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잠깐의 잡담에 정신을 빼앗긴 리디안도 다시 보스에게 집중했다.
놀랍게도 보스의 HP 게이지가 80%에 진입해 있었다. 공격력이나 디버프 패턴이 까다로운 대신, 방어력과 체력이 별 볼 일 없다는 게 사실인 듯했다.
한참이나 떠들다 뒤늦게 눈치챈 딜러들도 금세 화색이 되어 웃었다.
“이야, 이거 금방 잡겠는데?”
“우리한테는 신스펠, 스킬 배운 딜러들이 있잖아요. 태양 애들 산맥 깨는데, 한 시간 걸렸다던데. 우린 더 빨리 가능할 듯?”
히죽 웃은 딜러들의 시선이 힐끔 리디안에게 향했다. ‘여신의 영역’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 시선을 받은 리디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메테오 세례와 디버프 난관에 잠시 잊고 있었다. 그에 서둘러 고개를 돌렸으나 캐티스와 이모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직요. 메테오 때문에 힐이 많이 들어가는데다, 디버프도 아직 좀 불안한 상황이라서요. 지금은 영역보다 힐이 더 나아요. 영역은 좀 안정적으로 되면 그때 부탁드릴게요.”
주변 상황을 살핀 이모탈이 쓰게 웃었다. 메테오 세례가 예측할 수 없는 랜덤이라, 갑자기 스카디 힐이 빠지면 커버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해한 리디안은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보스의 HP가 줄어드는 속도를 보아하니 딜러들이 굳이 영역 스펠에 크게 의존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근데, 이모탈 님. 영역이 방어력 증가에 상태 이상 면역인데, 그냥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눈치껏 염탐한 벨벳루즈가 아쉬워하며 물었다. 그에 이모탈은 미안한 듯 눈가를 찡그렸다.
“영역 범위가 한계가 있잖아요. 메테오가 계속 이렇게 떨어지면 효과 못 받는 잡몹 팀이나 나머지 비격수들한테 너무 부담이라서요.”
그제야 벨벳루즈는 입맛을 다시며 포기했다. 리디안은 몇 걸음 앞에서 시무룩해 하는 벨벳루즈를 향해 멋쩍게 웃어 보였다.
“축복 버프 끝나 가나 봐요! 애들 색 옅어졌다!”
내내 골골거리던 규호가 반갑게 소리 질렀다. 리디안도 그에 반응해 돌아봤다.
지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지, 진했던 잡몹들의 붉은 기운이 어느새 연분홍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덩달아 5파티와 6파티의 얼굴빛도 밝아졌다.
[회복.]그때, 조용히 메테오만 난사하던 보스가 다른 패턴을 선보였다.
순식간에 몹들의 발밑에서 올라오는 붉은빛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잡몹들의 HP가 100% 회복되고 말았다.
100%로 바뀐 축복의 회복량은 대체로 먼저 예상한 터라 문제 될 건 없었다. 플레이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뭐야! 분명 범위 밖인데?!”
탱커인 물리학자가 당황해 사람들을 쳐다봤다.
물리학자는 기존 패턴 범위를 의식해 진작 회복 범위 밖으로 몹들을 끌고 나온 상태였다. 그런데 회복이라니. 혹시 자기가 범위를 잘못 계산했나 싶어 물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보스 오른편에서 ‘짓밟힌 제물’의 시선을 끌고 있던 일반인도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물은 가뜩이나 높은 체력으로 골칫덩이나 다름없던 몹이다. 겨우겨우 죽어 가던 제물은 완전히 회복되어 지면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5파티의 딜러인 박회장, 베라, 세자, 레인포레스트, 어쿠스틱은 물론. 중앙에서 힐을 하는 세인트들에게서 지친 야유가 빗발쳤다.
“회복 패턴, 범위 증가! 잡몹 팀, 섣불리 더 이동하지는 마세요! 세인트 힐 범위 생각해서 움직이길 바랍니다!”
불현듯 지하 도시 보스의 회복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래도 그땐 한 번 회복되고 나서 일정 수치까지 ‘물 몸’이긴 했다. 그러나 잡몹에게 그런 부가 서비스는 해당하지 않았다.
탱커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좀 더 이동해 범위를 다시 가늠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더 멀어지면 세인트의 힐 범위를 벗어난다.
