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다람은 특유의 집착을 이용해, 스스로 태양 연합의 사정을 캐낸 상태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드 흑도를 들들 볶아 알아낸 사실이었다. 먼저 폭로한 먹구름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엉겁결에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낸 격이라, 흑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더욱이 다람의 눈치 없는 반응에 멀리서 닿는 눈초리도 날카로웠다. 모르긴 몰라도, 한참 뒤에 핑크푸크에게 쓴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사실 창피해서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다람이 자꾸 따거와 베누스의 욕을 하며 구슬린 탓이었다. 흑도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휘말려 상황을 줄줄 불게 된 것이다.
함께 앉아 있던 블루벨과 실버린은 대놓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다람은 계속해서 눈치 없이 웃었다. 급기야 단상에 있던 핑크푸크나 아퀴나스, 무너스키 등의 눈이 사납게 쭉 찢어지는데도 말이다.
“뭐 하냐, 이 미친놈아.”
그래도 이상성욕자에서 가장 경우 있는 고독한이 발 벗고 나섰다. 가차 없이 뒤통수를 후려갈긴 고독한은 냅다 다람의 목덜미를 잡아, 개처럼 질질 끌고 갔다.
그 와중에도 배를 잡고 웃음을 멈추지 않는 다람 때문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ONE이나 레기온 내에서 다람을 아는 사람들도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다.
리디안도 괜히 창피한 마음에 보리알과 먹구름의 눈치를 살폈다. 애써 웃고 있지만 두 사람도 다람의 언행이 썩 반가울 리 없었다.
혹시나 해 잠시 쳐다본 크라이그 역시, 다람 때문에 대신 창피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크라이그는 한 손으로 슬그머니 얼굴을 가리며 끌려가는 다람을 외면했다.
다람으로 인해 싸해진 분위기에 사람들은 슬금슬금 간부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런데도 풍월주나 샤봉 등은 다람의 언행이 재밌는지, 은근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였다.
이러다 또 감정싸움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대단히 미묘해진 분위기에 리디안은 합죽이가 되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 있는 자리가 단상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그들의 표정이 훤히 보였다.
핑크푸크, 아퀴나스, 무너스키. 세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도 치욕스러워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나 이미 각오하고 있었는지 입술을 꾹 깨물며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 레이드의 일로 몹시 지쳐 보이기도 했다. 사실 얼굴이 익숙하진 않지만, 전에 본 것 보다 거의 십 년은 더 늙은 듯했다.
길드원들도 다를 것 없었다. 바닥까지 무너진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는 별개로 눈빛에선 어쩐지 해탈한 느낌이 가득했다.
“그럼 지금 안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다 불참인 건가요?”
조용해진 장내를 두리번거린 페페의 물음에 보리알이 그렇다고 답했다. 다소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뒤따르자, 먹구름이 추가로 설명했다.
“사이나 갤럭시. 그런 사람들은 뭐 아시다시피 개인적인 감정 앞세워서 불참했죠. 갤럭시가 그래도 융통성 있게 나올 줄 알았는데. 출신 길드 의식해서 그런지 조용히 빠지더라고요.”
“네. 이해해요. 지난번 신전 PK 사건도 있고 하니까요. 잘 알던 사이였어도 아직은 아무래도 얼굴 보기 좀 껄끄럽겠죠.”
캐티스가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사이, 그 사람은 황소고집이라 뭐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 개인적인 감정이에요 아, 그리고 몇 명은 아예 길드에 정떨어졌다고 이제 레이드 하기 싫다고 잠수 탔어요.”
그리 말하는 먹구름 역시 길드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진 건지. 폭로에 거리낌 없었다.
따지고 보면 거의 자기 길드,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나 다름없었지만, 보리알도 이젠 다 내려놓았는지 먹구름의 언행을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멀리서 힐끔 곁눈질하는 무너스키만 혼자 아니꼬워할 뿐이었다.
“그랬구나……. 아무튼, 뭐라 말하기가 좀 그렇네요.”
나름대로 핑크푸크 쪽의 처지를 생각해 마제스티와 레온이 대충 변명한 뒤였다.
그러나 보리알이나 먹구름과 같은 생각인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내부 사정을 폭로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태양 연합의 지하 도시 일은 모두가 다 아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이건 뭐… 조만간 누가 길탈 하겠다고 나올 각인데?”
옆 테이블의 소소에게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게 된 후. 이노센트가 황당함에 중얼거렸다. 함께 있던 크라이그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게요. 이제 와서 따거 잘라버리고 신세계랑 동맹 해제해도… 떠나간 민심이 돌아오진 않을 것 같네요.”
“내 말이. 백번 양보해서 신세계는 고급 인력이라 포함한다고 쳐도. 그 쓰레기봉투 말이야. 걔는 진짜 왜 또 데려갔어? 그렇게 좋다고 끼고 살더니 결국, 이 지경이 된 거잖아.”
“뭐, 처음부터 예상한 대로죠. 근데 지금, 이 상황이 길드 연합 말로에서 가장 끝이 안 좋은 경우라……. 이제 핑푸가 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길드 분위기도 바뀌겠죠.”
자연스레 단상 위 핑크푸크를 쳐다보는 시선에 이노센트도 깊게 한숨지었다.
어쨌든 이로써 모든 전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셈이다. 그것도 이제 함께 레이드를 진행해야 하는 처지로 말이다.
* * *
참여 인원이 다 모였지만 장내의 소란스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사람마다 따거와 베누스의 위대한 업적을 논하거나 침공 이벤트 이야기로 정신없었다. 간부들도 나름대로 단상에 모여 침공과 레이드에 대한 것을 논의하기 바빴다.
