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요툰하임 토벌】
“…뭔가 다른 의미로 괴기스럽네.”
멀리서 지켜보던 누군가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리디안도 그 말에 동의하며 제각각 개성을 뽐내는 NPC들을 쳐다봤다.
위험한 도시를 피해 대피했다는 메시지와는 달리. NPC들은 저마다 특유의 고정된 표정을 지닌 채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움직이는 마네킹처럼 말이다.
“미미르 때문에 다른 NPC 중에도 진짜 생명체가 있을 거라 예상은 하지만……. 쟤들은 진짜 너무 이질적이다.”
이노센트는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말처럼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고, 모종의 이유로 저렇게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표정이나 동작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괴이한 느낌이 있는 것도 분명했다.
“어, 저기 사이비 애들도 왔네요.”
파파가 가리킨 곳은 길드 성 부근이었다. 그곳엔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게 ‘에긴’을 필두로 한 붉은 태양 교단의 사제들이 단체로 모여 요란하게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특히 맨 앞에 선 ‘에긴’이 사람들을 향해 방긋 웃으며 뭔가를 말하는 참이었다. 그가 어떤 내용을 말하는지 궁금해진 리디안의 일행이 가까이 다가가자 곳곳에서 황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개X끼를 봤나. 미친 거 아니야? 오백만 골드?”
“그래도 축복받은 성물이라는데?”
“일종의 버프인가?”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이노센트가 불쑥 끼어들었다.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던 플레이어들은 하이 랭커의 물음에 움찔 놀라는 듯했다. 그러나 생글거리는 이노센트의 표정에 경계가 사라진 건지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설명했다.
“어, 음. 얘네가 축복받은 성물을 판대요. 그걸 가지고 있으면 사악한 힘을 이길 수 있다나 뭐라나. 암튼 사이비가 사이비처럼 말하고 있어요.”
참 알기 쉬운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사제들이 지금 수상한 아이템을 판매한다는 말이었다.
조금 전 시스템 메시지로 NPC들이 플레이어를 지원할 거라곤 했지만 설마 이런 형태일 줄이야. 리디안은 아이템이 궁금하기도 해 슬쩍 기웃거렸다.
마찬가지로 다들 궁금했는지, 서로서로 에긴과의 거리를 좁히는 중이었다. 그때 공교롭게도 에긴이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빛의 구원이 여러분을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게 할 것입니다!”
커다란 목소리와 두 팔을 활짝 벌리는 에긴의 몸짓에 리디안이 깜짝 놀라 물러났다. NPC 에긴은 그런 것에 괘념치 않고 마음껏 떠들어 댔다.
“우리 교단의 빛이 여러분을 보호하며 성스러운 축복을 내려줄 것입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이 작은 성물 하나만 몸에 지니고 있으면 됩니다. 우리 세계를 위협하는 저 막강한 오딘의 군대라 할지라도. 우리 교단의 빛에 말라 죽을 뿐입니다.”
미심쩍긴 해도 일단 주장하는 성능 자체는 이번 침공전에 대항하는 게 맞는 듯했다. 뒤늦게 온 다른 전투 길드원들은 에긴의 주장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힘을 얻고 싶다면 우리 교단을 위해 성의를 보이십시오. 오백만 골드의 참된 성의를 보이는 자에게 빛의 보호가 가득 찬 성물을 하사하겠습니다.”
활짝 웃는 에긴의 표정과는 달리,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쉽게 말해 오백만 골드를 내면 성물을 준다는 건데. 오백만 골드가 그리 큰돈은 아니라지만, 적어도 중저레벨 입장에서 적은 돈은 아니었다.
“이 미친 사이비 새X들. 재난 상황 이용해서 사기 치는 거 아님?”
“성물팔이?”
사이비는 대체로 인식이 좋지 않아, 곳곳에서 의심스럽게 주장했다. 리디안은 내심 속으로 동감했다. 정황상 시스템의 안내가 맞는 듯해도 그들의 출신을 따진다면 그리 신용이 가는 발언은 아니었다.
지켜보던 전투 길드 마스터들도 오랫동안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사이,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누군가가 호기롭게 나섰다.
“에이, 어차피 돈도 남아도는데. 내가 일빠로 사봄.”
가진 건 돈밖에 없다며, 재력을 과시한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에긴에게 다가갔다. 에긴의 눈이 반달로 휨과 동시에 거래가 진행됐다.
오백만 골드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한 그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쳐다보며 연신 감탄했다. 그 반응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에워쌌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일단 아이템부터 꺼내 들었다.
“대박. 이거 그냥 인벤에 가지고 있으면 되는 모양인데?”