그러니 다소 번거롭더라도 회복된 몬스터들을 다시 치는 게 가장 안전했다.
“은근하게 애먹이는 변수네.”
“맞아요. 타격이 큰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이 애매함.”
“아~ 잡몹 팀도 귀찮겠다. 몹 두 번 잡는 것만큼 짜증 나는 것도 없는데.”
저주에 이은 번거로운 패턴 등장에 슬슬 앓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늘어지는 분위기에 신사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곧 한 소리 떨어지나 싶었던 때, 별안간 이노센트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다들 힘내자고요! 귀찮으니까 시간 끌지 말고 후딱 처리하고 나갑시다!”
시원스러운 이노센트의 목소리에 차츰차츰 여기저기서 긍정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남편인 백검이 제일 먼저 사근사근하게 맞장구치니, 사그라들었던 분위기도 금세 불타올랐다.
“분위기 하나는 좋네.”
그래서 참 좋다며 이모탈이 작게 웃었다. 다 같이 파이팅하는 분위기에 리디안의 입가도 슬며시 올라갔다.
갑작스레 좋아진 분위기에 덩달아 기분까지 좋아진 건지. 바쁘고 의무적으로만 느껴졌던 힐도 어쩐지 재밌어졌다.
물론 함께 고군분투하는 세인트들 덕이 가장 컸다.
등 뒤에 있는 세인트들이 워낙 고수다 보니, 애매한 상황에서도 각자 센스 있게 보조 힐을 넣고 있었다.
그 덕분에 리디안이 덜 부담스러울 정도로, 파티원들의 HP 관리에 점점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아군 세인트들은 정말 최고였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여서 참 좋고 자랑스러웠다. 리디안은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연신 히히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축 팀은 저주 패턴의 어려움 때문에 얼굴빛이 어두웠다.
우연히 바라본 곳에 페페가 반쯤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페페에겐 자신의 빠른 스위칭 반응과 지능 세팅으로도 디버프가 풀리지 않은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다.
마음속으로 안타까움을 느낀 리디안은 여유가 되면 돕기 위해 미리 지능 무기를 준비했다.
사실 이것도 하나하나 따져 보면 상당히 귀찮은 일이긴 했다. 힐과 신축의 서로 다른 극대 효과를 위해 매번 무기를 스위칭하는 것도 모자라, 타이밍까지 세심하게 맞춰야 하니…….
어설프게 건드려 힐 타이밍이 어긋날 바엔 차라리 끼어들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리디안은 고생하는 그들에게 적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른 세인트들 역시 같은 마음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딜러들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풀리지 않는 저주에 신축 팀이 부담스러워함은 물론. 잡몹 팀까지 회복 패턴으로 쓸데없이 고생하는 게 보여 모두 마음이 급했다.
레온이나 크라이그, 신사를 비롯한 80레벨 딜러들은 MP와 쿨타임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레이드에서도 똑같았지만, 이번 신전에선 유난히 더 마음이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산맥과 신전이 움직이면서 해야 하는 패턴이 거의 없는 편이라는 거였다.
보스에게 대미지를 넣는 것에 방해가 없으니 공격에 도가 튼 딜러들은 거의 날아다니고 있었다.
“참격난무.”
“일격필살.”
보스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뉜 레온과 크라이그가 동시에 신스킬을 사용했다.
파티에 포함된 나이트는 총 세 명. 그러나 박회장이 잡몹 팀에 소속되어 있어, 레온과 크라이그는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으려 구역을 반반으로 나눈 상태였다.
레온과 타이밍을 맞춰 스킬을 모두 사용한 크라이그는 잠시 뒤로 물러났다.
쓸 만한 스킬 쿨타임을 기다리는 동안 일반 공격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불길하게 보스가 두 손을 모아 하늘로 쳐드는 게 보였다.
크라이크처럼 눈치 빠른 몇몇이 짧게 욕설을 뱉으며 주춤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보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심판.]모두가 가장 우려하는 패턴이었다.
기존의 ‘심판’은 임의의 플레이어 한 명을 선택해 HP 대부분을 깎아 내리던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은 변수로 인해 ‘즉결 심판’에 더 가까울 게 분명했다.
그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플레이어들이 흠칫 놀라 발아래를 살폈다.