비교적 단합이 잘 되는 세인트끼리 시시콜콜한 사담을 나누는 사이, 리디안은 무심코 단상 위 인물들을 두루 살폈다.
그나저나 ONE, 레기온 연합과 태양 연합이라니…….
볼수록 저 그림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그에 리디안이 히죽 웃다가 중간에 쭈뼛쭈뼛 껴있는 대장군을 의식했다.
경계의 숲 탐색에서 언뜻 풍기던 분위기로는 이 조합을 은근히 기대한 눈치였는데. 어째서인지 대장군의 표정이 꽤 우울해 보였다.
지금 앉은 자리가 단상과 가까운 덕분에 표정도 잘 보였는데, 묘하게도 대장군의 눈이 억지로 웃는 느낌도 들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지만… 보리알이 그들에 대해선 말해 주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었다.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사이는 아니라, 리디안은 그러려니 시선을 돌려버렸다.
“다 모이셨죠? 일단 시간제한 때문에 바로 레이드 파티 편성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신사의 큰 목소리가 울리자 그제야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진행을 신사가 나서 맡는데도 핑크푸크는 불쾌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신사를 불퉁하게 쳐다봤을 사람이라. 그 낯선 변화에 리디안은 한참이나 신기해했다. 그 모습이 신기하긴 다른 사람들도 똑같았다.
“이야, 핑푸 기 엄청 죽었나 보네요. 당분간은 꼬리 내린 강아지 모드일 듯?”
“쉿. 그만 떠들어. 그리고 이제 입조심해. 우리만 있는 자리 아니야.”
킥킥 웃는 규호를 향해 캐티스가 날카롭게 경고했다. 규호는 바로 깨갱 하며 입을 다물었다.
“먼저 직업별 인원수부터 체크할게요. 편의상 존칭 생략합니다. 첫 번째로 안티 리질리언스 필드 담당인 다템. 다람, 하츠, 인드라. 블루벨. 총 네 명. 다람 님 기준으로 모여 주세요. 필수 아이템인 죽마저 확인도 같이 해주시고요.”
원활한 파티 구성을 위해 직업별로 모아 앉히려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세인트들은 이트를 제외하고 모두 함께였기에 움직일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 은근한 분위기 때문인지, 이트가 마지못해 엉덩이를 드는 게 보였다.
“두 번째 오브젝트 패턴 담당할 섀헌입니다. 대장군, 토토리아, 페이지, 작약. 대장군 님 바로 내려가실 거니까 세 분은 그쪽으로 모여 주세요.”
그다음으론 세인트가 호명됐다.
캐티스, 이트, 페페, 그레이스, 이모탈, 보리알, 환경파괴자, 먹구름, 리디안, 낙루, 규호, 드림드림, 앵두군, 무니, 추장.
단연코 모든 직업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인원수였다. 그에 잠시 와, 하는 감탄이 솟았고 세인트들은 괜스레 우쭐해 하며 은근하게 세력을 과시했다.
이후로도 신사는 바드, 팔라딘, 가디언, 나이트, 워로드, 로그, 아쳐, 바바리안, 파이터, 레인져, 매지션, 서모너 순으로 장내의 참여 인원을 확인했다.
호명된 인원만 해도 70명이 넘었는데, 그중 태양 연합은 22명밖에 되지 않았다.
“와. 숫자로 들으니까 확 와닿네. 일부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쳐도. 그래도 레이드 인원에서 거의 40명 가까이 탈주했다는 소리잖아요?”
맨 뒷줄에 앉아 있던 추장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리디안도 그리 들으니 새삼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지원 요청을 할 수밖에 없는 인원이었다.
“총 74명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이드 인원 제한은 60인 기준이라, 이 중에 열네 분은 지상 잡몹 팀으로 합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원치 않으시면 아예 빠지셔도 괜찮습니다. 먼저 잡몹 팀 지원 원하시는 분부터 손 들어 주세요.”
정중한 신사의 요청에 기다렸다는 듯 몇 명이 대뜸 손을 들었다. 낙루, 블루벨과 실버린 커플. 그리고 호드라와 추장이었다.
그들은 진작 인원과 직업을 체크해, 이 정도 규모면 자신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자발적인 제외 요청에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슬금슬금 손들기 시작했다.
“부길마님! 저도 잡몹 팀으로 빠지겠습니다!”
피곤하여 오래 버틸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포푸리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녀와 친한 스타일리쉬가 장난식으로 버티라며 한소리 했지만 포푸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포푸리가 먼저 자신 있게 손든 덕분에 망설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빠졌다.
“네. 그럼 낙루, 블루벨, 실버린, 호드라, 추장, 포푸리, 불꽃심장, 보보, 미인도, 물리학자, 악당, 드림드림, 무니, 앵두군. 총 열네 명 제외. 이 중에 지상 잡몹 팀으로 빠지실 분들만 백검 님 앉는 쪽으로 따로 모여 주세요.”
열다섯이었던 세인트 중 네 명이 빠졌다. 아무래도 스카디 힐러가 둘이다 보니 그걸 의식해 물러난 듯했다.
리디안은 파이팅, 하고 응원하는 무니와 앵두군을 향해 멋쩍게 웃었다. 늘 함께했던 이들이 빠지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지상 잡몹 팀에 합류한다고 하니 고맙고 다행인 일이었다.
“그럼 나머지 60인으로 바로 파티 편성하겠습니다. 파티는 추가로 조율 가능하니 잠시 대기해 주세요.”
신사는 곧장 돌아서 간부들과 머리를 맞댔다.
맨 앞줄에 앉은 이모탈은 최상의 파티 조합이 나올 거라며 껄껄 웃었다.
다른 세인트들을 따라 끄덕이면서도 리디안은 태양 연합과 함께 가는 레이드에 작은 기대와 긴장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