니 신기하고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분들 생각해서라도 별일 없어야 할 텐데요.”
리디안은 빠진 삼촌과 드리머의 자리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르드연합의 팔라딘인 드리머 역시 패널티 횟수가 높이 쌓여 부득이하게 불참한 상태였다.
“…해서 신전 레이드 브리핑 종료합니다. 지금 바로 파티 별로 파티장 선정하시고 동맹까지 완료해 주세요.”
“출발은 13시입니다. 최소 30분 전까지 식사 및 장비 세팅까지 완료하시고 헬하임 광장으로 모여 주세요!”
신전 레이드 브리핑은 열한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두 시간 내리 이어진 설명과 주의사항에 다들 눈이 퀭했다. 사실 패턴 추측으로 시작된 사담의 비율이 더 높긴 했지만 말이다.
“다들 파티별로 움직이네. 우리도 우리끼리 이동하죠.”
파티, 직업별로 이동이 시작되자 캐티스가 자연스레 세인트 무리를 이끌었다.
다른 파티도 시끌벅적했지만, 리디안의 파티엔 바드와 다크 템플러가 속해 있어 더 유난스러웠다.
“그래서 나한테 장문의 편지가 왔다니까요? 내가 같잖아서 무시하려다가! 그래도 정신 차리고 우리 도와주고 있다길래 선심 썼음. 그래도 나머지 하나는 용케 구했네? 솔직히 나도 다 빌려주기 찝찝했는데. 잘됐지, 뭐! 그래서 렌탈비 받고 하나 빌려줬지만, 솔직히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한 시간마다 흑도한테 안부 묻고 있는데 얘가 아까부터 답장을 안 하네?”
마치 스톤을 빼앗기는 것처럼 몹시 음울해 보이던 그 날과는 달리, 다람은 이제 기분이 풀렸는지 방글거리며 조잘조잘 떠들기 바빴다.
리디안은 갸웃했다. 태양 연합에서 ‘죽마저’를 쓸 다크 템플러라면 블루벨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 흑도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사회성 없는 블루벨을 대신해, 그나마 안면이 있는 흑도가 다람에게 대신 아이템을 빌린 것이다.
파파는 옆에서 듣고 있는 하츠와 인드라의 얼굴이 십 년은 더 늙어 보인다고 소곤댔다. 왠지 그것도 맞는 말 같아 리디안은 웃으며 동감을 표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잡템 잘 떠서 골드 좀 모이면 바로 재료 수급 가능할 듯! 아오, 그 장사꾼 놈이 뻥튀기만 안 했어도 정가에 사는 건데! 아무튼, 내가 그거 사기만 해봐. 무적의 국산 세인트를 만들고 말겠어!”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람은 혼자만 신이 나 방방 날뛰었다.
정말 혼잣말도 정도껏 이어야지. 아니면 설명을 해주던가. 그 말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알아챈 리디안은 괜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혹시 스탯 재조정 물약 그거 말하는 거예요? 예전부터 지능 세인트 어쩌고 했던 거.”
페페는 짐작 가는 바가 있다며 혹시나 하며 물었다.
리디안은 다람이 지능 세인트를 목적으로 페페를 비롯한 응급실 세인트에게 질척거렸다는 걸 얼핏 기억해 냈다. 그 때문인지 다람을 바라보는 페페의 표정은 복잡하고 미묘해 보였다.
“네… 사실 처음엔 그냥 장난으로 가볍게 말했던 건데. 어쩌다 보니 퀘스트 아이템 덕분에…….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지능으로 바꾸면 효율이 더 높을 것 같기도 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아. 증표라고 받은 거 있다고 했었죠? MP 증가시키는……. 그럼 당연히 좋기야 하죠. 근데 그래도 다람 님이 결국 소원을 이뤄 내네요. 그렇게 지능, 지능 노래를 부르더니……”
“…어째, 제가 실험체가 된 느낌이긴 해요.”
리디안은 착잡한 얼굴로 다람을 바라보다 한숨지었다.
다람의 쫑알거림을 들으며 가장 먼저 이동한 곳은 길드 성 창고였다.
우선 아이템 정비부터 하자는 캐티스의 제안 때문이었다.
리디안이야 딱히 뭘 바꿀 것도 없었고, 만약을 대비한 지능 무기도 항시 인벤토리에 지니고 있어 달리 준비할 건 없었다.
“어, 태양 연합이다. 저쪽도 아침부터 주점에서 브리핑한다더니. 이제 끝내고 준비 시작하나 보네.”
세팅을 위해 몇 명이 창고로 들어간 직후였다. 남은 사람들끼리 구석에 모여 따로 조잘거리던 중, 규호가 입구 쪽을 가리켰다.
이제 막 길드 성으로 진입한 태양 연합 플레이어들 역시, 곳곳에 돌아다니는 반대 연합을 인식하곤 오갈 데 없는 시선을 연신 굴리고 있었다.
리디안은 가까워진 무리 사이에서 보리알을 목격했다.