“어? 이거…….”
리디안 역시 지면에서 생겨난 붉은 빛에 화들짝 놀랐다. 지하 도시에서 보았던 랜덤 텔레포트 형태와 비슷했다.
지척에 나타난 원형 마법진에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쳐 피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마법진도 슬그머니 자신을 따라왔다.
윽, 신음한 리디안이 또 한 번 이동했지만 마법진은 자꾸만 꼬물거리며 불안하게 주위를 맴돌았다.
“뭐야, 이거?! 원래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잖아요? 설마 방식이 바뀐 건가?”
여기저기서 황당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야 기존의 패턴은 아예 한 사람을 지정한 상태에서 마법진이 고정되어 나타났으니 당연했다.
그러니 누구를 지정할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은 모두의 공포를 극대화하기 걸맞았다.
“아, X발! 저리 가! 개극혐!”
“긴장해라. 이거 100% 장담하는데, 즉사임.”
“그게 문제가 아니야! 다들 바닥에 마법진 뜬 거 봐요! 하나 아니고 여러 개임!”
“헐. 뭐야, 지금 네 개 뜬 거 맞죠? 그럼 심판 한 번에 네 명 죽이는 거야?”
다른 플레이어들 또한 발밑을 보며 우왕좌왕 당황했다. 특히나 다람은 오른발, 왼발 까치발을 들어가며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거의 즉사라고 확실시되는 분위기라 두려워진 리디안도 불안함에 이모탈을 향해 물었다.
“이거 혹시 지하 도시 때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당첨되는 걸까요?
“아마도요. 그나마 재주껏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리 말하는 이모탈도 발밑으로 다가오는 마법진을 피해 열심히 발재간을 놀렸다. 리디안을 그대로 지나친 마법진이 뒤로 향해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법진은 근처를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딜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사이 리디안은 곳곳에서 자꾸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보며 땀을 뻘뻘 흘렸다. 특히 멀리 떨어진 잡몹 팀의 경우, 아슬아슬하게 힐 범위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의 HP도 온전히 리디안의 몫이었다.
이따금 좌우 끝을 주시하던 리디안의 눈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메테오는 여전히 눈치 없이 떨어지고 있는데, 잡몹 팀의 박회장과 칼릭이 각각 마법진과의 추격전을 벌이며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에 리디안은 혼란스러웠다.
‘어쩌지? 따라서 움직여야 하나? 어디부터 가야 하지? 박회장 님 있는 오른쪽? 아니면 칼릭 님 있는 왼쪽?’
당황스러움에 머리가 굳는 느낌이었다.
떨어지는 그들의 HP에 눈앞이 깜깜해지던 찰나, 리디안은 등 뒤에 굳건하게 서있는 세인트들을 인지했다.
사실 스카디 힐로 메인 힐을 맡는 자신보다, 그들이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는 게 더 합리적이었다.
별안간 머리가 차분해지자 리디안은 전방을 주시하며 크게 목소리 냈다.
“이모탈 님! 캐티스 님! 잡몹 팀의 박회장 님이랑 칼릭 님이 힐 범위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어요!”
어쩌면 두 사람도 양 끝의 상황을 눈치챘을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리디안은 잠시 말하는 걸 멈췄다.
고맙게도 두 사람은 가타부타 더 말하지 않아도 한 번에 척 알아들었다. 즉시 눈짓을 나눈 이모탈과 캐티스가 좌우로 서서히 떨어져 각각의 잡몹 팀과 거리를 맞춰 갔다.
마법진을 피하느라 힐 범위를 벗어났던 박회장과 칼릭은 아슬아슬하게 닿은 여신의 손길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덩달아 위치를 인식한 그들은 헐레벌떡 제자리로 돌아갔다. 세인트 입장에선 다행히 한 차례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하지만 마법진에 쫓기는 사람들의 사정은 여전히 긴박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법진의 속도가 굼벵이처럼 느릿느릿해졌다. 간신히 피해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안도의 숨이 뿜어져 나왔다.
정리되어 가는 듯한 상황에, 알고 보니 별거 아니라며 마프로가 어깨를 으쓱인 순간이었다.
느릿느릿 기어가던 마법진이 두어 걸음 떨어져 있던 마프로에게 순간 이동 해버렸다. 그 광경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