그의 손에 들린 건 역삼각형의 얇은 석판으로, 중앙에는 ‘해’를 연상케 하는 단순한 기호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생김새를 봐선 착용이 불가한 아이템인 듯했고, 육안으로 간단한 설명문도 확인됐다.
[빛의 성물 : 붉은 태양] [교단의 일원과 후원자에게 지급되는 축복의 성물이자, 교단의 증패.] [성물 소유주의 잠재된 힘을 끌어냅니다.]상세하진 않아도 마지막 설명문대로라면 일종의 버프 아이템이 분명했다.
아이템 능력에 빠삭한 하이 랭커들이 눈을 빛냈지만, 일각에선 찜찜한 반응도 많았다.
“뭐야, 증패라고? 저거 사면 그대로 사이비로 낙인찍히는 거 아니야?”
“버프 아이템이면 탐나는데, 사이비 낙인이면 진짜 갖고 있기 찝찝한데.”
리디안도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요툰하임 재진격을 앞둔 전투 길드원들은 당장의 능력치 업그레이드가 더 중요했다.
탐탁지 않은 눈으로 에긴을 노려보던 포푸리가 전투 길드원 중 제일 먼저 그 유혹에 넘어갔다.
“사이비고 나발이고. 내가 안 믿으면 그만이죠! 그리고 이거 하나로 몹 한 마리라도 더 막을 수 있다면 난 당장 살래요!”
“야! 얌마! 포풀! 기다려 봐!”
스타일리쉬의 만류에도 포푸리는 덜컥 구매를 진행했다. 눈치 보고 있던 다른 이들도 포푸리의 말에 동의하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구매하기 시작했다.
“어… 어쩌죠. 저희도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쩐지 너도나도 사는 분위기에 자토가 당황해 주변을 바라봤다. 이노센트는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크라이그는 잠깐 고민하다 구매해 버렸다. 그 모습에 이노센트도 에라 모르겠다 구매했고 자토와 행복, 헤른, 우래귀도 따라서 성물을 구매했다.
“누나는요?”
“리디, 아직 안 샀어?”
헤른과 이노센트의 질문에 리디안은 땀을 뻘뻘 흘렸다. 조금 얍삽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구매 후기를 확인한 후 신중히 구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음. 나는…….”
“비격수 능력치 증폭 확인되면. 세인트는 그때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뒷줄에서 ONE 길드원들과 사태를 지켜보던 페페가 난입했다. 리디안은 더 완성된 답변을 해준 페페에게 감사의 눈짓을 보냈다. 헤른과 이노센트는 바로 납득했다.
“하긴. 뭔 이상한 아이템일지도 모르는데. 힐러는 신중히 결정해야지.”
리디안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 이노센트는 자신의 인벤토리를 수상쩍게 바라봤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요. 가서 확인하고 올 테니까.”
리디안과 페페에게 말한 크라이그가 이노센트에게 손짓했다.
“어, 몹 잡으러 가는 거면 힐러도 가야 하잖아요. 저도 그럼 같이…….”
“아녜요. 잠깐 대미지만 확인하는 거니까 굳이 따라올 필요 없어요. 어차피 한참 걸어가야 하고, 이따 또 이동할지도 모르는데. 그 체력으로 버틸 수 있겠어요?”
짓궂은 말투 속에 숨겨진 작은 배려에 리디안은 민망하게 웃었다.
크라이그와 이노센트가 솔선수범 움직이자, 성물을 구매한 다른 사람들도 효과를 확인하겠다며 성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레벨 고레벨 할 것 없이 우르르 이동하고 나니, 남은 사람들은 리디안과 같은 비격수. 혹은 찝찝함에 선뜻 구매하지 못하고 선발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황당하긴 한데. 결과가 궁금하긴 하네요.”
보리알은 멀리 뛰어가는 먹구름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 쉬었다. 그렇게 기다려 보라 조언했지만, 먹구름은 보리알의 말을 듣지 않고 대뜸 성물을 구매해 버렸다.
먹구름처럼 말 안 듣는 세인트들이 꽤 있는 편이라, 캐티스와 이모탈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구매자와 비구매자 리스트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ONE에선 그럼 규호 님 혼자고. 레기온은 괴자 님이랑 앵두 님? 자유 길드에선 먹구름 님, 그리고 다른 길드에선…….”
“다른 비격들은요?”
“매지션은 됐고. 바드랑 다템 중에서……. 네? 아놔. 다람 님도 구매했다고요? 아, 진짜 그 양반!”
대충 말썽꾸러기들의 이름이 호명되는 동안, 리디안은 페페와 나란히 앉아 선발대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아이템의 출처가 출처인지라.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버프 아이템에 대한 기대가 들었다. 정말 설명문대로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끌어올려 준다면 침공전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기다리길 삼십 분째였다.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슬슬 소식이 전해질 때라, 남은 사람들은 초조한 얼굴로 허공을 두들겼다.