그래도 바로 어제까지 함께 다닌 처지라, 리디안이 먼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에 엉겁결에 끄덕인 보리알도 어색한 미소를 흘렸고 세인트들이 모인 구석으로 자연스레 다가왔다.
“안녕들 하세요.”
“안녕하세요, 보리 님.”
그래도 보리알과 인연이 있는 캐티스가 서슴없이 그녀를 반겼다. 마찬가지로 안면 있는 페페도 보리알에게 인사했다.
어쩌다 보니 세인트들이 서로 인사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사이, 보리알 뒤에 꼭 붙어 따라온 먹구름이 다람을 째릿 노려봤다. 며칠 전 다람에게 죽도록 완드로 처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모습을 힐끔 본 보리알이 깊게 한숨 쉬었다.
“길드라는 게 참 유치하죠? 서로 다 아는 사이인데도 적 길드라는 이유로 인사도 못 하게 하니…….”
보리알은 대놓고 자신의 길드 마스터인 무너스키를 디스했다. 그에 리디안을 비롯한 모두가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모두가 눈치만 살피던 때, 캐티스가 허허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보리 님네도 지하 도시 레이드 준비하러 오셨나 보네요?”
“아, 네.”
“거기 준비물이 좀 까다로운데. 준비는 잘 되셨어요?”
“음. 대충은요. 지도는 다행히 SSR에서 찬조받았고… 그 죽마저도 저기 계신 다람 님 덕분에 여분 보충했어요.”
“그래도 길드 자체에서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저흰 죄다 다람 님 아이템으로 땜빵한 거라서…….”
“저도 솔직히 놀랐어요. 하나도 못 구할 줄 알았는데. 신세계 길드에 나쵸 님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예쁘다고 창고에 갖고 있었더라고요?”
의외의 인물이 튀어나오자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나쵸라니. 그 어벙한 세인트 아니냐고 파파가 리디안에게 귓속말로 속닥였다.
“그래도 죽마저가 두 개는 있어야 한다면서요? 그래서 하나는 다람 님한테 렌탈했죠.”
캐티스는 다람이 태양 길드에게 거액의 렌탈비를 요구했다는 걸 알아 민망한 미소를 흘렸다.
“그럼 이번에도 신세계랑 같이 가나 보네요?”
페페의 물음에 보리알이 썩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어쩌겠어요. 거기라도 껴야 머릿수가 맞는데. 그러게 내가 특정 인물들은 빼고 용병 따로 받아서 가자니까…….”
답답함에 한소리 하려던 보리알이 멈칫했다. 서로를 대하는 상황이 변했다곤 하나, 그렇다고 길드 내부 사정에 대해 싫은 티 팍팍 내가며 푸념할 처지는 아니었다.
뭐, 이미 핵심은 다 내뱉긴 했지만 말이다. 다행히 ONE, 레기온 연합은 못 들은 척 웃어 주었다.
“아무튼, 무사히 잘 끝내시길 바랄게요. 전 먼저 실례할게요.”
“네네. 보리 님네도요.”
짤막한 덕담을 끝으로 보리알은 창고 안으로 쏙 사라졌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파파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팀워크 망했나 본데.”
모두가 쓴웃음으로 동의했다. 한참 혀를 찬 그레이스가 안쓰러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저쪽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좀 불쌍해요. 아무리 랭커 많다 해도요. 동맹 길드 다 합쳐도 60인 풀 파티를 못 채우니… 싫어도 신세계랑 따거 포함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에이, 그래도 따거는 심했죠. 차라리 우리한테 용병 지원 요청하지.”
따거를 떠올린 규호가 질색한 눈으로 혀를 내둘렀다. 세인트들에게 있어 따거는 오래전부터 요주의 인물이었다.
“핑푸 자존심에 절대 우리한테 그런 말 못 하죠. 이번에 레이드 개판 치고 망해서 급급해지면 모를까.”
무니는 핑크푸크가 아마 주먹을 불끈 쥐며 수치스러워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저절로 떠오르는 그 모습에 곳곳에서 작은 폭소가 터졌다.
원래대로라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험담이 신나게 이어졌겠지만… 일단은 서로가 손을 잡은 상태라는 걸 인식하고 있어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쳤다.
“어쨌거나 저쪽이 무사 클리어해야 우리도 이득이니까. 응원하죠.”
“맞아요. 서로 윈윈해야죠.”
“우리 레이드나 신경 씁시다. 저쪽은 공략 다 알고 갔는데, 알아서들 잘하겠죠.”
“그건 그렇고, 우리 밥은 어디 가서 먹어요?”
곧장 식사 이야기로 빠지는 통에 다시금 왁자지껄해졌다.
주점 선정으로 다들 목청을 높이는 가운데, 리디안은 보리알이 사라진 창고 게이트를 힐끔 돌아보며 속으로 기원했다.
부디 이번 레이드에서 보리알이 속 썩는 일 없길 바란다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