[크라이그 : 사지 마요.]무의식적으로 메시지 창을 드나들던 리디안이 깜짝 놀라 정지했다. 타이밍 좋게도 메시지가 도착했지만, 짤막한 내용은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어… 설마 효과가 없는 건가?”
사기를 당한 건가 싶어 에긴이 있는 쪽을 쳐다본 순간이었다.
“야! 대박! 몹 잡는거 X나 쉬워졌대!”
“성물 갖고 치니까 그냥 평소 일반 맵에 있는 몹 수준이라는데?”
“내 동생 65짜리 개쩌리 매지션인데, 지금 글라디 평원에서 살짝 날아다니고 있다고 함.”
사람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리디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사지 말라는 크라이그의 말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였다.
약간 혼란스러워진 리디안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렵, 규호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페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딜러한테만 효과가 있나 봐요. 세인트나 바드, 다템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네요.”
“아……!”
그제야 크라이그의 메시지를 이해한 리디안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까는 급한 일이 있어 그랬던 건지, 곧 크라이그에게서도 자세한 설명이 날아왔다. 비격수들에게 효과가 없다는 건 조금 서운하지만 그래도 딜러들에게 버프 효과가 인정된다니 참 다행인 일이었다.
“대박! 대박! 우리 이길 수 있어! 성물 있으면 그냥 다 썰고 다닐 수 있음!”
선발대로 나갔던 플레이어들이 귀환해 기쁨의 소리를 내질렀다. 소문이 퍼져나가자 미드가르드는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최후에도 찝찝함에 구매를 망설였던 하이 랭커 딜러들도 희망찬 사람들의 표정에 뭉클해져 에긴에게 직행했다.
“이거 진짜 사도 되는 거 맞아요? 증패라니까 되게 찝찝한데.”
“큰 의미는 없을 거예요. 어차피 사이비 새X들 하는 짓이야 뻔하잖아요. 혼란을 틈타 돈을 벌려는 거. 그거 생각하면 얘들도 그냥 정해진 콘셉트대로 행동하는 거 같아요.”
“이렇게 버프 나오는 거 보니까, 우리가 이기는 게 딱 정해진 느낌 들지 않아요?”
“근데 그걸 누가 주도하냐― 라는 것도 좀 생각해 볼 만한 문제죠.”
“배후가 뭐든. 일단 침공전은 해결하고 봐야죠. 잘은 몰라도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이겨야 우리한테 유리한 거잖아요. 그리고 무조건 클리어하겠다고 온갖 폼은 다 잡았는데. 이런 기회를 얻고도 미적거릴 순 없죠. 이거 하나로 전세가 뒤바뀔 수가 있는데…….”
잠시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은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대놓고 밥상이 차려져 있는데, 안 먹을 순 없었다. 일단은 이 전쟁에서 이기고 보자는 의견이 많아지니 성물을 구매하는 이도 점점 늘어갔다.
“흠. 이거 뭔가 묘한데. 여기서 갑자기 또 사이비가 나와버리니까 알쏭달쏭하네요.”
여태 지켜보다, 마지못해 성물을 구매한 박회장이 꺼림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 있던 리디안은 그 말뜻을 이해하며 되물었다.
“헤임달이요?”
“네. 정황만 보자면 헤임달이 의심스러운데. 갑자기 너무 대놓고 아군 티 내는 거 같아서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워졌어요.”
붉은 태양 교단이 믿는 신이 헤임달이니, 그들이 주장하는 ‘빛’은 헤임달의 힘이 분명하다. 그러니 박회장이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욱이 진실이 공표되고 ‘흑막’이 존재할 가능성이 커졌기에 이 사태에 관심 많은 사람도 붉은 태양 교단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인위적인 느낌도 들어요.”
페페 역시 찡그린 채 끄덕였다. 그 말을 들은 리디안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갑작스럽게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런데 이거 정말… 우리가 이겨야 하는 싸움이 맞을까요?”
“그야 당연히 이겨야…….”
대꾸하던 박회장이 텁, 입을 다물었다. 곧장 미간을 찌푸린 박회장은 어, 어― 신음하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처에 있던 보리알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리디안은 자신의 이상한 느낌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게……. 우리 입장에선 당연히 이겨야 하는 싸움이 맞고, 침공전이나 분위기도 당연히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가 이김으로써 이익을 얻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누굴까. 손해는 당연히 오딘 측이겠지만, 다시 말해 이세계의 원주민들이잖아요?”
“그쵸?”
“만약의 이야기이지만. 혹시라도 우리의 승리가 그들에게. 아니, 이쪽 세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요?”